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뽕 새끼가 가져온 스탠포드 "가장 공정한 교과서 일본" 은 쪽바리 주작임
http://iis-db.stanford.edu/res/2260/Divided-Memory_In-house_2008.pdf
이게 원출저다. 물론 저글에도 PDF 나 일본블로그 출저가 나와있는데..
이걸 보고 이야기하는 얘는 진짜 없네 ㅋㅋㅋㅋ
이거 오류가 있다. 와 이걸 그대로 퍼왓냐..
진실과 거짓을 교모하게 섞는다 = 혐한성향 그대로..
실제로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한국 교과서는 독립 운동에 대한 서술에 치중한 나머지 2차 대전에 대한 서술이 부족하여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에 대한 내용이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지, 한국이 자기 중심적으로 서술하고 있다거나 하는 지적은 없다.
(사실에 거짓을 교묘하게 섞어옴..)
저거 번역한 내용이.. 일본 블로그가 출저야.. 일본블로그가 원출저임. 오케이???
그걸 지 나름대로 해석한걸 그걸 그대로 퍼왔냐 ㅋㅋㅋㅋㅋㅋ
일개 한 일본 블로그에서 일본인 블로거가 원문을 지 꼴리는데로 번역해온 똥같은 글을 한국어로 번역한것. 그래서 마치 스탠포드가 한국 교과서는 '자기중심적' '주관적' 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왜곡. 영어 원문을 읽어 봤지만 일본인의 생각을 적은 댓글 수준이다. 원어 내용은 대충 "한중일 관계는 모두 화합해서 잘하자 식"인데 어떤 특정 나라만 찝어서 잘못했다가 절대 아님
On the contrary, the textbook notes that while the military deployed the idea of an “ABCD blockade” to justify war as a “self-defense” measure, the wartime government ultimately
came to justify as a war to emancipate Asia from colonial rule. (339) Once again it notes that “many Japanese were enthused about the successive victories of the Japanese military.”
it does not devote much space to the topic. The “looting,” “violence,” and “slaughter” of civilians and POWs at Nanjing are mentioned in a footnote, and so is the “havoc”
wreaked by the army’s search-and-destroy campaigns against the base areas in north China and the activities of Unit 731
On the other hand, the textbook devotes more much space to wartime hardships on the Japanese home front—increased government controls over the economy, the curbing of free speech,
It points out that the war brought sacrifices to the Japanese civilian population as well as to the Asian peoples
Finally, in contrast to the United States and China, Japan is a country where nationalism (pride in national culture and accomplishments) may be very strong.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문은 오히려 일본 까는 내용임 대충 해석하자면 일본은 전쟁 자체와 그 시기의 자기들이 벌인 각종 전쟁범죄들을 정당화하고 있으며, 전쟁시기 일본인들도 피해입었다고 언급함으로써 피해자코스프레를 시전중이라는 내용임. 마지막 줄에서는 일본은 미국, 중국과 달리 국가주의가 매우 강한 나라라고 디스 ㅋㅋㅋㅋㅋ
영어원문 다 읽어보고 쓰는거냐??? 아니면 영어 못 해서 일본쪽 기사 번역만 해보고 하는 소리냐?? 저 원문이 일본에게 절대 좋은 내용이 아닌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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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본의 신대문자 주작질
또 일본에서는 훈민정음이 일본의 신대 문자를 본뜬 것이라는 주장이 있어 왔다. 두 문자가 모양과 음까지 너무도 닮았고, 신대 문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니 훈민정음이 이 문자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하는 주장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18세기 에도 시대 중엽 이후 애국심에 불타는 일본 국학자들이 제기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진위를 다시 한번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신대 문자는 17~18세기에 훈민정음이 일본에 전파된 이후 이를 본따 만들었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신대 문자로 쓰여졌다는 문헌의 조사 결과 그 내용이 황당무계하다는 평가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 학계에서도 그러한 문자가 존재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리고 내용은 접어둔다 하더라도 어학적으로 보면, 신대 문자 주장에는 몇 가지 중요한 문제점이 발견된다(《세계의 문자》 참조).
첫째, 만약 신대 문자가 고대 일본에 있었다면 오늘날처럼 굳이 한자를 빌려 표기하는 문자체계를 갖게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둘째, 신대 문자는 모두 단음 문자로 되어 있어, 오늘날의 음절 문자인 가나보다도 더 발전된 형태를 취하고 있으므로 발전 과정이 반대라는 점이다. 셋째, 신대 문자는 47음에서 50음밖에 분리될 수 없는데, 가나가 발달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어의 음절은 47자 가지고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것이었다. 따라서, 신대 문자가 일본에서 가나나 《만엽집》에 등장하는 만엽가나 보다도 더 이전에 존재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우리의 가림토 문자도 이와 비슷한 문제점을 갖고 있으니 언어학적으로는 그리 의미가 없다고 하겠다.
