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중세를 암흑기라 부르는 이유는 신만이 정답이었기 때문이다. 그 외는 부정한 것으로 간주해 오답으로 처리되었다. 오랫동안 인류는 결론적 사고와 정오답의 이분법적 원리 아래 안정을 추구하는 체계를 유지해왔다.
이후 20세기,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의 뉴턴 방정식을 제창했다. 양자역학이란, 양자론의 기초를 이루는 물리학이론의 체계이다. 그동안 인류는 이분법의 체제를 유지하며 그로 설명할 수 없는 모든 현상을 신에게 맡겼다.
양자역학의 방정식은 이러한 기존의 체계를 완벽히 부정하는, 그러니까 고전역학과 상반되는 체계라 할 수 있다. 양자역학은 기본적으로 불확실성의 원리를 지향한다. 한 마디로 입자의 위치, 모양, 운동량 등의 물리량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알 수 없음'을 하나의 체계로 정립한 것이 양자역학이다.
따라서 우주는 불확실하며 하나의 정답이 반드시 존재하지는 않는다. 인류는 정답에 가까운 답을 추구하며 그것이 정답에 가까울 수는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20세기의 양자역학, 그리고 그 이전의 고전역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사랑이다. 흔히들 논리와 사랑은 대척점에 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논리와 로맨스는 대척점에 설 수 없다. 논리는 언제나 로맨스에 굴복한다.
수학의 천재이자 물리학의 아버지인 뉴턴도 스승 배로와의 관계는 정의하지 못했고, 21세기를 대표하는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역시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모든 것이 운명에 의해 결정되는 행위'라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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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 저 거절하시는 거예요?"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내 말은, 지금 너는 수험생이고, 물론 네가 하는 게 사랑일 수 있지만 아닐 수도 있고..."
"그래서요?"
zz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물었다. zz의 과외 선생은 당황스러운 듯 눈알을 굴렸다. 멍청하게 굴러가는 눈동자가 숱 많은 속눈썹에 가려졌다.
"안xx."
"우리 나이 때는 종종 자기감정에 대해서 착각하고는 해. 그리고... 반말은 하면 안 된다구 했잖아, 어머니가."
눈을 내리깐 xx가 한숨을 쉬며 답했다. 저 찐따 새끼... zz는 생각했다. 어쩌자고 저런 찐따를 사랑해버린 걸까.
계기부터 말하자면, 이건 그의 부모 탓이 컸다. 어이없는 이유로 수능을 말아먹은 zz는 강제 재수를 하게 됐다. 집도 아닌 방 안에 갇혀 무슨 올드보이라도 되는 듯, 주는 배식이나 받아먹으며 감금 재수를 (당)했다.
하긴 극성 부모를 둔 자식으로선 말도 안 되는 일탈을 하긴 했다. 수능 전날, zz는 일 년간 고생한 수험 생활 회포 한 번 풀겠다며, 그동안 술 마신 짬바 어디 안 간다고 떵떵거리면서 미친 듯이 술을 부었다.
그리곤 완벽히 재수할 운명이기라도 한 것처럼 탈이 났다. 평생 감기 한 번 앓아본 적 없던 게 무색하게도 말이다. 시험을 치루긴커녕 시험장조차 들어가지 못했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하필이면 그맘때 시국이, 그의 조국이 말이 아닌 상황이었다. zz의 아버지와 대적하던 정치인이 장관 후보로 오른 상황에서 자녀의 입시 비리가 탈탈 털리던 시점인 거였다.
당연히 아버지 빽으로 좋은 대학에 입학할 줄 알았던 zz는 졸지에 오롯이 제 실력으로만 입시를 해야 했다. 입시 비리는 저지를 수 없지만 아들이 좋은 학교에 입학하길 바랐던 부모는 급기야 zz를 감금하기에 이르렀다. 굴지의 대기업 총수가 제 막내 아들을 재수시켜 끝내 명문대로 보낸 방법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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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게 중요해?"
기어들어가는 변명에 매서워지던 눈매가 기어코 광선을 쏘았다. zz는 날선 눈빛으로 xx를 봤다. xx는 제 과탐 과목을 봐주던 과외 선생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안다는 물리 천재. 타고나길 영재로 태어나 열다섯에 예일대에 입학한 물리학자. 그런 천재가 제 방에 앉아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도 첫날이 끝이었다.
"...그래요. 인정할게요. 내 감정이 착각일 수 있어요. 그놈의 양자역학에 의하면, 내 감정이 착각일 수 있죠."
"그러니까 zz아 우리 공부하자, 제발..."
xx는 거의 빌듯 말했다. 미디어에 비춰지던 차갑고 콧대 높은 천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아무리 천재라고 불린들 xx 역시 너드 공대남의 캐릭터성을 벗어나진 못한 거였다. 너드라기엔 꽤 잘생겼지만, 그래도. 제 분야에 천재적인 것 외에는 (그리고 양자역학에 미쳤다는 점도 제외한다면) 오히려 또래들보다도 어리숙한 면이 있었다.
"그럼 반대로도 마찬가지인 거네요. 선생님이 그렇게 사랑하는 양자역학의 세계에선 가설을 세우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결과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고, 그 어떠한 결과도 완전히 부당함을 인정받지는 못하잖아요."
"너 그렇게 말하면,"
"선생님도 알죠. 저 물리 성적이 제일 좋은 거."
zz는 생각했다. 양자역학이란, 우주의 광활함을 이해하는 초미시의 원리. 그러나 양자역학의 미시성과 거시성도 사랑의 감정은 해체할 수 없으리라.
사실 zz가 xx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별것 없었다. 처음엔 나라에서 떠받들어주는 천재가 웬 꼴통 새끼 (zz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그랬다) 하나 과외하겠다고 온 꼴이 딱 봐도 제 아버지 연줄 타려고 온 듯 싶었다. 차기 대통령 후보 라인을 타서 장관 자리라도 노리는 건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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