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김남길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타 갤러리 김남길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주작없는 에피소드.jpg 테클란
- 스압)싱글벙글 우주 문명의 5단계 (카르다쇼프 척도) ㅇㅇ
- 한녀단체 은평시스터즈 근황 jpg 주갤러
- 싱글벙글 개 포켓몬의 원본을 알아보자.jpg sakuri
- “시끄럽다” 이웃에 가스총 발사 60대 체포.news ㅇㅇ
- 싱글벙글 일본지역 드립 코르테즈컴바인
- 실시간 달러/엔 157돌파에 씹창난 일본 민심...jpg ㅇㅇ
- 싱글벙글 삼국지 귀큰놈 올타임 레전드 ㅇㅇ
- 민주, 영수회담 2차 실무회동서 16+a개 의제 제안 정치마갤용계정
- 공포...두창스피커 신평의 무시무시한 정체...jpg 파레오
- (블라) 난임지원금 마저 더 달라는 한녀들.jpg 주갤러
- 하스여신 아옳이 최근근황 ㄷㄷ ㅇㅇ
- 日, 66세 스시남이 마음의 안정을 찾는 비결 난징대파티
- 의외의외 아직까지도 이어지는 가문.jpg ㅇㅇ
- 1편. 부산에 가면 무슨 회를 어디서 먹으면 좋을까요? 수산물학살자
콘돌리자 라이스의 김대중, 노무현 평가
부시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지낸 콘돌리자 라이스라이스는 2011년 회고록 '최고의 영예 - 워싱턴 시절의 회고'에서 김대중, 노무현에 대한 인상을 밝혔는데김대중에 대해서는 "여러 면에서 존경받는 부드러운 태도의 노정객"이라고 평가하면서도"대북 포용정책이 결국 북한을 변화시킬 거라고 믿었던 이상주의자""그의 포용정책은 북한에 대해 대규모로 지원을 하면서도 반대급부는 거의 요구하지 않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어 (북미제네바) 기본합의서의 요구사항을 더욱 엄격히 적용하려는 미국의 노력은 자주 곤경에 처했다""김 전 대통령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김정일 정권과 충돌을 피하려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미국은 한국과는 다른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정상회담은 정중했지만 북한을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는 양국이 크게 달랐다"등 대북 외교와 관해서는 한미의 입장이 크게 달랐음을 확실히 하고 있음.여기서 언급된 회담은 그 '디스 맨' 소리 들었던 한미 정상회담으로지금도 2001년 김대중 - 부시의 사례는 양국 입장차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대표적인 외교적 실패로 비판받고 있음.반면에 노무현에 대해서는 아예 "반미적 성향처럼 보이는 말을 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혹평하면서"(2007년 한미 정상회담 때 노무현이 부시에게) '종전 선언을 언급하지 않은 것 같은데 좀 더 확실히 말해주시겠습니까'라고 요구해 모두가 당황했다""그의 예측 불가능한 성격은 알았지만 한국에 무엇을 기대해야 할 지 몰랐다""노무현을 해석하기 위해 한국측 상대인 반기문 외교부장관에 많이 의존했다"등 노골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쏟아냈음김대중을 회고할 때는 당시 한미관계를 비판하면서도김대중 개인에게는 긍정적이고 존중하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과 상반되는 부분여담으로 당시 노무현 재단은 라이스의 회고록에 반발해 참여정부 시절 외교안보비서관을 맡은 박선원의 이름으로 라이스 비판하는 논평을 내기도 했으며이 박선원은 이번 총선 때 부평 을 민주당 공천을 받고 원내 입성함콘돌리자 라이스
작성자 : 한현사고정닉
이회창, 김대중의 의외의 접점 - 장면(張勉) 박사
이회창과 김대중은 의외의 공통점이 있는데,바로 둘 다 장면(張勉)에 의해 천주교에 귀의했다는 것.정확히는 장면 씨가 바로 이회창의 아버지인 이홍규 씨와 김대중의 대부(代父)였습니다.1950년, 당시 검사였던 이회창의 부친인 이홍규 씨가상부의 지시를 어기고 시국사범을 풀어줘 구속되었다가주미대사를 맡고 있던 장면 박사의 변호로 두 달만에 풀려난 일이 있었습니다.이러한 계기로 1951년, 이홍규 씨는 온 가족이 함께 카톨릭에 입교했고,장면 박사를 그 대부(代父)로 삼았습니다.이홍규 씨는 검사에서 물러난 후에도 가톨릭법조인회 회장을 맡아 오랫동안 무료 법률상담, 변론활동을 해왔으며,이런 공로로 무궁화장을 수훈하기도 하는 등 천주교 원로로서 많은 행보를 보였습니다.김대중 대통령이 장면 박사를 대부로 삼은 것은 그보다 조금 나중의 일입니다.청년 사업가 출신으로 목포일보 사장을 맡아 <사상계> 등에 사설을 기고하며 1950년대 당시 시사평론가로 이름을 날리던 김대중은 1956년 5월 대선 무렵 친구 최서면 씨의 소개로 장면을 알게 되었고그에게 영향을 받아 1956년 7월 4일, 중림동본당에서 장면 부통령을 대부로 영세, 가톨릭에 입문하고, 같은 해 9월에 민주당에 입당합니다.(김대중이 언제 입교했는지는 사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1956년 7월 4일은 카톨릭 신문의 기록입니다.)여담으로 이때 받은 김대중의 세례명은 '토마스 모어'그 유명한 유토피아의 저자이자 헨리 8세에 맞서 교황권을 옹호하다가 순교한 가톨릭 원칙주의자인데,김대중은 세례명을 받고서는 '왜 하필 목 잘린 사람 이름을 세례명으로 주는가'라고 생각하며 섬뜩해 했다고 합니다.김대중이 민주당에 입당한 날로부터 딱 사흘 후인 1956년 9월 28일,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을 마치고 퇴장하는 장면을 괴한이 저격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이홍규 씨는 검사로서 이 살인미수 사건의 수사를 맡아사건의 배후에 자유당 정권의 내무부가 개입했다는 것을 밝혀냈으며,김대중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장면을 영수로 하는 민주당 신파 소속 정치인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가게 됩니다.이홍규 씨의 신앙은 이회창 총재에게 이어졌고김대중과 이회창은 모두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신념을 가지고 각각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되었습니다.장면 이후 그의 대자와 제자들에 의하여우리나라 천주교 진영은 민주화 운동과 빈민 구제 등에 앞장서며 정치, 사회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백 세가 되도록 자손을 가지지 못한 노인 아브라함.창세기에 따르면, 하느님은 어느날 그런 아브라함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가리키며 물었습니다."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그 축복대로, 아브라함은 훗날 수십 억에 달하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신자들에게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게 됩니다.본인은 결국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짧게 무너진 내각을 이끈 총리로 역사에 남았지만, 수많은 사람의 대부로서, 스승으로서 한국 정치, 사회에 천주교 정신을 뿌리내린 장면 박사야말로 진정 승리한 '믿음의 조상'이 아닐까요?정치인으로서 가치있는 삶이란 과연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며 긴 글 갈음하겠습니다.
작성자 : 한현사고정닉
차단 설정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전체 갤러리]
차단 기능을 사용합니다. 차단 등록은 20자 이내, 최대 10개까지 가능합니다.
설정된 갤러리
갤러리 선택
설정할 갤러리를 선택하세요.
[갤러리]
차단 기능을 사용합니다. 전체 설정과는 별개 적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