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선택/상플] 사랑니 4

ㅁㄹㄲ(121.171) 2017.04.23 02:57:05
조회 6160 추천 68 댓글 14

오랜만이었다. 

오랜만에 꿈을 꾸었고, 오랜만에 그립던 이들이 스쳐 지나갔다.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만나는 시간들이 반갑고 애달팠다.

이제는 언제인지조차 흐려지는 한 때, 엄마의 손을 잡고 걷고 있는 어린 자신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가에 주름 하나 없이 고운 손을 들어 어린 아들의 손을 잡아 주던 모습은 수 십년이 흘러도 변치 않고 홀로 남아 있었다. 


‘엄마......’


수도 없이 듣기만 했던 두 글자를 제 입으로 소리내어 불러본 것이 언제인지 아득하기만 했다.

입술의 움직임은 낯설었고, 그만큼 서러웠다. 꿈속에서조차 마음껏 부를 수 없는 두 글자가 아득히 멀어져 갔다.

늘 묻고 또 묻느라 이제는 뱉는 것조차 어색해져버린 자신과 달리 망설임 없이 엄마의 손을 잡은 채 앞을 향해 가는 어린 제 모습에 코끝이 시큰거렸다.


상실도, 죽음도, 버려짐도 그 무엇도 낯설던 한 때의 어린 제 모습이 두 눈 가득 채워졌다.

시간의 덧없음이 더해진 눈꼬리가 휘어지던 환한 웃음도, 힘겹게 입술을 말아 올리며 지었던 서글픈 미소도 흐려져만 갔다.

기억이 흐려질수록, 꿈에서만 부를 수 있었던 두 글자도 점점 멀어져만 갔다.

꿈에서조차 볼 수 없는 웃음이 사라진 자리엔 소리 없는 그리움이 켜켜이 쌓여만 갔다.
 
이젠 부를 수도 없고, 소리를 낼 수도 없는 두 글자 앞에 애써 벌렸던 입술이 힘없이 닫혔다. 

제 자신에게 남은 시간동안 평생 다시는 입 밖으로 내보지 못할 단어를, 다시 한 번 가슴에 묻느라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보이는 것은 뒷모습뿐이지만, 그래도 제뺨에 흐르는 눈물을 보이긴 싫었다. 

땅에 떨어지는 눈물 위로 모래에 새겨진 작은 아이의 발자국이 보였다.

그 발자국을 따라 걸음을 옮기는 택의 발자국이 더해지기를 몇 번, 어느 순간 작은 발자국은 사라져버렸다.  


‘아......’


단말마의 비명처럼 작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얼굴을 감싸던 찬 공기와 코끝을 스치던 비릿한 냄새가 온 몸을 훑고 스쳐갔다.

날은 흐렸고, 회색빛이 둘러있던 바다에는 불그스름한 노을이 내려 앉아 있었다.

바람도 물도 공기도 모든 것이 차갑기만 했던 자신의 기억의 어느 순간, 붉은 노을 아래에 빨간 코트를 입은 덕선이 서 있었다.


귀를 덮을 정도의 머리를 조금이라도 길러보겠다고 노력하던 덕선의 모습이, 처음보다 아주 조금 길어진 머리 길이에 세상을 가진 듯 웃었던 웃음이,

목을 간질이는 머리카락에 불만을 표하다가도 그래도 여기까지 길렀다며 자랑을 하던 목소리가 몰려드는 파도처럼 쏟아져 내렸다.


‘덕선아.....’


하루에도 몇 번이나 불렀던 그 이름을, 그 어떤 말보다 익숙하던 이름을, 다시 한번 영원을 꿈꾸게 했던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를 수 있었던 그 모습 그대로 덕선은 서 있었다. 


“덕....선아...”


조금은 낯선 듯 버석거리는 입술의 버둥거림과 혀끝의 울림이 온 몸을 흔들었다. 
여전히 뒤를 향한 모습에 입술이 타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언제나 제 부름에 고개를 돌려 답을 해주던 덕선의 모습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택을 휘감았다.


"덕..선아... 덕선아... 덕선아“


호흡이 가빠지고 숨이 턱 끝까지 차도록, 부르고 또 불러도 아무런 응답도 없는 덕선의 뒷모습에 왈칵 서러움이 밀려들었다.

