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상플)눈(雪) -09앱에서 작성

ㅇㅇ(112.148) 2015.04.28 00:06:08
조회 1098 추천 29 댓글 5

여름(夏) -(3)

없어 보여, 없어도 너어무 없어 보여! 혜성의 양 손이 힘없이 툭 무릎 위로 떨어졌다. 도연이 혜성의 손을 잡고 위로 올렸지만 놓자마자 내려가고, 다시 올리면 또 내려가고를 반복했다. 나도 여기 있다, 장혜성? 서도연? 나 여기 앉아있다고! 나 여기 있어요-! 공숙은 아무리 제가 있다는 신호를 보내도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저들 얘기만 하는 도연과 혜성을 향해 결국 울먹이는 목소리를 냈다.

과장님 계신 거 알고 있어요.

돌아오는 대답이 담담하다 못 해 무덤덤해서 공숙이 후- 숨을 내쉬고는 버럭 화를 냈다.

알고 있는데 왜 대답을 안 해! 퇴근들 안 해? 그러고 있다가 민대리한테 걸리면 토요일에도 여섯시 퇴근이다? 난 이만 갈란다.

저 뭐요? 

공숙이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준국이 서있었다. 목소리만으로도 엄청난 중압감을 뿜어내는 포스에 혜성과 도연은 둘 다 몸이 굳었다. 양 팔 가득 서류더미를 안고 온 준국은 일거리를 몽땅 몰아줄 듯 크게 어깨를 움직였다. 혜성은 못 본 척 의자를 돌려 준국의 시선을 피했고 도연은 괜히 바지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려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괜히 겁들 집어 먹지 말고. 이것만 좀 해줘, 이것만. 

이것만이 어느 만큼인데요?

도연이 준국의 손가락 움직임을 보고 미심쩍게 물었다. 혜성은 믿지 말자, 저 인간이 쌀로 밥을 만든다고 해도 믿지 말자. 속으로 꿋꿋하게 되뇌면서 나는 아무 생각이 없으니까 아무 것도 시키지 마라 얼굴로 앉아있었다.대리님, 이것만이 아닌 데요?도연이 울상을 지으며 손에 올려 진 서류를 눈으로 쭉 훑었다. 혜성은 그럼 말이라도 이것만, 이것만 하지 말던가! 차마 하지 못 할 가슴 속 말 한마디를 꾹 눌러 참고는 손을 내밀었다. 연구소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배운 일은 산더미처럼 쌓인 일이 내 일이구나 받아들이는 것과 저 인간이 주는 일거리도 내 일처럼 체념하는 마음가짐이었다. 관우는 벌써 갔더라. 도연에게 한마디 툭 던지는 말이 혜성이 듣기에도 얄미웠다.  

우리도 그냥 빨리 도망갈걸.

타이밍을 놓친 거지. 어쩐지 토요일에 나오는 것치고는 일이 많다했다…. 너 남자친구랑 같은 회사 다니면 좋은 이유가 뭔지 알아?

이제 익숙해서 화도 나지 않아 도연은 차분했다. 혜성은 난데없는 도연의 질문에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물었다.

그게 뭔데?남자친구가 나만 두고 퇴근을 해도 이유가 척하고 보이는 것과 동시에 동지애도 더불어 쌓인다는 거지.

아…, 알 것 같다. 이미 손에 떨어진 일 버릴 수도 없고 후딱 하고 가자. 이 정도면…그래도 4시엔 끝나겠네. 나도 없어 보인다고 노래 부르느니 손이라도 움직이는 게 낫겠어.준국이 던지듯 건네주고 간 자료를 혜성이 양 팔 가득 안고 사무실 중간에 자리한 원형 회의 탁자에 앉았다. 도연도 혜성을 따라 의자를 빼고 앉았다.

그래서 계속 피할 거야? 잘못건 전화로 고백한 게 그래서?

