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첫 촬영을 앞두고 명량을 찾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울돌목, 울음 우는 바다,

그 앞에 선 저는 사백 년 전 단 열두척의 전선만을 가지고 적과의

결전을 준비했던 이순신 만큼,

아니 그 보다 훨씬 더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마라톤 플코스 스타트라인에 선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방송사상 해상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해전촬영.

이순신에게도 또한 그의 일대기를 짚어가는 우리들에게도

바다는 가장 무서운 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군사들도 저의 지시를 따르는 연기자와 스태프들도

그 어느 누구도 그 바다앞에서는 백퍼센트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작 기간 1년 6개월, 연 인원 1만 6천 명의 엑스트라.

350억 이상 투입된 초대형 블록버스터 등등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참으로 큰 부담이었습니다.

그 바다에서 저는 스스로에게 다짐을 두었던 것 같습니다.

“대작의 오만을 경계하자. 대작이 곧 명작일 수는 없으므로......”

그리고 오늘이 되었습니다.

불멸의 이순신 첫 촬영이 2004년 4월 24일 이었으니

그날로 부터는 만 삼 년,

종영일은 2005년 8월 28일이었으니 그날로부터도 벌써

얼추 이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럼에도 불멸의 이순신은 그 제목만큼이나 오랫동안

저와 작가 수많은 스태프들과

무엇보다 당신들의 가슴 속에 여전히 실체로서 남아 있군요.

그래서 이제는 감히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이제는 좀 오만해 져 봐도 좋지 않을까.

우리가 내놓은 것은 비록 준작이었을 망정,

당신들의 가슴속에서 새롭게 자라고 있는 그 불멸의 이순신은

그 관심과 애정을 거름삼아 이미 대작으로 성장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아무래도 오만을 품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대신 자부심을 갖겠습니다.

부족하나 성의를 다한다면 시청자들과 지속적인 소통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함께 말입니다.

보내주신 달력 잘 받았습니다.

언제나 겸손하게 인간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보다 좋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 가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