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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상플) 그리고 만약 네가 온다면

ㅇㅇ(1.242) 2016.12.25 23:43:01
조회 7738 추천 111 댓글 16


첫눈이 온다구요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reply1988&no=1077466&page=1&exception_mode=recommend


(선택/상플) 그리고 만약 네가 온다면


겨울은 유난히 대국이 많은 계절이다.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잠깐이었다.
밖에 나와있는 시간 자체가 많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그래서.

무디다는 덕선의 구박처럼 추위라는 걸 잘 몰랐다, 택은.


국수전, 춘란배, 제왕전, 농심배, 기성전 그리고 계속되는 승단대회 하반기까지.
국내외로 쉴 틈 없이 대국이 이어졌고 한 경기 한 경기 온 힘을 다해 몰두했다.


…. 몰두해야만 했다.


“최사범님, 오늘 뭐하시려고요?”


잠시 신호에 걸린 틈을 타, 유대리가 흘끗 거울 너머로 택을 응시하며 적막을 깼다.
멍하니 창 밖을 응시하던 택이 느릿하게 시선을 맞춰왔다.


“…. 글쎄요”


대국 일정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일이 흔치는 않았지만, 경기 도중은 물론이고 전후로도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기 때문에 택에게는 오히려 이 갑작스런 공백이 때론 간절했다. 

 

세계 대회가 이어져 봉황당 골목을 오래 비워야 할 때.
그래서 언제나 그 자리에 휴식 같은 제 오랜 지기들이 그리울 때.


그 시간은 선물 같았다. 


“간만에 쉬시는 건데 친구분들이라도 만나시죠. 덕선양은 새내기라 그런지 바쁘신 가봐요? 얼굴보기 힘드네요.”


오랜만에 듣는 이름.
가장 간절했던 휴식.


그러나 지금의 택은 그 잠깐의 휴식조차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대리님 죄송한데 저 자도 될까요? 머리가 좀 아파서…. 죄송해요.”


“아 네네, 그럼요. 도착하면 깨워드릴게요."


“고맙습니다 대리님.”


차창으로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감아도 너무나 선명하다.


마음에는 왜 눈이 없는지,
과연 마음은 무엇으로 덮어질까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내게는 대국을 복기하는 일보다 더 익숙한 과정.

입 밖으로 내 뱉으면 네 생각이 나고,


생각이 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얼굴을 피하고 또 피하려고.
오랜 시간 부르기를 주저했던 이름.



……. 덕선아.



-



“대리님 데려다 주셔서 고맙습니다. 운전 조심하세요.”


그 이름을 피하느라 억지로 대화를 끊은 것 같아 오는 내내 신경이 쓰였던 택은 평소처럼 꾸벅 고개를 숙이는 대신, 문을 열고 내리기 전 눈을 맞추고 인사를 전했다.


늘 전하던 고마운 마음에 약간의 미안함을 더 담아서.

선한 눈이 짐짓 커지더니 기분 좋은 미소로 화답했다.


“사범님 오늘 첫 눈 올지도 모른다네요. 또 기보만 들여다보지 마시고 즐겁게 좀 보내세요.”


“네엡…”



익숙한 골목 안으로 돌아오면.
단호했던 목소리 끝마저 살짝 늘어지는.



열병처럼 앓았던 열 아홉.
 
그 마음에서 단 한 뼘도 자라고 싶지 않은 택이었다.



모퉁이를 돌아, 골목으로 들어오던 택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길고 긴 대국에 지치고 지쳐 절반쯤 눈이 감겨 돌아올 때는 고개를 들 힘조차 없었다.


간혹 저를 부르는 밝고 환한 목소리가 아니라면,
손가락 하나도 까닥할 수 없을 만큼 피핍했던 귀가의 순간들.


‘택아! 희동아!’
‘어이, 최사범~’


환청처럼 귓가를 울리는 명랑과는 달리, 올려다 본 하늘은 잔뜩 흐렸다.


… 정말, 첫눈이 오려나 보네.



다시 고개를 떨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 모퉁이를 돌았다.


텅 빈 평상.
조용한 골목.


그제야 택은 이 계절이 겨울임을 실감했다.
살을 에듯 뺨을 스치는 바람보다 더욱 선명한 증거였다.


