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같은 바람이 창문틈새로 들어와 볼을 후려치고 있었다.    양털 침낭에 돌돌 말린채로 밤 낮 구분없이. 아니 어쩌면 끝도없는 한달간의 백야때문에 잠을 이루지못하길 하루. 또 졸도하듯이 잠을자기를 하루. 균형도 잃은채 그저 의미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그 시간속에서 새싹처럼 자라버린 생각들을 가지치기를 몇번이나. 간만에 방문을열고 옷을 추슬러 대문을 활짝 제꼈다.

아지랑이마저 얼어붙어 보이지 않는 남극의 눈밭이 끝없이 펼쳐져있었다.

찰싹이는 파도도 깊은 크레바스도 없는 그저 넓기만 한 백색의 광야에 겁을먹어 샤워실의 뜨거운 물을 쏴- 하고 틀었다. 거울에 김이 서리는지도 모르고 손마디의 살에 주름이 생길 정도로 뜨거운 물을 그저 맞고있다가 한숨을 크게 쉬어본다. 고장난 보일러에서 불현듯 나오는 차가운 물에 몸부림치기도 하지만 이내 따스한 물은 다시 뿌려진다.

  보이는대로 집어들어서 몸에 걸치고는 밖으로 나왔다. 뜨거운 물에 취한 몽롱한 정신에 극지의 바람이 조소를 짓는듯 하다. 그냥 아무것도 없이 펼쳐진 멍한 그 눈밭에서 걸음을 앞으로 옮겨도 혹한의 바람이 몇번씩 불어올뿐이지 아무것도없었다. 애먼 손톱을 잡아당겨봤다. 아프기만 했지 뽑히진 않았다. 그렇게 열손가락을 다 잡아당겨봤다. 추워서 몸이 덜덜 떨리는지도 모르고, 가지쳤던 새싹들이 스멀스멀  자라오는지도 모르고 그냥 그러고있었다. 그러다 무성해진 생각에 갑자기 몽롱했던 정신이 확 들었다.
살아남아야한다. 나는 죽고싶지 않아.


남극의 눈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