택은 무서웠다. 덕선마저 그렇게 뒷모습만 보게 될까봐, 다시는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을까 두려웠다. 
 


“괜찮아 택아.”


바람처럼 들리는 목소리와 함께 눈물로 흐려진 눈 앞에 따뜻한 손길이 스치고 지나갔다.

손길이 스쳐지나가는 곳을 따라 흐려진 인영이 또렷한 상으로 맺혔다.

입가에 작은 미소를 걸고 걱정스레 자신을 바라보는 덕선의 모습의 왈칵 다시 눈물이 맺혔다.

 무서웠다고, 그렇게 뒷모습만 보게 될까봐 홀로 그렇게 바라만 보게 될까봐 겁이 났다고 말해야 하는데,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은 눈물뿐이었다.


“울지마. 응”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고는 뺨에 남은 흔적마저 살뜰히 훔치는 덕선의 손길에 마음에 휘몰아치던 수많은 말들이 잠잠히 가라앉았다.

 울컥거리는 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달싹거리기만 하던 입술에 힘을 빼고 그저 눈가를 스치고 이마를 매만져주는 온기를 느꼈다.

꿈이 깨어질까, 이대로 덕선의 얼굴이 멀어질까하는 조급한 택의 마음과 달리 덕선은 빙그레 웃으며 택의 머리를 몇 번이나 쓸어 주었다.


“다 괜찮을거야. 
우리 택이 다 괜찮아질거야.“


괜찮을거라는 조금은 낮은 목소리가, 제 자신을 향해 그려진 입가의 호선이, 걱정을 담은 채 자신만으로 오롯이 담고 있는 눈동자에 일렁거리던 택의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꿈이라도 좋았다. 꿈이라서 좋았다. 꿈이 아니라면 덕선의 다정한 손길도, 걱정스런 목소리도, 한가득 제 모습만을 담은 눈동자도 볼 수 없을 것이기에.


그래서 택은 제 마음의 욕심을 내려놓았다.
이마를 매만지던 작은 손을 그려 쥐고 싶은 마음을, 좋아한다고 그리웠다고 보고 싶었다고 그렇게 쏟아내고 싶은 무수히 많은 말들을,

천천히 제게 괜찮을거라고 말하는 다정한 입술을 훔치고 싶은 제 이기심을 그렇게 가슴 깊숙이 눌러버렸다.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새겨진 얼굴이, 빗겨서만 볼 수 있었던 그 얼굴이, 바로 보지 못해 늘 그리웠던 그 얼굴을 보고 또 보고 싶었다.

하지만 꿈은 늘 그렇듯 점점 멀어져만 갔다. 멀어지는 얼굴이 안타깝고 아쉬워 손을 잡아 뻗어보지만, 그렇게 꿈은 사라졌다.




익숙하게 스위치를 눌러 형광등을 끄자, 밖의 어둠이 택의 얼굴에 찾아 내렸다.

덕선이 방문을 열어 거실로 나서자, 거실에 있던 불빛이 잠시 택의 얼굴에 머물렀다.

두 뺨에는 채 마르지 못한 눈물 자국과, 아직 눈가에 물기가 어리어 있었지만 늘 굳게만 닫혔던 택의 입가가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 


여전히 환한 거실 끝으로 불이 꺼진 주방에 덩그러니 남겨진 유리컵이 보였다.

빈 유리컵에 남은 얼룩에 잠시 시선이 머무는 듯도 했지만, 덕선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현관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열린 문으로 훅 들어오는 바람에 몇 번의 숨을 토해내고 나서야, 문은 본래의 위치로 돌아갈 수 있었다.

문고리를 잡았던 손을 들어 뺨을 천천히 매만지고 나서야, 덕선은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제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매서운 바람보다, 문고리에서 느껴지던 금속의 차가운 감촉보다, 이젠 말라버린 택의 눈물이 덕선의 손끝을 저릿하게 움켜쥐었다.


“바보, 등신, 나쁜놈”


중얼거리는 입술로 새어나오는 말이 욕인지, 한탄인지 넋두리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나오는대로 내뱉었고, 그래야만 숨을 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미련한 놈, 바둑밖에 모르는...... 차라리 바둑밖에 모르지 그랬어.”