가방을 내려놓고는 평상에 앉았다.
이대로 방으로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계절만큼,
텅 빈 골목만큼이나 그리운 이들의 부재도 선명했으므로.


의대와 공사에 각각 입학한 선우와 정환이는 저 못지 않게 각자의 위치에서 바빴고,
재수에 실패한 동룡은 학업이 제 길은 아닌 것 같다고 결론 내리고는 대룡이형 밑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덕선이는 마침내 그리도 바라던 대학생이 되어 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났다.


가끔 동룡이 전해주는 이야기 속의 덕선은.
1년의 재수 생활이 무색하게 선배면 선배, 동기면 동기 가리지 않고 모든 이들에게 관심 받고 환영 받는 존재라 했다.


네가 더 이상 관심과 애정에 목마르지 않겠다라는 안도감.
캠퍼스 구석 구석을 씩씩하고 발랄하게 누비며,
마주하는 모든 것들에 호기심 어린 눈망울을 반짝일 네 모든 순간에 대한 궁금함.


꽃이 만개한 봄에는 네 손을 잡고 네 시선이 닿은 곳을 함께 걷고,
눈 내리는 겨울에는 네 어깨 끝을 잡고 조심스럽게 입 맞추는 망상.


… 패착(敗着)이었다.


이 곳에 앉는 것이 아니었다.
아주 잠깐의 틈에도 네 생각을 놓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걷잡을 수 풀어진 마음의 매듭을 다시 묶기 위해선.
처음부터 다시 착점해야했다.



-



우리증권배 세계바둑최강전 직전까지 지난하리만큼 길고 오래, 슬럼프가 이어졌다.


처음 바둑판에 앉았을 때부터 경기 자체를 벗어난 목표엔 크게 의미 두지 않았다.
이기면 기쁘고 좋은 일이었지만, 그것은 최선을 다한 과정에 따르는 결과였을 뿐.
꼭 이겨야겠다 승리에 집착한다든지 승리에 대한 보상을 미리 생각한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 택에게 동룡이 던진 말은 전에 없이 마음을 동하게 만들었다.


‘중국에 세 명, 일본 두 명, 한국에 너 한 명 남았으니까 내일 첫 판 지면 바로 오겠네. 그지?’


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괜히 초 치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괜히 국민들한테 이런 희망같은 거 심어주지 말고 그냥 돌아와가지고 우리 피자나 사줘.

종로에 새로 생겼댄다.’


‘이기면 어떡할 건데.’


‘이기면 너하고 싶은 거 하는 거지 뭐. 그걸 나한테 물어.

에휴 술을 마시기를 하냐. 여자를 만나기를 하냐. 넌 뭔 재미로 사니?’


하고 싶은 거.


하고…싶은 거.



‘…… 캡 치사한 인간들!!! 그거 나도 보고 싶었는데 나 빼고 니들끼리 봤다고? 웬열’


‘야 특공대 시끄러워 아 진짜. 목청만 커가지고.

아 그날 못난이들이랑 약속 있다고 니가 빠진거잖아.

삼시세끼 먹는 거 말곤 도통 기억 안 나냐?’


‘그래 덕선아. 그때 라면 먹으면서 정환이가 너한테도 물어봤는데 니가…’


‘아 몰라몰라몰라 기억 안나!!! 안 난다고!!!’


‘이 보게 이 친구야! 이런 거에 서운해하면 어떡하니?

어 이 오빠들이 어떻게 매일 너를 쫓아다니면서 챙기니.

우리 떡서니 이러다가 우리 목욕탕도 따라오겠다 으하하하하’


‘죽을래 도롱뇽 죽고 싶냐 너!!!!!!’


영화를 특별하게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덩그러니 빈 방에 다른 세상의 얘기가 펼쳐지면 친구들이 그 안으로 하나씩 모여들었다.

다닥다닥 붙어 앉으면 외로움을 잊을 수 있게 만드는 온기가 좋았다.
 


집에서든, 영화관에서든 늘 다섯이었다.

아니면 대국으로 빠진 저를 제외한 넷.


그런데 이번에는 영화를 셋이 봤고, 둘이 남았다.


나…그리고 그 애.


영화가 보고 싶었다.
다섯이 아닌 둘로.



처음이었다. 



