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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보병 제6사단 청성부대 ( BLUE STAR ) ☆☆

롯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8.10.03 01: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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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보병사단

 


  - 제 6 보병사단 연혁

  제 6 보병사단은 서기 1948년 4월 29일 국방부 일반명령(육) 제 15 호에 의거 경기 수색에서 제 4 여단으로 최초 창설 후,
동년 11월 20일에 제 6 여단으로 개칭되었으며, 서기1949년 1월 15일 육본일반명령 제 15 호에 의거 사단으로 승격되었다.
  제 6 보병사단은 서기 1949년 1월 강원 원주로 이동하였고, 휴전 이후에는 서기 1957년 3월부터 1963년 8월까지 강원 홍천 사창리, 경기도 현리로 이동하였다.
  제 6 보병사단은 서기 1966년 ○월 ○○일부로 ○○\' 현 위치로 이동하여 ○○○ 지역 경계를 담당하고 있다.
  제 6 보병사단 은 6.25전쟁 기간중 춘천지구 전투등 154여회의 대 ·소 전투에 참가하여 적 92,669명을 사살하고, 적 6,437명을 생포하였으며, 휴전 이후에는 25회의 대간첩작전을 통해 적 17명을 사살하고, 적 1명을 생포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제 6 보병사단의 상징명칭은「청성부대」다.  청성부대명칭은 6.25전쟁 당시 UN군이 사단을 ‘Blue Star\'라는 애칭으로 부른 것에착안하여 최강의 전투부대라는 뜻으로 서기 1951년에 사단에서 제정하였다.


 - 제 6 보병사단 편재

    - 2연대 (용문산부대)
    - 7연대 (초산부대)
    - 19연대 (독수리부대)
    - 포병대대( 27,76, 77 ,88 포병대대)

- 제 6 보병사단 주요 사단장

1950  : 김종오(金鐘五) 대령(당시 29세)
1951  : 장도영 준장(파로호전투)
1955~1957년 : 박정희 대통령
1965년 : 김재규
1975년 : 정명환 장군 (2땅굴 발견)
1995년: 남재준소장(前육군참모총장)
1997년 : 김장수 소장( 前 국방부 장관)
2004년 :허평환 소장(육사 30기)
2006년 : 임관빈 소장 (늘 푸른병영)
2007.10. : 조병오 소장

- 제 6 보병사단 한국전쟁 전공

 1. 춘첩대첩 (대한민국을 구한 푸른별)
 춘천과 홍천을 방어하던 6사단은 6.25전 생포한 북한포로의 진술로 전면전위기를 느낀 김종오사단장님의 휴가,외박,외출 통제로 전병력이 영내대기했다. 또한 비상령을 발포하여 항시 전투준비태세에있던 6사단은 6.25당일 다른사단과는 달리 3일동안이나 방어에 성공해 국군이 재정비할수있는시간을 벌어줬다. 나머지9개사단이 전쟁과동시에 추풍낙엽처럼 쓸려 도망갔던것과는 대조적이다.

 유일하게 사단기를 빼앗기지않은 6사단은 전쟁초기 T-34전차를앞세워 돌진하는 인민군에게 처음에는 고전했다.

그러나 모진교쪽에서 지형을 이용 심일소위와 육탄11용사가 화염병을들고달려들어 적토치카를 파괴시켰다. 이것이 적전차를 파괴한것으로 잘못전해들은 국군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6사단 선배님들의 악착같은 모진교에서의 방어로 오히려 인민군 4사단과11사단,모터싸이클연대는 어처구니없이 패하고말았다.

 이에 김일성은 4,11사단장과 모터싸이클연대장을 해임한다. 그러나 다른 사단의 국군들은 패배를거듭해

결국3일만에 수도서울은 빨갱이치하로 넘어간다.  춘천,홍천에서계속방어하던 6사단은 결국포위될위기에 놓이게되었고 김종오사단장은 야음을 틈타 한강이남으로 전략적 철수를 명하게된다.

