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왜이리 비가 자주 내리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눈이라도 펑펑 내려주면 좋으련만.

뒤적뒤적 보던 책을 휙 던져버리고 그는 폰을 집어들었다. 문자나 깨똑을 확인해봤다. 맨날 그놈의 할인이벤트 정보나 신용등급이 어쩌구, 기껏해야 게임 안내나 여행사 홍보들 뿐이다. 마음이 헛헛해서일까? 기분탓일까? 흔하던 여사친들의 깨똑도 끊어지니 그마저도 그립다. 그래 그랬다. 그는 늘 누군가의 관심이 고마우면서도 표현을 잘 할줄 몰라 툭툭한 말한마디 내뱉고는 "난 너 아니라도 혼자서도 잘 산다 걱정마라 난 찌질하지 않아 난 나거든 난 강이거든 난 강건하거든 난 약하지 않아 난 무너지지 않아 난...난 말이야......" 라며 스스로를 다 잡고 채찍질 해가며 긴긴 겨울을 혹독한 시절을 견디어 왔다. 이건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어릴때부터 독립심이 강하다 보니 그는 자연스레 자존심이 센 남자가  강한 남자라 여기며 성장하게 되었던 거다. 세상에 그 어떤 억울한 일은 참아도 자존심 상하는건 죽기보다 싫다는 그 남자에게 주변의 이쁜 여사친들은 그저 그냥 그런 동네 소꼽친구나 별반 다를바 없었다.

지난 날, 벚꽃잎 흩날리던 봄 날의 기억도 한 폭의 수채화처럼 도화지 속에 묻혀 가고  하루하루 무의미한 시간들만 달력을 넘기고 있었다. 인친 똑친들이 올린 고양이 사진을 볼때나 고양이 이미지나 이모티콘을 볼때면 고양이 카페에서 스치듯 만났던  봄 같은 그녀가 생각나 그리워졌다.
인간의 기억이 주는 하찮음이란, 얼마나 기 막히는가!!
오랜낮, 오랜밤 사귀었던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는 이제 기억속에도 몇 글자 남아 있지 않다니...겨울이 잘못인가 아님 또 오는 봄이 잘못인건가!!!
\'뜨겁게 그 순간 사랑했으면 된거야, 기억을 남긴다는건 찌질한 인간들의 습작이야, 헤어진 마당에 질척대는건 좋지 않아, 사랑이야 또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는걸 뭐 그리 심각할 필요 있나\' 그의 애정관, 관계 철학이다.

그런 그에게 딱 한 번 고양이 까페에서 스친 인연의 그녀와 그녀의 강.
천볼트 전압이라도 흘렀던 걸까?
시시때때로 시크하던 그녀 뒷모습과 미소짓던 옆모습, 단호하고 솔직해 보이던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이 자꾸만 생각나 그의 얼굴은 점점 더 말라 가고 있었다.
그녀라면 지금의 나도 있는대로 그대로 봐주고 사랑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애써 웃지 않아도 애써 태연한척 행복한척 하지 않아도 내가 그녀의 곁에 잠시 머무는 것 만으로도 세상을 다가진 것처럼 행복하지 않을까,,,,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이에 미치자 그는 갑자기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온라인 애묘카페에도 가입하고 고양이에 대한 공부도 했다. 그녀를 만났던 \'냥만 카페\' 에도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그렇게 한 두 달이 지나고 그날도 그는 책 하나를 들고 작곡 노트 한 권을 챙겨 들고는 여전히 냥이들의 천국인 그곳에서 다시 만날지도 아닐지도 모를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깜짝 놀란건 첫사랑 봄하늘 같던 그녀가 사르르르 냥만 카페문을 열고 들어 선 것이었다.
"강아. 강. 이리와 오랫만이지? 어때 좋아? 나도 좋아. 오늘 우리 실컷 놀다 가자.." 그녀의 봄왈츠 같은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그의 두 심장은 양귀비꽃 처럼 빨갛게 타들었고 그의 두 귀는 노을처럼 검붉게 물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