‘너 뭐하고 싶은 거 없어? 바둑 두는 거 말고 또 하고 싶은 거 없어?’


‘영화’


‘영화배우?’


‘영화 보고 싶어’



…. 그 애랑 단 둘이서만.


‘헐. 푸합. 이 번에 이기면 보면 되겠네. 이번에 이기면 봐.’


동룡은 세상에서 이런 한심한 놈은 처음 본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지만 상관없었다.


처음이었다.



꼭 이기고 싶었고, 그래서 꼭 그 애랑 둘이서 영화를 보고 싶어졌다.


어떤… 기분일까,
단 둘이 영화를 보는 기분은.
바둑 말고 처음으로 미치도록 궁금한 세계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


“어디서 오는지 알 수는 없지만 사랑은 언제나 황홀한 것-”


익숙한 목소리가 가까워지며 흥얼흥얼 골목을 울리기 시작했다. 

틀림 없이 반가운 얼굴일 것이라 택의 표정에도 생기가 돌았다.


별안간 풉하고 웃음이 터졌다.
저 멀리 다가오는 간만에 보는 동룡은 골목을 다 쓸어버릴 것처럼 길고 긴 코트를 걸치고 대낮에 검정 선글라스까지 쓴 채였다.

가사에 맞춰 내리꽂는 손은 정확히 평상 위의 택을 가리켰다.


“그대여~ 그 마음 속에 이대로 나를 담아둘 순 없는가”


“그대여~ 이 아름다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최택”


웃느라 온 얼굴이 엉망으로 뭉개졌을 것이다.

온통 마음이 괴롭고 황량한 순간에도 저를 이리 웃게 만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흐합..야 너 뭐냐…”


선글라스를 벗고는 코트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쓰자 다시, 익숙한 제 친구 도룡뇽이었다.


“넌 뭐냐 최택. 이 시간에, 우리 최사범님께서 홀로 평상이라니요. 우유도 없이?”


“대국 취소됐어. 넌? 오늘 일 안 해?”


“택아. 우린 운명인걸까?”


“무슨 소리야.”


“간만에 진짜 아무일 없이 잘 되간다 했다. 저녁에 영화도 예매해 놨는데 이게 뭐니.
거절 할 때 하더라도 인간적으로 이렇게 대낮의 이별은 좀 심한 거 아니니? 근데 대낮에 왜 이렇게 어둡고 난리니?”


“아……. 미안해 동룡아.”


“얼씨구. 니가 뭐가 미안한데. 너 정소연씨랑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니?”


“정소연씨가 누군데?”


“됐다. 너랑 무슨 말을 하겠니 내가. 대신 나랑 사귈래 택아?”


“…싫어.”


“젠장. 희동이한테 마저 차였어. 하루 두 번이나 차이네. 그럼 나랑 영화라도 봐줘.”


“…알았어.”


택은 손을 뻗어 동룡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그나저나 우리 최사범 진짜 요즘 얼굴보기 힘들다.

저번에 덕선이네 학교축제 같이 놀러 가자니까 왜 안 갔냐 너? 대국도 없었잖아 그때.”


“…. 아 나 그날 기원에 중요한 일이 좀 있어서. 미안해.”


“나한테 뭐 미안하냐. 어차피 선우랑 정환이도 못 왔어.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걸 모르는 짜식들아. 덕분에 나만 우리 덕선이한테 점수 땄지 흐하합” 


“좋겠다. 덕선이는…잘 지내지이..” 


“어 덕선이. 캡. 내 생각에 걔는 대학이 체질인 애 같아.

우리 989 특공대 성수여이가 대학 가서 그렇게 훨훨 날아다닐 줄 누가 알았냐?

나 챙겨준다고 일부러 나랑만 다녔는데 여기저기서 계속 덕선이 찾고,

삐삐 계속 울리고. 뭇 남학우들의 부러움의 시선 좀 받았지 내가.”


격랑이 인다. 하지만 내색할 수 조차 없었다.


“그렇구나. 다행이다.”


“그리고 덕선이가 대학가더니 드디어 정신을 차렸어.”


“응?”


“덕선이랑 친한 대학동기 있는데 여신이야.
그 독서실 다니던 정의여고 가디건 누나보다 딱 열 배 더 예뻐. 참 넌 모르지 그 누나.”


