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타임스=라라 리뷰어]
항저우 여행 정보를 찾을 때 빼놓지 않고 들러보라고 추천하는 거리가 있었다.
남송어가와 허팡제 두 곳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남송어가는 중국어 발음인 난송위제(南宋御街)가 아닌 우리나라의 한자 발음으로, 허팡제(河坊街)는 원래의 중국어 발음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두 거리는 십자 형태로 교차돼 있어 한꺼번에 돌아볼 수 있다.

‘남송어가’는 ‘남송 시대 어가 행렬이 지나던 거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남송어가(남송위제, 南宋御街), 청나라 건축물이 즐비
‘남송어가’는 ‘남송 시대 어가 행렬이 지나던 거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한다. 명칭을 봐서는 남송시대 스타일의 뭔가가 많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청나라와 중화민국 초창기 건물들이 즐비하다. 항저우는 약 2200년 전 진나라 때 건설된 도시로, 12세기 초부터 1276년 몽골 침입 전까지 남송의 수도였다. 당시에는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중국의 중앙과 북쪽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항저우가 중국의 문화 중심지였다.
서호의 북쪽을 돌아본 후 택시를 타니 정확히 남송어가 입구에 내려준다. 물론 지하철로도 갈 수 있다. 1호선을 타고 딩안루역에서 내린 후 D 출구로 나가면 된다.
30도를 넘는 온도지만 오전에 비가 내려서인지 덥다는 느낌은 많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여름을 향해 가는 날씨인지라 입구가 초록으로 싱그럽다.

‘남송어가’는 ‘남송 시대 어가 행렬이 지나던 거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남송어가’는 ‘남송 시대 어가 행렬이 지나던 거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거리 안쪽으로 들어가니 은은한 느낌의 구슬 등 다양한 기념품을 파는 매대들이 즐비하고, 작은 물길 바로 앞에 자리한 호텔은 꽤 고즈넉해 보인다. 워낙 유명한 거리라 밤에는 시끄러울 것 같은데, 그래도 이런 곳에서 하루쯤 묵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좀 더 깊숙이 들어가자 고풍스런 건물들이 시선을 잡아끈다. 서울시가 지정한 ‘미래유산’처럼 항저우의 오래된 건물들에도 ‘항저우시 역사건축물’이라는 표식이 붙어 있다.

‘남송어가’는 ‘남송 시대 어가 행렬이 지나던 거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거리의 한 코너에 자리한 랜드마크 같은 이 건물은 ‘징양관 장아찌 전문점’이란다. 1907년 (청나라 광수 33년)에 처음 문을 연 곳으로, 현재 중국의 4대 장아찌 전문점 중 하나란다. 이곳의 장아찌는 무게로 판매하는 듯한데, 시식이 가능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중국의 4대 장아찌 전문점 중 하나인 ‘징양관 장아찌 전문점’.
거리 한 켠을 따라 이어지는 물길이 한여름엔 더운 열기를 식혀줄 것 같다.
중국과 서구 스타일이 묘하게 어우러진 이 건물에는 ‘이위안 주얼리’란 간판이 달려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6년째인 1917년, 당시 거대 소금상이었던 바오쉐청이 지은 것이라 한다. 지금은 의류 등을 판매하고 있다. 특색 있는 건물들이 즐비하다보니 발걸음이 자꾸만 멈춰진다.

특색 있는 건물들이 즐비하다보니 발걸음이 자꾸만 멈춰진다.
1808년에 세워진 약방인 중더탕(种德堂)은 건물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내공이 느껴진다. 이곳은 후칭위탕(胡庆余堂), 방휘춘탕(方回春堂), 장통타이(张同泰), 타이샨탕(泰山堂), 완청탕(万承堂)과 더불어 항저우의 6대 약방중 하나라 한다. 무려 200년의 역사를 가진 약방,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공간도 널찍하다. 온갖 종류의 약재가 깔끔하게 정리돼 있어 약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낼 것 같다.

항저우의 6대 약방중 하나인 중더탕(种德堂).

