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교적 정확히 예측해 '닥터 둠(Dr. Doom)'이라는 별칭을 얻은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명예교수가 다시 한번 강도 높은 경고를 내놨다. 이번에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 시장을 향해 "구조적으로 취약한 가짜 자산"이라며 사실상 종말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루비니 교수는 최근 국제 오피니언 플랫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기고한 글에서 암호화폐가 약속해 온 '금융 혁명'은 실현되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그는 화폐 시스템은 기술 발전과 함께 점진적으로 진화해 왔지만, 암호화폐 진영이 주장하는 급진적 대체 시나리오는 과장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최근 1년간의 시장 흐름을 근거로 비트코인의 '안전자산' 이미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지정학적 긴장과 경기 둔화 우려 속에서 금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하는 동안 비트코인은 오히려 높은 변동성을 드러내며 하락과 반등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루비니 교수는 "위기 국면에서 자산의 본질이 드러난다"며 비트코인은 위험을 회피하기보다 오히려 증폭시키는 성격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친(親)암호화폐 기조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규제 완화를 공언하고 관련 법안에 서명하면서 시장에 과도한 낙관론이 형성됐지만, 이는 거품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실제로 일부 투자자들은 비트코인 가격이 2025년 말까지 20만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으나, 루비니 교수는 이를 "자기 기만에 가까운 기대"라고 일축했다.
트럼프의 친코인 정책, 약인가 독인가
사진=픽사베이(기사와 관계없는 사진)
그가 특히 문제 삼은 것은 이른바 GENIUS Act다. 해당 법안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시 현금이나 미 국채 등 안전자산을 1대1로 예치하도록 규정해 제도권 편입을 유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건전성을 강화하는 장치로 보이지만, 루비니 교수는 이를 19세기 미국 '자유은행 시대'에 빗댔다.
당시 민간은행들이 자체 화폐를 대량 발행했다가 신뢰 붕괴와 함께 연쇄 도산을 겪었던 사례처럼, 제도적 안전망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사 화폐가 확산될 경우 금융 시스템 전체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이 중앙은행의 최종 대부자 기능이나 예금자 보호 장치에 직접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만약 담보 자산의 가치가 급변하거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경우,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자금을 회수하려는 '뱅크런'이 발생할 수 있고, 이는 전통 금융시장으로까지 충격을 확산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시장에서는 이미 불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미국의 대형 암호화폐 대출·중개 업체인 블록필스가 비트코인 가격 급락 여파 속에 고객 자산의 예치 및 출금을 일시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2022년 '암호화폐 겨울' 당시 연쇄 파산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사진=픽사베이(기사와 관계없는 사진)
다만 일부 투자자들은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둔화와 금리 인하 기대를 근거로 비트코인이 다시 반등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최근 가격이 주요 지지선을 회복하며 심리가 다소 개선되는 모습도 나타났다.
그러나 루비니 교수는 이러한 반등을 구조적 회복의 신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유동성 환경이 일시적으로 완화되면 위험자산이 동반 상승할 수 있지만, 그것이 자산의 본질적 가치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되며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이어졌던 사례를 상기시켰다. 당시에도 위험이 과소평가되고 복잡한 금융상품이 안전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지만,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시장은 급격히 붕괴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가상자산 시장과 닮은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루비니 교수는 각국 정책 입안자들이 암호화폐 산업의 혁신적 측면만을 강조하기보다, 시스템 리스크와 소비자 보호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금융의 역사는 과도한 낙관과 규제 공백이 반복적으로 위기를 낳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가상자산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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