 이때 6사단이3 일을 버텨주지못했더라면 서울은하룻만에 함락됐을것이며 낙동강 방어선과 인천상륙작전도 없었을것이다.
 휴전이후 6사단이 전력의 요충지인 중부전선의 최선봉을 맡을수있었던 계기가되었고, 구국의 사단이라는 칭호를 받을수있었다.


2.  음성지구전투 (국군 최초의 승전보)
 대구와 부산을빼고 전국을 인민군에게 빼앗긴 국군은 낙동강에서 배수의 진을치게된다.

 6사단7연대는 동락리쪽을 방어하고있었는데 장호원에서 동락리로 치고들어오던 북괴군15사단과의 교전이 불가피하게되었다.

 15사단 2개연대는 국군이한명도보이지않자 동락초등학교에서 잠시 야영을하며 저녁을먹었다 이때 초등학교 김재옥교사가 국군7연대2대대장에게 신고를했고 2대대는 3대대에 지원을 요청해 박격포를동원 동락초등학교에 집중사격을가한다.

졸지에 기습을당한 인민군2개연대는 박살이났고 빠져나온인민군들은 2,3대대원들의 총탄에 쓰러졌다.

겨우빠져나온 2개연대인민군들은 휴식을취하다 지원을오던1대대병력을만나 또다시 패주해 전선밖으로쫓겨나게된다.

국군최초의 공격이었으며 승리인 음성지구전투로인해 이승만 대통령은 방송으로 우리국군이 지고있는것만은아니라고 말했으며 6사단 7연대 전장병이 일계급 특진하였다 국군최초의 대통령표창과 일계급특진이었다


3.초산진격 (압록강 물을 마시다!)
 인천상륙작전으로 대반격을한 유엔군은 거꾸로 적의 뒤통수를치며 10월1일 3사단을선봉으로 드디어 38선을 돌파한다.

그리고 1사단은 가장먼저 평양에들어가 북괴군과 접전을펼친다. 뒤이어 도착한 6사단과1사단의 협공으로 북괴군은 도망치고 주석궁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게된다.

 와중에 6사단7연대 3대대는 김일성 승용차를 노획한다

 그러나 미군은 국군의 북괴군 추격을저지하고 미24해병사단에게 단독으로 북진할것을 주장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군에 강력히 항의 우리국군에게 가장먼저 압록강에 진격하라고 명령한다. 이에 미24해병사단과 국군 7사단과6사단사이에 경쟁이 붙었다.

 6사단7연대는 임부택대령의 지휘하에 패주하는 북괴군을 몰아부치며 초산을향해 전속력으로 진군했다.

 당시 6사단 7연대의 진격속도는 패주하는 북한군을 앞지를 정도였다고한다.

 드디어 초산에 들어서자 북괴군은 최후의 발악을했으나 7연대는 이들을 섬멸하고 초산을 점령 1950년10월26일2시15분 드디어 압록강에 태극기를 꽃고 1대대 1중대 1소대장은 수통에 물을담아 이슴만 대통령에게 헌수했다..


4. 용문산전투 (세계를 놀라게 만든 푸른별의 위력)

 51년4월 1차 중공군 춘계공습에서 사창리에서 대패한 6사단은 용문산에서 재편성하며 중공군2차 춘계공습을 맞을대비를하고있었다.  전사한 군인은 학도병과 신병으로보충하며 용문산에서 중공군을 맞았다.

 한국전쟁의 최고영웅 6사단장 김종오 장군은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 깨끗하게 설욕하자"라며 의지를 불태웠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를 내려다보는 용문산 일대의 전략적 가치는 매우 컸다.  북한강은 춘천-화천-양구로, 남한강은 여주-충주로 이어지는 뱃길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은 홍천-인제 방면과 횡성-원주 방면의 도로가 교차하는 육상교통로의 요지이기도 했다.
 6사단이 상대할 적은 중공군 63군단이다. 그것이 중공군38군단만큼의 정예부대는 아니지만 압록강에서 미군을 패퇴시킬 만큼의 강력한 군단이었던것 만큼은 확실하다.

 김종오 장군은 용문산에 주력인 7연대와 19연대 그리고 공병대대와 포대를 배치했다. 그리고 2연대를 전진배치해 적의 이동을 탐지하고 지연전을 펼쳐 용문산으로 끌어들여 괴멸시킨다는 전략이었다.

