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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몽골과 전쟁 당시 남송의 상황 쬐끔

갓-신.(121.145) 2019.11.07 05:05:05
조회 1369 추천 15 댓글 5
														

일단 몽골과 전쟁 시기 물가 상승부터


1131년 금과의 전쟁에 북송이 붕괴한 이후 쌀 한 말[약 6.6L]이 600전.


이후 쌀 가격이 안정되어서 한 말에 300~500전대.


그러나 몽골과의 전쟁으로 쌀 시장이 붕괴해 송 조정은 쌀 한두[약 6.64L]에 3,400전을 부과함.



화폐 가치 하락도 보면


남송 1168년에는 1관貫 의 가치가 770전.


1230년대 몽골과의 1차 전쟁 전후로 1관의 가치가 240전 미만으로 감소.


출처는 「하버드 중국사 송 유교원칙의 시대」


저 책에 나온 내용은 아니지만 남송은 순우연간(1241~1252)에 지폐를 찍어내 물가 상승으로 상桑 가격이 300문에서 3,000문으로 범핑함.




몽골이 남송을 정복했을 때 강남의 농민들은 이전 남송정부의 과중한 조세수탈과 지방관, 지주의 가혹한 착취로 인해 매우 피폐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일찍이 남송정부는 강남의 농민에게 여름과 가을 두 번 세금을 거두는 兩稅法을 시행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정세 이외에 經制錢, 總制錢, 月椿錢, 版帳錢, 田契錢, 稱提錢, 折估錢, 免行錢, 麴引錢, 納醋錢, 賣紙錢, 戶長甲帖錢, 保正牌限錢등 여러 다른 명목의 세금을 징수하여 농민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또한 매년 대량의 지폐를 발행하여 화폐가치를 떨어뜨리고, 물가를 폭등시켜 백성의 경제생활을 혼란케 했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년 후의 조세를 미리 거두기도 했다. 더욱이 여러 지방관과 지주들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백성들을 가혹하게 수탈했다. 1240년 남송신료 徐榮叟가 황제에게 올린 글의 다음 내용에 남송 말기 세제상의 혼란과 그에 따른 백성의 고통이 잘 드러난다.


지폐가 통용되지 않고, 물가가 배로 뛰어 백성들이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곡의 운송이 막히고, 곡식을 먹는 것이 매우 어려워 백성의 원망이 가중되었습니다. 京師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러합니다. 외부의 郡邑에는 가렴주구가 없는 곳이 없고, 형벌을 엄하게 시행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和糴을 거두어 이득을 얻고, 군수품을 통해서도 이익을 꾀합니다. 도망치면 강제로 대신 납부하게 하고, 석방되면 잔혹하게 다시 재촉합니다.28)


(중략)


아울러 쿠빌라이 정부는 남송대에 비해 강남농민의 조세부담을 가볍게 하여 그들의 생업을 안정시켰다. 일례로 至元13년(1276) 12월 일찍이 남송정부가 科差, 聖節때 각 지역 농민들로부터 징수한 조세수입과 經制錢ㆍ總制錢등 100여 건에 달하는 조세항목을 모두 면제했다.32) 그리고 당시 화북에서 시행하는 세법을 강남에 적용하지 않고, 남송의 양세법을 그대로 연용했다. 더욱이 양세법이 제대로 시행되기 시작한 1281년까지 江東, 浙西를 제외한 지역에서 夏稅를 면제하고 秋稅만 징수했다.33) 이 같은 가벼운 조세정책은 쿠빌라이 이후 몽골정권에게 계승되어 강남에 대한 기본적인 징세제도로 정착되었다. 이에 관해 明代학자 于愼行은 “元이 江南을 평정한 후 법령이 엄하지 않고, 부세가 가벼워 그 백성들이 단지 地稅만 납입하고, 다른 징발이 없었다”34)라고 평했고, 淸초기 학자 潘耒도 “唐이래 江南은 부유하다고 불렸다. 宋시기에 畝稅가 1斗였는데, 元이 천하를 차지한 후 田稅를 3升이 넘지 않게 하여, 吳의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며 본업에 종사했다”35)라고 기록했다. 이와 같이 쿠빌라이 정부는 강남농민의 조세부담을 남송시대에 비해 대폭 경감하여 그들의 생활수준과 농업생산력을 회복시켰다.


