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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기억의 방주, 아우스터리츠.

포크너붐은온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3.26 23: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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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손택의 평론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녀가 아우스터리츠를 표현한 말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오늘날의 위대한 문학". 독갤에서는 갱차당한 모 고닉-아직도 햄릿의 아버지처럼 유동으로 배회한다.-에 의해서 <아우스터리츠>는 문장 원툴이라는 기이한 틀이 씌워져있지만, <아우스터리츠>는 문장보다 우울하고 치밀한 구성과 주제 의식이 주를 이루는 작품이다. 



1.산산 조각난 시간들

<아우스터리츠>의 읽기 난이도를 기하급수적으로 올리는 시간대의 구성은 크게는 세 가지로 나뉘어져있다. 제발트와 아우스터리츠가 대화를 나누는 현대의 시간대(#11), #11에서 불러와지는 과거의 시간들(#11과 #4를 제외한 모든 시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4. 독자는 #4에서 시작해 아우스터리츠의 과거를 거쳐 현대의 시간대에 도착한다. 독자는 해체된 시간을 맞춰 하나의 연결된 서사로 만들기 위해서 기록하거나 혹은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아우스터리츠는 독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산산조각나 과거를 기록하고 기억하고자 한다. 하지만 독자와 아우스터리츠는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아우스터리츠의 목표였던 가족 찾기는 모조리 실패하고 주변부의 인물이었던 베라만을 만나게 되고, 독자는 <아우스터리츠>의 시간대를 정리하는 것이 무의미함을 깨닫는다. 아우스터리츠의 기억에 의존한 시간대는 '시간'이 아닌 '공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에 시간을 아무리 재배열해도 결코 <아우스터리츠>의 정확한 시간대를 알아내는 것은 불가하다. 그렇게 독자는 아우스터리츠가 그랬듯이 모든 문서를 파묻는다.


2.공간과 건축물

그렇다고 공간과 그를 구성하는 건축물을 따라가다보면 독자는 <아우스터리츠>에 잔잔하게 안개처럼 깔린 슬픔과 고통이 오로지 아우스터리츠의 것만이 아니라 시대 전체와 유대인 전체에 깔린 것임을 깨닫는다. 아우스터리츠의 직업인 '건축가'에 맞게 <아우스터리츠>에서는 건축물과 도시 그리고 공간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그에 대한 분석과 암시가 서술된다. 건축물 중에서도 특히 자주 나오는 것은 철도와 나치 건축물이다.


철도를 통해 아우스터리츠의 시간과 공간은 이어진다. 아우스터리츠의 모든 시간대는 반드시 철도역과 함께한다. 그는 철도역에 나타날때마다, 혹은 철도와 관련된 시설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해당 건물에 대해 말하며 그 기반에 깔린 우울과 고통에 대해 말한다. 엔트베르펜 중앙역은 벨기에가 콩고에서 행한 악행을, 철도에서 시작된 온천과 호에서는 여행을 통해 소비문화를 즐기지만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병원에서는 푸코가 말했던 것들을... 철도가 상징하는 것은 근대와 근대 정신이다. 모든 것이 이성에 따라 해결 가능하다는 근대 정신은 아우스터리츠의 인생을 망친 '홀로코스트'에 의해서 최악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렇게 <아우스터리츠>에서는 자크 아우스터리츠로 대표되는 근대 정신의 피해자들에 대한 애수가 근대 정신의 비이성과 비합리성에 대한 비판 너머에서 처연히 맴돈다.


철도가 간접적인 비판 방식이라면 나치 건축물은 직접적인 비판 방식이다. 브렌동크 요새에 대해 설명할때 제발트는 알베르트 슈페어의 건축물 이론을 언급한다. 그러고는 브렌동크 요새가 얼마나 볼품없는지에 대해 말하며 그의 이론을 반박한다. 나치 독일이 유대인들을 수감하고 학살한 게토와 수용소는 제국이 천년을 가리라는 괴링의 말과 다르게 천주도 가지 못했다. 그렇게 <아우스터리츠>는 나치가 행한 유대인 대학살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그것에 희생된 이들이 어떻게 정체성을 잃고 고통받는가에 대해서 그들의 건축물과 그들을 비교대조하는 방식을 통해 말한다.