…아니, 어쨌든 속마음 다 말해놓고 아닌 척 피하기 싫어서. 툭 터놓고 다 말할래. 그리고….

그리고 뭐?

…수하 눈을 보는 게 아니었어. 

혜성이 테이블 위로 팔을 쭉 뻗고 얼굴을 묻었다. 눈이 뭐? 도연이 턱을 괴고 물었다.

그냥 수하 눈부터가 진심인 게 보여서 저절로 나도 솔직하게 말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 나 피하지 마요. 나 피한다고 늦게 들어오려고 하지도 말고 아침 건너뛰려고 하지도 말고. …나 싫어하려고 하지도 말고.


아침에 봤던 수하의 얼굴이 팍 튀어 오르듯 떠올랐다. 사람의 진심을 그렇게 눈앞에서 가까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굳이 진지하게 분위기를 잡지 않아도 늘 웃고 있던 눈 자체가 침착하게 가라앉아 위에서 내려다보던 인상이 강하게 남았다. 분명히 낯가리고 은근히 고집 부릴 때는 남자같은 느낌이 없었는데 오늘 본 수하는 그 간극이 엄청났다. 아우, 더워! 혜성이 벌떡 일어나 손부채질을 하다 다급히 연필을 집어 들었다. 넌 덥냐? 난 춥다. 도연이 긴 팔을 뻗어 의자 위에 걸어둔 코트를 어깨에 걸치고는 종이를 넘겼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았다. 한동안 서점에 오지 않던 성빈은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쪼르르 서점으로 달려와 수하에게 책을 꺼내 달라 부탁했고 충기는 영 헛발질을 하고 있는 성빈을 못마땅해 하면서도 뒤를 따라 다녔다. 전에는 주말에도 시간이 훅훅 지나가더니 오늘은 누가 발목 잡고 늘어지는 것처럼 시계 바늘이 더디 움직였다. 아침에 혜성씨도 정신없었을 텐데 내가 너무 마음만 급했나? 창고에서 문제집을 꺼내 쌓으면서 수하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넌 아니라고 하면 어떡하지? 왜 괜히 미리 겁먹고 뒤로 물러나선…. 책에는 손을 들고 있지만 머리로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야, 박수하. 그거 초등학교다. 정훈이 지나가면서 슬쩍 알려주지 않았다면 수1학의 정석 사이에 칼라풀한 문제집이 끼어있을 뻔했다. 

저 형 연애가 잘 안 되나 보다.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저 오빠가 낯을 얼마나 가리는데!

나 사실 한 달 전에 저 형이 어떤 누나 업고 가는 거 봤어. 그리고 남자들은 낯을 가려도 자기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안 그래요.

이씨! 야! 넌 왜 그걸 이제…!성빈이 울컥해서 버럭 지른 하이톤 소리에 서점 안 사람들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아, 쪽팔려…. 충기가 손으로 얼굴을 가렸고 성빈은 죄송합니다, 허리를 깊게 숙이곤 왜 이제 말해? 목소리를 낮췄다. 그 와중에도 수하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소울리스하게 책만 옮겼다. 


4시가 좀 넘어서 퇴근했다.일요일이었다면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을 텐데 다행히도 은혜롭게 토요일이었다. 먼저 연구소에서 나온 관우는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도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리창 밖으로 도연과 관우에게 손을 흔든 혜성은 원룸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 내리기 전 멀리서부터 수하가 일하는 서점이 보였다. 누굴 만나 사귀면서 그 사람을 보고 떨린 적은 있어도 특정한 공간을 보고 몸이 먼저 반응하기는 또 처음이었다. 얘 오늘 늦게 끝나지…. 저도 모르게 서점 안으로 들어가려던 혜성은 핸드폰으로 시간을 먼저 확인하고 원룸으로 들어갔다.

