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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후 쓰는 글

ㅇㄴㅇㅁㅇ(220.82) 2016.12.27 02:23:09
조회 426 추천 1 댓글 2

12월 31일 23시 경. 나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옷을 대충 챙겨입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집에서 슬그머니 나와서 그저 정처없이 걸음을 옮겼다. 아침에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겨울철의 날씨 답지 않게 포근한 밤이였다.

길을 따라 뚜벅뚜벅 걷다보니 근처 초등학교에 도착했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비가 내려서 인지 밤 늦게 까지 북적이던 운동장은 텅 비어있었다. 대신 근처 집집마다 불이 환하게 켜곤 곧 올 새해를 왁자지껄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정문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에 있는 학교 운동장 안의 줄이 녹슬어버린 그네에 걸터 앉았다. 텅 빈 밤의 학교는 어디에 있던 어떤 계절이던 간에 을씨년하기 짝이 없었다. 불빛이라도 있으면 조금 나을까 싶어서 핸드폰을 꺼내려 했지만 대충 주워입은 옷에는 지갑만이 들어있었다. 나는 잠시 툴툴대곤 걸터 앉은 채로 눈을 감고 학교를 휘 둘러보았다. 

엄마 손을 붙잡고 서서 교장 선생님의 훈화를 들었던, 문에 나무 판자만 끼워두던 강당에는 이제 디지털 도어락이 걸려 있었다. 근처 보건소에서 아이들에게 예방접종을 하기 위해서 방문 할 때마다 한 반씩 아이들을 불러모으던, 변변한 침상도 없던 보건실에는 이제 돌침대가 놓여있었다. 학교 백일장 대회 시간에 학생들이 나비를 주제로 글을 쓰던, 나무판자 바닥 교실에는 이제 타일이 깔려있었다. 학부모 참관일에 나는 소설가가 되겠다 발표했던 치기많은 어린이는 이제 어른이 되었다.


나는 그네에서 천천히 일어나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후문으로 가기 위해선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편이 빠르니까. 그렇게 천천히, 천천히 앞만 보고 걸었다. 운동장을 반절이나 지났을까 발 끝에 뭔가가 채였다. 작다고 하긴 뭐한 그렇다고 그리 크지도 않은 돌멩이가 내 발에 차여 데굴데굴 굴렀다. 돌멩이가 데굴데굴 구르는 꼴이 뭔가 재밌었다. 그래서 걷다가 차고 걷다가 차고를 반복하면서 걸어갔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후문에 도착했다. 돌멩이는 나보다 앞서서 후문 앞에 앉아있었다. 나는 돌멩이를 오른 손으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바라보았다. 겨울비 맞아 차갑게 젖고 이리저리 패여 곰보가 되어버린 돌멩이를 보자 서글퍼졌다. 멀리서 볼때는 단단하고 멀쩡해 보이던 돌멩이는 내가 모르게 상처입고 그 조그만 심장을 차갑게 얼려버린 것이다. 나는 돌멩이를 왼 손으로 바꿔 들고 그대로 화단을 향해, 아니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 훌쩍 던졌다. 그러고선 나는 후문으로 빠져나갔다.


그렇게 또 정처없이 걷다가 편의점 안의 시계에 홀려 편의점에 들어갔다. 편의점의 시계는 11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그걸 멍하니 바라보다 홀린듯이 음료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 같았으면 콜라나 집어들었을 텐데 새해가 다가오니 콜라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 옆의 맥주에 눈이 갔다. 호가든, 버드와이저, 하이네켄, 기네스 등 형형색색의 일탈에 나는 홀린듯이 하나를 집어들고 그대로 결제 했다. 나는 결제하는 동안 불안한 마음에 시계를 계속 보았다. 11시 55분 내가 성인이 되려면 아직 5분이란 시간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종업원은 5분이란 시간은 시간도 아니라는 듯이 나의 미성년을 나타내는 신분증을 보고도 결제하였다. 


나는 그렇게 맥주를 사곤 편의점 문 앞의 조그마한 턱에 걸터 앉았다. 나는 그때까지도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이것을 마셔도 되는 지 안되는 지에 대해서 나의 양심은 계속 나란 놈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나의 양심 속의 검사는 옛날 내 기억속의 판례를 들었다. 내가 중학교 3학년 시절 나는 아버지와의 약속시간에서 5분을 늦었다. 그날 밤 나는 아버지에게 5분동안 흠씬 두들겨 맞으면서 5분의 중요함에 대해 그리고 약속을 깨는 짓은 범죄와 같다고 강의 받았다. 나는 아직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검사가 옛날 이야기를 들먹이자 나는 듣기 싫다는 듯이 후들거리는 손으로 맥주캔을 땄다. 맥주캔은 콜라캔 만큼이나 시원하게 황금빛으로 빛나는 합창을 하였다. 나는 그 캔을 눈앞에 두고 자꾸 침만 삼켰다. 그것도 잠시 나는 긴장으로 턱턱 막히는 목을 축이기 위해서 캔을 조금씩 입을 향해 들어올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코 앞에서는 맥주 특유의 톡 튀는 향이 아른거렸고 손은 땀인지 물인지 모를 것으로 축축히 젖어있었다. 그 와중에도 검사는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나는 그 입 닥치라는 듯이 한 모금을 들이켰고 그 순간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려왔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이자 마지막 반항이 이렇게 끝났다. 


얼마나 지났을까 얼굴에서 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겨울 치곤 포근하다 하지만 이렇게 더운 날씨는 아니였다. 더위에 짜증이난 나는 나의 반항도구였던 맥주캔을 길바닥에 집어던졌다. 반쯤 마셨던 맥주캔은 둔탁한 소리를 내곤 그 자리에서 자신을 채우고 있던 죄를 쏟아내었다. 아니, 이젠 죄가 아닌 무언가를 쏟아내었다. 나는 그걸 지켜보다 하늘로 고개를 올렸다. 별이 치렁치렁 달린 밤하늘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러다 제 시간에만 달리고 제 시간에만 져야하는 별의 꼴이 나 같아서 울적해졌다. 바로 어제 경영학과 수시 발표가 나왔었다. 합격이였다. 부모님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제 시간에 저녁을 드시고 제 시간에 주무셨다.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분명 국문학과를 썼을텐데 어째서 바뀌어 있는지, 어째서 내 원서접수사이트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지 나는 한마디도 채근할 수 없었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오늘을 보냈던 나를 나는...


"아리...아...리랑...아...라리...요"


내 막혀있는 입 대신에 가슴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떨리는 음정으로 노래가 흘러나왔다. 구슬픈 아리랑이였다. 옛날 선조들의 애환과 비애가 나의 가슴에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리랑....고개.....로....나.를....넘.겨....주게"


맞는 가사인지도 술김에 뭐라 말하는 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노래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해 노래했다.


숨막히게 조그마한 숨어서 부르는 서글픈 나의 아리랑 소리는 눈이 되어 뚝뚝 나의 발치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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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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