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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에 이어서(이것 읽을 사람은 앞의 관련 글들도 좀 봤으면 함)
일단 이 문제에 대해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일방적인 약탈이 일제시대 산림 정책의 특징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임
그것은 극단적인 한 면만 부각한 것임
세계적으로 전근대에 이미 산림보호에 성공한 일본이 영구병합지에 그런 제도 이식을 시도 안 할 정도로
멍청했을까?
오히려 일제시대는 나무를 심으려고 노력 혹은 유도하려는 시도가 있었음
세계식량기구에서 유일하게 신생독립국 중 성공했다고까지 격찬받는 박정희에 의해 주도된
1973년~1987년까지 1,2차 치산녹화사업을 통해서
48억 2천만 本의 묘목이 196만 2천 정보에 심어졌는데
1930~42년에 심어진 나무가 48억 4천만본임. 145만 정보에(물론 남북한 합쳐서)
관에서 심었다가 아니고 식민지 시기에 심어졌다는 의미지만 30년대 이후 심어진 양만 이 정도임
일제 산림정책의 큰 축은 조림유도라고 봐야 함
일제는 조림대부제도라는 형식으로
전국 임야의 26%(특히 인구가 많은 남부지역과 대부분 접근이 용이한 산림이) 황폐화 된 상황에서
1911년 \'산림령\'이 제정되며 제7조에
\'조림을 위하여 국유삼림의 대부를 받은 자에 대해여 사업에 성공한 때에는 그 삼림을 양여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민간 참여에 의한 조림 유도를 시도함
삼림령을 기초한 사이토 오토사쿠는 이 7조를 조선 임업의 중추라고 표현하였고
조선산림회 위촉으로 \'조선임업사\'를 저술한 오카 에이지 역시 조선 임업의 중추라고 표현함
국가가 앞으로 관리할 필요가 없는 불요존국유림 중 임상이 가장 나쁜 제1종 임야를 중심으로
1913년 무상양여의 기준이 발표되었고, 대부 후 12년 간의 양여에 이르는 기간을 거쳐서
1942년까지 약 176만 정보가 대부되었고 총 98만 정보가 양여
1937년까지 실패하거나 측량 착오로 감소한 것이 17만 정보였으므로 1939년까지 대부지 90%가 일정 효과를 거두었고
1934년 총독부에서는 자체 성공 평가를 내렸고, 총독부에 비관적인 쪽에서조차 이 일은 잘한 일로 오히려 평가했음
분명히 지적할 것은 총독부에서는 환경을 조성했지
총독부에서도 대부지에 지원사업 역시 하기도 했으나
민유지에서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진 면은 분명함
이것에 대한 비판은
일본 대규모 자본 유치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과
일본놈들에게 절대적으로 좋은 땅을 주었다는 것인데
임업 자체가 대규모 자본이 장기간에 걸쳐서 투자하는 경우 이득인 것이고(사이클이 수십년에 달하는 투자이고)
당시 조선 상황에서 \'민간에서 조림의 이익을 깨달아 신속하게 조림사업에 참여하게 유도하기 위해서 조림에 성공할 경우 무상으로 땅을 양여한다\'는 것이 people에게 손해였나?
황폐화된 부분에 대해 투자받아 개선을 시도하는 것이 일방적인 손해?
그리고 조선인들 1930년 중반까지 8만명 가까이가 상대적으로 소자본이지만 참여할 정도였고
대부 면적의 절반 이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아직까지 허가나 토지선택에 민족적 차별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고 함(사실 찾으면 어느 정도는 나올지도 모르지)
일본인에게 좋은 땅이라? 무리하고 막연한 추정임. 그런 땅이 왜 1종 임야에 -0-;
천연 식수가 많은 좋은 땅이라면 천연조림을 취할 가능성이 높은데
일반 민유지에서 80% 이상을 천영조림에 의존하며 1정보당 699의 식재를 심은 것에 비해
당시 대부지들은 80% 가까이를 인공조림하며 1정보에
2,489를 심었음.... 더 좋은 땅에 인공적으로 더 나무를? 아니겠지?
기념식수가 행정 전시사업이라는 지적의 경우
1911년~39년가지 기념식수에 참여한 연인원은 1,688만명이고
실제로 1934~42년 동안 2억8천만본이 기념식수로 심어졌는데
간악한 일제의 동원이라고 하는 것은 자유지만
정기적으로 산에 나무를 심는 것이 단순한 \'전시\'행정인가?
