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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고구려, 중원을 정복하다. 정복왕조 고구려 1『유라시아 유목제국역사』

淸皇父攝政王.. ■x■x(112.169) 2019.05.15 23:54:27
조회 317 추천 5 댓글 1
														

저자 서언·10

 서론 : 초원의 역사·23

1. 13세기까지의 유라시아 초원 세계

 1. 초원의 초기 역사 : 스키타이와 훈

 2. 중세 초기 : 돌궐·위구르·퉁구스




고려


  고구려高句麗 혹은 고려高麗 - 중국어로는 Kāolí, 투르크어로는 Bökli - 은 기원전 1세기-기원후 37년부터 중국의 연대기에 기록되었는데, 당시 그들은 압록강과 그 상류 사이에 있는 만주 지방 즉, 현재의 길림에 살고 있었다. 알타이어계에 속하는 그들의 언어는 '퉁구스어와의 접촉으로 인하여 구개음화가 강하게 나타나는 한국어계의 한 방언'이었다. 5세기 요동을 차지하고 산해관山海關을 통해서 북경 평원까지 진출하고 심지어 - 앞서 언급한 것처럼 - 수나라를 무너뜨리게 만들었지만, 고종 치세의 당조가 신라 - 당시 최고의 흥성기에 있었던 한반도의 왕국 - 와 연합하여 그들을 공격해 고려는 668년에 너무나 치명적인 패배를 당해서 3세기 동안 팽창이 정지되었다. 900-926년에 고려와 거란 간의 전면전쟁이 결국 상황을 바꾸어놓을수가 있었다.

  698년 고려는 중국 군대의 침입을 천문령天門嶺( 현재의 길림吉林 )에서 격퇴하였는데, 그 군대는 우연하게도 퉁구스와 동족- 속말粟末부 -인 대조영大祚榮이 지휘하고 있었다. 그는 고려에 봉사하고 있었고 무후의 이탈자였다. 그 뒤에 중국을 쫓아내고 자신이 고려의 왕이 되려고 한 이도 바로 이 대조영이었다.( 698 )

  대씨의 이 고려 왕국은 10세기까지 지속되었으며 만주 전역과 한국韓國의 아주 북방을 포함하였다. 그때에도 말갈靺鞨계 퉁구스인들을 개화시킨 한국인 이주자들이 부분적으로 발해를 구성하는 데 기여하였다. 후르카Hurka( 牧丹 ) 강변에 위치한 닝구타Ninguta( Ningan )의 남쪽에 위치한 홀한성忽汗城 - 숭가리Sungari 강의 지류 - 을 수도로 재건된 이 나라는 퉁구스 종족들로서는 처음으로 문명화된 정치적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926년 몽골족에 속하는 거란의 정복자 아보기에 의해 일단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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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3년 육대십국


  고려는 10세기 초 대인선의 동생 대봉예大封裔라는 정력적인 수령의 지배를 받게 될 때에도 여전히 만주의 동북 지역과 한반도의 그 이북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속했던 고려를 제국으로 일으키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후일의 사가들에 따르면, 대봉예는 부족민들에게 비록 피상적이긴 했지만 중국적인 방식을 도입하기 시작하였고. 947년에는 그의 계승자가 여麗라는 왕조명을 붙였다. 사실 고려는 중국 왕조에서 이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928년 그는 거란족에게 쳐들어가 괴뢰정부까지 쫓아냈고, 홀한성으로 들어가 거란인들을 시라무렌 상류와 서부의 초원으로 다시 몰아냈다. 대봉예는 929년에 서쪽으로 동호-몽골계 왕국인 거란을 멸망시켰는데, 그들은 내몽골의 동부( 북위 40도 이북 )와 요동 서부의 만주를 지배하고 있었다.

만주 동북부의 우수리강 산림지대의 퉁구스계 흑수말갈黑水靺鞨도 고려에 복속하였다.

