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고백하건데, 나는 덕성팸에 대해 별 생각이 없다.
다만 이것이 평평한 엔트로피식의 무관심이냐 하면, 그건 아니라는 쪽에 걸겠다.
오히려 팽팽한 힘의 균형으로서의 뜨거운 무관심이라고 하는 편이 옳겠다.
정확히는 '덕성'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나, '팸'은 싫어하지 않으니.
그 기묘한 단어의 조합으로, 마치 '나에게 돈을 주는 페미니스트'같은 기묘한 말이 성사되는것이다.
다만 이 세상의 누군가는- '나에게 돈을 주는 아버지'를 비하하기도 하는 법이니.
나 정도면 꽤 괜찮은 인간군상이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요?
***
시작은 2다.
이 부분만 봐도, 작가의 내공이 대충은 보이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는 3이겠지만, 소설가는 2를 좋아하는 법.
왜냐?
2란 전개의 편리함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는 후다다.
로미오는 좋아하던 영애에게 차이고 집에가던중 쑥맥 쥴리엣을 발견하고 구애한다.
세레나데를 부르고, 현혹적인 말을 하지요.
이건 후다가 아니라면 할 수 없다.
만약 로미오가 아다였다면... 이야기는 참으로 복잡고구마스럽게 됐겠지.
적어도, 그런 식이라면 작품의 테마가 한번은 뒤바뀌었을 거다.
1이란, 풋풋한 것이지만. 그렇기에 떫다.
2야말로, 빠르고 재밌는 것이다.
물론 나는 알고있다. 판붕이들이 제일 좋아하는건 2가 아니라 0과 1이라는 걸.
1이란 것은, 그들의 머리 위에 비쭉 솟아 있는 하나의 뿔이오.
0이라는 건... 히로인의xx횟수일 테다.
***
규칙, 나쁘지 말것?
나쁘게 보이지 말것.
<퇴마록>에 나왔던 라마드 우프닉스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물론, 그런 것 치고는 주인공이 참으로 시니컬해서 약간의 갭을 준다.
이런 비유는 좀 이상하지만, <애기븝미쨩이 되었다>느낌이랄까.
총을 맞아도 시니컬할수 있다는 건, 소설적 허용이지만.
여기서 작가는 꼼수를 부린다.
주인공의 설정을 '배우'로 설정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세상도 결국 배경이고, 독자들은 여기에 과몰입하지말고 재밌게 즐기라는 건데.
얄팍하지만... 본래 얄팍하다는 건 '효율적이다'라는 말의 마이너버전 아니던가.
마치, 누가봐도 정통판타지인 작품 맨 앞에 '김철수는 회귀를 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라는 말을 붙이는 것과 비슷하다.
그것만으로, 대부분의 설정오류가 땜빵되니까.
여기서는 설정오류를 땜빵치는 건 아니고, 감정오류를 땜빵치는 쪽에 가깝지만.
아무튼 위대한 땜장이시다.
***
장르.
다만, 장르가 걸린다.
장르란 무엇인가? 클리셰의 집합이다. 클리셰란 무엇인가? 사랑받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이야기를 쓴다는 건 곧 지금까지 사람들이 쌓아올려왔던 소설의 아카식 레코드를 스스로 거부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이 없다.
이 소천되가 그렇다.
TS... 중요한 요소인가? 딱히 그렇지는 않다.
다만 장르의 탈을 쓰고 싶었을 뿐이다- 가 더 강한 느낌이다.
허나 사실 ts를 잘 알지는 못하므로, 여기까지만.
장르소설이 장르소설인 이유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소설은, 장르의 법칙에 속박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순문학쪽에 가까운 테이스트를 유지하는가?
TS라는 걸 떡하니 붙여놓은 이상, 어림도 없는 소리고.
그게 없다고 해도... 순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알레고리의 해석이라는 측면에서... 위 작품은 해당사항이 없다.
굳이 따지자면 해저2만리같은 탐험소설이 좀 이런 모습이기는 했다. 내가 읽어 본 바로는.
즉, 따지자면 장르가 없다고 해야 할 텐데.
좋게 말하면 실험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힙스터다.
위쪽까지는 이제 장르가 '다르다'쪽이고.
장르가 '어올리지 않는다.'라는 쪽은- 시장질서쪽이다.
같은 장르에서도 웹소설과 종이책은 다른데, 오히려 종이책쪽의 테이스트에 가까운 전개를 보여준다.