성남에게 인사를 하고 바로 마주친 명진은 혜성을 노려보듯 빤히 보더니 쿵쿵거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불현 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 수하 같은 애가 왜 날 좋아하는 걸까. 나보다 5살이나 어리고 주변엔 저렇게 자기 좋다고 따라다니는 명진이도 있고, 자기 나이 또래에 나보다 더 좋은 여자들이 많을 텐데.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기고 좋다는 여자애들 되게 많을 것 같은데…. 기분이 묘했다. 알고 있던 것을 새삼 되짚고 나니 이해가 잘 안 됐다. 괜히 내가 그러는 건가…, 혜성이 한참을 계단 앞에서 서성이다가 방으로 올라갔다. 


서점 뒷정리는 주로 수하가 했다. 일단 바로 원룸 옆이라 늦게 들어가도 부담이 없는데다 혜성을 기다리는데 제일 적당한 핑계가 서점 뒷정리만 한게 없었다. 혜성을 피하는 그 잠깐 사이엔 간간히 정훈에게 부탁한 적은 있었지만. 자리를 이탈한 책들을 원래 자리에 올려놓고 컴퓨터 전원을 껐다. 대강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청소기를 꺼내려 창고로 들어갔다 나오자 서점 문밖에 혜성이 서서 들어가도 되냐고 손가락으로 안을 가리키며 물었다. 수하가 얼른 청소기를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이자 혜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침에 봤을 때처럼 틀어 올린 머리는 그대로였지만 얼굴엔 화장기가 없었다. 수하는 혜성이 화장한 얼굴보다 맨 얼굴이 더 자연스럽고 예쁘다고 생각했다. 늘 목구멍까지 차고 올라왔지만 타이밍이 아닌 것 같아  꾹 누르고 표현을 못 하고 있었다. 지금도 수하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하고픈 말을 억지로 눌러 넘겼다.

너 늦게 끝나면 늘 이 시간에 끝나잖아. 그래서 일부러 이 때왔어. 퇴근 시간 뺏으려는 건 아니야.

혜성이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할 말이 있어서 온 거구나, 수하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전화로 들어서 다 알겠지만 내가 말도 안 되게 널 좋아하는 것 같…, 아니 좋아해. 근데 난 널 피해야겠다고 생각했어.

알아요, 그건….

내가 너한테 자꾸 바라는 게 많아질 것 같아서 그랬어. 니가 나한테 먼저 등 돌렸을 때 허전하고 솔직히 조금은 서운했는지도 몰라. 그런 감정까지 드니까 내가 양심이 없더라고. 그리고 나중엔 너한테 바라기만 할 것 같아. 너도 사람이고 나한테 서운한 감정 드는 것도 당연하고 서로 생각 안 맞을 때도 분명히 있을 텐데 그 때마다 나도 모르게 너한테 실망하고 내 무조건 내 편 들어줘야한다고, 잘해줘야 한다고, 그런 이기적인 생각부터 할 것 같아. 내가 그 3주…아니 한 달 동안 확실하게 느꼈어.

수하는 아무 말도 없었다. 제가 엄마를 통해 느꼈던 불안감의 모습을 거울 비추듯이 혜성이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내가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일로 미리 걱정부터 했구나, 그리고 이 사람은 내 걱정부터 먼저 하고 있구나. 가슴이 뿌듯하게 뻐근하고 간질거렸다. 

그리고…이게 남자고 여자고 누굴 만나면 결혼을 전제로 하는 나이가 있어, 그게 지금 내 나이고. 난 그런 생각 안 하지만 남들은 내가 널 만나면 그렇게 생각해. 그것도 너한테 부담이야. 난 25살에 결혼이란 건 내 얘기가 아닌 줄 알았어. 내 주변에 남자애들도 그랬고. 정말 죽고 못 사는 사람 만나서 확신이 드는 거 아니면 뭐…그것 말고도 여러 이유로 결혼을 하면 했지 흔한 얘기가 아니라고. 너도 그럴걸? 날 좋아해도 그건 또 다른 문제고 부담스러울 거야. 세상에 어떤 여자가 자기 좋아하는 남자한테 부담주고 싶…!