웃고 있어도, 환히 웃고 있어도 웃음 끝을 보고 있으면 덕선은 가슴 한구석이 이상하게 서걱거리곤 했다.

그렇게 웃으면 사람들에게 호구된다며 잔소리로 애써 가슴에 이는 불편함을 모르는 척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을 서걱거리던 느낌은 선명해졌다.

정말 택이 웃고 있었는지, 그게 진짜 웃음이었는지 아니 언제부터 웃지 않았던 것인지 덕선은 지나간 시간의 택이를 그리면 그릴수록 알 수 없었다.


“많이 힘들었겠네, 우리 희동이.”


그 때와 달리 마땅한 외투도 걸치지 않은 채, 얇은 긴팔 하나만이 겨울바람을 막아주고 있었지만, 덕선은 망설임 없이 평상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리고 쓰러지듯 하늘을 향해 무너졌다.


그래 그 때처럼, 너의 무심함으로 그리고 뒤늦은 다정함으로 한 번 더 봐주기를, 한번 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물어보듯 물어봐주기를.

이뤄지지 않을 일임을 알면서도, 잠에서 설핏 깬 택을 다시 달래고 잠재운 이가 자신임을 알면서도 헛된 바람은 어둠 밤하늘의 별처럼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너, 너야.
택아, 난 너.“


물음도, 물은 이도, 들을이도 없지만 덕선은 그때처럼 다급하게 내뱉고 웃어버렸다.

자신을 위한 선물인줄 알고 분홍색 앙고라 장갑을 말했을 때처럼, 그리고 선물의 주인이 자신이 아님을 알면서도 차마 서운하다 말하지 못했던 그날처럼, 덕선은 말하고 있었다.

단지 그때와 달리 선물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가장 원하고 바라는 것을 말하였다.

무성이 자신이 말했던 분홍색 앙고라 장갑을 소중히 여겼던 것처럼, 이번에도 선물의 주인이 자신이 가장 바라고 원했던 선물을 소중히 여기기를 기도하면서.





방안 한 구석에 놓인 바둑판 위로 창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세월의 흔적이 묻은 갈색의 빛 옆에는 흑과 백 대신 택이 차지하고 있었다.

문을 통해 들리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도 창밖을 통해 들려오는 작은 소란에도 택의 얼굴은 고요하기만 했다.  


조용히 열리는 방문의 조심스러움과 달리 방안으로 들어서는 발걸음은 거리낌이 없었다.

세상의 시간으로 따지면 이른 시간이지만, 택의 시간으로는 이미 늦은 지금 아직도 누워있는 택이 걱정되는 듯, 덕선은 한걸음에 들어와 택의 이마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반대편 손을 들어 제 이마를 만지던 덕선은 택의 이마위에 놓인 제손의 온기와 제 이마에서 느껴지는 체온이 같음에 짧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택아, 최택.”


자는 이를 어떻게 깨워야하는지 알 수 없어, 택의 이마를 떠난 덕선의 손이 허공에서 잠시 머물렀다.

그러고 보니 택이 자신을 깨운 적은 있어도, 자신이 택이를 깨운 적은 없는듯했다.

어떻게 택을 깨워야 하는지 몰라 잠시 망설이던 덕선은 조용히 택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소용없는 듯 했다.


“최사범님, 이제 일어나셔야죠.”


어쩐지 저런 호칭을 들으면 택의 감긴 두 눈이 떠질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예감과 달리 택은 여전히 고른 호흡을 내뱉으며 잠에 빠져 있었다.

이리 곤히 자는 것이 얼마만인지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기에, 그냥 둘까도 싶었지만 오늘 기원에서 있을 택의 인터뷰를 떠올린 덕선은 숨을 깊게 들이 쉬고 단전에 힘을 모았다.


“야, 최희동. 그만 일어나지.”


아침에 듣기에는 제법 큰소리에, 택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아직도 잠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택의 호흡이 잠시 흔들리던 찰나, 덕선은 손을 들어 손을 들어 택의 팔을 가볍게 툭툭 쳤다.


“그만 자고 일어나. 밥 먹자. 나 배고파.”


어깨의 흔들림에 택의 눈꺼풀이 느릿하게 올라갔다.