참고로 2차 치산녹화사업기(1979~1987) 식목일 식재본수가2억 7천만본
위의 자료에 보면 알지만 오히려 종묘업이 생기며 묘목사업이 발전하였고
용량 문제로 빠졌으나 나무도 다양해졌으며 종묘업을 하는 조선인 사업가들 역시 등장함
(일본인 자본이 더 다수이기는 하여도)
1910년~1925년 사이 인구가 21% 증가하는 와중에도
전체적으로 보면 임상도 개선되어 황무지도 줄었고
특히 황폐화 되어 있던 남부지방의 경우 개선이 일정 성과를 나타내었음
임공조림이 확대되고 임상이 개선되어 황무지가 줄어들고 입목축적량도 늘어나고
이런 것을 \'수탈\' 2글자로 정의하면 이상하지 않은가 싶음
또 앞의 글에서도 나왔지만
산에 대한 조합 형식의 통제 역시 등장하였는데
이것은 50년대 한국에도 다시 나타났고 70년대 지역공동체 형식의 참여로 이어짐
북부지방 국유림에서 나무를 마구 베었다는
북부지방원시림 수탈론의 경우는 그런 관점 역시 있을 수 있음
다만 수백년된 나무 운운의 감성자극이 빠진다면
임업 관점에서는 자연생장량이 0이 되는 과임축적을 가진 산림을 개발하여 수익을 얻으면서
자연생장량을 다시 증가시키는 것이 일반적이고
문제는 목재농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자연생장량을 증가시킬 조치가 이루어졌는가의 문제이지
나무를 베었다는 것 하나로 악랄한 수탈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가이고
다른 하나는 계획보다 19.3%가 초과 벌채되었다고(계획 2,009만 - 실제 2,396만 m3)
해당 지역이 황폐화 될 정도의 대규모 남벌이었다고 연결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이고
북부의 국유림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남부의 조림보조비 및 사방사업보조비를 얻겠다는 계획에 의하면
34년 이후 실제 비용을 충당하고 있음
그 비용을 일방적으로 가져가는 구조도 아니었고
남한에 살면서 그 문제에 그렇게 절대적으로 분노해야 하나?
아무 재생조차 불가능한 약탈이었다기에는
북부지방 조차 28년보다 개선되었으며 35~42년 사이 큰 차이도 없음
27년 이후 통계 허구라는 주장이 있으나, 항상 이야기하지만 글쎄, 오히려 27년 이후 통계가 더 정확할 여지가 높음
허구라는 주장은 일제는 절대적으로 베기만 했다는 이야기를 깔고 있는데(천연조림 중심으로 하겠다고 했으니)
임공조림실적 자체는 감소하지만 질은 증가하였고, 또 30년대 후반 이후 인공조림조차 북부에서도 다시 증가하였음
그리고 탈탈탈 낙엽이니 열매니 다 털어가는 것은 천연조림이 아니라 조선시대 하던 일이고.
다만 벌채가 중점적으로 이루어진 국유지와 민유지의 경우 많이 다를 수는 있음
근대 이행기 산림보호는 석탄으로 대체와 석탄가격의 상대적 하락, 즉 목재가격의 상승으로
석탄으로 연료전환이 이루어지면서 합리적으로 벌어지는 경우들이 있는데
식민지시기의 경우 인구 증가가 두드러지고 어떤 목재 수입이 없었음에도 석탄이나 식량 가격과 비교했을 때
목재가격이 오히려 싸짐
그런 상황에서 일제가 산림을 보호-육성 정책 하나 없이 마구 수탈하면서도 그런 구조가 유지되었다면
일제는 마법사일것임. 실제 일제는 마법사가 아니고
앞의 글에 나왔지만 실제 목재가격 상승은 조선후기
일제시대 산림정책을 단순한 사실상 약탈이라고 기술하는 수탈론을 통한 민족이중구조보다는
어딘가에서는 심고 어딘가에서는 베고
임업 육성과 민유지 확대라는 상대적으로 근대적인 제도의 도입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맞다고 봄
오늘날 산에 나무가 많은 것은 박정희 이후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산림 육성 사업에 성공하였기 때문임
하지만 그 전의 황폐한 상황을 \'일본놈들의 수탈\' 때문이라고 돌리는 것은
남탓의 역사관의 극치이자 거짓말이라고 하고 싶음
그리고 민족주의가 같은 민족끼리는 수탈해도 된다는 소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오늘날 북한의 한심한 산림 관리도 좀 지적했으면 좋겠음
위에 링크된 글들 포함해서 반론 절대적으로 환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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