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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가의 서 2: Kangchi rearise 외전 - 아버지의 정의모바일에서 작성

ㅇㅇ(223.62) 2017.09.07 17:32:07
조회 414 추천 8 댓글 2


-최마름 side-

내 상사는 조금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의 대외적 이름은 최치욱이었으나, 내게는 강치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을 부탁했다. 상사니까 명령 또는 요구, 지침 따위의 말이 들어맞지 않을까 싶겠으나, 그의 말투나 눈빛은 차라리 애걸이라 하는 편이 맞았을 것이다.
사실 그때뿐이 아니라 그가 내게 하는 행동은 항상 그랬다.

그는 젊었다. 때로는 갓 스물이나 됐을까 싶을 때도 있었고 때론 달관한 표정에 서른 정도는 되어 보일 때도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이상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점점 어려 보였다. 아니, 사실 그는 그대로였다. 늙은 것은 나였다.
그를 처음 만난 후로 십여년이 흘렀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 땐 내 아이들이 갓 학교에 입학할 나이였는데 지금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나보다 조금 더 어릴 뿐인 운 좋고 돈 많은 젊은 놈 정도로 보였으나 지금은 새파랗게 어린 아들뻘로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게다가 그는 보이는 나이에 걸맞게 행동과 언행을 휙휙 바꿔댔으니까. 요즘은 나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유행어들을 남발해 댄다. 요는 내가 늙어서 그가 상대적으로 점점 어려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는 늙지 않는다. 사실 그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 진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400살이 넘은 것만은 확실하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은 나를 포함해 극히 일부밖에 없다. 그의 하나뿐인 절친, 최근에 그에게 물적, 물리적 도움을 얻고 있는 무슨 높으신 분들, 그리고 나. 애석하게도 그가 최근 열렬히 사랑하는 젊은 경찰에게는 털어놓지 못한 모양이다. 진짜 인간이 되면 그 때 말하고 싶다나. 그 여경은 그의 본래 모습에 더욱 관심이 있는 것 같았는데 내 상사는 은근히 답답한 구석이 있다.

여튼 이 중에서도 그가 이 사실을 가장 먼저 털어놓은 것은 바로 나다. 심지어 그의 전 인생을 통틀어서도 그의 시간흐름이 인간과 같았던 생의 첫 순간들에 존재했던 자들과 일제강점기 시절의 몇몇 독립군 동료들을 빼면 내가 처음이라 한다.
그는 이상하리만치 내게는 경계가 없었다. 그러니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는 누구를 가까이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잘생겼고 돈도 많았고 매너도 성격도 좋았지만 여자를 사귀지도 친구를 깊게 만들지도 않았다.
아니, 정정하자. 그는 성격이 그리 좋은 편은 못 되었다. 그는 웬만한 일은 다 거절부터 하고 본다. 심지어 그의 유일한 친구라는 녀석은 허구한 날 그에게 퇴짜맞는 게 일일 정도니. 사실 그 녀석은 그에게 거절당하기 위해 고용됐다고 한다. 사람들을 구하다가 원하지 않는 타이밍에 인간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나, 뭐 그런 이유였던 것 같은데. 호텔로 생기는 수익이나 명함을 모두 그 녀석에게 나누고 있긴 하지만 고약한 취미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내게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처음 만난 날 그의 눈이 커지던 순간을 나는 기억한다.
나는 꽤 성실한 편이었고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충실한 사원이자 아버지이자 남편이었지만 힘든 날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그 날은 이상할 정도로 아침부터 온갖 것들에 짓눌린 기분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퇴근 후 바로 집에 들어가지 않고 한강에서 혼자 홀짝거리고 있었다. 눈썹처럼 가늘게 벼려진 날렵한 초승달이 매끈하게 떠 있었다.

근처에 어린 청년이 한 명 더 있었다. 그는 그냥 초승달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처음 보는 낯선 이에게 무슨 오지랖이 발동했는지 불쑥 맥주캔을 내밀었다. 평소의 나라면 잘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그는 가만히 뒤돌아보았다. 그리고,
"아버지?"