남송시대 강남에서는 지주ㆍ전호제가 널리 확대되어 농민에 대한 지주들의 가혹한 착취가 곳곳에서 자행되었다. 쿠빌라이 정부의 남송정벌 시기 강남의 지주․호족들은 자발적으로 몽골에 투항하여 기존 지위와 기득권을 보장받았다. 이에 따라 지주ㆍ전호제에 기반을 둔 강남의 전통적 수취구조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강남농민의 생산기반을 침해하는 이 같은 수취체제는 농업생산력 회복을 도모하는 쿠빌라이 정부의 정책기조와 배치되는 것이었다. 그 폐단이 점차 가중되자 至元22년(1285) 2월 쿠빌라이는 강남의 대토지 소유자들에게 그들이 전호로부터 수취하는 稅糧이 국가에 납부하는 양의 수배에 달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2/10를 감면하도록 명했다.36) 이 조칙으로 인해 강남농민의 조세부담이 크게 경감되었다.


고명수 저, 「쿠빌라이 시기 몽골의 南宋정복과 江南지배 ―보전, 개발, 발전의 관점에서―」


남송의 각지를 정복하자 일단 잡다한 세금(100여건)을 면제하고, 지배층 흡수했더니 적폐 놈들이 남송 때처럼 계속 농민들 쪽쪽 빨아먹으려고 하자 작작 하라면서 세금 감면 등을 함.




남송 조정은 항주, 광주, 명주, 온주 등에 조선소를 세우고 해안과 양자강 방어에 필요한 전선을 제조했다. 1126년 북중국 금 왕조의 침략을 받은 후, 남송은 강을 방어하기 위해 연강제치사를, 해안을 방어하기 위해 연해제치사를 두었다. 해군은 약 한 세기 동안 잠재적이고도 효과적인 군사력이었지만, 남송이 쇠퇴함에 따라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다. 타락과 방종이 만연해 해군 장교들의 도덕적 해이와 사병들의 훈련 부족 및 체력 약화 현상을 초래했으며, 잘 정비된 군함의 수가 부족해졌다. 1239년 어느 관료의 언급에 따르면 "그들(해군)은 파도를 타면 창을 들고 나아갈 수 없다. 이는 30년 동안 훈련을 게을리 한 결과이다."(그의 비판은 정부를 일깨우기 위한 것으로,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비록 남송의 해군이 이처럼 쇠퇴하고 있었지만, 몽골의 해군보다는 여전히 월등해보였다.


모리스 로사비 저, 「쿠빌라이 칸 수성의 전략가」


수군 질 떨어졌어염 징징




왕립신이 가사도에게 전한 의견도 보면


당시 양양이 함락된 뒤


"오늘날 천하의 대세는 우리 송이 이미 8, 9할을 적에게 빼앗긴 상태이니 (중략) 오늘날의 계책은 세 가지가 있다고 여겨지는바, 첫째는 내비에 있는 병력을 모두 차출하여 강안에 배치해서 외적을 막도록 하여야 합니다. 현재 군적을 계산해 보면 70여만 명이 되는데, 이중에 노약자 등 7분의 2를 도태한다면 건장한 병사가 50여만 명은 됩니다. (후략)"


여기 나온 왕립신 피셜에 따르면 노약자 등 병사로서 쓸모 없는 놈이 군적 70만 중에 20만.


이건 역대병요 국역한 것 옮긴 거임.



각주는 귀찮아서 안 옮겼고 볼드체는 내가 임의로 강조한 거. 다른 책 보면 당시 남송 상황 보여주는 거 더 있는데 옮기기가 귀찮다.


남송은 절대 무한한 쇼미더머니의 나라도 아니고, 더둔다나 몽골과의 전쟁은 남송이 막아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재앙이었고 내부 적폐인 관호, 형세호도 제대로 개혁 못해 재정 문제가 심각했음. 방어체계 복구에도 힘들어할 경우가 있을 정도로.


그 유명한 양양성 복구 시기를 보면 의외다 싶을 정도로 굉장히 늦게 되었었음.


우구데이 시기인 1236년에 양양성이 몽골군에게 점령되면서 성곽이 훼손되고 주민들도 빤스런쳐서 개판된 상태에서 1239년에 탈환하는데, 이것이 제대로 복구된 것이 1251년 이증백이 경호제치사로 임명된 뒤임.


동시기인 1242년 여개가 사천안무제치대사가 되어 사천에 성 구축과 둔전으로 방어체계를 구축하는데, 이놈이 10여년 동안 산성 10여 개를 지었지만 반대로 재정 문제 등으로 양양성의 경우처럼 복구가 늦기도 함.


참고하자면 남송대에서 지주와 전호의 관계에서 전호의 지위는 떨어져서 거주 이전이 자유롭지 못했고, 토지가 팔리면 같이 딸려갔음.


송의 경제적 번영이 하도 유명해서 쇼미더머니로 알려지고 왠지 모르게 헤븐송으로만 알려져 있는 듯한데, 얘네도 엄연히 전근대라 파보면 시궁창 튀어나옴.


남송이 왜 몽골에 먹혔냐, 하면 몽골군의 강력함과 전략적 유연성 등이 있겠다만은 남송 내부적으로도 쇠퇴와 막장이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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