수하가 혜성을 끌어당겨 안는 바람에 그녀는 할 말이 막혀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수하에게 안겨 멍하니 상황 파악을 못 하고 멍하니 서있던 혜성은 귀로 쿵쿵거리고 또렷하게 들려오는 심장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야, 수하야…. 이것 좀 놓고…. 혜성이 품에서 빠져나가려 하자 수하가 단단한 팔로 더 세게 끌어안고 조금의 틈도 만들지 않았다. 

혜성씨는 왜 그런 걱정은 안 해요? 내가 먼저 마음 바뀔 수도 있다는, 이렇게 좋다고 좋아한다고 해놓고 나중에 나 몰라라 내가 언제 그랬냐, 싹 말 바꿀 수도 있잖아요.

야, 수하야 뭐 그런 걸로 걱정을 하고 그래? 당장 지금 뭔 일이 일어날지도 몰….

혜성이 무슨 걱정이냐는 듯 말하다 뚝 말을 멈췄다. 수하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을 제가 하고 있었다. 

아, 그래 다른 문제는 다 넘어간다고 해도 5살 나이차이가 휙 넘는다고 넘어가는 게 아니야. 아까 명진이 봤는데 그런 생각도 들었어, 니가 왜 날 좋아할까 하는…답정너가 아니라 니 나이에 맞는 또래가 분명 있는데 굳이 왜 날….

나 아니다 싶으면 아예 시작도 안 했어요. 사람 만나는 것도 그랬고 짝사랑 할 때도 그 사람이 거절하기도 전에 내가 아니다 싶으면 먼저 접었어요. …포기하고 살면 내가 편해서, 내 인생만 책임지면 될 것 같아서 미리 발 빼고 그렇게 살았어요. 혜성씨한테 내 마음대로 다가갔다가 비겁하게 발 뺀 것도 그런 이유였구요. 전 같았으면 그렇게 발 빼고 끝이었을 텐데 혜성씨한테는 그게 안 돼요. 혜성씨가 나한테는 그래요,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마요.

수하가 혜성을 안은 팔을 천천히 풀었다. 아씨, 눈 보면 안 되는데…, 마음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몸이 말을 안 들었다.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또박또박 말을 이어가는 수하는 아침의 그 모습이었다가 마지막 말을 할 때는 단호하고 강했다.

잠깐만, 박수하 잠깐만! 혜성이 다급히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다른 손으로는 수하의 입을 막았다. 수하의 입술에 차가운 감촉이 닿았다.

더 말하지 마! 나 흔들린다, 나 아침에도 두근거렸다고! 너 거기서 더 말하면 나 너한테 부담이고 뭐고 진짜 얼굴에 철판 깔아! 나중에 니가 헤어지자고 그래도 못 헤어지는 수가 있어! 

차가웠던 혜성의 손이 금세 뜨거워졌다. 수하가 혜성의 양 손을 잡아내려 저에게 가깝게 끌어당겼다. 혜성은 어떻게든 눈을 질끈 감고 버텼다. 

당장 현재만 보고 사는 것도 문제지만…멀리만 보고 겁먹는 건 더 문제라고 생각해요. 내가…어떤 사람을 보고 자랐다고 해도 그 사람처럼 되는 거 아니잖아요. 하루 계획을 세워도 갑작스럽게 일이 생겨서 시간이 어그러진 적도 태반인데 나중 일을 어떻게 장담해요. 

눈을 감고 있어도 수하의 시선이 그대로 느껴졌다. 당장 이것도 계획대로 안 된다, 중얼거린 혜성이 천천히 눈을 뜨고 수하를 피하지 않고 바라봤다. 수하가 희미하게 미소 짓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혜성씨한테 잘 보이려고 일부러 그런 행동만 골라한 건 아니에요. 그냥…그렇게라도 혜성씨가 내 옆에 있는 게 좋아서 그랬어요. 실망해도 되요, 나한테 그렇게 의지해도 되요.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굴다가 상대방한테 이유도 모르고 떠나느니 그때그때 말하고 푸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나도 혜성씨한테 다 말할 거예요.