 따라서 전선 최전방인 홍천강 옆 559고지에 2연대 1대대를, 북한산 옆 381고지에 2연대 2대대를, 381 뒷편 353고지에 2연대 3대대를 배치시켰다.

 또한 수색중대를 활용 북한강과 홍천강 부근에서 적의 이동경로를 탐색하라 지시했다.

김종오 장군은 또한 각 연대이하 연대장들에게 지시를 내려 "수사불패"(죽을순 있어도 패할순없다) 정신으로 무장하라 지시하였다.  이에따라 6사단의 모든 장병들은 철모에 "결사"라 적힌 머리띠를 두르고 결사항전,임전무퇴의 정신을 다졌다.
 사계청소와 진지공사를 마치고 적군을 기다리던 6사단에 드디어 수색중대로 부터 보고가 들어왔다.
엄청난 수의 중공군 63군단이 가평으로부터 쳐내려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운명의 5월18일밤이 되었다.
 중공군이 야밤에 공격할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야간 공격에서 만큼은 국군도 유엔군에 뒤지지않았다.
어둠속에 전투는 정신력이 좌우한다. 이미죽기를 각오하고 용문산에 뼈를 묻을 각오로 후방의 가족들에게 유서까지 쓴 마당에 무엇이 두렵겠는가? 오늘을 위해 야간사격과 야간훈련을 철저히 하지 않았던가.
  중공군은 5월18일 밤 밤8시경을 기해서 대규모 파상공세를 펴기 시작한다.
 맹렬한 포격을 국군 6사단 2연대 방어지역에 퍼붓기 시작했다. 훗날 당시 중사였던 참전용사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포탄이 아니다 우박이다"
 참호속에 바짝 엎드린 2연대 장병들의 곁에는 팔,다리가 끊어진 전우들의 시신이 널려있었다.
포격이 끝나자 드디어 중공군은 2연대 고지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2연대가 방어하는 559,381,353고지를 포위한후 새까맣게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조명탄이 터지고 말그대로 피비린내 나는 아수라장이었다. 
 
 용문산 참전 용사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오른손이 총을 맞으면 왼손으로 방아쇠를 당기고 왼손이 맞으면 압으로 수류탄 안전핀을 뽑아 발로차서 굴렸다" 
 또 한명의 참전 용사는 이러한 말을 남겼다. "솔직히 말해 전투 직전에는 두려웠다. 하지만 같은 참호속에서 바로옆에 죽어있는 전우를 보니 두려움 따위는 사라지고 오직 죽여야 한다는 증오심만이 불타올랐다."
 
