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큰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극한의 절망을 느끼고야 말았다. 그 가증스러운 눈사람을 고열(高熱)의 증기(蒸氣)로 취수(翠水)하여 양동이로 받아낸다 한들 차가운 겨울 공기에 잠시만 풀어주면 애초에 녹지도 않았던 양 그 주둥아리를 태연히 다시 놀리기 시작한다는 사실은 듣는 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올라프는 그 이름을 전 여왕께서 직접 하사했다는 것이 알려져 있을 뿐, 그 혐오스러운 설인(雪人)이 과연 진정 여왕의 마법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는 엘사 전하를 포함하여 누구도 알지 못하므로 사람으로 치면 신원이 불명확한 사생아요, 정확히는 그가 사람으로 칠 수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는 괴물인 것임을 곧이 곧대로 바라보는 이가 왕국에 나 뿐이라는 것은 참으로 개탄해 마지않을 일이다.
그가 실로 지금 정령으로 화한 선왕의 마법의 피조물이라면 응당 북쪽의 성이나 숲에 같이 갔어야 하나 마법의 피조물이(정녕 그가 스스로를 칭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마법의 근원에서 감히 벗어나 왕의 근처에 머무르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저 끔찍한 설인이 얕은 수작을 부려 자신의 추악한 속셈을 만천하에 드러 내었음에도, 저 머리 벗겨진 신하들은 멍청하게도 매일같이 성을 어지러뜨리는 눈덩어리를 상전 모시듯이 하고 있으니 지독하도록 지독한 무지(無智)의 소산이요 천하의 불충(不忠)으로 비웃음을 살 일이다.
내가 군에서 34년의 세월을 허송(虛送) 하였다고 비웃는 자가 있으나, 적의 간악한 속셈을 볼 줄 아는 참된 장교는 아렌델의 오랜 평화에 질식해 모두가 죽어버렸고, 나만이 적진에서 세월을 보내며 적의 정체를 갈라내고 구별하는 날카로운 통찰을 아직 지닌 채 살아남았다. 그런 즉 내가 저 끔찍한 숲에서 이리 질긴 목숨을 가지고 살아남아 이제 여왕의 근위대를 통솔하게 된 것은, 저 가증스러운 삼단 얼음 악마상으로부터 자신의 딸을 지키라는 아그나르 폐하의 마음이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여 베푼 커다란 은총임이라.
오 하느님이시여, 오늘도 저 매티어스를 인도하시어 축복받은 여왕을 지키도록 도와주소서.
하늘의 새들도 자그마한 머리나마 튼튼한 뼈로 보호받아 그 머리가 달린 부리를 있는 힘껏 나무에 찍는다 한들 그 머리가 쉬이 상하지 않으며 여전히 제 새끼를 챙기고 제 부모를 공양(供養)하니, 가히 피조물의 머리란 하느님의 은총이 머무르는 곳이며 지존한 존재의 이성(履聲)이 생명에 깃드는 매개체이다. 하지만 저 눈사람은 머리를 떼어놓고 몸만 이리저리 나돌아다니기 일쑤이며, 백성들의 영토를 침범하고 밭을 망치며 잡은 고기를 풀어주는 등 생명을 가진 듯 하나 응당 모든 생명에 화하는 신의 은총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가증한 존재이다.
“장군님, 헤르본 3번가 베츨러 부인의 마당에서 발견한 올라프의 몸입니다.”
“그래, 고생 많았네. 저기 궤짝 안에 잘 못 박아 넣어두도록.”
이 귀중한 아렌델의 근위병이 매일 2개 분대는 저 지독한 눈덩어리를 찾아다녀야 한다니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이 민망한 일이다. 케플러 중위. 저 창창한 젊은이가 왜 저 끔찍하고 더러운 눈덩이를 들고 옮겨야 하는 것인가? 나는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에 차마 중위의 눈을 바라보지도 못한 채 무심한듯 일을 시킬 수 밖엔 없었다.
오늘은 멀고 먼 동쪽의 나라에서 사신이 오는 날이었다. 그래도 무역장관은 나와 꽤 말이 통하는 훌륭한 대신으로, 잦은 폭설에 이골이 난 나라의 상인을 나에게 소개시켜 주겠다며 잡은 날이 바로 오늘이니, 비록 저 눈사람의 몸뚱아리를 보느라 아침의 기분을 망쳤을지언정, 새롭게 힘이 나는 날이었다.
“장군님, 방금 사신단이 폐하를 알현하고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 고맙네, 내 그 쪽으로 가도록 하지.”