항저우의 6대 약방중 하나인 중더탕(种德堂)
흰 색의 2층짜리 건물에는 청나라 때 세워진 실크 상점이라고 적혀 있다. 그 역사가 이미 400년이다.
남송어가에는 아기자기한 카페와 퓨전 스타일의 음식점들도 즐비하다. 카페들을 지나 만난 작은 공간, ‘우물’을 주제로 한 작은 전시가 진행 중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여덟 가족이 우물 하나를 공유했다. 우물을 뜻하는 한자 ’井(정)'은 장작불 같기도 하고, 물을 모아놓은 병 같기도 하다. 당시에는 20에이커(ac)당 하나씩 우물을 만들었고, 이 ‘우물’을 중심으로 교역도 시작되었다. 중국에서 ‘시장(市場)’의 옛 명칭은 ‘시정(市井)’으로, 우물 정(井)자가 포함돼 있다.‘

카페들을 지나 만난 작은 공간, ‘우물’을 주제로 한 작은 전시가 진행 중이다.
내용을 읽다보니 제주의 용천수가 생각난다. 우물은 물을 얻기 위해 일부러 만든 것이지만 용천수는 지층을 뚫고 자연스럽게 솟아난 물로, 제주의 마을들은 대부분 용천수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세계 어느 곳이나 다를 것 없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은 물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전시공간을 나와 주변을 둘러보니 어딘가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 계단 중간쯤에 공중화장실이 있는데, 그 위로도 계단이 이어진다. ‘계단 위에는 또 뭐가 있을까?’ 갑자기 궁금증이 일어 계단 끝까지 올라가본다.

전시공간을 나와 주변을 둘러보니 어딘가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계단 위는 널찍한 마당 같은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공간 앞에 ‘동악묘(东岳庙)’라는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모시는 태산(泰山)의 신인 동위에대제(동악대제, 东岳大帝)를 모신 사당.
동악묘는 북송(1107~1110) 때 세워졌는데 원나라 때 파괴됐다가 명·청시대(1450~1457)를 거치며 복원되었다 한다. 사당은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는데, 첫 번째 공간은 청나라 말기 스타일의 오페라 무대와 문, 두 번째 공간은 본 사당으로 사당 서까래에 명나라 스타일의 용이 조각돼 있다 한다.
입구로 들어서니 불교 사찰처럼 사대천왕 같은 조각상 4개가 무서운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티에꺼꺼(铁哥哥)’라는데, 항저우성의 백성들을 보호해주는 신이라는 설명이다.

항저우성의 백성들을 보호해주는 신인 ‘티에꺼꺼(铁哥哥)’.
사당에 모신 신은 동위에대제(동악대제, 东岳大帝)로, 도교에서 모시는 태산(泰山)의 신이다. 태산의 옛 명칭이 ‘동악’이라고. 그래서 고대 중국에는 동악묘가 곳곳에 있었고, 중국의 전통달력으로 3월 28일이 동악대제의 탄신일이라 성대한 기념행사가 열리곤 했다 한다.
동악묘는 보석산의 바오푸도교사원처럼 화려함 없이 소박하고 단아한 느낌이다.

동악묘는 보석산의 바오푸도교사원처럼 화려함 없이 소박하고 단아한 느낌이다.
사실 이곳까지 올라온 건 아이폰의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데다 보조배터리도 말썽을 부리는 바람에 전기를 찾기 위해서였는데, 다행히 화장실에서 20여분간 급속 충전을 할 수 있었다. 하하.
허팡제(河坊街), 활기 넘치는 젊음의 거리
일직선으로 이루어진 남송어가를 걷다가 십자로를 만났다. 왼쪽으로 꺾어지면 또다른 거리인 허팡제다. 허팡제에 도착하니 시간 여유가 많지 않다. 거리를 전체적으로 즐길 시간까지는 없었지만 허팡제의 느낌은 홍대나 연남동 같다. 물론 이곳엔 손녀와 함께 나온 어르신들도 적지 않았지만.

홍대나 연남동 느낌의 허팡제.
보행자만 다닐 수 있는 허팡제 거리 양편으로는 음식점과 기념품 등을 파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지글지글 익고 있는 꼬치구이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니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작은 양꼬치를 하나 주문했다. 작은 꼬치는 20위안(4000원), 큰 꼬치는 35위안이니 그리 저렴한 건 아니다. 조금 기다려 따뜻하게 데운 후 소스를 뿌린 양꼬치 한 점을 베어물었다. ‘어랏? 한국에서 먹던 양꼬치와는 차원이 다른 걸?’ 어떤 양념인지 모르겠지만 감칠맛이 그만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큰 꼬치를 먹을 걸’ 하고 급후회가 몰려온다.
허팡제 끄트머리쯤에 이르니 거대한 조각상도 하나 자리하고 있다. 포토존인가?

