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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동롬회귀, 크리스마스 외전

물의백작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2.25 22:06:11
조회 496 추천 11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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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옵니다.”


어김없이 섣달의 스물 다섯 번째 날이 돌아왔다. 예수의 탄생이 정말 그 날인지는 알 수 없다. 강경한 학자들은 주님을 모욕하는 날짜 설정이라며 미트라 신의 축제일을 금지하라고 요구하는 모양이다.


“성탄의 깊은 새벽에 소복하니 내리는 눈이라니, 으…….”

“폐하.”


심마코스가 다가와 팔을 붙들었다. 흐릿하던 초점이 제법 돌아왔다. 꿈 속을 헤매던 의식은 다시 현실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라스카리스의 양손은 어느샌가 거칠게 경련하는 두 눈을 주무르고 있었다.


“하……. 이 계절, 이 눈만 오면 눈이 이 발광을 친다니까. 괜찮아, 좀 놔둬.”

“하지만.”


라스카리스는 가볍게 팔을 흔들어 심마코스의 부축을 물리쳤다. 그러나 여전히 황제의 겉옷을 한 손에 든 심마코스의 눈은 걱정스러운 빛으로 가득했다.


“추운데 이렇게 얇게까지 입고 나오시면 나중에 고뿔에 걸리십니다, 성상.”

“…….”


얇고 슬쩍 안이 들여다보이는 새하얀 비단 천으로 역시나 새하얀 눈 빛깔을 가진 옷 위로 걸친 라스카리스는 식은땀을 흘렸다. 겨울에 땀을 흘릴 리 없는 얇은 잠옷차림인데 말이다.


“심마, 너는 기억이란 게 뭐라고 생각하냐?”

“또 그 말씀이군요. 그 악몽을 꾸신 겁니까?”

“그걸 또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 꿈은 언제나 똑같은 시간, 똑같은 계절, 똑같은 장소에서 펼쳐졌다. 벌써 그 일이 일어났어야 할 시점에서 10년이나 지났건만 달라진 건 없었다. 키는 거의 두배로 자라나고 별로 신경쓰지는 않지만 방문하는 공주나 명문가 여식이 진한 눈빛을 받을 정도로는 훌륭하게 자라나기도 했다.


“그런데도 있지도 않았을 십 년 전의 꿈으로 이 오랜 세월을 매양 땀으로 젖어버린단 말이지.”

“요즘 다시 나랏일로 바빠서 그러실 겁니다. 출정도 잦지 않았습니까. 피곤하면 헛것이 보이는 법이죠. 하물며 팔레올로고스라고 해도…….”


역시나 십 년 전과 달리 훤칠하게 자라난 심마코스는 주근깨 가득한 까무잡잡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물론 팔레올로고스 그 여섯 글자엔 유난히 주군이 예민하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 끝을 흐렸지만.


“나쁜 것이라고만 할 수는 없겠지. 적어도 그 덕분에 나는 언제나 깨어있고 되돌아보게 되니까. 과연 나는 얼마나 그들로부터 멀리 왔는가. 얼마나 달라졌는가, 하는.”


거기까지 말을 마치니 제법 정신이 들었다. 번뜩 들어오는 의식 속으로 한겨울 세밑 추위의 바람이 골수를 파고드는 통증이 느껴졌다.


“고맙다, 어쨌든. 이 꼴인 걸 아는 사람은 너 말고는 다 늙거나 은퇴하거나 사라진 사람들 뿐이라서.”

“안 그래도 야코보스 궁내장관이나 작고하신 그 어르신들도 그런 말씀 하셨습니다. 옷은 여깄습니다.”


외투를 걸쳤다. 겨울이 되었는데도 변변하게 맞는 겉옷을 들이지 않아 보다 못한 야코보스가 직권으로 사들인 북유럽산 모피였다.


“그런데……무슨 책을 읽고 계셨습니까? 매년 이맘 때만 되면 그 책을 읽으시던데. 그것 때문은 아닐까요?”

“아, 이거?”


라스카리스는 심마코스가 건네주는 책을 반갑게 받아들며 반사적으로 답했다.


“연애편지야.”

“예에? 어느 영애한테 말입니까?”

“……농담이야. 아버지 편지야. 아버지.”


소복하게 쌓이는 눈처럼 여전히 밝은 얼굴빛과 그만큼 더 대조되는 화려한 태양빛의 금빛 머리칼, 우울한 회색의 눈자위가 두드러졌다. 심마코스는 순간 정체모를 두근거림에 자신을 탓하며 고개를 돌렸다.


