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광대...

몰락이 다가옵니다.

짚시의 느리고 구슬픈 노래처럼 천천히 그러나 또렷하게 다가옵니다. 

가까워 올수록 형체가 분명하고 그 험상궂은 표정에 주눅이 듭니다. 

흡사 나를 벌하겠다는 표정이에요... 

벌을 내리겠으니 이 벌이 너의 행위에 합당하지 않은지를 묻는것같기도 합니다. 

이 벌이 절대 억울하지는 않을것이라는것같기도 합니다...

몰락이여! 한여름 한순간 내 위를 덮는 구름을 몰고오는 비바람이여! 

나는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나는 이의가 없으며 당신의 행위는 합당하고 억울하지 않습니다... 

또한 나는 변호인이 필요없고 명백히 유죄이며 항소하지 않을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호소합니다. 

내가 호소하여 무엇인가 얻어낼 수 있을 희망으로 호소합니다. 

내 호소가 지극히 정성스럽고 정당하다면 내게 있을 어떤 불행이라도 아직 비켜갈 수 있을것같은 희망에 젖고 

내 호소가 지극히 애절하고 간절하다면 내게 없을 어떤 행복이라도 아직 나를 비켜가지 않을것같은 희망으로 호소합니다...

나는 광대...

호소... 하지 않으렵니다. 

마음을 바꿨습니다. 오히려 의연히 형장의 날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살겠습니다. 

조용히 독방에 갖혀 당신으로 부터 얻은 빨간 명찰을 한켠밖에 안되는 하얀 빛 하늘에 비추어 나를 보기를 기원드립니다. 

내게.. 당신의 자비가 필요합니다. 나는 당신과 맞설 수 없습니다... 

내게는 내게 비추어 오는 이 긴 오후에 비추는 한뼘 하늘빛 만큼의 당신의 동성심이 필요해요.

그것만 주십시오... 주실 수 ... 있으세요?

나는 광대...

별모양 무늬가 인쇄된 붉은 고깔모양 모자를 눌러쓴 나는 광대... 

나를 보면서 가끔 웃어주는 사람이 있어 나는 그저 기쁠 뿐입니다. 

내눈엔 모두 간수들일 뿐인 그대들이 나를 벗으로 맞이하지 않으리란걸 알면서도 

그대들 앞에서 하늘에 내 가슴을 펼쳐보이는 짓을 하는 정신나간 광대... 

그게 때론 웃길수도 있어요. 하지만 비웃지만 마십시오.. 

한때 나를 보면서 웃어주었던 그대를 감히 내 벗으로 맞이하려던 내 무례와 착각을 용서하세요..

나는 광대...

나는 광대. 당신은 이제 친구가 아닙니다. 

난 당신을 기다리지 않을것입니다. 

당신과 동행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