… 순간 택은 저도 모르게 덕선이보다 더 예쁘냐 물을 뻔 했다.
어차피 답이 정해져 있는 택에게 무의미한 답이었을테지만.


“덕선이한테 점수 딴 김에 그 친구 꼭 소개해 달라고 할거야! 고자경! 이름도 무슨 중국 여배우같지 않니?”


“으응…그러네.”


“암튼 최사범 영화 오늘 8시 종로야. 나 저녁장사 준비만 도와주고 시간 맞춰 데리러 올게. 콜?”


“알았다.”


“이따 보자!”


“그래.”




….. 나도 보고 싶다. 덕선이.


아무래도 오늘은 틀렸다.
한 번 풀어진 마음은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구석 구석을 헤집었다.


동룡이 떠난 자리.
또 홀로 남은 택이 힘겹게 몸을 일으켜 대문 속으로 사라진다.



-



동룡과 함께 골목을 나서는 길에 택은 뺨에 닿아오는 차가움에 고개를 들었다.


“…어…”


“웬열. 나 정소연씨한테 감사해야겠다. 대낮에 차 준거.

눈 오는 밤에 차였으면 진짜 나 트라우마 생길지도 몰라.

최사범 서둘러 눈 와서 차 막히겠다”




‘고백해’


‘고백하라고. 어… 첫눈 오는 날!’


‘첫눈 오는 날 고백해에 어?’



전에 없이 상기된 얼굴로, 상기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고백하라고.



늦은 밤, 기원에서 나오는데.
눈 발이 휘날렸다.
문득 첫 눈이 아닐까 생각이 스쳤고.
너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귓가를 맴돌았다.



‘덕선아 우리 영화 볼까’


‘…영화 보자 우리’



고백이었다.


광활한 19줄의 반상이 아닌 다른 세계가 궁금해 졌다는 고백.
다섯이 아니라 오직 너와 나 단 둘 일 때의 그 기분은 어떨지.


소중한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사람으로.


너를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고백.




그 날의 영화가 어땠는지,
둘만 나란히 앉은 그 공간에서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 어느 때 보다 편안하고 달게 잘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 애 옆에선.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덕선은 새 부리 같은 작은 입술을 쭈욱 내밀고,


‘그렇게 피곤하면 집에 가서 푹 잘 것이지!! 아오 최희동 진짜!!! 피자 때문에 용서 하는 거라 생각하지마 애들이 너 진짜 고생 한 거라고 해서 용서 하는거야 너!!!”


고시랑 고시랑.


한번도 그리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감히 그 종알거리는 입술을 막으면,
덕선의 매운 손이 쉴 새 없이 등으로 날아들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종알거리는 작고 붉은 그 입술에 닿고 싶어 미치게 애가 닳았다.


가장 안온한 휴식이자, 가장 뜨거운 열망.



장고 끝에 일 수. (一手)


너에게 닿아야겠다.
새까맣게 윤기 나는 머리카락, 작디 작은 손, 여린 어깨를 지나 네 입술에.
네 마음에. 네 모든 것에. 



….. 덕선아.



-



대국이 취소됐고, 첫 눈이 내렸고, 오랜 지기와 영화를 봤다.
택에게는 간만에 찾아온 휴식 같은 시간이었다.

그 핑계로 실컷 그리워했던 덕선을 이렇게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여느 때보다 더 반짝이는 모습으로,
낯선 남자의 곁에 선 덕선을 마주 했을 때.


생각했다.


자신이 선택한 승부에,
처음부터 이기는 방법이란 없음을.
속절없이 무너지는 이유가 결국 자신에게 있었으므로.



“아! 눈도 오는데 이게 뭐야 아! 추워! 아 특공대 진짜, 형님이 차 태워준다고 하셨는데 말이지.
왜 굳이 매일 타는 2번 버스를! 어? 덕선이 너 간만에 본 나한테 대체 왜 그러는 거니?”


말은 저렇게 해도, 택은 알았다.


그것이 당황한 덕선을 배려하는 그만의 방식이라는 것을.
굳어진 표정과 무너진 걸음의 저에 대한 위로인 것도.


“도롱뇽, 이제 그만 그 입 다무시지.”


“와…특공대 너는 타봤다 이거냐? 나도 현대 그랜저 한번 타보고 싶었는데, 최사범 너도 타봤지 그랜저?”


