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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戀鏡

ㅇㅇ(203.234) 2018.01.09 04:16:21
조회 227 추천 4 댓글 3

화장에 대해 알고 있나요? 불 화자가 아니라 화목할 화자를 쓰는, 아는 사람도 몇 없는 우리 집안의 비법이에요. 그런 걸 비법이라고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거창한 건 아니에요. 그저 관 뚜껑, 안에 누운 사람의 시선이 닿는 부분에 거울을 붙이면 끝이죠. 죽은 사람이 콧김을 뿜을 일은 없으니 흐려지거나 때 묻을 일도 없어요. 그렇게 계속 있는 거죠. 티끌 한 점 없는 깨끗한 거울과 그 속의 사람, 그리고 관 안의 사람 둘이서, 오순도순. 이걸 설명하려면 거울 이야기부터 해야겠네요.

전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양념장의 배합이나 가훈 같은 거라면 이해하기도 쉽고 따르기도 쉬울 텐데요. 우리 집안은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거울을 하나 쥐어줘요. 그리고 그걸 사시사철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해요. 그거 알아요? ‘언제나라는 말이 그렇게 가볍게 쓰일 수도 있다는 걸 학교에 들어간 뒤에야 알았어요. 집안 어른들의 언제나는 정말 말 그대로의 언제나를 뜻했거든요.

얼마나 먼 곳으로 떠나던,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던 무조건 항상 거울을 들고 있어야 해요. 전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는데, 전국팔도의 무균시설을 전전하면서도 한 손에는 어른들이 쥐어준 거울을 꼭 붙들고 있었어요. 의사가 언성을 높이던 것도 어렴풋이 떠올라요. 집안어른들은 제가 수술대에 오를 때도, MRI를 찍을 때도 거울을 들고 있길 바라셨거든요. 유별나죠 참.

거울을 두고 다니면 문제가 되냐고요? 글쎄요. 사실 그런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죠. 어른들이 우리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뭘 들고 다니는 게 불편하니까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의문을 품게 되죠. 그렇지만 실제로 할 수는 없어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죠. 우리가 그걸 들고 다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한 번 거울을 놓고 나다니면 어른들은 몰라도 나는 알게 되거든요. 거울 속의 나는 더더욱.

거울은 단순히 빛을 반사하는 도구일 뿐이에요. 그 안에 백팔십도 뒤집힌 세계 따위는 없어요. 다만 다른 내가 거기 있죠. 저도 정확한 건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의식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 아니겠어요? 우리가 생명이 없는 물건에 애착을 품고, 말을 걸고, 때로는 눈물까지 쏟는 것처럼요. 언제나 같이 있던 인간의 상(), 나의 이미지, 나와 모든 것이 똑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른 내 얼굴과 친해지지 않는 건 그런 면에서 보면, 분명 어려운 일이겠죠.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몰라요. 누가 처음 이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사실은 이게 어떻게 가능한 지부터 따져 물어야겠죠. 확실한 건 우리 집안사람들은 모두 거울 속 자신과 친구가 되는 법을 알고 있다는 거예요. 이걸 처음으로 발견한 조상님한테 한 번 여쭙고 싶어요. 대체 뭘 어쩌다가 알게 된 건지. 그리고 얼마나 친하게 지냈으면 관 안쪽에 거울을 덧씌워, 눈을 감고서도 영원히 거울 속의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했던 건지.

거울 속 나라고 하니 거창하게 들릴 지도 몰라요. 하지만 의외로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처럼 굉장한 일은 아니에요. 신기한 것도 처음뿐, 오래 알고 지내다보면 그냥 속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항상 곁에 있다는 게 좋을 뿐이에요. 누구보다 날 잘 알고, 그래서 허물없이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사람. 잘못된 일을 하면 엄하게 꾸짖기도 하고, 기쁜 일이 있으면 발 벗고 나서 맞장구쳐주고, 고민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좋은 친구를 한 명 사귀는 거죠. 이상적인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고 있네요. 그렇지만 정말 그런 걸요.