형광등이 아닌 햇살에 내리쬐는 방의 모습이 조금은 어색했는지, 초점을 맞추지 못한 택의 시선이 꿈을 꾸는 듯 허공을 향했다.


“나 배고프다고.

셋 셀 때 동안 안 일어나면 나 그냥 집에 가서 밥 먹는다.
하나, 둘, 셋.“


"덕...선아.“


말을 배우는 아이의 옹알이처럼, 자신의 소리에 놀란 택의 눈이 제법 크게 떠졌다.

택이 완전히 잠에서 깬 것을 확인한 덕선은 얼른 나오라는 소리를 덧붙이며 방문을 활짝 열고 거실로 나섰다.

무엇이 그리 놀란 것인지 두 눈만 끔벅끔벅 든채 자신을 바라보는 택의 시선에도 덕선은 몸을 바삐 움직여 밥을 뜨고, 국을 펐다.


“국 식는다, 얼른 튀어와.”


덕선의 부름에 답지 않게 튀어 나온 택의 꼴이 제법 볼만 했다.

까치가 집을 열채도 더 지은 듯 머리는 이리저리 삐죽삐죽 거렸고,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을 못하는 듯 길을 잃은 눈동자는 제법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직도 종아리에 걸쳐진 바지 한자락이 완성한 택의 모습이 제법 웃겨, 밥을 한 술 뜨던 덕선이 소리내어 웃어버렸다.


“으이구, 잘한다. 잘해.
튀어나오라고 또 튀어나오는 건 뭐래.“


여전히 뻐금거리는 눈동자로 어쩔 줄 몰라 하는 택에게 덕선은 앉으라는 의미로 식탁을 가볍게 쳤다.

자신의 손길을 따라 의자에 앉은 택에게 조금더 가깝게 국과 밥을 밀어주고는 덕선은 자신에 손에 들린 숟가락 위의 밥을 입으로 가져갔다.

몇 번의 오물거림으로 밥을 넘긴 덕선은 여전히 자신만 바라보는 택을 바라보다가 한쪽에 놓인 물잔에 물을 가득 놓아주었다.


“또 내 말 안 들었지? 수면제 먹지 말라니까.”


"....안 먹었는데.....“


"웬열, 근데 왜 이렇게 멍해.
너 뻥이면 죽는다.“


“야”


"이제 정신이 드십니까, 최사범님.
정신 드셨으면 아침 드시죠.“


가벼운 택의 항변에도 존대와 반말을 섞은 타박으로 간단하게 진압한 덕선은 기어코 택의 손에 숟가락을 쥐게 했다.

여전히 젓가락질이 어색한 택의 밥공기 위로 덕선의 젓가락이 익숙한 듯 움직였다.

그나마 소화도 잘되고 택이 잘 먹었던 것 위주로 몇 개를 올린 덕선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젓가락을 들어 식사를 시작했다.


“아저씨 내일 오후에 오신다고 했지?"


“응. 어떻게 알았어?”


"내가 너에 대해 모르는게 어디있냐?“


"뭐?“


"으이구, 최희동.
나이를 먹어서 최희동 졸업했나 했더니 여전히 희동이네.
우리 희동이, 언제 커서 장가 가냐.“


“야.”


“오늘 기원에서 한시에 인터뷰 있다며.
내일은 따른 스케줄 없지?
그럼 내일 아침은 늘 먹던 시간에 차린다.“


당황한 택의 짧은 물음에 아직도 덜 컸다는 타박 섞인 농담으로 어색해질 수도 있는 분위기를 바꾼 덕선은 조금의 반격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단호히 아침 스케줄을 통보한 후 식사에 집중했다. 아니 적어도 택에게 그렇게 보이고자 바쁘게 숟가락과 젓가락을 움직였다.


“덕선아, 갑자기 왜.....”


"갑자기는 무슨, 내가 너희집에서 밥 먹는게 한두 번이냐.

너 설마, 와, 최희동 그렇게 안 봤는데 내가 먹는게 그렇게 아까워?"


“아냐, 덕선아 진짜 그게 아니라.”