왕궁의 중앙 뜰로 들어서자 여왕께서 사신들을 한명 한명 악수하며 배웅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름다우신 여왕님. 왕국의 지존(至尊)한 존재이시나 더 없는 지혜로 나라를 부강하게 이끄시며, 끝없는 사랑으로 백성들을 살피시는 분! 그 용안을 뵈올 때오면 언제나 눈물이 내 눈에 고이는 것이었으나, 그 눈물을 집어 삼키게 만드는 존재가 있다. 바로 그 폐하의 품에 들려있는 더러운 노란 코의 설국 괴물이 그것이었다. 오늘도 여왕께서는 저 가증한 존재에 속아 품 안에 더 더러운 조형(造形)을 품고 계셨으니 내 마음이 매일매일 얼마나 찢어지겠는가.
“폐하, 올라프의 몸은 찾아서 뜰에 두었으니, 저에게 맡기시지요.”
“오 안녕하세요 장군님! 제 몸을 찾아주셨다니 정말 감사하네요, 근데 저랑 붙어있지 않고도 마음껏 자기 가고싶은데로 다니는 것도 제 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몸이란 것은 원래…”
저이의 말은 묘하게도 나의 신경을 가장 긁는 톤과 속도라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했고, 그 말을 언제나 경청하시는 폐하의 인품은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나는 한 순간도 저 목소리를 더 견딜 수 없었다.
“사신들이 있으니 조용히 하렴 올라프, 매티어스! 아침부터 고생 많아요 잘 부탁해요!”
나는 최대한의 충성으로 폐하의 품에서 눈덩이를 옮겨받아 가지고 내려왔다.
“으 어어으… 으어어어으어….”
머리만 들때는 코를 아래로 향하게 하여 왼손을 턱주가리에 넣고 오른손을 이빨에 받치면 이 가증스러운 눈덩이를 조용히 하는데 특효약이다. 사신들을 경호하던 이슬론 소령이 내 모습을 보고는 바로 근위병 두 명이 달려온다.
“저희가 옮기겠습니다 장군님. 어디에 둘까요?”
장군님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것인지 철없는 당근코 주둥아리는 바삐 혀를 놀렸다.
“스벤한테 데려다 주세요! 제 몸은 왜 안 움직일까요?”
나는 대꾸하기도 싫어 고개만 끄덕였다. 병사들은 바삐 머리를 왕궁 순록 마굿간으로 옮겼다.
“장군님, 인사하시죠. 저 멀리 러시아에서 온 사신입니다.”
무역장관이 나에게 푸른 눈에 커다란 어깨의 사내를 데려다주었다.
“감사합니다 장관님. 저희 근위병들의 제설작전 발전에 이렇게 관심을 가져 주시니 영광입니다.”
“별 말씀을요, 유익한 대화 나누시길…”
비록 나의 최종적인 목표는 저 설인의 완전한 소멸(掃滅)에 있다는 것을 장관에게는 말하지 않았으나, 언젠가 일이 잘 이루어진다면 그에게 응당 일정의 공훈(功勳)을 돌려야 할 것이었다. 순수한 여왕의 동심(冬心)을 해하지 않으려면 저 눈사람은 형체가 없이 완벽히 증발(增發)해야 만 할 것이니, 나 홀로서는 과중한 업(業)이지 않겠는가.
아쉽게도 러시아에서 온 그 자는 학자는 아니었고, 무역상이었기에 지식의 깊이에는 한계가 있었다.
물론 나 또한 무인(武人)으로서 학식은 깊지 않으니 그게 불평할 바는 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무역장관이 잘 이야기를 해 둔 것인지, 그는 기꺼히 묘한 향을 내는 하얀 가루 한 통을 나에게 내어주고, 다음 번 방문에는 유망한 학자를 소개해주리라 약속하였다.
장갑을 낀 채로는 만지지 말라던 그 하얀 가루는 소금보다는 두꺼우면서 심심찮게 손톱 절반정도 크기까지 결정이 형성되어 있는 물질이었다. 나는 즉시 호기심에 아까의 역겨운 눈사람의 더러운 몸이 잠겨있는 궤짝으로 향했다.
“장군님, 올라프가 스벤이랑 같이 있다길래 옮기려는 참이었는데요.”
“아니, 잠시 대기하게. 잠깐 자리 좀 비워주겠나?”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내 눈을 보더니 조용히 자리를 비운다. 아직 군인된 속성은 살아 있는 근위병들이다. 비록 이 눈사람의 저주받은 실체도 알아보지 못하는 눈먼 군인이긴 하지만, 나에게서 제대로 훈련을 받는다면 곧 그 통찰과 전략의 눈도 갖추리라 믿는다.