하지만 아우스터리츠는 건축물들을 통해 폭 넓게 깔린 우울은 찾을 수 있었지만, 그 자신을 감싸고 있는 우울의 정체인 기억의 부재를 메꾸지는 못한다. 그가 건축에 대해 말할 수록 그는 그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들을 추상적으로 떠올리기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3.사진 

그는 그 스스로도 말하듯이 없어져버린 기억을 보상받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그러한 시도는 여타 다른 시도들과 똑같이 실패한다. 첫 실패는 파리에서의 기억상실이다. 파리에서의 심정지로 인해 일시적인 기억 상실을 겪는 그를 회복시켜주는 것은 사진이 아닌 마리 드 베르뇌유의 헌신어린 간호다. 사진이 그의 잃어버린 기억을 위한 보상이었다면 왜 그는 사진이 아니라 그와는 아무 상관 없는 마리의 텍스트를 통해서 기억을 회복했는가? 두번째는 그의 어머니에 대한 모순적인 사진이다. 아우스터리츠는 두 사진 모두를 그의 어머니라고 인식하는데 반해 베라는 한 사진만을 그의 어머니라고 인식한다. 사진은 그의 서사에 힘을 더해주거나 흐름을 이끌어가고 영화같은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내주지만 결국 그의 기억에는 도움이 되지못한다. 사진을 통해 그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자하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4.방주와 물

그렇다면 아우스터리츠는 어떻게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과 기억들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명확히 제시되지는 않지만 암시를 통해서 드러난다. 그것은 바로 '방주'다. 소설 <아우스터리츠>에서는 물이 계속해서 부정적 이미지로 등장한다. 댐 건설로 인해 침수되어서 사라진 레인딘 마을, 제발트의 절친 제럴드와의 마지막 대화의 장소인 강변, 아우스터리츠가 애인인 마리 드 베르뇌유와 영원히 이별하는 마리엔바트는 온천... '<아우스터리츠>에서 물은 흐르고 흘러 아우스터리츠의 소중한 것들을 사라지게 만든다. 그리고 그의 가장 소중한 것인 기억 또한 흐르는 시간에 의해 사라져버린다. "...그렇게 본다면 시간의 강변이란 무엇일까요? 유동적이고 상당히 무겁고 투명한 물의 특성에 상응하는 시간의 특성이란 무엇인가요? 시간 속으로 잠기는 사물들은 시간에 의해 한 번 도 건드려지지 않은 다른 사물들과 어떤 차이가 날까요?" 물과 기억의 홍수 속에서 아우스터리츠는 자신과 기억을 구원해줄 무언가를 찾는다. 그리고 홍수에서의 구원은 오직 '방주'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아우스터리츠>에서 방주는 총 세 번 등장한다. 첫번째는 앤트워프에서 아우스터리츠가 제발트를 만났을 때, 두번째는 친구 제럴드와 방문한 버려진 아이버 그로브 저택에서, 세번째는 파리 미테랑 국립도서관에서. 방주가 어떠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는 방주의 두 번째 등장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아이버 그로브는 버려져 감자 저장소로 변모했지만, 방주가 있는 당구대의 방은 15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지나갔음에도 어떠한 변화 없이 그대로 존재한다. 마치 시간의 홍수에서 벗어난것처럼. 세번째 방주인 프랑스 미테랑 국립도서관은 방주에 대해서 더 자세히 설명한다. 그곳에서 아우스터리츠는 방주는 정보를 담아 시간이라는 홍수를 벗어난다는 사실을 말해줌과 동시에 프랑스 도서관이라는 너무나 거대한 방주는 정작 필요한 정보는 파묻고 광대하고 거대한 정보를 쓸어담아 시간의 홍수에 벗어나는 대신 고통을 선사한다고도 한다. 즉, 아우스터리츠가 홍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도서관같은 총체적인 정보의 모음 방주가 아니라 필요한 정보만의 모인 방주가 필요하다.



5.아우스터리츠의 방주, <아우스터리츠>.

첫 방주가 등장할때 아우스터리츠는 제발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있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리고 제발트는 그의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들으며 그에게 그가 인화해온 사진들, 공간과 건축물의 이야기, 그리고 산산조각 난 자신의 기억과 시간 등등을 받는다. 그리고는 이 모든 정보들을 종합해서 <아우스터리츠>를 쓴다.


소설 <아우스터리츠>에서 문단은 총 2번 구분된다. #4에서 #11으로 넘어갈때, 과거회상에서 #11로 넘어갈때. <아우스터리츠>에서 문단이 구분되는 순간은 현재 시간대인 1997년으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자크 아우스터리츠가 제발트에게 성토하고 제발트가 그것들을 기술할때, 과거를 말하던 이전의 문단이 끝난다는 것은 아우스터리츠가 자신을 괴롭히던 시간과 물의 홍수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자크 아우스터리츠를 구원하는 제발트의 글인 <아우스터리츠>는 자크 아우스터리츠의 방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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