그 약간…가끔 사탕 달라고 조르는 애 같다는 느낌을 간간히 받긴 했지만 지금은 완전 반대였다. 말에 뼈가 있는 느낌은 있었지만 화려한 말을 덧붙이지 않고 담담하고 차분하게 전하는 말에 혜성은 진심을 더 느꼈다.

미치겠다, 내가 생각한 결말은 이게 아니었는데. 그래도 인생 5년 먼저 더 살았으니까 좀 어려워도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설득을 당했다. 아니, 수하의 진심에 달리 생각할 것도 없었다. 알았으니까 이거 놔줘. 혜성이 잡힌 손을 흔들자 수하가 손을 놓고 다시 혜성을 끌어다가 안았다. 수하가 입고 있는 목티는 소재가 부드러워 볼에 닿는 감촉이 좋았고 쿵쿵 거리는 심장소리가 귀에 들리는 건 설렜다. 수하야, 박수하. 이제 가자.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혜성의 목소리가 엄마에게는 결단코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톤이었다.

한참을 혜성을 안고 버티던 수하는 히터를 끈 서점이 추울 것 같아 제가 입고 온 패딩 점퍼를 혜성의 어깨에 올려주고 청소기를 돌렸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는데 그 좁은 집에서도 저를 보는 사람 없었던 전과는 다르게 혜성의 시선이 저를 보고 있는 느낌이 좋았다. 엄마처럼 살지 말자고 그런 생각에도 얽매이지 말자, 그래도 내가 친구들 말대로 아버지를 닮…았다면. 수하가 다시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혜성은 잠깐 사이에 수심이 스쳐간 수하의 얼굴을 놓치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부터 수하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여보세요? 물어도 한참 말이 없길래 장난 전화인가 생각하고 끊으려던 수하는 여보세요, 웅얼거리는 아이의 목소리가 귀에 익어 누구…? 진선이야? 물었다. 

진선아, 진선이 맞아?

-아줌마가 형아한테 전화해보라고….

왜? 무슨 일 있어?

-그게 아니라…방학하기 전에 엄마나 아빠 와서 수업 보는 거 있는데…아빠는 출장 가서 못 오시고 아줌마가 갈 거라고 했는데 아줌마 바쁘대요. 그러면서 형아한테 부탁하면 들어줄 거라고 했어요.

대체 애 목소리가 이렇게나 풀이 죽었는데 뭐하는 거…. 수하가 귀에서 최대한 핸드폰을 멀리 떼고 한숨을 내쉰 후 다시 통화를 이었다. 누가 들어도 실망하고 풀이 죽은 목소리가 어린 날 저와 겹쳐 수하가 일단 진선이를 달랬다.

진선아, 그게 언젠데? 

-내일…11시까지 와서 집에 같이 가는 거라고 했어요.

11시…, 월요일은 오후타임이라 정훈이한테 전에 받았던2시간 부탁하면 얼추 맞을 것 같은데. 수하가 빠르게 머리로 시간을 정리했다. 아무래도 오늘 내려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형이 오늘 내려갈게, 그래서 진선이 수업하는 것도 보고 같이 집에 가자. 

정말? 묻는 목소리가 바로 밝아졌다. 진선이가 약간이라도 기분을 푼 것 같아 안심한 수하가 전화를 끊고 가방에 정장과 한창 여름 날씨인 연주시에서 입을 옷을 챙겼다. 자기 행복해지고 싶다고 아무 것도 모르는 애한테 무슨 상처를 주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아마 진선이가 정말 안 되냐고 수차례 물었을 거고 거기서 친아들인 제 모습을 보고 떠넘기고 싶어 했는지도.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데도 맥이 빠졌다. 초겨울 날씨인 성무시와는 판이하게 다른 연주시 날씨를 고려해 반팔 위로 후드티를 입고 세면도구를 챙기는데 똑똑,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났다. 수하야, 아침 먹자. 수하가 얼른 문을 열었다.

