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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갤문학] 양털 늑대 - 1

흰제비꽃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5.08.01 16:00:35
조회 2271 추천 29 댓글 9



  양의 탈을 쓴 늑대를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 그 동화를 읽은 기억이 났다. 그 안에서 늑대는 비열했다. 아직도 그 눈동자를 잊지 못했다. 금빛 눈동자는 허공에 홀로 떠오른 듯 선명했다. 새하얗고 부드러운 가죽을 쓴 늑대의 털은 거친 흑빛이었다.
  그러나 처음 그 책을 읽고 든 감상은 간단했다. 아니, 특이하다고 해야 할까.


  불쌍한 늑대, 너는 결국 양이 될 수 없는데.


  늑대도 내심 양이 되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단지 단념했을 뿐이지.



*



  눈을 뜨니 시간이 늦었다. 평소와 다른 아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을 꾼 걸까, 몽롱한 정신으로 울어대는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아침 8시, 두 시간은 늦은 기상이었다. 떨떠름한 불쾌감을 느끼면서 액정을 건드렸다. 스마트폰이 그제야 잠잠해졌다.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폈다. 몸의 근육이 적당히 긴장했다. 그때 액정이 다시 떨렸다.


  [이슬비]


  빌어먹을 년, 나는 혀를 차면서 통화 버튼을 밀어 넣었다.


  “뭐냐.”


  [나타, 오늘도 학교를 빠질 셈이야?]


  “그딴 데 흥미 없어.”


  수화기 너머에선 소녀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이슬비, 오지랖이 넓은 소녀였다.


  [너도 클로저(Closer)라면 대외적 이미지를 신경 써. 네 탓에 검은 양 팀의 이미지가 모두 불량아로 낙인찍히는 걸 바라는 거야?]


  매뉴얼에 나올 법한 대응에 나는 칫, 하고 혀를 찼다. 시시했다.


  “이미지는 날 영입한 순간부터 포기했어야지. 신강고의 문제아 나타 말이야.”


  나는 그러면서 통화를 끊으려고 시도했다. 다음에 새어나오는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그럴 순 없어.]


  멈칫했다. 그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단호했다.


  [사실 네가 좋은 녀석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침묵을 선택했다. 그러길 잠시, 나는 짜증스러운 한숨을 내쉬면서 통화를 끊어버렸다. 빌어먹을 년, 나는 처음에 중얼거렸던 욕지거리를 반복했다. 무엇이나 아는 듯 말하다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후우, 하고 다시 숨을 내뱉었다. 슬슬 나갈 채비를 해야 했다.


  교복이 어디 있더라.


  나는 아무데나 내버려두었을 교복을 찾으면서, 문득 침대 머리맡을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는 검은 외투가 걸려 있었다.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내려간 외투는 침대 밑으로 떨어질 듯 위태로웠다. 걸음을 옮겨 외투를 들어올렸다.
  외투의 뒷면을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는 문양이 하나 새겨져 있었다.


  검은 양(Black Lamb).


  금빛 눈동자, 검은 피부, 그 위를 가린 부드러운 하얀 털. 우스웠다.


  내 이름은 나타, 검은 양 소속 클로저 요원이었다.



*



  나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었다. 검은 양의 동아리방이었다. 따스한 분위기의 아지트는 아무도 없을 때 집중하기 편했다. 그래서 내 취미 생활도 주로 동아리방에서 이루어지곤 했다. 내 취미는 조각이었다.
  나무토막을 들고 단검으로 손질을 시작했다. 재목이 파이면서 모양이 드러났다.


  “대단한데, 동생. 팔아도 되겠어.”


  “대단해, 나타! 어디서 배운 거야? 응?”


  “우웅?”


  “……제발 다들 닥쳐.”


  빠직, 하고 이마에서 파열음이 들려왔다. 내 혈관이 찢어지는 소리임이 분명했다. 내 나지막한 경고에도 검은 양의 동료들은 조금도 조용해지지 않았다. 집중이 흩어졌다. 짜증이 치솟아 얼굴을 쳐들었다. 내 눈앞에 이슬비가 보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처음 보는 건가.


  “무, 뭐냐.”


  그러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이슬비의 연분홍빛 머리카락이 시야를 더듬었다. 달콤한 냄새가 후각을 관통했다. 새하얀 피부, 눈동자는 오밀조밀한 사파이어. 눈만 빛내고 있으니 귀여운 얼굴이었다. 덮치고 싶을 정도로.


  아니, 덮치다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나는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이슬비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깨닫지 못한 건가.


  “새야?”