나는 상인이 건네 준 하얀 가루를 꺼내 맨 아래 덩어리에 한 줌 털어 넣었다. 궤짝 안쪽이라 제대로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가루를 안 밟으려고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지렁이가 소금에 닿아 꿈틀대는 것과 같아 내 깊은 곳에서부터 희열이 느껴졌다. 성능은 확실했다. 내가 세 줌, 네 줌 가루를 바닥에 뿌려 더 피할 곳이 없자, 저 다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불어터진 눈덩이 둘이 아래서부터 녹아 내려가는 것이었다!
“매티어스 장군, 오랜만이에요! 안나는 같이 있나요?”
“엘사 전하! 무탈하셨습니까?”
나는 너무나 놀라 쥐고있던 가루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엘사 전하의 팔에서 브루니가 내려오더니 곧장 그 가루에 혀부터 내밀려고 했다.
저건 정령이라는 것이 뭐만 보면 혀부터 나가는지 성질 고약한 고양이보다도 악질이다. 무슨 짓을 해도 죽지는 않으니 저렇게 혀부터 들이대는 모양인데, 참으로 엘사 정령님 옆에 붙어 다니는 생물 치고는 천박하기 이를데가 없으나, 그래도 덕분에 엘사 전하께선 눈사람은 멀리하시니 본래 총명하시던 그 눈빛이 더더욱 밝게 빛나며, 화사한 용안 뒤로는 태양이 비치는 듯한 후광이 날로 강해지시니 그나마라도 다행인 일이었다. 저 은총이 부디 여왕이라는 큰 업을 지고 가시는 안나 폐하에게도 이르기를! 얼른 저 역겨운 눈사람이 소멸(掃滅) 하기를….
브루니는 혀에 가루가 닿자마자 길길이 날뛰며 온갖데로 불을 뿜는다.
“브루니! 함부로 불을 뿜으면 안된다고 했잖아!”
저 도마뱀이 사방으로 불을 뿜는데, 저 녀셕의 사정거리(射程距離)는 볼때마다 경이롭다. 하지만 아뿔사, 아까 상인에게서 받은 가루가 든 나무 통에까지 불이 붙는게 아닌가!
나는 허겁지겁 통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 엘사 전하의 얼음이 통에 날아와 불을 꺼뜨린 채 얼어붙는다.
“매티어스, 괜찮아요? 중요한 물건인 것 같은데….”
“아닙니다! 전하, 괜찮습니다. 신경쓰… 쓰지 마시지요”
나는 못내 아쉬운 눈빛이 가루를 넣어 둔 통에 향했다. 하지만 결코 정령께서 보시면 안되는 내용물이고, 그게 무엇인지 설명하는 상황이 와서는 안되었다.
“저런… 안에 든 게 뭐에요? 미안해서 어쩌죠? 내가…”
“아닙니다! 안나 폐하께서는 대연회장으로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긴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아녜요, 도와줄게요, 브루니! 이리로 오렴!”
“아… 아닙니다. 제발….”
“매티어스 괜찮아요…?”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전하 이만….”
나도 모르게 내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엘사 전하는 애써 못 본 척 지나가시려 했다. 민망해서 죽을 맛이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아 그래요 매티어스… 미안해요, 이따가 봐요!”
“…네”
그 날 내가 왕궁 뜰에서 궁상스럽게도 눈물을 떨어뜨리는 사이 브루니의 불꽃에 약해진 궤짝 속 올라프의 몸은 어느새 온전히 회복된 채 볼썽사납게 나무 팔을 천박하게 앞으로 뻗으며 독약 먹은 쥐새끼마냥 와리가리 거리며 왕궁으로 향했고, 엘사 전하께서 얼린 하얀 가루가 든 궤짝은 속에서부터 물이 질질 흘러 나오며 녹아 흐르고 있었다. 그 안의 가루들은 금방 얼음에 녹아 흘러 도무지 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곧 발견하곤 나는 도무지 버틸 수 없는 정신의 한계에 왕실에 반차를 신청하여 집으로 향했다.
이 날이 내 34년의 군생활간 처음 사용한 휴가였다.
#마약 #올혐 #매티어스 #야우냐?
폭설때 염화칼슘 보다가 저걸로 올라프 못 녹이나? 하고 시작했어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영화상으로 보면 매티어스 올혐 할거 같지 않음? 웬 수상한 눈덩이가 왕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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