잠깐만요, 나 이것만 좀 챙기고. 들어와요.

너 어디가? 웬 짐가방?

안으로 들어온 혜성이 침대 위에 놓인 가방을 보고 수하에게 물었다. 연주시에 급하게 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수하는 마저 세면도구와 핸드폰 충전기를 넣어 지퍼를 닫으며 답했다.

연주시는 왜 갑자기? 저번에도 갔잖아.

…동생 때문에. 내가 가는 게 나아서요.

동생 있었어?

…지금 말하자면 좀 길어서…내가 다녀와서 말해줄게요. 다 됐으니까 이제 나가….수하가 말을 다 마치지 않고 혜성의 입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입은 웃고 있는데 얼굴이 편해 보이지 않았다. 전에도 이랬는데 무슨 일이지. 혜성은 수하가 말해준다고 하면 해줄 테니까 더 묻지 않고 문을 열었다. 어쩐지 수하 어깨에 힘이 빠진 것 같아 마음에 걸려 혜성이 수하의 어깨를 쓸었다. 그 손길 하나에도 위안이 돼서 수하가 혜성에게 웃어보이고는 어깨를 조금 폈다.

성무시는 다시 추워지는 계절이었지만 다른 지역은 여름이 절정에 다다르고 그 날씨에 맞춰 성무시에 사는 주민들은 여름휴가를 준비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노잼주의
수정한번 했다가 멘붕이 ㄷㄷ

