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왜 그랬어? 우리 아빠한테 왜 그랬는데? 아니, 그랬어도 적어도 내가 널 사랑하게 만들면 안되는 거였잖아.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

'너가 날 사랑하게 만들었다고? 네가 날 사랑하는 것이 괴로웠었어. 내가 널 사랑하는게 고통이었어. 그럼에도 난 너를 사랑하게 됐고 너의 사랑은 내 삶의 한줄기 빛이었어. 그것으로 숨 쉴 수 있었어. 그런데 내 마음이 가식이고 우리의 사랑이 위선이었다고?

어디부터 얘기해야할까? 니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평생을 살아왔고 동생인 줄 알면서 사랑했었다고? 그렇게 날 짐승으로 만든게 나에게 피를 나눠준 사람이라고... 어떻게 말해야하니?'

'뭐라고 한마디라도 해봐, 변명이라도 좋으니까! 정말 날 사랑하지 않았던 거야? 적어도 날 사랑했던 마음은 진실이었다고 그 말만이라도... 거짓말이라도...' 그는 아무말도 하지않는다. 그 온갖 다짐에도 그의 사랑을 확인하고자하는 자신을 깨닫고 아모네는, 한마디 변명 조차도 하지않는 그에게 또한 이토록 그에게 매달리는 자신에게 질렸다.

"우리 다신 보지말자. 차재완 씨엘 총지배인 오늘부로 당신은 해고입니다." 어렵게 힘들게 고통스럽게 이 말을 내뱉었다.

차재완은 말을 찾고 있었다. 말하고 싶었다. 아모네를 잡고 싶었다.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하는 사이 그녀는 떠났다.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하는 사이 자신에게 사랑한다 말하고 믿음을 표현하던 아모네가 흐려진다.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하는 사이 '우리 다신 보지말자.'는 그녀의 말만 귓가를 맴돈다.

차재완은 한참을 그대로 서있었다. 밀물이 어느덧 발, 발목, 종아리 차오르고 있었지만 꼼짝않고 그자리에 서있었다.

처음이었다. 다른사람에게 자신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 그것도 간절하게. 마음속에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실타래가 엉켜있는 것 같아. 이 것을 모두 풀어 아모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차재완은 그러지 못했다.

실타래가 어떻게 엉켰는지, 어떻게 풀어야하는지 자신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를 잡고싶어 그 실타래를 모두 풀어내서 그녀를 영원히 잃을 것 같기도 하다.

아모네를 그렇게 밀어냈는데 아모네의 입으로 자신과의 결별을 듣자 차재완은 충격을 받았다. 생각지도 못한 아픔이었다.

자신을 똘똘싸고 있는 것 같은 비밀이 답답했다. 자신의 운명이 갑갑했다. 자신이 완전한 결박을 당한 것 같았다.

문득 차재완은 자신이 뜨겁다는 것을 느꼈다. 열이 눈, 귀, 머리 끝까지 모두 달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추웠다. 살갗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뼈와 뼈가 모두 분리되는 것 같았다. 고통이 머리끝서부터 손끝 발끝까지 전해지자 차재완은 조금 자유로와 진 것 같았다.

아모네의 다신 보지말자라는 말을 떠올릴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머리가 아프자 조금은 편안했다.

'이렇게 내몸이 모두 분리되어 이 자유로운 바다로 날아가 버렸으면'

차재완은 아모네와의 결별의 고통을 그렇게 달래고 있었다. 자신을 삼켜가는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을 그렇게 달래고 있었다.

죽고싶다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어지자 차재완은 한걸음 한걸음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