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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갤문학] '맛' 1

문학용1(175.239) 2016.02.27 03:55:27
조회 1050 추천 26 댓글 5


허물어진 건물마다 풀이 돋았다.


잿빛 담에 어스름이 드리워, 좀먹은 듯 닳아버린 벽돌은 마치 하나의 몸통이었던 것처럼 서로를 끈끈히 엮어대는 듯 싶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개들이 쓰레기 속에서 하찮은 것들을 찾고자 앙상한 다리를 놀릴 때, 담 위로 깔린 노을은 서쪽으로 끌려가서 소멸했다.


먼 곳의 산들이 점차 희미해지고 마지막 햇살에 반짝이는 물빛이 걷혀가면 ,도시는 캄캄하게 어두워가고, 시선은 두건을 씌운 듯 가늠할 수 조차 없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적은 총과 칼과 힘으로 날개를 펼치고 다가온다.


나는 그들의 적의의 근거를 잊었고, 그들 또한 내 적의의 깊이와 넓이를 외면하고 있을 것이다. 서로 애써 보지 않는 적의가 도시에서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



나는 날짜를 알 수 없는 그날 어딘지 짐작도 하지 못하는 곳에서 눈을 떳다. 이전의 기억들은 모호했고, 머릿속의 의문들은 무의미했다.


의문만으로는 결국 아무것도 근접할 수 없었다.


나는 헛것을 쫒고 있었다.


나는 내가 가엾어서 아무 원망도 하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그저 멀리서 어물거리다 다가온 것들의 두려움과 비겁함을 달게 맡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내가 두려웠으므로 그것들은 직접 나오진 않았다. 다만 언뜻 얼굴만 보이고 사라졌다.


모호한 기억속에서 찢어지고 베이고 불타오른 녀석들이었다.

 


강둑과 쓰레기를 통과한 불어오는 북풍에는 강비린내 속에 인골과 쓰레기가 썩어가는 향기가 스며있었다.


 축축한 강의 냄새가 실린 바람의 끝에서 온갖 향내가 진동했다.


도시는 찢어지고 흩어진 것들로 뒤덮혔다.


 가끔씩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것들이 보였는데, 가까이 가보면 벌레들이 끓고 있었다.


개미들은 붉게 물든 단면을 파고들고, 새들은 옥상에서 점찍어 놓은 먹이로 돌진하는것을 즐겼다.



허기는 지지 않았다.


모를 일이었다. 오히려 부족하고 열망하는 것은 ‘맛’ 이었다.


혓바닥의 신경을 타고 들어가 머리를 자극시키는 무엇인가가 절대적으로 궁했다.


며칠간 오물과 성한 것 속을 다니며 먼지 덮인 포장을 뜯어내고 아마도 식료로 여겨지는 것들을 우겨넣어 보았으나, ‘맛’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난하게 보내는동안, 달아난 흔적이 역력한 침낭이나 달아나지 못한 이들의 비명이 들리는 옆 건물에서 눈을 감는 밤마다 나는 기진맥진했다.



내가 이곳에 당도했을 때, 바람은 더욱 끈끈해졌고, 향기는 허리 밑에서 은은하게 벽을 타고 올라왔다.


깨어나고서 처음으로, 나는 강둑으로 나갔다.


 내 앞에 일어선 강은 아득하게 넓어보였고, 나는 확 풍기는 비린 강바람을 훑었다.


강물이 깨진 바닥을 햝는 구석에 몇구의 시체가 박혀있었다. 반쯤 잠겨있음에도 합성섬유의 광채가 나는 옷자락은 특경대였는데, 예리한 단면으로 잘려있었다. 나는 깊이 보았다.

 

- 칠칠맞군


뒤에서 들리는 음성에서 끝간데 없는 비웃음과 경멸감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것에 담긴 모종의 마술적 속박으로 인하여, 나는 점차 노곤함을 느꼈다.


- 결국 우리 장난감이 되기로 한거야?


앞서의 음성과 다른 어린 계집의 새된 목소리였으나, 그 속에 있는 것은 같았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 그럼 잘 해보라고. 우릴 즐겁게 만들어봐. 니가 우리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기로 했으면 신나게 춤을 춰봐야 되지 않겟어? 장난감 나타씨?


아아, 죽은 자는 죽어서 자신의 싸움을 끝낸 듯했다. 이 끝없는 전쟁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며, 이 세계도 결국은 무의미한 곳이 아닌가.


하지만,


내 몸 속 깊은 곳에서, 아마도 내가 알 수도 알아서도 안 될 뼛 속 깊은 심연에서 솟아난 ‘맛’에 대한 갈망이 피어나 핏줄을 타고 퍼지고 있었다.


두 자루 무기를 쥔 손에서부터 칼이 공명하는 진동이 올라와 나는 등판으로 한기를 느꼈다.


----------------------------------------------------------

김훈의 칼의 노래를 보다가 갑자기 써봤다


솔직히 소설쓸줄도 몰라서 대충 표현이나 어법같은건 다 칼의 노래에서 따온 것들임



일단은 이게 프롤로그임


앰광낙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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