추천 비추천

29

고정닉 0

46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주위 눈치 안 보고(어쩌면 눈치 없이) MZ식 '직설 화법' 날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4/29 - -
공지 ▼▼▼▼ DC 너의목소리가들려 갤러리 통합공지 ver.1.0▼▼▼▼ [21] ㅇ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15 10228 77
공지 ★★★★ 잠시만요! 갤러들 공지 ver.2 확인하고 가실게요 ★★★★ [57] ㅇㅇ(58.120) 13.08.18 23881 135
공지 너의 목소리가 들려 갤러리 이용 안내 [33] 운영자 13.06.05 20901 20
203073 민준국이 우성식교수도 죽인건가? ㅇㅇ(61.80) 04.29 15 0
203071 망갤테스트.jpg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13 63 0
203070 이번에 만났나봐 [6] 너갤러(211.104) 03.11 388 22
203069 존나재밌네 [1] 갤럭시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3 255 0
203068 너목들 10년만에 정주행했음 [1] 너갤러(218.52) 23.12.23 342 1
203064 이거 실력자 참석비중 겁나 높네 ㅎㅎ [1] ㅇㅇ(183.109) 23.11.12 356 0
203063 특성상 게스트로 나온 가수 관련 스토리 보여주면 유리한거같음 ㅇㅇ(183.109) 23.11.12 197 0
203062 특성상 여자 우승이 유리한거같음 ㅇㅇ(183.109) 23.11.12 208 0
203061 박수하왜 경찰하려함? [1] ㅇㅇ(223.39) 23.10.23 379 0
203060 배우 이종석 차기작 디즈니플러스 ott 장르물 확정 ㅇㅇ(223.38) 23.10.02 289 0
203059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거 헐리우드였으면 너갤러(121.167) 23.09.28 296 0
203058 2년만에 또 정주행 한다 너갤러(182.226) 23.09.20 222 2
203057 박혜련작가 작품 특 너갤러(106.101) 23.09.10 345 0
203056 귀중한 가르침을 배운 드라마...갈까 말까 할땐? 가지마라..... 너갤러(220.67) 23.09.03 270 0
203053 진짜 신기하게 매년 이맘때쯤이면 너목들 보고있음 [1] ㅇㅇ(220.124) 23.08.12 440 3
203052 2013년 여름으로 돌아가고 싶다 [1] ㅇㅇ(1.228) 23.08.06 417 7
203051 딱 10년전이 17회 방영한날이네 ㅇㅇ(118.176) 23.07.31 262 0
203050 내일 종방 10주년 기념으로 부천가야지 ㅇㅇ(118.235) 23.07.31 297 0
203049 정주행중 ㅇㅇ(115.40) 23.07.26 246 0
203048 ㅃ 수박씨 보고 오랜만에 왔어 ㅇㅇ(1.255) 23.07.26 232 0
203047 유튜브에 김나박이 가창력 투표...jpg ㅇㅇ(110.70) 23.07.10 301 0
203046 유튜브에 여자 가수 가창력 투표...jpg ㅇㅇ(110.70) 23.07.09 286 0
203044 수하가 짱변한테 커피차 보냈대 ㅇㅇ(218.235) 23.06.29 505 25
203043 짱변이랑 수하가 감독님한테 커피차 보냄 [2] ㅇㅇ(211.234) 23.06.27 609 25
203042 이보영 이종석 또 드라마 찍어줬으면ㅠ ㅇㅇ(106.101) 23.06.22 362 4
203040 (경)10주년(축) [3] ㅇㅇ(14.36) 23.06.05 467 8
203039 난 아직도 수성 커플이 넘 좋다.. [1] ㅇㅇ(122.43) 23.05.03 624 4
203038 10주년 기념샷보고 와봤다. 잘들 지내냐? [5] ㅇㅂㅎㅊ(223.39) 23.04.15 747 9
203037 내인생 내청춘 평생사랑하는작품 너목들 ㅇㅇ(223.39) 23.04.15 421 0
203036 10주년 글 개추수 무슨일이냐ㅋㅋㅋ ㅇㅇ(223.39) 23.04.15 472 1
203035 역시 내 인생드라마야 [2] ㅇㅇ(39.7) 23.04.13 657 12
203034 10주년 기념 단체사진 + 케이크 (수하 인별) [15] ㅇㅇ(59.8) 23.04.13 1672 143
203033 김윤오 포텐싱어 아니고 미스터리 싱어로 나온 거 존나아 웃곀ㅋㅋㅋㅋㅋㅋ ㅇㅇ(223.62) 23.04.12 385 0
203032 오랜만에 생각나서 들렀는데 갤질 참 열심히 했었네 [2] ㄷㄱ(124.49) 23.04.08 672 6
203031 너목들 올해 10주년이네요 n번째 정주행 고고~ ㅇㅇ(123.213) 23.04.05 438 0
203030 오랜만에 정주행중 [1] 첼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4.01 523 1
203028 수하는 애기들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1] ㅇㅇ(106.101) 23.03.20 649 0
203027 김종국 출연료 ㅇㅇ(211.196) 23.03.19 488 0
203025 너목들 팬이었는데 요즘 생각나서 다시 보고싶어요 [1] ㅇㅇ(211.114) 23.02.27 628 0
203024 시즌2 [4] ㅇㅇ(106.101) 23.02.12 765 0
203023 으헣 재밌어ㅜㅜㅜㅜ [1] ㅇㅇ(175.223) 23.02.08 610 0
203022 점찍고 가줄래? ㅎㅎ [12] ㅇㅇ(95.90) 23.02.01 671 0
203021 인생드 .. [2] 00(210.121) 23.01.29 593 0
203020 역시 내 인생드ㅠㅠㅠ [5] ㅇㅇ(118.44) 23.01.03 769 2
203018 아직도 갤이 있구나 옛날 생각하며 추억팔이 하러 왔다 ㅎㅎ [9] ㅇㅇ(95.90) 22.12.26 873 7
203017 이 장면은 다시봐도 설레이네 [1] ㅇㅇ(223.38) 22.12.20 814 4
203016 진짜 오랜만이다 [1] ㅇㅇ(210.121) 22.12.11 651 2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