뀨해진은 히카루가 자신의 \'슬픔\'을 알아주었다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만큼 혹은 그보다 더 자신의 슬픔을 \'알아주었다\'는 게 중요했던 것 같아
문학에 미친 사람... 그래서 히카루가 자신의 문학적 동지라고 생각했고 그녀의 그런 점을 사랑했던 것 같았어

그런 만큼 투서에서 칠인회 선생님들에게 느끼는 배신감이 큰 것 같더라
히카루만큼은 아니더라도 문학적 동지, 자신의 문학에 대한 사랑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그깟 투서 하나 때문에 글을 다 버리고 있으니까
히카루의 편지가 아니었더라도 그 모습을 보고 떠났을 것 같았어
더 이상 이곳은 글을 쓸 장소가 되지 못한다고 느끼면서

생의 반려에서도 이윤에게 매달리는 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글을 쓰지 못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이 소설을 완성해야 내 가치가 완성되는 거고 히카루가 그걸 도와주고 있고...
그 점 때문에라도 히카루=세훈이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을 거야 그러기에 뀨해진의 머릿속에는 이미 글밖엔 남아있지 않아서 그리고 히카루=세훈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더 이상 글 자체에는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래서 이윤이 히카루의 정체를 밝히려 하자 필사적으로 막고 제발 내가 소설을 완성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 같아
이윤은 해진의 그런 마음을 아니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겠지 이 부분 부초윤이랑 뀨해진 연기 너무 좋았어

제일 좋았던 건 고백
사실 그전부터 알고는 있었을거야 뮤즈에서 칠인회 선생님들 넋놓고 바라보는 세훈을 응시하는 것도 그렇고
하지만 애써 외면했겠지 난 지금 죽어가고 있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글 외의 것에 신경을 쏟을 여유가 없으니까
그 상황에서 세훈을 이해하기에 뀨해진은 너무 몰려 있었어
핫세훈이 어찌어찌 해명해보려 할 때도 듣지 않으려 하다가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얘기에 무너져서는 안경 벗고 울다가 편지 모아서 안고
세훈이 제가 설명하겠다고 하는데 그만하라고 하지
원고 모으다가 흩날리면서 (던지면서?) 제발 그만하라고 하고
이때의 세훈은 뀨해진에게 있어 자신의 집필을 방해하는 존재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더이상 히카루/세훈은 자길 도와주는 문학적 동지가 되지 못해
히카루가 보냈던 편지를 손에서 놓아버리고 나가버려
암전 속에서 편지 그러모으는 핫세훈 모습 좋았어

그렇게 나와버리고 죽음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비로소 세훈의 입장을 생각할 여유가 생겼을 것 같아
맨 처음 세훈이 편지 얘기를 꺼냈을 때 편지의 주인이 누구라도 난 상관없다 말하던 모습을 그제야 되찾아
여기서 핫세훈 바지쪽에 꽃잎 한 장 떨어졌는데 핫세훈이 그거 집어들고 한참 바라보더라 이거 좋았고
꽃과 편지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고개를 숙이는 세훈 앞에서
단단하게 서서 세훈을 위로하려는 듯 손 뻗는 뀨해진은 세훈을 받아들이는... 좀 더 어른에 가까운 모습이 된 것 같았어
그런 해진 덕분에 세훈도 성장할 수 있었던 거 아닐까

전에 이 내용 후기에 쓴 적 있는지 모르겠는데
난 해진의 편지가 세훈의 고백에 대한 답이고
내가 죽었을 때가 그 편지에 대해 세훈이 보내는 답장이라고 생각해왔어
해진이 죽은 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세훈이 비로소 그 봄을 보내고 한 걸음 내딛는 것처럼 느껴졌거든
해진이 자신보다 용감한 세훈을 보며 한 걸음을 겨우 떼었듯이
세훈도 해진의 편지를 받고 다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게 된 것 같아

나한테 팬레터는 해피엔딩/새드엔딩으로 딱 나눌 수 없는 극인데
그래도 남은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행복을 찾길 바라게 돼
특히 세훈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좋은 작가가 되었을거야 슬픔을 아는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