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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보라 망상 - 2006년 어느 봄날 2.txt앱에서 작성

ㅇㅇ(211.228) 2016.12.22 19:33:56
조회 2893 추천 43 댓글 8


1: https://m.dcinside.com/view.php?id=reply1988&no=1077000

시리즈는 아니고 이게 마지막이야.






한 달 후, 금요일



"아이고 죽겠다."

보라는 사무실 책상에 위에 그대로 엎드렸다. 새로 맡게 된 사건 때문에 아주 골치가 아프다. 피의자가 분명 거짓말을 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 그것을 증명해 줄 증인도, 증거도 없다. 그 덕분에 지난 주에는 서울 집에 가지도 못 했고 이번주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내일은 시누이 진주가 재우를 데리고 대구까지 내려온다고 하니 조금 힘이 났다.

고개를 든 그는 기린 캐릭터가 그려진 액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사진 속의 보라는 재우를 안고 있는 선우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제 손을 꼭 잡고 참새처럼 지저귀는 아들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아른거렸다. 한 달 전, 재우와 동물원에 가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벽에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그리운 가족들을 만나 피곤한 것도 모르고 동물원을 휘젓고 다녔는데, 대구로 내려오자 마자 몸살이 났다. 어둡고 조용한 집에 혼자 골골대며 누워있으니, 가족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곤 했다.

ㅡ 보라야, 목소리가 왜 그래? 아퍼?

"아니야, 아까 낮에 피의자 심문한다고 소리를... 질렀더니 좀 쉬었어."

ㅡ 진짜 아픈거 아니고? 아프면 말해, 알지? 어?

선우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건 전화, 차마 아프단 말은 하지 못했지만 존재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사람이 있어 아픈 와중에도 참 고마웠다. 그러고 보니, 선우를 본 것도 꽤 오래되었다. 이번에 재우랑 같이 오면 좋을텐데, 병원이며 학교며 일이 겹치고 겹쳐 바쁘다고 했다. 이들 부부에게는 흔한 일이니까, 서운하다기 보다는 서글펐다.

"검사님 식사 왔어요."

"네."

액자를 다시 원래 자리에 내려놓고 일어섰다.

"티비 트까요?"

"네, 아, 저기, 9번 틀어주세요."

며칠 전부터 선우는 금요일 12시에 꼭 9번을 보라고 보라에게 신신당부를 해놓았다. <종합병원24시>라는 TV 프로그램에 자기가 나올 수도 있다나 뭐라나, 그래서 틀어놓기는 했는데 나와봐야 배경에 손톱 만하게 나오겠거니, 보라는 별 기대하지 않고 짬뽕 포장을 뜯는 데만 집중했다.

"검사님, 저분 검사님 남편 분 같은데요?"

그때 김 수사관이 티비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보라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역시 잘생겨서 카메라에 찍혔나보다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는데, 웬걸 텔레비전 화면에 선우의 얼굴이 꽉 차있는 게 아닌가. 보라는 놀라서 들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맞네, 맞네, 맞지요? 남편 분?"

"새 젓가락 여기요, 아, 그래가 9번 틀라고 하셨구나, 두 분 정말 잉꼬 부부세요."

"이야~ 티비로 봐도 잘생기싰네, 이거 생방송인데, 말씀도 진짜 잘하시고."

"카이까 우리 성 검사님 같은 분하고 결혼한거죠."

빈말이라도 남편을 향한 칭찬은 듣기에 좋았지만, 지금 보라는 그제 멍한 상태였다.

'선우가 저기 왜 있어?'

방송 스튜디오에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서 있는 선우의 모습이 그에게 낯설었다. 아니, 그보다 이런 중요한 일을 제게 알리지 않은 선우에게 화가 났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에 대한 모든 것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뒤통수를 거하게 얻어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티비로 얼굴을 크게 보니 좋기도 하고, 주위에서 띄워주는 말을 듣는 것도 썩 나쁘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화가 풀리지는 않았다.

방송이 끝나고, 보라는 휴대폰을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참을 인자를 새기며 선우의 번호를 꾹꾹 눌렀다.

ㅡ 여보세요.

"야!"

보라의 목소리가 복도에 쩌렁쩌렁 울렸다.

"너는 왜 나한테 말을 안 해?"

ㅡ 방송 봤구나!

"너 지금..."

ㅡ성 선생님, 마이크! 마이크 빼실게요!

ㅡ보라야, 내가 이따가 다시 할게!