허팡제 끄트머리쯤에 이르니 거대한 조각상도 하나 자리하고 있다.
대두로(大兜路) 역사문화거리, 항저우의 인사동?

대두로(大兜路) 역사문화거리
대두로(大兜路, 다도우루) 역사문화거리는 항저우에서 하룻밤 묵은 호텔이 있던 곳이라 알게 됐다.
저녁 8시쯤 작은 골목 안쪽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거리 전체가 불야성이었는데, 이른 아침 산책길에 나서니 수변을 따라 만들어진 아담한 마을 느낌이다. 우리가 묵은 호텔 바로 옆 호텔이 Cheery Canal Hotel Hangzhou라는 곳이었는데, 설명을 보니 건물 전체가 역사문화보호 복합건물로 11개 국가의 공장을 개조해 만든 곳이라 한다. 처음에 이곳을 예약했다가 취소를 했었는데, 나중에 오게 되면 한 번 묵어봐야겠다.

대두로(大兜路) 역사문화거리
이 호텔처럼 대두로(大兜路) 역사문화거리에는 청나라 말기에 지어진 민가들이 적지 않게 포진해 있다. 원래 이곳은 명나라 때 항저우성 북부의 주요 시장이자 무역 중심지로 역할했다 한다.
운하를 따라 조성된 역사문화거리는 대관교(大关桥)부터 강창교(江涨桥)까지 약 1.1km 구간으로, 향적사(香積寺)라는 큰 사찰이 거리 중간 쯤에 자리하고 있다.

대두로(大兜路) 역사문화거리

대두로(大兜路) 역사문화거리

대두로(大兜路) 역사문화거리
향적사는 전날 늦은 오후 호텔로 향할 때 휘황찬란한 조명이 눈길을 끌었었는데, 아침에 보니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다. 북송 시대(978년)에 처음 지어진 사찰로, 원래 이름은 흥복사(興福寺)였다 한다. 송나라의 진송이 '향적사(香積寺)'라는 명칭을 하사한 후 지금까지 그 명칭을 유지하고 있고, 현재의 건물은 중건된 것이라 한다. 사찰 안으로도 들어가볼까 했었는데 입장료가 20위안인데다, 시간도 충분치 않아 들어가지는 않았다.

대두로(大兜路) 역사문화거리의 향적사.

대두로(大兜路) 역사문화거리의 향적사.
향적사를 지나 다시 걷는 거리, 이른 아침이라 상점들이 문을 열기 전이어서 비교적 조용하고 한산하다. 오래된 느낌의 고풍스런 건물들은 대부분 퓨전 스타일의 음식점이거나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한 끼 식사가 2만~3만원 정도로 가격대가 만만치 않다.
향적사를 지나 운하를 따라 계속 걷다보니 심플하면서도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을 법한 건물이 눈에 띈다.
현판을 보니 번체자로 적힌 ‘부의창(富義倉)’이다. 부의창은 기근에 대비하기 위해 과거 중국 각지에서 곡물을 저장하던 곳으로, 수·당 시대부터 존재했다 한다. 이곳 대두로(大兜路) 역사문화거리에 부의창이 만들어진 건 청나라 때로, 승리하(胜利河)와 고운하(古运河)의 교차 지점에 설치한 것이라 한다. 건물 안에는 고문서와 관련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입장료는 무료, 개방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기근에 대비하기 위해 과거 중국 각지에서 곡물을 저장하던 곳으로, 수·당 시대부터 존재했다는 부의창이 운하 너머로 보인다.

기근에 대비하기 위해 과거 중국 각지에서 곡물을 저장하던 곳으로, 수·당 시대부터 존재했다는 부의창.

기근에 대비하기 위해 과거 중국 각지에서 곡물을 저장하던 곳으로, 수·당 시대부터 존재했다는 부의창
약 1km에 달하는 대두로(大兜路) 역사문화거리에선 서울 인사동의 느낌을 많이 받았다. 분위기는 조금 다르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듯한 건물들이 대부분 고가의 음식점, 찻집, 상점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기자기한 카페와 퓨전 음식점들이 많아 중국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한다.
갑작스럽게 떠난 4박 5일의 항저우 여행은 이로써 모두 마무리가 됐다. 많은 정보를 갖고 현지에 가서 꼼꼼히 돌아보는 여행도 괜찮지만,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픈 생각 하나로 가볍게 떠나보는 것도 괜찮은 추억이다.
다음 편엔 항저우에서 다시 한 번 더 가고픈 호텔을 소개할 예정이다.
<lala_diman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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