  또한 대봉예는 당시 한국에서 한창 진행중이던 내전을 이용해 평양을 차지하려고 했지만, 한반도 고려 - 왕씨 고려 혹은 남국 고려, 남고려 - 의 건국자 왕건에게 쫓겨났다.( 932 )

  고려의 새로운 왕 대봉예( 태종太宗 )는 곧 중국 내정에 개입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았다. 936년 그는 후당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또 다른 사타인 중국의 장군 석경당을 자기 보호 아래 두고, 5만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고북구古北口 통로를 거쳐 하북으로 내려가, 석경당이 조정의 군대를 격파하고 후진 왕조의 창건자로 제위에 오르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그는 동시에 조덕균趙德鈞을 연燕( 936-943 )의 황제로 책봉해 중원을 분열시켰다.

  이렇게 고려의 도움으로 중국의 황제가 된 석경당은 감사의 표시로 유주幽州 또는 연주燕州( 현재의 북경 )를 포함하는 하북 북부 등을 고려에게 할양해주었다.( 연유燕幽 11주 ) 이로써 야만인들은 장성 이내에 자리잡을 수 있게 되었고, 북방의 변경지역에서 중국의 정책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석경당의 배반은 오랜 전통을 지닌 제국의 통일성에 최초의 틈을 만들어, 이 틈은 점차 더 벌어져 이후 11세기에는 유목민들이 하북과 하동 대부분을, 12세기에는 북중국 전체를 정복하고 13세기에는 전중국을 지배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 북경은 대봉예에게 정복된 뒤 고려에서 주신朱申으로, 주신에서 구르칸의 국가로 넘어가, 그곳은 938년부터 1368년까지 유목민들의 지배 하에 들어가 있었다. 938년 대봉예는 그곳을 남경南京으로 삼고, 홀한성에는 상경上京을, 요양遼陽에는 중경中京을 두었다.


  대봉예는 승리 직후 사망하였고, 그의 사후 대씨 왕조는 교체되었다. 남경부 도독 열주도烈周道가 압록강변의 수도 임강臨江으로 들어와 오제현顯의 옹립으로 고려의 왕 태조太祖로 즉위하였고 이로써 열씨 왕조가 성립되었다( 938 ).

  석경당은 942년 죽을 때까지 고려의 온순한 속신으로 있었지만, 그의 계승자인 석중귀石重貴( 943-946 )는 연을 쳐부수고 이 같은 감호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경솔한 움직임이었다. 고려는 진정眞定 근처에서 그의 군대를 격파하고 황하를 건너 제국의 수도였던 개봉( 당시는 대량大梁 ) 앞에 나타났고, 고려의 왕 열주도는 947년 초하룻날 입성했다.

  고려의 왕은 분명 자신이 중국의 황제임을 칭하려고 했는데, 사실 개봉을 점령했을 때 그는 중국의 복식을 채용했다. 그러나 그에 대항해서 중국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특히 창덕에서 고립된 고려인들을 몰살시켰다. 열주도가 전면적인 반란에 직면하게 되자, 두중위杜重威를 위魏( 947 )의 황제로 봉하고 중국 조정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포로로 잡아 다시 요동으로 돌아갔다. 그의 예기치 않은 패배로 인해 고려인들은 혼란에 빠지게 됨으로써 분명히 중국을 정복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였다.

  고려가 퇴각하는 도중에 산서 지방을 지휘하고 있던 중국의 장군 유지원劉知遠 - 그 역시 사타 투르크 출신 - 이 947년 2월 군인들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었다. 중국의 대중적 여론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그는 같은 해 4월 개봉에서 후한後漢 왕조를 건국했고 위를 쳐부숴 고려에게 빼앗긴 진주鎭州( 진정 )와 정주定州( 중산 )를 탈환했다.