그리고는 일방적으로 전화가 뚝 끊겼다. 콧바람을 내뿜으면서 건물 밖으로 나온 보라는 인적이 드문 벤치에 휴대폰을 올려놓고 빤히 노려보았다. 10분쯤 지난 후에 선우는 영상통화로 전화를 걸어왔다. 홧김에 받지 말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화면이 잘 보이도록 그늘이 진 곳에서 전화를 받았다.

ㅡ 여보세요? 보라야.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ㅡ 미안해, 말하려고 했는데 타이밍을 놓쳐서, 근데 일부러 말을 안 한 건 아니고, 이렇게 된 거, 그냥 나는 '서프라이즈!' 해주려고 했지, 진짜야.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 수사관님들 다 네 얼굴 아는데, 남편이 티비에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도 모르고 있구, 내가 뭐가 되니? 어? 점심 먹은 것두 체한 것 같애, 지금."

ㅡ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보라야.

보라에겐 끝까지 아닌 척 했지만 사실 선우에게 다른 의도가 아예 없지 않았다. 일에 치이고, 재우에게 치여, 자신이 보라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는 모자란 생각이 쌀 한 톨 만큼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한 달 여가 지난 지금, 싹싹 빌고 있다.

ㅡ 앞으로는 절대 안 그럴게.

"시끄러."

ㅡ 누나아~ 한 번만 봐주세요오~ 네? 다시는 안 그럴게용~

"허, 참나."

ㅡ 누나아~ 봐줄거죠? 네?

선우의 애교에 딱딱하게 굳어있던 그의 입꼬리가 씰룩씰룩 움직이다가 마침내 픽하고 터졌다.

"이번 한 번만이야, 또 이러면 법원 앞에서 만나게 될거야."

ㅡ 네, 고마워요, 누나, 맞다, 나 오늘부터 화요일까지 휴가야, 그래서 지금 재우 데리러 가고 있어, 음.... 동대구역에 도착하면 4시쯤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집으로 바로 갈까? 아니면 그 근처에 있을까?

"오늘?"

ㅡ 서프라이즈!

"진짜? 진짜 오는거야?"

ㅡ 어, 마트에서 장부터 봐야겠다, 우리 보라 맛있는 거 해 먹여야지, 근데 자기야, 나 오늘 잘했어? 엄청 떨었는데...

언제 화가 났냐는 듯 보라는 해사하게 웃으며 상냥하게 말했다.

"떨었어? 잘하던데? 같이 본 수사관님들이 전에도 방송 몇 번 해봤냐고 물었보더라, 그리구 화면도 너~무 잘 받는다구 그러구."

ㅡ 진짜? 아, 그럼 나 병원 그만두고 방송으로 전업할까 봐.

"아이코~"

ㅡ 인지도 올려서 개인 병원도 차리고, 건강 식품 사업 하는거지,잘되면 강남에 빌딩 사서 우리 보라랑 재우 이름 붙이면 되겠다, 어때, 자기야?

"우와, 그럼 20캐럿짜리 다이아 반지도 사줄거야?"

ㅡ 어허, 남편을 뭘로 보고, 다이아몬드 광산을 통째로 사줄게.

"으이구, 됐어, 빨리 오기나 해."

이리저리 돌아보며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보라는 작게 속삭였다.

"보고 싶어."

ㅡ 얼마나 보고 싶은데?

그는 말로 표현을 하는 대신에,

'쪽,쪽,쪽!'

휴대폰 카메라에 대고 소리가 크게 나도록 뽀뽀를 하는 시늉을 했다. 흐릿한 화면 너머로 한껏 감동을 받은 선우의 표정에 뿌듯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보라는 급히 현실로 돌아왔다.

"성 검? 거기서 하고 있어?"

머리털이 쭈뼛 섰다. 천천히 뒤로 돌아보니 단체로 회식이라도 하고 온 모양인지, 형사2부 부장님을 필두로 불청객들이 주르르 서 있다.

"네, 네, 어, 그러니까, 제가 저기, 그 기침이 나서.... 콜록콜록..."

그러나 너무 당황한 나머지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은 것은 화근이었다.

ㅡ 와, 감동, 보라야~ 사랑해~ 쪽쪽쪽쪽쪽쪽쪽쪽쪽쪽쪽쪽...

선우의 남사스러운 응답은 스피커폰을 통해 고스란히 검찰청 마당에서 울려퍼졌다. 빨갛게 익은 보라와 시선 둘 데를 잃은 부장님과 웃음을 억지로 참아내는 사람들, 보라가 다시 정신을 부여잡기까지, 세상에서 제일 긴 1분이었다.

그리고 짓궂은 보라의 동료들은 한동안 그를 '뽀 검', 즉 '뽀미 검사'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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