  “그, 그래. 새잖아. 보면 모르냐?”


  이슬비는 조금 두근거리는 얼굴이었다. 그녀가 주먹을 작게 말아 쥐었다.


  “어제 ‘사랑과 차원전쟁’에서 새 조각품을 선물하던데.”


  “이름만 들어도 최악의 드라마잖아, 그건 뭐냐.”


  “최악의 드라마가 아니야. 최고의 드라마지.”


  이슬비의 눈동자에는 결연한 의지만에 엿보이고 있었다. 도대체 그 드라마에서 새 조각품이 나온 게 어떻다는 거지. 가지고 싶은 걸까, 나는 일단 만들어둔 새 조각품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내밀었다.
  조각 도중인 조각품을 줄 순 없으니, 차선책이었다.


  “그, 그게 어떻든 간에 갖고 싶으면 가져. 아니면 버리던지.”


  “응? 가, 가져도 돼?”


  그녀가 얼굴을 더욱 들이밀었다. 숨결이 맞닿았다. 내 얼굴이 붉어졌다.


  “그, 그래. 그러니까 거리 좀…….”


  “거리? 흐응… 웃?!”


  그 다음 차례는 이슬비였다. 이슬비의 얼굴이 붉어졌다. 열기가 올라오는가 싶더니, 그녀가 재빨리 물러났다. 그러면서 새 조각품을 품에 챙기는 건 잊지 않았다. 그녀가 시선을 피했다. 평소처럼 새침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땅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작은 목소리였다.


  “그, 그러면 말을 하지.”


  “네가 머, 먼저 눈치를 채던가.”


  그리고 서로 시선을 피했다. 얼굴에 오른 열을 식힐 시간이 필요했다.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리니, 탈색된 머리카락을 가진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그는 흐뭇한 듯 미소 짓고 있었다.
  서유리는 무언가 불만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녀의 볼이 부루퉁했다.


  “나, 나도 가질래! 새 조각품!”


  “어, 어어. 그러던가.”


  얼굴이 붉어져서 말하는 서유리의 모습은 필사적이었다. 무언가 주지 않으면 안 될 느낌이라 나는 순순히 조각품을 하나 넘기고 말았다. 제이는 흐뭇한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그는 휘파람을 불었다.
  다시 이슬비를 바라보니, 그녀도 부루퉁한 얼굴이었다. 도대체 왜.


  “……바람둥이.”


  자그마한 목소리여서 제대로 듣진 못했다. 그러나 제이 아저씨는 즐거운 얼굴이었다.


  “청춘이구나, 청춘이야!”


  그가 잃어버린 단어를 부르짖으면서.


*



  빌어먹을 년.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목에 달린 목걸이가 내 목을 터트릴 것처럼 떨어댔다. 잠잠해질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바닥을 구르고, 부들부들 떨면서 목걸이를 붙잡았다. 제발 이 목걸이를 풀어낼 수 있길 바라면서.
  그러나 그 바람은 어디까지나 내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현실은 조금 더 잔혹했다.


  “자, 제 말 알아들었으면 어서 다음 작전을 준비하세요. 뇌수에게 패배해서, 그 목이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꽤 재미있겠네요.”


  후후, 하고 그녀가 웃었다. 회색 머리카락이 부드러운 부피감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니까 힘내주세요. 제 즐거움을 위해, 그리고 벌처스를 위해.”


  나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내 눈빛은 날카로웠다. 당장 죽이고 싶은 대상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갈색 트렌치코트를 걸친 그녀의 이름은 홍시영. 나를 관리하는 감시관이었고, 내가 죽이고 싶은 어른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참았다. 리모콘은 그녀가 들고 있었다. 으득, 하고 이를 갈았다.


  “이세하 대원, 알겠나요?”


  “……아아, 그래. 빌어먹을 년아. 그런데 한 마디만 하자고.”


  내가 몰아쉬는 숨도, 살기가 가득 담긴 눈빛도 그녀에겐 닿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웃었다. 사나운 미소였다. 홍시영 감시관은 재미있다는 듯 눈매를 좁혔다.
  툭툭, 하고 내 목에 걸린 증오스러운 목줄을 두드렸다. 소리조차 맑지 못했다.


  “이 개목걸이만 풀리면, 너는 내가 물어 죽인다. 알겠냐?”


  “……부디 다음 기회에. 아, 물론 다음이 있다면 말이죠.”


  내 이름은 이세하, 벌처스의 처리 부대 소속.


  늑대개(Wolfdog)의 대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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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갤에 야설 아닌 거 올리는 건 두 번째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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