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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의 기민주의 시도
3공화국 프랑스는 세속주의 대 교회, 교사 대 신부, 공화파 대 왕당파. 가톨릭에 대한 시선에 따라 나라가 반으로 쪼개진 상황. 그러나 시대는 바뀌어 공화국은 공고해졌고 노동계급은 사회주의로 포섭되어가며 프랑스에서 가톨릭의 정치적 영향력은 몇몇 닫힌 클러스터에 갇히는 신세. 다른 국가들에서도 역시 가톨릭은 어떤 위기를 맞이. 이에 자극받아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회칙 입갤. 가톨릭과 노동계급의 협력 노선이 제시. 이후 공화국에서 죽어가는 프랑스 가톨릭을 위한 회칙 「염려의 한가운데서Au milieu des sollicitudes』 입갤. 라틴어가 아니라 프랑스어로 써져 관례를 이탈한 이 회칙은 가톨릭 교회와 군주정을 혼동하지 말 것이라 일갈. 세속 공화국에 프랑스 가톨릭의 참여를 권유. 공화국을 인정하는 동시에 공화국에서 정치할 것. Marc Sangnier 마크 사'니'에 (상니에르??) 거기에 찬동하여 프랑스 기민주의의 효시를 알린 것이 이 사람 마크 사니에. 1894년『밭고랑Le Sillion』이라는 신문이, 1899년 동명의 단체를 설립. 1905년에는 가톨릭 교육 모임이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교회의 위계 구도를 완화하고 젊고 낮은 신부들과 평신도들의 교류의 장을 만들었음. 가톨릭이긴 하지만 교회를 대변하지도 교회에 의한 단체도 아니며 그냥 교회에 소속되었을 뿐인 가톨릭 신자 사인들의 세속적인 운동임을 주장. 물론 이들의 행동이 신앙적임은 부정하지 않음. 여튼 공화국을 부정하지 않으며, 민주주의를 긍정하며, 반교권/사회주의에 휩쓸린 노동자들을 포섭해보려는게 마크 사니에의 기민주의 시도 되시겠음. 결과는 나쁘지 않았음. 밭고랑의 회원은 50만까지 팽창했음. 프랑스 주교단과 비오 10세도 이 운동을 호의적으로 봤음. 허나 프랑스의 1890년대, 에 대해 말하면 사람은 프랑스 기민주의 운동 따위가 아니라 드레퓌스 사건을 떠올림. 가까스로 프랑스의 주도권을 잡은 세속 공화파는 이미 1880년대 후반을 장식한 불랑제 사건으로 인해 위기 의식 상당했고 드레퓌스 사건까지 터져 나라가 토막나자, 반교권주의 소명 의식을 되살렸음. 1898년 세속공화파의 선거 구호는 '성직주의에 대한 투쟁'이었고. 가톨릭파는 뭐. 수꼴수꼴왕당왕당유대인유대인 프리메이슨 딥스테이트 렙틸리언... 1905년 정교분리법으로 정점을 찍는 이 분열, 양극화 현상은 가톨릭 수뇌의 공화국에 대한 태도도 경색되게 만들었음. 덩달아 마크 사니에의 밭고랑 운동에 대한 의구심도 가지게 되었음. 교회의 권위보다 민주주의를 중시하는건 사회주의 아닌가? 민주주의와 교회가 같이 설 수 없어보이는데 민주주의에 밀착하는건 결국 교회를 버리는 것 아닌가? 밭고랑과 마크 사니에는 양극화된 지형으로 보나 파트롱이었던 교황청의 태도 변화로 보나 살아남기 힘든 운명. 1910년. 비오 10세는 『우리의 사도적 사명Notre charge apostolique』이라는 서한을 프랑스 주교들에게 전달. 이 서한에서 밭고랑은 모더니즘과 사회주의에 물들었고 평신도들을 너무 풀어주는 민주적 가톨릭의 오류라며 이 운동을 정죄. 해산을 권고함. 공화국과 가톨릭이 갈라서던 양극화의 시대에 공화국과 가톨릭 모두를 같이 가게 하려던 중간이 설 자리는 결국 없는 것이었음.. 사니에는 밭고랑 해산 후에도 계속 민주주의, 공화국과 가톨릭을 이어보려고 하는 동시에 남녀평등, 비례대표제 도입, 평화주의를 주장하며 사회 운동을 했지만 밭고랑 시절의 전재감은 없. 그래도 전시-전간기에 프랑스 기민주의는 꼬물꼬물 계속 살아는 있다 가지다 레지스탕스들을 대거 배출하여 존재감을 확 올린 4공화국때...인민공화운동의 형태로 전성기를 맞음. 정교분리 완화, 가톨릭 학교에도 재정지원을 요구했지만 전반적으론 드골적이며 어느정도는 사회주의적이기까지 한 이 운동은 프랑스 정치의 한 축이 되며 기를 좀 펴나 싶었음. 날이 갈수록 쇠퇴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나름 한가닥 하는 당이었음. 하지만... 스스로를 파리대교구장이자 교황이자 예수이자 프랑스 왕-황제로 믿은 것이 분명한 에고이스트 샤를 드 골의 대통령주의 절대왕정, 즉 제5공화국 시대가 왔음. 그리하여 4공화국의 의회 절대주의 정치에 기반하여 존재했고 대통령깜 카리스마 있는 인물을 배출하지 못한 프랑스 기민주의는 존재감을 잃고 쪼그라들었으니 기민주의는 냉전기 서구 민주주의를 대체로 이끌어갔지만 프랑스에서는 결코 서지 못햇음. 아쉬운지 말지는 독자 여러분이 알아서.... 여태 쓴 정보글 모음집https://m.dcinside.com/board/newconservativeparty/5337698
작성자 : Ashige_good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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