무균실을 전전할 때보다야 나아졌지만, 여전히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는 생활을 했어요. 부들부들한 잠옷보다 녹색 십자가가 수놓인 환자복이 더 몸에 맞고 편했죠. 그런 날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달래준 사람이 거울 속의 나였어요. 그래서 항상 그런 생각을 했죠. 내가 분에 넘치는 행운을 끌어안고 있다고. 누구라도 나와 잘 맞는 사람과의 이상적인 관계를 원하고, 때로는 그런 관계가 평생을 이어지기도 하죠. 행복이라는 말은 특별히 재치 있는 발견이 아니라, 그런 상투적인 인연의 연장선에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집안의 거울도 그래요. 집안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제로 위험한 수준까지 거울 속 나에게 빠진 사람이 종종 있었다고 해요. 당연한 일이죠. 그런 이상적인 관계를 평범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었더라면 사랑에 빠질 만도 해요. 하지만 나르시시즘이 다 그렇고 도플갱어가 다 그렇죠. 집안어른들이 그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거울 속 나에게 지나치게 몰두하면 안 된다고 경고하기 위해서예요. 참 얄궂죠. 정작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치맛자락에 폭 감싸여 자란 내가 그걸 어기게 되었다는 게.

 

사랑을 말하기에는 경험이 적어요. 거울 속 나를 좇는 사람한테 뭘 바라겠어요? 인생의 뒤꽁무니를 부여잡고 투정이나 부리는 정도죠. 그래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명확한 순간을 짚어낼 수가 없더라고요. 새벽녘이 순식간에 아침으로 넘어가듯, 깨닫고 보니 거기 있었어요. 항상 날 따라할 줄만 알았던 거울 속 모습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어요. 어느 순간 같이 있었고. 어느 순간 좋아하게 되었어요.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어서 더 깊어졌죠. 거기에서 멈췄다면 뭔가 달랐을까요?

하긴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제대로 분별이 있었다면 그 이상으로 파고들지도 않았겠죠. 그렇지만 우리는, 거울 속의 나나 거울 밖의 나나 철부지였어요. 책임져야 할 걸 알면서도 그렇게 했죠. 나는 거울 속으로, 어쩌면 거울 속의 내가 거울 밖으로, 내가 있는 곳으로 나왔어요. 나와 내가 하나가 되었죠. 하지만 그때 깨달았어요. 처음부터 안팎을 나누는 기준은 없었다는 걸요.

축을 약간만 흔들면 왼쪽 오른쪽도 제대로 구별할 수 없는 게 사람 마음이죠. 그런데 건방지게 어느 걸 들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당신이 아는 글자가, 숫자가, 기호의 묶음이 원래의 옳은표상으로부터 백팔십도 뒤틀린 복제가 아니라는 걸 누가 보증하나요? 처음부터 거울 밖도 안도 없고, 거울이 우리를 나누던 것도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게 있기에 연결된 채 있었죠. 우리는 억지로 하나가 되고 나서야 그걸 깨달았어요.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어요. 경계를 넘은 게 어떤 나였는지는 몰라요. 확실한 건, 그때부터 나는 어느 한 쪽에서밖에 살 수 없었다는 거예요.

맑은 거울 어디에서도 내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삶에는 분명 기묘한 구석이 있어요. 여기에 대해서만도 한참 이야기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없네요. 지금 내 몸을 흐르는 것 중 진통제가 아닌 게 얼마나 될 지도 모르겠어요. 몰랐다면 거짓말이죠. 점차 나아지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알았어요. 병이 결코 내 몸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걸. 그리고 언젠가는 그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붙들려, 이 가느다란 숨마저 놓아야 할 때가 온다는 걸요.

매일 밤 눈을 감으며 내일이 오기를 기도하는 것도 지긋지긋해요. 해가 질 때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것도 짜증나요. 남들이 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아침을 엄청난 축복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받드는 것도 지쳤어요. 내 몸이라서 내가 잘 안다는 진부한 말은 하고 싶지도 않네요. 조금 있으면 다 끝날 거예요. 문제는 그 뒤에 오는 거죠.

화장 이야기로 시작한 고백이 멀리도 왔네요. 집안어른들은 제가 눈을 감은 뒤에야 안식이 찾아올 걸 안쓰러워하지만, 전 두려워요. 그 안식이, 영원한 고요를 함께할 사람이 없다는 게 못내 두려워요. 관 속에는 나 혼자뿐인걸요. 그곳에 비치는 것은 생기를 잃은 이목구비, 썩어가는 살과 뼈이지, 내가 아니에요. 난 거울 밖에 있는 걸까요, 거울 속에 있는 걸까요? 주인을 잃은 거울에서 나를 바라볼 시선은 누구의 것일까요? 그게 두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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