"그럼 아니지. 그럴 리가 없지.
우리 희동이가 이 누님이 좀 먹겠다는데 아까워서 그럴 리가 없지.
아까워서 그러는게 아니라면 얼른 먹어라.
이러다가 기원 늦겠다.“


밥을 빨리 먹으라는 덕선의 재촉에, 숟가락을 든 택은 자신의 밥 공기 위에 놓인 반찬을 해치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덕선은 밥 공기 위에 또다시 반찬을 올렸고,

다시 틈이 생기면 곧 쉬는 날 아침 차리느라 힘들었다며 자신의 공을 안다면 하나도 남기지 말고 먹으라는 말로 택의 입을 막았다.

눈 앞에 벌어진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서도 제 입으로 들어가는 밥 숟가락이 늘수록 덕선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에 택은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은 채 빠르게

자신에게 주어진 한 공기를 깔끔하게 비워냈다.


“밥 더 줄까?”


"아냐, 덕선아. 나 배불러.“


“알았어. 그럼 얼른 가서 씻어. 
지금 씻으면 늦지는 않겠다.“


밀리듯 욕실로 들어간 택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덕선은 빠르게 식탁 위를 치워갔다.

택 앞에 놓인 밥 공기가 깨끗하게 비워져 있음에,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혹여 입맛이 변했을까 준비하며 걱정하던 제 기우가 우습다는 듯 택은 망설임없이 제 앞에 놓인 밥과 반찬을 맛있게 먹어주었다.

그것이면 되었다고, 덕선은 탁자 위에 깔끔하게 놓인 택의 그릇을 옮기면서 속으로 되뇌이고 또 되뇌였다.


덕선이 설거지를 다 하고 한숨 돌릴 때쯤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직 마르지 못한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꾹꾹 누르며 택이 나왔다.

싱크대에 살짝 기대 커피를 마시고 있던 덕선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택이 천천히 덕선을 불렀다.   


“덕선아, 오늘 비행 없어?”


"응, 없어. 오늘 입고갈 옷은 네 방 책상 위에 올려놨어.
협찬 의상이라고 꼭 오늘은 이거 입고 오라고 하시던데.
얼른 가서 입고 와. 늦으면 차 막힌다.“


“근데 덕선아, 너 안 바빠?”


"어, 안 바빠. 어서 가서 입으라니까.
최택, 자꾸 여러번 말 시킬래.“


허리로 올라간 덕선의 양손과 제법 매섭게 뜬 눈초리에 더 이상 묻지 못하고 택이 방으로 향했다.

덕선의 말대로 책상 위에 얌전히 놓인 양복을 매만지던 택의 마음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꿈은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덕선의 꿈은 두 번째였다.

간절히 보고파 빌고 또 빌어도 나오지 않았던 덕선은 그렇게 불쑥 제 꿈에 찾아와 제 마음을 어루만졌다. 

그것만으로도 족하다고 여겼던 마음이 무색하리만큼, 덕선은 꿈이 아닌 현실 속 아침에도 불쑥 들어왔다.


“꾸물거리지 말고 얼른 입고 나와.”


투시라도 하는 것인지, 닫힌 방문을 넘어 들리는 덕선의 목소리에 택은 양복 위를 매만지던 자신의 손을 들어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말라는 덕선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옷을 제법 빠르게 입던 택의 손이 책상 위에 놓인 손수건 앞에 멈추었다. 


“하......성덕선”


세상이치가 담긴 바둑을 해서 애늙이가 되더니 취향도 늙은이처럼 변했다고 놀리듯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도

그저 무표정 한번, 예의 짓던 웃음 한번으로 넘기던 손수건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없다 믿었다.

오랫동안 홀로 간직해온 치부를 들켜 부끄러우면서도 그게 덕선이라 는 사실에 가슴 한구석이 벅차올랐다.


“택아, 옷 다 입었어?
나 들어간다.“


옷을 다 갈아입고도 남을 시간에 나오지 않은 택이 걱정된 덕선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책상 위에 놓인 손수건을 바라보며 망부석이라도 된 듯 꼼짝도 못하는 택이 한 눈에 들어왔다.


“뭐하고 있어. 시간 빠듯하다니까.”


택의 시선 끝에 닿아있는 손수건을 들어 반으로 한번 더 접은 후 가만히 서 있는 택의 손에 쥐어준 덕선은 어디 잘못된 곳은 없는지 빠르게 살폈다.

