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돌아보기)
'한 쪽 손은 운전대 잡고 있으니까 한 쪽 손은 잡아도 되죠?”
“뭐?”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의 손은 차갑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차가 급정거했다.
“너 미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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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 난...”
클락션이 미친 듯이 울렸다. 운전자들은 그의 멱살이라도 잡을 것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그의 동공. 처음 보는 낯빛. 두려움이 일었다. 그것은 처음 보는 그의 모습이 낯설어서가 아니라 공포였다. 이성을 잃은 한 마리의 야생동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내 그의 낯빛이 돌아왔다. 오히려 본인이 더 당황한 듯 보였다. 그가 차를 몰아 갓길에 세웠다. 아무 말 없이 핸들을 붙잡고 있던 그가 말했다.
“미안해. 순간 너무 당황해서.. 놀랐지, 괜찮아?”
슬퍼보였다. 화상이라도 입을 것 같던 차 안의 공기가 천천히 식어간다.
“괜찮아요. 본인이 더 놀란 것 같은데. 내가 미안해요. 이런 거에 민감한 줄 몰랐어요.”
“오늘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 오랜만에 외출인데 미안해.”
“아니에요.”
우리는 집으로 가는 길 내내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비가 내렸다. 유리창에 맺힌 빗물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흐릿한 초점들이 유리창을 빗겨나가고 있었다. 미동 없이 앉아있느라 뒷목이 뻐근해오는 줄도 몰랐다. 그는 다시 예전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철저히 경계해 무의식 하나라도 들키지 않겠다는. 비가 천장을 때렸다. 후두둑, 후두둑, 하는 소리들이 간신히 고요를 채우고 있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쉬어야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저녁도 먹지 않았는데. 괜스레 눈물이 났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를 향한 동정심이었다. 그는 몸 어딘가에 큰 구멍이 나있는 것 같다. 그 곳을 채우려는 그 어떤 감정도 두려워하고 있다. 그 구멍은 서서히 커져 그를 잠식시킨다.
그렇다면 나는, 괜찮나? 아니. 나 역시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에 치이고 치여왔다. 나는 그와 달리 감정을 숨기기보단 하나하나 어루만졌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로 인해 미술을 시작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기대야할 어떤 것이 필요했는지도.
‘꼬르륵’
하…. 이 상황에 대체 왜 배가 고픈 걸까. 찬장에 그가 가져다 놓은 옥수수콘과 곤약젤리가 있을 것이다. 오늘은 겸상이 불가할 것 같으니 조용히 나가 소리 없이 가져와야겠다.
찬장을 열었다. 아니, 왜 없지? 분명히 어제까지만 해도 여기 있었는데. 옆 찬장으로 옮겼나….
‘쾅’
와이씨. 찬장이 너무 크게 닫혔다. 뒤를 돌아 그의 방문을 바라봤다. 항상 이렇게 관음을 해왔지. 다행히 못 들은 듯하다.
옆 찬장에도 없는데…. 어디 갔지…
“이거 찾아?”
“악깜딱이야.”
그가 옥수수콘 통을 들고 서있다.
“아… 배고파서….”
“나도 배가 고파서…”
그가 피식 웃었다. 나도 덩달아 웃었다. 이렇게 쉽게 풀릴 걸, 뭐 그렇게 마음을 졸였을까. 그가 웃는 모습을 보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타인에게 마음을 쓰는 일. 나에겐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그런 내가 조금은 마음에 들었다.
“같이 먹을래?”
“네ㅋㅋㅋ”
우리는 아주 천천히 오래도록 옥수수콘을 먹었다. 이유 없이 웃으면서, 이유 없이 투정을 부리면서.
(다음 날)
“저 전공 수업 갔다 올게요!”
늦었다. 아, 스튜핏 수업인데 그 깐깐한 인간이 또 얼마나 승질을 내려나.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앞치마를 입은 그가 뛰어 들어와 계란 프라이를 건넸다.