“선황제께서 편지를 보내셨다고요?”


심마코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현실과도 같은 그 꿈 속에선 몇 번이고 미하일 팔레올로고스가 황제가 되고 이 누구도 우습게 보지 못한다는 황제의 눈이 뽑혀져 나간다고 했다.


‘요즘은 일이 너무 과해서 그런지 더 피곤해서 그런 모양인데. 심지어 십 년도 더 전에 작고하신 선황제가 무슨 편지를…….’


“다 들린다, 네 얘기.”

“헉……. 무슨 말씀입니까?”

“이 표정에서 다 보인다고, 새꺄.”


어색한 기운이 많이 사라진 라스카리스는 어느샌가 심마코스가 아는 주군의 얼굴로 돌아왔다. 감히 친구라고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순 없지만 이보다 더 친근한 친구가 있을까도 싶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남겨주신 편지인 모양이야. 무잘론이 모로분도스 별장으로 은퇴하기 직전에 내게 건네줬지.”

“아…….”


그제야 심마코스도 알 것 같았다. 어째서 편지라고 보여준 편지가 살짝 노랗게 바랬던 건지를. 테오도로스 2세가 죽은 지 12년은 되었으니 저렇게 색이 달라졌던 거겠지.


“뭐라……고 적어 두셨습니까? 뭔가 알려주는 비밀같은 것이라도 있었습니까?”


선뜻 물어보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 고생을 한 문제의 발단이 일찍이 부모가 세상을 떠난 것도 한 몫하지 않았던가.


“글쎄? 기대한 사람에겐 시시한 내용이겠지.”

“하하……. 그렇군요.”


내용은 라스카리스의 이야기대로 별 신통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저 어느날 마지막 발작으로 사망하던 해, 그 전 마지막 크리스마스에 쓰여진 편지였을 뿐이다.


「내 아들에게 이렇게 어색한 편지를 준비하다니, 나도 참 별일이다. 너도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내 평생, 너를 따뜻한 아비로서 대한 적이 없었으니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급함에, 그리고 너를 볼 때마다 느끼는 죄책감에 나는 하데스의 부름에도 선뜻 저승으로 가는 길을 나서지 못했단다.」


딱딱하고 냉정한 공문서에 쓰였던 필체와 같은, 하지만 내용은 물기 촉촉하게 어린 감정이 묻어 있었다. 아버지가 이런 사람이었나?


‘경직된 아버지, 발작 일으킨 아버지, 아픈 아버지. 하지만 누이들이나 섭정이 알고 있는 아버지는 분명 그 이상이었지.’


어머니의 부재. 아버지가 그렇게 된 건 자신이 두 살이 되기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빈 자리 때문이라고도 했다. 아니나다를까 그 내용도 편지에서 다루고 있었다.


「그래, 인정하마. 감출 수도 없고 사실이니까. 너는 네 누이들 이상으로 엘레나를 닮았다. 그리고 네가 태어난 이후 네 모친의 건강은 점점나빠졌지. 당연히 그래선 안 되겠지만 발작이 겹쳐 우울감이 깊어졌고, 너를 차라리 피하게 되더구나.」


한숨을 쉬며 라스카리스는 편지의 두 번째 장을 탁상 위에 올렸다. 심마코스는 부축해서 방안에 들여놓더니 트리코키아 별궁의 하인들을 닦달하러 밖으로 나가버렸다. 빈 방에 장작이 쪼개지며 타는 소리만 가득했다.


“바보같은 양반.”


라스카리스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러나 요안니스, 너는 누구보다도 나와 엘레나를 닮은 아이로서 사랑했다. 나의 마지막 아이로서 애틋하게 여겼다. 설령 살아서 너의 축복받은 생일이기도 한 크리스마스에 네게 따뜻한 손길을 건넬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아……. 그냥 말할 수 있을 때 말하지, 영감님. 마지막까지 성질 더럽게.”


누렇게 바랜 편지지 세 장. 무어라 더 써있었지만 라스카리스는 한동안 손으로 얼굴을 포갠 채 가만히, 그저 가만히 시간을 보냈다. 눈에서 느껴지던 격통과 경련은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알 수 없는 뜨뜻미지근한 감정이 흘러내렸을 뿐이었다.




라스카리스는 이렇게 어른의 길을 향해 다시 한 발짝을 내디뎠다.






하염없이 네이버 답을 기다리는 와중에 크리스마스라고 써보았음 ㅅ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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