둘의 차이라면... 속도감이라는 것인데.
이렇게 할 거면 왜 굳이 처음에 2로 시작했는가, 라는 질문이 남는다.
그 덕에 이 속도라도 나오는 걸까?
즉, 복고다.
20세기 탐험소설에, 예전 종이책 시장에서 통용되는 호흡.
거기에 TS를 약간 버무려 넣었다.
민트초코잼은 맛이 없고, 김치피자탕수육은 맛있다.
***
소설의 연기자는, 주인공뿐이 아니다.
파파 또한 위대한 연기자로, 아마도... 악의 평범성과 전면으로 대치되는 인물일 테다.
한 때는 평범한 악이 충격이었으나, 약간 특이한 것이야말로 가장 평범하다는 말답게, 요즘에는 수용소의 평범한 악당이라는 것은 거의 클리셰나 다름없게 되어버렸으니.
이 또한 힙스터라고밖에는.
***
글을 쓰면서, 자기 지식을 꽤 많이 욱여넣는 편인데.
이게 꽤 거부감이 없다.
예를 들자면, 타인에게 고통을 주면서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는 묀하우젠이라던가...
혹은 중간에 착취자를 향해 이빨 대신 손을 드러내는 스톡홀룸이라던가...
혹은 두 가지가 복합되어 나타나는 마굴의 형태는... 심리적으로 소름끼친다, 만.
그 소름의 크기는 좀 모르겠다.
나는 충격이란, 내면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능지처참을 당해 내장을 질질 흘리며 죽는 인간의 묘사보다는
<진격의 거인>등에서 묘사되는, 쿨계에이스군인이 죽기직전 '죽고싶지않아살려줘'를외치며 절규하는모습이 더 와닿고.
주인공의 피폐한과거를 구구절절 늘어놓는것보다.
<모노가타리>시리즈에서 나오는 '하네카와의 방이 없다.'라는 묘사나
<아카살>에 나오는 '예니카의 물건이 없다.'라는 묘사가 더 소름끼친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는 치코리가 어느정도 오마쥬를 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아니면 말고.)
그런 의미에서, 마굴은 오히려... 소설에서 마이너스요소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TS만으로 벅차다.
메타픽션, 제4의 벽, 신과 인간... 철학적 고뇌를 하기에 소설이란 장르는 너무나도 작다.
소설이란 작은 그릇에 원하는 걸 욱여넣는 것이 아니라, 최적의 배합으로서 가장 훌륭한 차향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인물, 사건, 배경. 그 무엇이든간에 집중하는 구석이 되어야 하는데.
TS를 보라. 너무나무 큰 사건이다.
마굴을 보라. 너무너무 신비하고 거대한 공간이다.
러시아의 피폐한 아이들을 보라. 그들 하나하나만으로 소설 한 편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소재다.
만약 나에게 이 아이디어가 있었다면... 그런 재능이 있었다면.
나는 소설 세 편을 썼을 테다. 한 편의 소설에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
오늘 나는 두 편의 소설을 읽었다.
둘 다 공고룝게도 TS였고.
하나는 <소천되>, 하나는 <사방달>??? 뭐라고읽어야함??
암튼 둘다 TS였는데.
각자의 특징이 너무나도 다른 점이, 참으로 웃기다.
아마 둘이 붙여놓고 소설론에 대해서 떠든다면, 2박 3일도 가능하리라.
간단히 이야기해보자면...
<사고방식이다릅니다>는 TS라는 사건 자체에 집중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다른 것을 너무나도신경쓰지않는다는느낌또한있다.
꽃다발에 목화와 안개꽃이 들어가는 이유는, 돈을 아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대비의 극대화를 위해서다.
<소천되>는 정 반대다. 너무 많은것에 집중해버린다.
그렇기때문에하나하나중요해야할것들이 중요하지않게느껴져버린다.
다이아몬드란, 조약돌 사이에 있기에 빛나는 법.
루비와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를 늘어놓는 것은... 어쩌면 투머치가 아닐까.
다만 <개구리>에피소드는 정말이지 좋았다.
근데 이 에피소드가 성공한 것도 결국... 인물사건배경중 하나에 초점을 맞춘 일점집중의 효과라고 생각하는바이기에.
그런 부분에 조금 더 힘을 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
아쉽게도,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나는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좋은부분에서 리뷰를쓰는편이기에...
개구리편까지 읽었다.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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