매우 놀란 듯한 그가 무의식중에 내뱉은 한 마디는 너무나 뜬금없는 단어였다. 너무 상황과 어울리지 않아서 당황한 내가 벙쪄 있는 사이, 그는 외려 나보다도 놀란 듯했다.
아무튼 그가 나를 보고 뭘 떠올린지는 몰라도, 그가 한 말이 진짜 나와 관련이 있을 리는 없었다. 나는 가족이 있었고, 무엇보다 그는 나보다 많아야 열 살 정도 어릴까 싶은 어엿한 어른이었다. 내게 이렇게 큰 아들이 진짜 있을 리는 없었다.
그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재빨리 눈빛을 갈무리하고는 작은 목소리로 사과를 건넸다. 술은 못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최강치 side-

그 날의 만남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일단 나는 정말로 환생한 지인을 그 때 처음으로 만났고, 심지어 그게 나의 아버지였다. 지금은 그것이 시작이었을 뿐임을 알고 있지만, 어쨌든 400년만에 아버지와 마주하는 건 오랜 세월 그림자뿐이던 내 주변에 한 명의 얼굴을 그려넣은 듯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는 나를 알지 못했다. 그에겐 가족이 있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헌신적인 아버지였다. 그래도 반가웠다. 그가 여전히 최씨라는 것마저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날 밤 나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일제강점기 시절을 비롯해 정말 필요할 때 나의 능력을 밝힌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내 시간이 여전히 머물고 있는 그 시절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후에 만난 태서에게도 많은 것을 말하지는 않았고 - 그가 들으면 혼란스러울 우정 뒤의 배신과 고통, 용서 따위가 얽힌 복잡한 이야기를 굳이 밝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 억만이에게는 내 정체를 밝히지도 못했으니. 여울이에게는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한 뒤에 달콤함만을 얻어야 한다.

지금껏 혼자만 간직했던 이야기는 들어줄 대상을 만나자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나를 전혀 몰랐을 그는 사실 이야기를 들어주기 적당한 상대가 아직은 아니었으나 나는 그의 앞에서만큼은 무장 해제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런 기분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그는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비웃지도, 화내지도 않고 묵묵히 잘 들어주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문득 떠올랐다. 나는 아버지의 이름을 알고 있었던가. 그는 마름 최씨라고 불렸고, 나는 나 자신을 최마름의 아들 최강치라 칭하고 다녔다. 그건 내게는 일종의 절박한 지푸라기였다. 내가 인간의 아들이고, 인간 세계에 적을 두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나를 정의하는 유일한 끈.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내게는 아버지라 부를 만한 위치의 존재가 많았다. 나를 아들과도 같다고 해 주셨던 박무솔 나으리, 관계야 어찌되었든 내 생물학적인 아버지임에 틀림이 없는 구월령, 지금까지도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 주고 계신 이순신 장군까지. 그러나 내게 다른 이름이 필요없는 아버지는 아버지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마름 최씨였고, 내게는 아버지였을 뿐인 그는. 젊은 날에 떠넘기듯 맡겨진 젖먹이를 홀로 키우고 혼인도 하지 못한 채 최강치의 아버지로 남겨진 인생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를 아버지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어떻게 생각하든간에 나는 그가 지금 가정을 이루고 있으며, 아내와 친자식들이 있다는 사실에 매우 기뻤다. 내게 항상 죄책감으로 다가왔던 빼앗긴 그의 평범한 일상이 이번 생에는 존재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이번에는 그 일상을 빼앗았던 만큼 돌려주리라 마음먹었다.
그날 밤 나는 기존 월급의 배가 넘는 돈을 약속하며 그를 집사로 고용했다. 마음 같아서는 대가 없이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싶었지만 그는 일이 그런 식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예나 지금이나 책임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최마름 side-

내 상사는 이상한 사람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렇다. 그러나 아무래도 상관은 없다. 그의 젊음에는 적응되었고, 요상한 상하의식 결여와 나를 향한 친밀감은 내가 적당히 제어할 수 있었다. 그는 강 강에 버려질 치 자를 쓰는 최강치라는 황당한 이름으로 불러 달라 했지만 나는 그를 회장님이라 불렀다. 최치욱이나 최강치나 회장님은 회장님이었으므로. 그에게는 나를 최집사라 불러 달라 했다. 사실상 그는 시키는 일이 없었지만 스스로 집사가 하는 일들을 찾아 했다. 그 편이 마음이 편했다.

그의 이야기는 가히 놀라웠지만 납득은 가능했다. 10년 넘게 그의 기이한 모습을 보다 보면 안 믿을래야 안 믿을 수도 없었다. 그가 내게 친밀함을 느끼는 이유도 알고 있다. 전생에 내가 그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아는 것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어쨌든 나는 지금 가족이 따로 있었고, 그가 현재의 내 자식이 아니라 해도 전생에 내 자식이었다는 것을 아는 건 묘하게 불편했다. 마치 혼외자식이라도 있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더더욱 선을 그었다. 게다가 그는 반인반수인데, 나는 다시 태어난 것을 보면 전생에 인간이었음이 틀림없다. 어머니가 신수였나? 내가 전생에 신수와 사랑했었다니!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날짜를 세는 걸 보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그러면 대체 그는 왜 날더러 그의 아버지라는 것인가.
그는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고 나도 굳이 묻지 않았다. 나름의 선을 긋고 행동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납득했다. 그는 어쨌든 나에겐 고마운 존재였고 또 외로운 존재였기에 굳이 헤집어 놓고 난 너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못박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그를 자식으로 여기든 여기지 않든 간에 그가 그렇게 느끼고 싶다면 그렇게 느끼게 두면 그만이다.