어깨를 한번 쓸어주듯 넘겨주고 의자에 놓인 가방을 택의 반대편 손에 쥐어주고 나서야 덕선이 택과 시선을 맞췄다.


“어떻게......”


"아, 손수건? 그냥 우연히 어떻게 하다가."


“덕선아.....”


"다음부턴 그냥 찾아내라고 해.
소중한건 스스로 챙겨야지. 
다음번엔 안 찾아준다. 알았어, 몰랐어?“


“알았어.”


"대답도 잘하네, 우리 희동이.
얼른가자, 진짜 늦겠다.“


고개를 끄덕이는 예전처럼 잘했다는 듯 환하게 웃어준 덕선이 택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섰다.

대문을 나서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택의 손을 놓은 덕선은 어제 주차해 놓은 차를 향해 걸어갔다.

 익숙하게 차 문을 열고 운적석에 탄 덕선은 택이 조수석에 앉기도 전에 시동을 걸고 안전벨트까지 야무지게 착용했다. 


“갑자기 스케줄이 꼬여서 유과장님 못오신대.
대신 내가 데려다준다고 했으니까, 어서 타.“


“그냥 택시타고 갈게.”


"그냥 타세요, 최사범님.
탑언니에게 신세진 거 이렇게 갚는 걸로 퉁 쳤으니까.“


“덕선이 너, 탑언니라는분께 신세진 거 있어?”


"뭘 그렇게 꼬치꼬치 묻고 그러냐. 아침부터.
얼른 타지 최택.“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두 글자에 마법에 홀린 듯 얌전히 조수석에 택이 타자, 안전벨트를 하라는 잔소리와 함께 덕선이 운전을 시작했다.

자주는 아니여도 제법 차를 몰아본 덕선의 운전솜씨는 나무랄 때 없이 훌륭했다.

어제도 그렇게 오늘도 조수석에 앉아 눈을 감은 택을 보던 덕선은 아까 택의 손을 잡을 때 느껴지던 손수건의 촉감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추천 비추천