“이거라도 먹고 가!너 아침도 안 먹었잖아! 자꾸 밥 안 먹고 곤약젤리 같은 거나 먹고 대체 어쩌려고 그래!”
“아익! 지금도 늦었는데!! 갔다 와서 먹을게요. 꼭 먹을게요!!”
“야! 나도 선생이야! 내 말도 잘 들으라고 좀!!”
‘쾅’
아, 뱃속에서 무언가가 꿀렁꿀렁 거렸다. 하... 배고프다. 하지만 프라이를 먹을 시간 따위는 없다. 바빠서 화장도 못하고 고데기도 못했는데 무슨 프라이람. 오늘따라 엘리베이터는 왜 이렇게 늦게 와! 급한 마음에 엄지발가락을 잔뜩 웅크렸다.
‘띵똥’
스튜핏의 성난 얼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스뜌우삣! 이건 니 트레이너의 문제야. 넌 시간도 모르는데 지라도 잘 지켜서 니가 제 시간에 오도록 만들어야지! 쓰뜌우우삣!!“
아. 시발. 붓. 시발 붓!! 붓을 놓고 왔다. 또 군인이 전쟁터에 총 놓고 왔다며 지랄할 것이 뻔하다. 하… 늦더라도 붓은 챙겨야한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붓, 붓, 아, 탁자 위에 있다.
“지금 무슨 소리 하시는 겁니까!!!”
순간 그의 방에서 들려오는 그의 화난 목소리. 저건 나한테 내지르던 것과는 다른, 이성적인 분노.
“당신들, 나한테도 그랬어? 여기가 생체 실험하는 곳이야? 17번은 겨우 얼마 전에 A 받았어. 23번이랑은 달라도 아주 다르다고. 23번은 A플러스였어. 아니, 애초에 이게 말이나 돼? 여기는 인권도 도덕도 아무 것도 없는 곳이야!!!!”
저게… 무슨 소리지?
“당신들 내가 아무리 씨부려봤자 아무 소용없는 거 알아. 17번만이라도 내버려 둬. 여기 정말 지긋지긋해. 남녀 붙여서 사람 감정 이용하는 것도 모자라서, 뭐? 약을 주입해? 여기 쥐 사육장입니까!? 당신들 얼마나 힘 센 줄 알아. 닥치고 있을게. 나 잘 하고 있잖아. 17번 감정 유지시키고 있잖아. 다 잘했으니까 이번만이라도 좀 넘어가 달라고. 제발.”
심장이 가장 큰 소리를 내려앉았다. 집 안이 웅, 하고 울렸다. 근육 하나하나, 인대 하나하나가 떨려옴이 느껴졌다. 사방이 흐릿했다. 나, 정말 신체포기 각서라도 썼던 건가.
“당신들 17번 건드리면 내가 가만 안 있어. 손끝 하나라도 건드려봐. 내가 17번 죽여 버릴 거야!!'
전화를 끊고서 한참동안 그가 조용했다. 흰 도화지 위에 올려진 기분이었다. 나는… 나는…
그 순간 그가 방안에서 고함을 질렀다. 집 안이 흔들릴 만큼, 분노와 슬픔이 가득 찬 고함을 내질렀다.
잠시 후에 그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고 붉은 그의 눈에서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나는 미동도 없이 소파 앞에 서있었다. 머릿속에는 단 한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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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소설 양을 조금 늘려서 이틀에 한편 정도 올릴 생각이야. 올리는 시간이 다소 불규칙적일 수 있는 점 양해바라 !
-댓 달아주는 뚜기들 넘 ㄱㅈ해오 힘이 돼오 많은 비추 ㄱㅈ ! 더 재밌게 써볼게
-혹시 뭐 이런 방향으로 써줘! 라던가 그런거 있음 말해줘 참고 할게!
-오늘도 긴글 읽어줘서 ㄱㅈㄱㅈ
-관음 스튜핏 꿀렁꿀렁 곤약젤리
고데기 엄지발가락 화상 신체포기
옥수수콘 23 인대 멱살 뒷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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