-최강치 side-

한 가지 정정할 부분이 있다. 나는 그에게도 모든 이야기를 자세하게 털어놓지는 않았다. 그저 그가 전생에 내 아버지였다고 말했을 뿐이다.
왜 그런 걸까. 그건 태서와 나의 관계마냥 복잡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여울이와의 사랑마냥 고통스럽고 애통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냥 나는 버려졌고 건져져 당신에게 맡겨졌다, 당신은 모두가 버린 나를, 강에 버린 나를 친자식마냥 길러주셨다고 하면 그만인 이야기였다. 기구하나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다.
그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는 내가 스스로도 의아했지만 그냥 놔 두었다. 그도 이상하게 여겼을 법한데 묻지 않았다. 그의 배려가 고마웠다.


-최마름 side-

최근 내 상사는 위험한 일들에 뛰어들고 있다. 그는 강하다. 내가 지금껏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강한 듯하다.
그리고 그는 필사적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는 해낼 것이다. 그녀를 위해서, 그리고 그 자신을 위해서.

그런데 그는 어느 때보다도 어려 보인다. 당연한 일이다. 나는 지금까지의 어느 시간보다도 늙었으니까.
아니 당연하지 않다. 그는 젊은 모습이나 실은 그 누구보다도 오래 살았으니까. 그 세월의 흔적은 꼭 외견상의 노화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는 정말 나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보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요즘 그는 정말 어려 보인다. 갓 성인이 되려는 내 자식들마냥.
그래서는 안 된다. 아무리 젊어 보여도 그는 나보다 몇백 살은 많다. 나보다 몇 배는 강하고 현명할 것이다. 그런데 자꾸만 걱정이 된다.


-최강치 side-

마지막 결전만이 남았다. 지금껏 반인반수로서의 내 모습과 백년호텔의 최치욱 회장으로서의 모습을 성공적으로 분리해 왔다. 그러나 끝까지 안전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들은 그 둘 간의 커넥션을 깨닫고 있다. 그들은 조금씩 내 주변을 압박하려 들 것이다. 강력한 힘을 가진 반인반수의 정체를 알기 위해 어떤 짓이든 할 것이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안다. 어차피 내 주변에는 별로 사람이 없다. 백년호텔의 직원들을 건드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아는 것이 없고 나는 냉혹한 자신을 연기해 왔으므로 협박의 가치도 없다. 그렇게 멍청한 자들은 아니다.
여울이를 그 누구보다도 이 위험에서 멀리 빼내고 싶다. 그러나 알고 있다. 나는 같은 이유로 그녀 곁을 떠났다가 400여 년을 후회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를 지켜낼 것이다. 내가 곁에 있는 이상, 누구도 그녀를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다.
태서는 그 자신이 이 일의 요주 인물이다. 그가 나를 떠난다고 해서 그들이 관심을 끊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요즘은 인간이 되는 수행 중이므로 그가 도움을 청하면 거절하지 않고 구하러 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다. 이 모든 일에서 자유롭고, 결백하고, 지나치게 연관되지도 않았으며, 나만 떠나면 안전할 사람. 어차피 구가의 서를 찾고 인간이 되면 400년 전의 부자관계는 아무 의미가 없어질 일이었다. 그건 처음부터 내 욕심이었다.


-최마름 side-

물끄러미 그가 내미는 통장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나에게 떠나라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왜?
이유는 명확하다. 위험하니까. 이건 그의 일이니까. 나는 휘말려선 안 될 사람이니까.
그런데 왜? 라는 물음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10년 넘게 몸담았던 곳에서 나오면서도 계속해서 머리가 복잡했다. 그는 내게 가족들을, 자식들을 지키라 했다. 그런데 자꾸만 뭔가 빼먹은 것 같다.

아내와 자식들은 먼저 해외로 출국시켰다. 그들은 안전했다. 그가 건넨 돈은 삼대가 놀고먹어도 될 정도로 많았다.
가족들은 은인과도 같았던 젊은 회장을 걱정했지만 그뿐이었다. 아마 집사에게 이만한 돈을 줄 만큼 부자인 그는 어련히 피했으려니 할 것이다. 그가 저 한복판에서 싸우고 있는 주인공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하고.