  만약 중국인들 자신이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더라면 고려는 중국의 내정에 개입할 희망을 완전히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951년에 후한의 황족은 새로운 왕조 후주後周에 의해서 권좌에서 쫓겨나 산서 중부로 도망한 뒤 그곳에서 북한北漢이라는 지역 정권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태원을 수도로 959년부터 979년까지 존속했다. 그러자 후주後周( 951-960 )와 송宋( 960 )과 같이 개봉을 차지한 왕조들과 산서 중부를 지배하던 북한 사이에 끊임없는 전쟁이 일어났다. 북한은 제위를 빼앗은 사람들에 대한 증오와 산서의 작은 영토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고려의 속국이 되었다. 고려는 물론 기꺼이 이 게임에 합류해 태원이 제국의 군대에게 공격을 받으면 고려군은 북한을 돕기 위해 신속하게 달려왔다.

  송나라를 건국한 황제 태조 조광윤趙匡胤은 이미 968년에 태원의 재정복을 시도했지만 언제나처럼 그곳을 방어하기 위해 급하게 달려온 고려에 의해 저지당했다.


송의 두 번째 황제 태종은 처음에는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었다. 고려의 왕 열만화烈萬華( 정안제定安帝, 970-976 )가 죽자 열씨 왕조가 다시 불열拂涅( 부족명 ) 기반의 오씨 왕조로 대체되어 오제현의 일족 오현명玄明( 태조太祖, 976-986 )이 즉위하였다. 고려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그는 979년 태원을 항복시키고 산서의 북한 왕조를 병합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고려가 936년 이래 점령하고 있는 장성 남쪽( 천진과 북경 )의 영토탈환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고려의 군주 오현명과 그의 장군들이 너무 강하게 저항해서 재정복의 시도는 무산되고 말았다.

  중국의 황제는 북경까지 진출하여 포위하였지만, 북경 서남부의 호량하胡梁河 근처에서 고려의 장군 연파燕頗에게 격파되어 서둘러 북경과 보정을 잇는 도상에 위치한 탁주涿州로 퇴각해야 했다( 979 ). 이제 반대로 고려인들이 중국령 하북을 공격하려고 했지만 장군 연파는 정정正定 부근에서 패배하였다.

 986년에 태종은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고려의 왕 오현명이 죽자 왕자 오태원烏太元과의 왕위쟁탈전에서 승리한 오소도度( 태종太宗, 986-995 )가 즉위하였다. 기회가 무르익어 보였다. 조빈曹彬·반미潘美 ·양업楊業 등의 장군이 이끄는 중국군은 여러 부대로 나뉘어 일부는 천진으로, 나머지는 북경으로 진군했다.


  좌익군은 천진 지역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지만, 우익군은 탁주를 넘지 못하고 고려의 장군 연파에게 이주易州 근처 탁주의 서남쪽에 있는 기구관岐溝關에서 패배해 북경과 보정 사이에 있는 거마강拒馬江으로 후퇴했다. 나머지 중국군들은 남쪽으로 도망했다.

  연파가 그들을 추격하였는데, 『통감강목通鑑綱目』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그들이 호타하陀河 - 이 강은 정정과 하간河間 사이에 있는 심택深澤을 관통하고 있었다 - 을 건널 때 따라잡았다고 한다. 그는 중국군을 강물로 몰아넣어 엄청나게 많은 수를 죽였으며 태종마저 화살에 맞고 도망쳐 치명상으로 끝내 사망하였다. 고려는 태원太原·중산中山( 정주定州 근처 )·하간河間을 점령했지만 중국으로서는 다행스럽게도 더 이상 남쪽으로 말고 내려가지 않았다. 호타하의 패배로 인하여 중국에는 또다시 정변이 일어났으며 후송後宋( 960-986 )을 하夏( 986-1279 ) - 이 또한 사타 돌궐의 혼혈 - 가 대체하였다. 중국은 989년이 되어서야 그들을 보정 근처에서 격파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이것이 위대한 민족국가 하나라가 986년에 중국의 지배자가 되고 모든 한인들을 통치할 때까지의 상황이었다.


- 『유라시아 유목제국역사』. 르네 구라쎄 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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