“으응…저번에 무슨 회장님이 식사 초대하시면서 보내주신 적 있어. 차.”


“이봐. 이봐!!! 나만!!!!!!!! 나만 못 탔어!!!!”


“야!!!!!!!! 고만하랬지!!! 이게 맞아야, 턱 끝까지 고통이 차 올라야 입을 다물지!!!”


“악!!! 특공대 너 이렇게 밑도 끝도없이 폭력적인 경향이 있는거 현수 형님이 아셔야 ㄷ….악!!!!아퍼어 아프다고!!!!”


“들어가! 들어가!!!!!!!!!! 얼른 들어가버려 도룡뇽!!!!!!!!”



동룡이 집으로 들어가고, 택은 다시 고요해진 골목에 저와 덕선만이 남았다.

그대로 지나쳐야 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늘만.
대국은 취소 됐고.
첫 눈이 왔고.
눈은 다시 그치고, 녹고.
그리고 대국은 끝없이 이어질 테니까.



오늘만, 아주 잠시만.



“덕선아, 잠깐 여기 앉았다 들어가자. 오랜만인데.”



평상에 눈을 털고, 목에 걸친 목도리를 풀어 내밀자 “웬열 최희동 이런 매너는 어디서 배웠대?” 하며 싱긋 웃는다.



덕선아.
네 모든 것을 세상에는 꼭꼭 숨기고 싶은 내 욕심.
여전히 넌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덕선아.



“첫 눈이다 덕선아 그치.”


“그르네. 참 예쁘게도 내리네. 이거 얼면 내일 길 캡 미끄러울텐데 그나저나 우리 최사범 어쩐 일로 영화를 볼 시간이 나셨대, 제일 바쁠 때 아니야?”


“….그 정도는 아니다 뭐.”


“으이구 참도 아니겠다. 선우가 그러는데 너 올해만 대국 100번 넘게 했다고.
지독해 지독해 희동이 너 진짜 너 바둑하다 어? 픽?하고 쓰러지면 또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어?
국보 최택, 건강 위기설? 한국 바둑계 이대로 무너지나? 이런 거 뜨고 또 어?”


고시랑 고시랑.


그날처럼.


너에게 닿고 싶어 애가 닳던 나는 하나도 자라지 못했는데. .



“지금 나 비웃냐 최희동” 


“아니야 비웃긴. 그냥…오랜만에. 너 이렇게 말 많이 하는 거 보니까 좋아서.”


아직은 여전한 네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그 안도감 속에 피어나는 작은 불안감.


“덕선아, 영화 재밌게 봤어? 그 분…이랑은 만나 볼 거야?”


자충수(自充手)임을 알면서도.


“….만나…볼까?”



아니, 덕선아.


싫어, 덕선아.


만나지마.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인데 억지로 말이 나오지 않아 애먹었던 적이 많았다.
하고 싶은 말을 억눌러야 하는 상황이 택에게는 익숙하지 않았다.



손을 뻗었다.


그렇게 겨우 닿은 것이 네 머리카락.


더 닿고 싶었다.
닿고 싶어서 죽을 것 같았다.



말하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너....바보냐. 나한테 그런걸 물어보고. 류도사님한테 물어봐야지.”


그럼에도.


너는.

끝끝내 그 어떤 수도 둘 수 없는 나의 착수금지점.


승부에서 패하고도 힘들지 않으면 프로가 아니다.

그래서 그 패배의 아픔마저 복기하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승부사 기질을 타고난 택이.

쉽게 승부수를 던질 수 없는 상대는.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단 한 사람일 뿐이다.


경기는 지더라도 또 다시 기회가 있으므로 도전하면 된다.
 
하지만, 너를 향하는 수를 패착 할 수는 없었다.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잃지 않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잃을 가능성이 있다면.


절대로.
그 어떤 돌도.
그 어떤 수도 둘 수 없는.



유일한 나의 안식.





첫 눈이 오는 밤.
그리고 만약 네가 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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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어미 동룡아 미안해 만나기도 전에 차이는구나



94년 이후 대학동창회에서 만나 선택과 자경커플 단내 터지는 더블데이트 하길
짠내 나는 글인데 재미있게 읽어준 수미니들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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