나는 하루 늦게 갈 셈으로 집에서 혼자 맥주를 홀짝였다. 같이 갈 예정이었는데 뭔가 빼먹은 것 같은 느낌이 사라지지 않아 좀 더 점검하고 가기로 했다. 그날과 마찬가지로 초승달이 떠 있었다. 그러나 초승달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저 복판에서 이루어지는 싸움은 굳이 TV로 보지 않아도 느껴질 만큼 요란하고 격렬했다. 저 멀리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는 철저한 성격이므로 주변 사람들은 다 대피했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죽음에 예민하니까.

TV를 켰다. 내 상사의 모습이 더 자세히 보였다. 뉴스를 찍는 작자들은 겁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들까지 대피시키진 못했겠지. 나는 작게 실소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온갖 풍문을 퍼뜨리고 쑤시는 걸 좋아한다고 투덜대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얼굴을 가리고, 초록으로 빛나는 눈만을 내놓은 채. 손톱이 날카롭게 선 손에는 핏줄이 꽃가지마냥 피었다. 잿빛으로 변한 머리칼은 목 부근까지 자라 있었다. 그 초록색 눈은 날카로웠지만 어딘지 아이같은 모습이었다. 유행어를 남발하는 평소의 흔한 400+a살의 모습보다도 더.

쾅. 그의 등이 건물에 부딪혔다. 건물에 금이 생겼으나 그는 바로 일어났다. 쾅. 또 한 번 바닥에 내리꽂혔다. 또 일어났다. 그는 정말 강했다. 그런데 나는 그가 너무나 아파 보였다. 알고 있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몇백 살 많고, 몇 배는 강하고, 몇 배는 현명하다. 알고 있다. 알고 있다...

그가 일어나는 시간이 조금씩 늦어졌다. 나는 초조함에 벌떡 일어나서 TV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불현듯 내가 잊은 것이 뭔지 떠올랐다. 10년이 넘게 잊지 않았던 것.

나는 달렸다.


-최강치 side-

눈앞이 피범벅이었다. 저것들은 쉬지도 않고 연이어서 나를 공격해댔다. 내 회복력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치명상을 입힐 수 없으니 어떻게든 다른 행동을 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또 나의 불살주의에 대해서도 아는 것 같았다. 신념은 구가의 서를 찾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주위는 고요했다. 사람들은 모두 대피시켰다. 여울이도 태서도 그 외 요원들도 모두 제 위치에 있을 것이다. 여기서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초승달이 보였다. 저 초승달이 지기 전에 임무를 마치고 여울이 곁으로 가야 한다. 나는 다시 일어났다. 목이 말랐다. 누가 물이라도 가져다 줬으면 좋겠는데. 저 쪽에서 불빛 깜박대며 촬영 중인 분들은 말고. 정말 대단한 직업정신이야. 외롭다. 목이 마르다. 물이라도 떠다 줄 딱 한 사람만 있으면 좋겠다. 딱 한 사람만...

갑자기 옆에 내밀어진 무언가에 고개를 들었다. 와인잔에 든 홍삼액? 뒤를 돌아보았다.
아버지였다.
"아들 혼자 두고 가는 아버지가 있나?"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최마름 side-

왜 잊었을까. 항상 그에게 목을 축이게 해 주는 건 나였다. 그가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기댈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사랑은 어쨌든 책임과 긴장이 동반되고, 친구는 때로는 갈등하고 질투하는 관계다.
나는 가족이 따로 있고, 자식이 따로 있다. 상관없었다. 그도 내 아들이다.
그 옛날에 내가 그의 친아버지가 아니었어도 상관없다. 그 옛날은 아무래도 좋다. 어쨌든 그도 내 아들이었다.
그냥 나의 현재 생만으로, 그의 최근 십여 년만으로도, 내가 그의 아버지가 되기는 충분했다.
놓친 가족 하나를 비로소 되찾은 기분이다. 그는 나보다 몇백 살이 많고, 몇 배는 강하고, 몇 배는 현명하지만, 그래도 아무도 없을 때 물 한 잔 가져다주고 주먹밥이라도 하나 가져다 줄 아버지가 필요했다.
강 강 자에 버려질 치를 쓰는 최강치를 나는 버리지 않을 것이다.




구상한 건 태산인데 아버지 외전 이야기 한개 썼내오..
저 최강치 가명은 나름 애너그램임 강→ㄱㅏㅇ→ㄱㅜㅇ→ㅇㅜㄱ→욱
최강치의 진정한 아버지는 최마름=최집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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