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 일본이 일본의 이름 안쓰게 했으면 일제가 조선인을 차별했다고 할 새끼들이
일본이 일본과 조선을 구분두고 평등하게 대우해주니 그것을 민족 착취억압 말살정책이라고 하고 있지
이씨조선 시대에는 꿈도못꾸던 출세한 홍사익 중장. 이씨왕손말고 가장출세한 평민출신...
가난한 집안인물이 일본제국시대에는 별이 세개 미국과 전쟁도 한 장군
창씨개명도 거부하였음에도 중장까지 된 인물
일제는 지배국임에도, 지배국이 피지배인들에게 장군직과 일본인들을 진두지휘 하게했다.
참고로 홍사익장군은 성품이 곧고 청렴결백하고 장군으로써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음..조선인들사이에서 평이 워낙좋아
광복동아리에서 포섭할려고 했으나 거절한 인물.."내가 이런 신분에서 대일본제국을 배신하면 조선인들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것이고 대우를 못받고 탄압받을것이다 라고 말한사람
차별을 하여 괄세를 하고 학대를 하고 노예로 종으로 부려먹은 것이 아니라, 일본의 소원은 오로지 일본과 조선이 하나 되는 것이었다. 독일이 유대인에게 다윗의 별을 가슴에 달게 하여 독일인과 유대인이 구별되게 한 것과는 달리 일본은 조선인의 이름과 일본인의 이름이 달라서 구별이 되니까 그 구별을 없애려고 창씨개명을 내세워 제국주의 지배 국가가 피지배 국민에게 지배국 국민 이름 사용을 허가 한것이다.
독일인은 유대인들과 결혼은 고사하고 성관계만 가져도 처벌을 받았다, 나치의 법에 명문화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제국주의 열강들은 자국민들과 식민지의 원주민 사이의 통혼을 법으로 금지했다. 같은 식당을 이용할 수도 없었고, 기차도 같은 칸을 타지 못했다. 대부분의 문화시설은 원주민 출입금지였다. 원주민 학생이 이주민학생과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거주지부터 구역이 달랐다. 이것이 식민지다.
그러나 일본은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그런 차별을 두지 않았다. 조선인들이 동경대, 와세다대, 게이죠대에서 일본인 학생들과 같이 공부했다. 물론 사관학교도 같이 다녔고, 임관도 됐다.
조선인은 일본군 내에서 중장까지 달았다 홍사익 장군이다. 홍사익장군은 창씨개명을 거부하고도 중장까지 진급했다. 일본육사 출신도 아니고 구 한국군 훈련단 출신이다. 한국인도 노력만 하면 사법시험에 패스해서 법관이 될 수 있었다. 법관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지배계층이다. 이수일과 심순애, 홍도야 울지마라는 산파극이 그래서 나올 수 있었다.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의 결혼은 전혀 금지되거나 억압되지 않았다. 둘이 사랑하기만 하면 결혼은 합법이었다.
일본은 일본인과 한국인을 구별되게 만드는 모든 것을 없애려고 광분했지 차별하려고 노력한 것이 별로 없다. 같은 문자를 쓰게 하고, 같은 옷을 입히고, 같은 말을 하게 하고, 같은 천황을 섬기게 하고, 같은 학교 다니게 하고, 같은 말을 쓰게 하고, 같은 동네에서 같이 살고, 같은 대중목욕탕에서 일본인하고 조선인이 같이 벌거벗고 같은 탕 안에 들어가 같이 때밀고 나왔다. 같은 이발관에서 같은 이발사가 같은 바리깡으로 조선인과 일본인 머리를 같은 요금 받고 똑같이 깎았다.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차별하고 매우 싫어했다면, 뭐하러 구태여 일본식이름의 창씨개명을 허용해줬을까?
상식적으로 차별했습NIDA 타령하면 이름부터 조선식 이름을 사용하게 내버려두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씨개명을 열어놓았다는게 차별이 없었다는 증거로도 차용될 수 있다.
창씨개명 안하고도 일본군 장성까지 올려준것이 일본이다
일본인과 조선인을 구분짓지않는데 조선인만 보호받고 있었다면 그것이야 말로 본토 일본인을 차별하는것이 아닌가?
외부사정을 모르니까 선동하던 데로 속아서 일본이 민족말살정책을 했다는 선동을 그대로 믿고 있잖아? 민족말살이 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선동꾼들 소원대로 일본이 서방처럼 조선을 식민지 취급을 했다면 그게 일본을 위해서는 나았을걸. 해줘도 욕먹는 판국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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