68

고정닉 0

2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비난 여론에도 뻔뻔하게 잘 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03 - -
AD 여름맞이 최대 90% 할인 & 신규가입 30% 추가할인! 운영자 24/06/04 - -
1084645 ㅅㅌㅂ 연 인터뷰 [9] ㅇㅇ(183.109) 17.06.27 2825 72
1084641 [현창 600일]글씨 써봤음 [5] 수미니네펜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06.27 756 30
1084637 600일 현창기념 선택뱃지 [7] ㅇㅇ(125.178) 17.06.26 1888 88
1084565 요즘 뱃지에 꽂혀서ㅎㅎㅎㅎ [17] ㅇㅇ(125.178) 17.06.23 2475 73
1084557 우리집 애기들 교복 입혀봄ㅋㅋ [6] ㅇㅇ(203.226) 17.06.23 3158 52
1084437 아직도 영업중,,,, [9] ㅇㅇ(123.215) 17.06.17 2229 49
1084423 희도라희랑 비엔나커피 마시러 왔다 [14] ㅇㅇ(121.160) 17.06.17 2373 71
1084384 선영맘과 선우 (본체주의) [25] ㅇㅇ(223.62) 17.06.16 4578 128
1084378 최택 구뉴짤 [16] ㅇㅇ(223.33) 17.06.16 4332 226
1084180 덕선이의 내조 [16] ㅇㅇ(175.223) 17.06.10 5753 115
1084118 새삼발린다 사범님 (뉴짤 고화질!) [14] ㅇㅇ(223.39) 17.06.06 4477 107
1084015 너네들 [7] 수미니네펜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06.02 1792 52
1083992 [세로로보는영상] 모바일전체화면추천_자기전에보면좋은응팔명장면 [5] 응쟈(175.210) 17.06.01 1969 50
1083969 이런게유행이라길래2 [13] ㅇㅇ(112.169) 17.05.31 3453 36
1083964 이런게 유행이라길래 [5] ㅇㅇ(211.246) 17.05.30 2456 38
1083963 뉴짤들 인별에서 퍼옴 [15] ㅇㅇ(223.62) 17.05.30 3809 89
1083919 여름이 오고있다 [11] ㅇㅇ(219.252) 17.05.28 1509 50
1083876 티벤과 통화했다 ㅠ [44] ㅇㅇ(223.62) 17.05.25 5658 28
1083856 우리집 희도라희도 봐주라 [7] ㅇㅇ(223.62) 17.05.24 1476 25
1083855 우리집 희도라희 볼래? [10] ㅇㅇ(110.70) 17.05.24 2186 25
1083840 선택이들 이랬을거 생각하면 뻐렁쳐 [3] ㅇㅇ(122.46) 17.05.23 3449 27
1083836 부탁 하는 것도, 받는 것도 싫은 사범님이 [9] 오늘 (220.240) 17.05.23 3466 73
1083830 나 샛 평점 433인증한다 [8] ㅇㅇ(175.223) 17.05.23 1404 27
1083826 글씨 써봤음 [9] 수미니네펜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05.22 930 49
1083775 와 짤 선정 최고다 우리 덕찌 [3] ㅇㅇ(125.178) 17.05.19 2770 53
1083771 덕선 본체 인스타 [25] ㅇㅇ(39.7) 17.05.19 5711 151
1083753 요즘 이게 유행하길래 한번 [20] ㅇㅇ(122.35) 17.05.18 3263 125
1083735 T/V ㅈㅅ에 응팔소환 [5] 감사해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05.17 1656 43
1083706 호키스 삼백만뷰 돌파 퍄퍄 [9] ㅇㅇ(122.46) 17.05.16 2138 111
1083699 ㄷㅐ만응팔사이트 사범님짤줍하다가 [7] ㅇㅇ(203.226) 17.05.16 3201 109
1083585 블딥 재추진 총머 오고있니 [21] ㅇㅇ(223.62) 17.05.10 3145 43
1083543 진짜 간만에 대사 써본다 [5] ㅇㅇ(220.80) 17.05.08 1865 57
1083492 18화 카페씬에서 덕선이 표정 무슨뜻이야? [11] ㅇㅇ(211.246) 17.05.07 5283 147
1083318 글씨 써봤음 [9] 수미니네펜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05.01 1168 47
1083271 낙서 몇개 [10] ㅇㅇ(119.67) 17.04.29 2059 60
1083222 상플러들 때려잡더니 4일간 올라온글 봐라 [45] ㅇㅇ(39.7) 17.04.28 7286 95
1083206 덕선본체 배우의자 인증은 갖고와도 되는거 아니냐 [15] ㅇㅇ(223.62) 17.04.27 4796 161
1083143 이거 좀 3D로 보이냐..? [14] ㅇㅇ(125.178) 17.04.24 2843 109
1083142 항상 보는사람만 보고 지킬사람만 지키는거 알지만 그래도 [117] ㅇㅇ(223.62) 17.04.24 7950 195
1083128 현망이 될 것임을 느낀 순간 나는 이거 [11] ㅇㅇ(125.178) 17.04.24 4026 119
1083116 인생이 조져짐을 실시간으로 느끼던날.. [14] ㅇㅇ(223.62) 17.04.23 4330 123
[선택/상플] 사랑니 4 [14] ㅁㄹㄲ(121.171) 17.04.23 6160 68
1083089 은방울꽃 [11] ㅇㅇ(110.70) 17.04.22 2440 45
1082945 성덕선 최택이 왜 아직도 보고싶은지 아는 사람? [68] ㅇㅇ(223.62) 17.04.18 5387 134
1082787 (팬아트)선우의 동룡덕선 일일 과외체험 [15] ㅇㅇ(49.254) 17.04.13 2985 112
1082776 나 마니또가 제일 감동받은 씬이 선우랑 아빠 대화ㅜ [7] ㅇㅇ(121.151) 17.04.13 2432 43
1082708 선우야 보고싶다 [5] ㅇㅇ(14.40) 17.04.11 799 34
1082674 존재 자체로 완벽하신 사범님 [3] ㅇㅇ(223.62) 17.04.11 2475 114
1082669 일화맘과 최택 본체 (ㅌㅂㅇㅈㅇ) [8] ㅇㅇ(223.38) 17.04.11 4951 185
1082604 택상플) 불계 6 [6] ㅁㅁㄴㅇ(218.209) 17.04.09 3562 63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