 전투는 치열했다. 어느정도 방어하다 퇴각하라는 작전을 무시한체 2연대 장병들은 아예 목숨을 담보로 방어하고있었다.
엄청난 2연대의 방어에 중공군 63군단은 2연대의 방어선이 6사단 주력병력으로 알고있었다.
당시 6사단의 병력이 총9000명 이중에 2연대는 2900여명이었다. 이에반해 중공군 3개사단은 35000명.
아무리 불굴의 투지라지만 도대체 몇대몇의 상황인지 계산도 안될만큼 절대열세 상황이었다.
전투는 날이 밝을때까지 계속되어 곳곳에서는 백병전까지 벌어졌다.
  19일이 되자 김종오장군은 2연대에 철수 명령을 내렸다. 2연대는 1대대를 나산에, 2연대 2대대를 427고지로 후퇴시켜 삼각편대를 이루어 방어하며 지연전을 펼치도록했다.
  19일 저녁 중공군은 쉴틈도 없이 곧바로 2연대 방어지역을 전면 공격했다. 중공군은 예비사단인189사단까지 동원하여 측후방을 완전 고립시키며 사방팔방에서 밀려올라왔다.
2연대와 7연대와 19연대 사이의 통신은 이미 두절된지 오래였다. 2연대는 적 포위망에 완전히 갇혔으나 어느누구 하나 꽁무니를 뺴거나 항복하지 않았다.
다시 밤새도록 전투가 계속되었다. 전투가 아니라 처절한 방어였다. 정면에 보이는놈은 무조건 중공군이었다. 죽을때까지 방아쇠를 당겼다.
  날이밝아 20일이 되자 김종오사단은 임전무퇴로 방어하는 2연대를 구하기위해 7연대와 19연대를 급파한다.
7연대와 19연대가 오기 전 2연대는 1대대와 3대대가 모두 427고지로 모여 고지 삼면을 방어하며 처절한 벙어를 펼쳤다.
공격하는 중공군63군단의 파괴력도 강했지만 사창리전투를 만회라려는 2연대 장병들의 투지는 그 상상을 초월했다.
20일은 지옥같은 날이었다. 양쪽 모두 생사는 잊은지 오래였다. 이 한판대결로 모든것이 끝나는것이었다.
후방의 포지원과 유엔군의 항공기 지원이 있었지만 뒤죽박죽 섞여있는 국군과 중공군 모두에게 떨어져 아군에게도 적지않은 피해를 입혔다.
맹렬하게 저항하는 2연대를 중공군은 6사단 전체가 427고지에서 방어하는줄 착각할 정도였다.
 후에 현충일 기념식에 참석했던 당시 참전용사는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물러날곳도 없었습니다. 본부에서는 용문산까지 퇴각하라고했지만 연대내에 죽을지 언정 후퇴는 없다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다른 전우들도 후퇴할 생각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연대장님이 427고지에서 원치않는 자는 용문산으로 후퇴하라고 말했지만 한명의 연대원도 가지않았습니다." 
 또 한명의 당시 2연대 참전용사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중공군의 총과 칼에 쓰러지는 전우들을 보고 목숨따위는 생각도 안났습니다. 이왕 죽을거 몇놈이라도 더 죽여서 본전치기라도 하자는 생각이었지요" 
 참으로 멋지지않은가? 60여 시간을 쉬지않고 몰아치는 중공군 1개군단을 2900여명의 한개의 연대가 일당백의 용기로 막고있는것이다.
2연대가 18일을 버텨낸것도 사실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2연대는 3일을 싸우면서도 조금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21일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 7연대와 19연대가 427고지를 포위하고 있는 중공군 부대와 맞닥드렸다.
다시 국군과 중공군 간에 처절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중공군 입장에서는 주력이라 생각하는 2연대에 갑자기 뒤에서 7연대와 19연대가 휘몰아치자 오히려 포위되어 갈팡질팡 수많은 중공군이 6사단 장병들의 총칼날에 피를뿌리며 쓰러졌다.
  21일 새벽이 되어 사상자가 급증하고 눈이 벌게진 6사단 국군들의 맹렬한 투지앞에 전의를 상실한 중공군은 드디어 퇴각을 시작한다. 하지만 들어오긴 쉬워도 나가긴 어려운법.
 단지 용문산을 지켜냈다는 승리에 만족하기로는 전우들의 죽음이 너무나도 헛되어 보였다.
 6사단 장병들은 맹추격을 개시하여 오히려 뒤통수를 치며 중공군을 몰아부쳤다. 퇴각하다 낙오한 중공군들은 여지없이 포로가 되거나 죽음을 당했다.
사창리와 화천부근 파로호까지 중공군을 밀어부치자 중공군은 각종 장비와 소총을 버리고 맨몸으로 북쪽을 향해 허겁지겁 줄행랑 쳤다.
 이로써 6사단은 중공군 3개사단을 섬멸하는 최고의 업적을 이룩한다.
이 믿을수 없는 승리를 두고 이승만 대통령은 6사단의 승리를 극찬했으며 파로호전적기념비를 세웠다.
  이어 24일과30일 사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패주하는 중공군을 맹추격하여 적 10만여명을 몰살시켜버렸으며 이에 놀란 중공군은 허겁지겁 휴전회담을 제의하기에 이른다.



# 6.25 전쟁 최다 전투(154회), 최다 적 사살(92,669명)
# 국군 최초, 최다 대통령 부대표창
# 휴전이후 적침투 무허용, 제 2땅굴 발견 등 철통같은 GOP경계부대
# 6사단출신 최다 장성발굴 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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