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사랑하는 미미야,

독서 숙제를 하려고 했는데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아.

너도 언덕에서 나는 총소리가 들릴 거야. 도브린자에서 사람들이 떼지어 나오고 있어.

무슨 일이, 무척 나쁜 일이 생기리라는걸 너도 느낄 수 있을 거야.

4월 9일

사랑하는 미미야,

이제 학교에 못 가. 모든 학교가 문을 닫았어. 언덕 곳곳에 무시무시한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어.

그래도 안정을 되찾고 있는 것 같아. 폭격과 폭발이 멎었고, 총소리가 간간히 나지만 금새 잠잠해져.

하지만 너무 무서워. 엄마는 제정신이 아니고, 아빠는 엄마를 위로하려고 진땀을 흘리고 계셔.

5월 2일

사랑하는 미미야,

오늘은 정말로 최악의 날이야. 낮 12시부터 폭격이 시작됐어. 엄마와 나는 얼른 복도로 뛰어갔지.

우리는 인터폰으로 아빠에게 1층으로 얼른 뛰어오라고 하고, 카나리아 키코랑 함께 1층으로 내려갔어.

폭격이 점점 심해졌고, 우리는 지하실로 뛰어갔어.

길거리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 손가락으로 양쪽 귀를 틀어막았어.

폭격이 조금 잦아들자 아빠가 텔레비전을 가지고 오셨어. 우리집 근처 중앙우체국에 불이 났대...

5월 7일

사랑하는 미미야,

오늘... 오늘 우리 집 공원에 폭탄이 떨어졌어. 사람들이 많이 다쳤대. 자카, 자카 엄마, 셀마, 니나, 다도도 다쳤대.

셀마는 신장을 잃었다는데 병원에 있어서 상태가 어떤지는 잘 몰라.

그리고 니나는 머리에 폭탄 파편이 박혀서 죽었어. 이제 다시는 니나를 볼 수 없다는게 말이 되니?

아무 잘못 없는 열한살짜리 여자애가 어리석은 전쟁에 희생된 거야. 나는 너무 슬퍼서 울었어.

니나, 네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애였는지 영원히 기억하고 있을게.

5월 27일

사랑하는 미미야,

오늘 바소 미스킨 거리에서 폭탄 두개가 길거리와 시장에서 터졌어.

엄마가 그 근처에 있었는데, 할아버지 댁으로 죽을힘을 다해 뛰어갔대.

우리집은 완전히 난리가 났었어. 엄마가 오는지 보려고 창밖만 내다봤지.

방송에서 사망자와 부상자 명단을 발표하고 있었고, 우리는 걱정하며 머리카락을 마구 쥐어뜯었지.

오후 4시쯤에 아빠가 병원에 가서 확인해 보겠다고 하셨어.

나는 집에 혼자 있기 싫어서 보다 아줌마네 집으로 갈 준비를 하며 창문을 내다봤는데... 그때 엄마가 다리를 건너 뛰어오고 있었어.

엄마는 집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부들부들 떨면서 울기 시작했어.

엄마가 울면서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사람을 보았다고 했어.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날이었어...

10월 29일

사랑하는 미미야,

엄마가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입국 허가를 받았대. 서류에 내 것도 들어 있었어.

하지만 엄마는 아직 결정을 하지 못했어. 그러면 아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외삼촌을 두고 떠나야 하거든.

난 그게 얼마나 힘든 결정인지 알아.

11월 15일

사랑하는 미미야,

사람들이 속속 사라예보를 빠져나가고 있어. 다들 우리가 잘 아는 사람들이야.

엄마가 말했어. "이러다가 사라예보가 텅텅 비겠구나."

작별인사를 할 때면 늘 울음바다가 되곤 해.

11월 19일

사랑하는 미미야,

정치가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이슬람을 갈라놓으려고 몸부림치는것 같아.

결국은 다 똑같은 사람인데, 다들 팔, 다리, 머리가 있고 걷고 말을 하는 사람들인데, 도대체 무엇으로 서로를 구분하려고 안달일까?

(...)우리 스스로 누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구분할 수 있는데 왜 정치가 나서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걸까?

다들 알아서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고 있어. 그리고 그 좋은 사람 중에는 세르비아인도, 크로아티아인도, 이슬람교도도 있어.

물론 정치는 어른들이 하는 거지. 하지만 우리같은 어린이들이 정치를 훨씬 잘할 것 같아. 우리라면 전쟁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3월 15일

사랑하는 미미야,

꽃 피는 나무도, 새도 없어. 전쟁이 모두 빼앗아 버렸기 때문이야.

봄이 와도 새들이 지저귀지 않아. 사라예보의 상징인 비둘기도 없어.

사라예보가 천천히 사라져가는것 같아.

살아 꿈틀대는 생명이 없고 모조리 죽어가는 이곳에서 어떻게 봄을 느낄 수 있겠니...

10월 17일

사랑하는 미미야,

어제는 자그마치 폭탄이 590개나 떨어졌어.

새벽 4시 30분부터 하루종일 여섯명이 죽고 쉰여섯명이 다쳤어. 어제 단 하루동안 말이야.

멜리카 숙모는 괜찮으신지 모르겠어. 집들이 절반이나 사라져 버렸대.

(...) 전쟁은 절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 어린이들과 평범한 사람들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못된 인간들은 전쟁이 끝나기를 원치 않으니까...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지속된 보스니아 내전은 수십만의 희생자와 수백만의 난민을 만들었다

일기의 주인공 즐라타 필리포빅은 임시학교에서 그녀의 일기를 발견한 유니세프와 유엔의 도움으로 1993년 12월 가족들과 사라예보를 떠나 프랑스로 갔다

그녀는 사라예보의 안네 프랑크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유엔과 유니세프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