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야..."

이경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병실 공기를 울린다. 하지만 이름이 불린 이는 돌아보지 않는다. 그저, 멍하니 창 밖만 바라볼 뿐.
이경은 천천히 정호에게 다가갔다. 너무나도 조용한 병실은 발소리조차도 크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지훈은 그런 이경의 뒷모습을 보자마자,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경은 느린 걸음을, 정호가 바라보고 있는 창문 앞에서 멈춰섰다. 정호는 아무 표정 없이 이경을 올려다본다. 정호의 약한 숨소리만이 병실을 울리고 있었다.

한참동안 눈을 맞추던 이경은 먼저 시선을 피해버렸다. 그 텅 빈 것 같은 눈동자를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차라리 자신들에게 성질을 내며 일진 짓을 하던 때라도 좋으니 누가 이 아이에게 생기를 불어넣어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였다.

지훈은 어느새 이경의 옆에 서있었다. 정호는 그저 두 사람을, 눈알을 또록또록 굴려가며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경과 지훈은 정호의 옆에 앉아 가만히 정호의 손을 하나씩 붙잡았다. 하지만 정호는 시야가 트여 보이는 창문 밖에만 시선을 둘 뿐이었다. 둘은 그런 정호를 알고 있었기에 그저 묵묵히 정호의 손등을 부드럽게 쓸어줄 뿐이었다.



그 때, 아주 작은 문 두드리는 소리가 아주 조금 열린 문 틈 사이로 들려왔다. 이경과 지훈은 고갤 홱 돌려 그 문틈 사이를 날카롭게 쳐다보았고, 남자가 얼굴을 빼꼼 내밀자, 두 사람은 다시 나가라고 손짓했다. 하지만 그 남자는 고갤 숙여 문을 닫고 병실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왔고, 이경은 그런 세찬을 보며 침을 뱉듯 말했다.

"나가주세요, 샘."
"...사과하려고 왔다."
"샘, 지금은 아녜요."

이경과 지훈은 고갤 저었다. 두 사람은 세찬을 내보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세찬이 말을 꺼내는 순간 자신들의 손에 힘없이 잡혀있던 정호의 두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찬은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정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세찬이 보기엔 정호의 뒷모습은 그저 가만히 앉아있는 제자의 모습에 불과했지만, 손을 잡고 있는 이경과 지훈에게는 저를 의심했던 이에게 충격 받고 그를 두려워하고 거부하는 안쓰러운 제 친구였다. 정호의 환자복 바지는 아주 천천히 눈물로 젖어가고 있었다. 발소리가 저에게로 가까워 질수록 정호의 몸은 갈수록 떨렸다. 그런 그가 안타까워 이경과 지훈은 괜찮을 거라고 웅얼거리듯 정호에게 말했다.

발소리는 정호의 바로 뒤에서 멈췄다. 세찬은 천천히, 제 손을 정호의 어깨에 얹었다. 그리고 그 때서야, 정호의 몸이 격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들어올 때의 마음과는 달리, 흔한 안부 인사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발길을 돌려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정호는 저를 눈물 범벅인 얼굴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벌려진 입술에서, 갈라지는 비명 소리가 병실 전체를 울렸다.

"나, 나는 안죽였어요...! 살려주세요! 무서워, 살려주세요...! 이, 이경이랑 지훈이 데려와주세요, 내가, 내가 안죽였어요..."

울음 섞인 그 말은 세찬의 가슴을 찢어놓기엔 충분했다. 이경과 지훈도 마찬가지였다. 정호는 이경의 품에 안겨 작은 손으로 옷자락을 꽉 잡고 있으면서도, 제 눈 앞에서 세찬을 가리는 지훈을 보고도 두 사람을 데려와 달라고 소리 치고 있었다. 지훈은 이내 저도 눈물을 흘리며 세찬의 등을 떠밀었고, 이경은 정호를 제 품에 더 꽉 안으며 울고 있었다.

세찬은 아무 힘도 없이 병실 밖으로 지훈의 손에 밀려 나왔다. 병실 안에서는 정호의 발악도, 이경과 지훈의 울음 소리도 여전히 들려와 세찬의 가슴을 후벼팠다.

아이를 믿지 못했던 제 잘못이었다. 죽이지 않았다고 할 때 믿어줘야했는데. 세찬은 병실 앞에 힘없이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