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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갤단편문학] 터렛.txt

황새(121.64) 2011.12.07 19:47:06
조회 3585 추천 43 댓글 61

1.

어째서였을까, 하면 대답은 부옇게 흐려진다.

남부 변방의 터렛 관리병이라 하면 대개는 조소와 부러움이 뒤섞인 어투로 "아, 그러세요," 하고는 ㅡ 모니터에 박힌 두어 마디 채팅에서 표정이 읽힌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ㅡ , 스팀팩 없는 섹스는 어린애 장난이라는 둥, 꼴통 부사수 녀석이 드랍쉽에 자원했다는 둥 자기들끼리 신나게 떠들어대기 십상이다. 더구나 거기에 솔깃해서, 쟁여둔 스팀팩 ㅡ 유통기한이 의심스러운 ㅡ 에 보급 포르노를 꺼내들고 자위에 열중하고 나서는 온통 자괴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겨우 보급 포르노라니!

아무튼 혼자서는 쓸쓸하다.

아무리 전쟁통에 당국이 미쳐 돌아가고 병력 수급이 유래없는 기근이라고 해도, 빈 터렛에서 세 번째 겨울을 홀로 맞는 건 정말이지 미칠 노릇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포대에 매달려 탄두를 해빙하는 도중에 더욱 심해졌다. 빌어먹을 화이트 크리스마스. 엿이나 먹으라지.

그리고 그 때 그것은 시야에 들어왔다.

쓸어놓은 게이트 앞에서 비칠거리는 자그마한 갈색 동물.

저그다. 순간 나는 백색으로 멀어지는 머릿속을 부여잡고 교전 메뉴얼을 떠올리려고 애를 썼지만, 이내 의문이 밀려왔다.

뭐 하는 놈이지?

정찰병이라기엔 너무 비칠거린다. 갈 때 다 된 부르드링인가? 하지만 레이더가 울린 적은 없다. 더구나 퀸은 씨가 마른지 오래다.

결정적으로, 너무 작다.

작다. 저렇게 작은 놈은 훈련소의 교육용 영상자료는 물론이고 딥웹에서도 본 적이 없다. 버림받은 저글링 새끼라니.


나는 매달린 채로 담배를 한 대 천천히 태웠다.




 

 

2.

부식고에는 맛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 ㅡ 나는 종종 이걸 만들어낸 당국의 멍청이들을 저주했다 ㅡ 장기보존식품이 그득히 쌓여있었다. 입이 하나라 남아도는 부식을 내버리기 귀찮아, 어차피 장기보존인데, 하고 방치한게 이 지경이다.

선입선출의 원칙에 따라 먼지구덩이에서 한 봉지를 꺼내든다. 제정신에 대한 의구심은 변방에서 피어나는 인도주의에 마침내 묻힌 것이다. 경계탑에서 내려다보니 녀석은 게이트 구석에서 몸을 구기고 있었다. 나는 봉지를 뜯어, 허여멀건한 눈밭에 휙 내던졌다.

메리 크리스마스다 이 자식아.

소리가 그다지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놀라 으르렁거리며 경계하다가, 경계탑에서 빤히 굽어보는 나를 발견하고, 봉지를 쳐다보고, 으르렁거리다가, 이내 코를 박고 정신없이 먹어대기 시작했다.
위해를 가할 줄 모르는 작고 어린 적이라.
적대적인 로빈슨 크루소와 윌리엄이라.


그리고 삼일 째, 맙소사, 녀석은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었다.

 




 

3.

겨울도 막바지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훈련소를 수료하고는 대체 몇 번 입어보지도 않은 함급 중기갑에다가, 탄창이며 스팀팩이며 바리바리 챙겨서 외부 게이트를 열었던 게 두 달 전이다. 그새 꽤 자란 녀석은 처음 보는 퍼런 쇠붙이에 으르렁대다가 ㅡ 나는 스팀팩을 움켜쥐었다 ㅡ, 손에 든 봉지를 보고는 또 꼬리를 흔들어댔었지.

결국 생전 하지도 않던 외곽 순찰에 재미를 붙였다. 말이 순찰이지 졸래졸래 따라오는 녀석과의 산책이다. 이걸 찍어서 올리면 네트워크 셀러브리티는 순식간이겠지, 싶지만 그건 영창이 아니라 연방 교도소 감이다. 항상 자중하고 있다.

썬팅된 헬멧 너머로 능선이 온통 하얗다. 전방의 능선은 허옇고 시뻘겋고 하려나. 여기서 목숨 하나 부지하는 게 어딘가, 이 녀석은 제 고향에서 목숨 값이 얼마였으려나.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걷는 도중이다.

멀리 시야에 걸치는 퍼런 쇠붙이. 꾸물거리며 빛나는 간헐적인 랜턴. 구조신호다. 맙소사. 어디서 드랍쉽이라도 떨어진 모양이군.

하고 서둘러 답신을 보내려는 참에,

곁에서 녀석이 미친듯이 돌진하기 시작한다.



심장이 고동한다. 능선은 너무나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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