[네이버 지식백과] 가림토 문자와 신대 문자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2. 4. 20., 김영사)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한글)이 그 원조가 일본의 신대문자라는 주작질을 수백년전부터 해오던 좆본 ㅋㅋㅋㅋㅋ 참고로 일본에선 지금도 신대문자 드립치는 또라이들이 존재함 ㅋㅋ
3. 일본의 역사주작가 후지무라 신이치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는 일본의 고고학자로 독학으로 고고학을 배운 후 1972년부터 발굴작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1981년 미야기현 자자라기(座散亂木) 유적에서 당시로서는 최고(最古)인 4만 수천년전의 석기를 발굴하고 이 후에도 그가 발굴하는 곳에서 항상 유물이 나와 `석기의 신' `신의 손'으로 불렸고 그가 발굴한 유적을 통해 일본의 인류역사가 7만-5만년 전에서 약 70만년 전까지로 거슬러 올라갔었다.
그러나 2000년 10월 그가 구석지 유적지에 석기를 파뭍는 모습이 몰래카메라에 포착돼 그 모습이 주요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유적날조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후 일본 고고학협회는 2000년 11월 긴급위원회를 열고 후지무라 신이치를 협회의 명예를 손상한 이유로 제명했다. 그리고 유적 조작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2001년 5월 유적 재검증 조사단을 구성, 후지무라가 관여한 홋카이도(北海道)에서 간토(關東)지방에 이르는 180여 곳의 유적들의 진위여부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그가 발굴한 총 180여곳의 유적 가운데 162개 구석기 전·중기 유적이 모두 날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써 일본의 인류 역사는 다시 비교적 확실한 유적이 존재하는 7만-5만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후지무라가 부이사장으로 있었던 일본의 도호쿠(東北) 구석기 문화 연구소는 후지무라가 관여한 74년 이후의 발굴 조사 내용을 재검증하고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보고서를 내놓아 그가 발굴에 참여한 70년대부터 30여년간 유적을 날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일본의 중고교에서 후지무라씨가 발굴에 참여했던 미야기(宮城)현의 자자라기(座散亂木) 유적 등에 대한 기술이 삭제됐고 국가 사적 지정이 해제되었다. 또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관련 유적을 잇따라 등록 취소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후지무라 신이치 [藤村新一]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주작질하다 걸린 사진)
일본학계는 한국보다 구석기 유적 년도가 밀린다는 열폭감에 후지무라신이치의 주작질이 근거가 부족하다는걸 알면서도 묵인함.
그 결과 주작질이 밝혀진 이후 한동안 일본 고고학계는 세계로부터 오만 욕을 처먹음 ㅇㅇ
4. 아베의 역사 재검증(웃음)
아베정부, ’역사 재검증‘착수…’위안부 등 침략전쟁 반성‘ 부정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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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벌 처벌한 도쿄재판, 군위안부ㆍ난징대학살 등 검증 대상
-한미중, 역사인식과 충돌... 뜨거운 논란 일듯
[헤럴드경제=모바일섹션]일본 집권 자민당과 아베 정부가 청일전쟁·러일전쟁 이후의 한국 등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식민지지배, 침략전쟁 등 현대사 재검증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민당은 특히 아시아국가에 엄청난 고통을 준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을 처벌하도록 결정한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까지 검증 대상으로 삼을 계획이다. 이에따라 국제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역사인식을 부정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교도통신은 자민당이 창당 60주년을 맞아 이달 중에 ’전쟁 및 역사 인식검증위원회‘를 당 총재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직속기관으로 설치키로 했다고 11일 보도했다.
위안부, 난징학살은 물론 도쿄전범재판, 이차대전 발발책임, ghq의 일본 통치 등까지 재검증하겠다는 아베상
5. 일제의 사진주작
일본 인종들의 똥송함을 가리기 위해 백인처럼 사진주작질하곤 명예백인(웃음) 행세
6. 임나일본부설 드립
- 일본 야마토정권이 4세기 후반 한반도 남부 지역에 진출, 가야에 일본부(日本府)라는 기관을 두고 지배했다는 주장으로, 일본의 한국사 왜곡 사례 중 하나. 2010년 3월 한ㆍ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서 사실이 아니며, 용어 자체를 폐기하기로 합의함
[네이버 지식백과] 임나일본부설 [任那日本府說]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현재 일본학계에서는 예전처럼 한반도 남부에 대한 식민지경영과 같은 주장은 거의 사라졌으나 임나일본부의 존재를 기내(畿內)의 야마토조정과는 무관한 규슈[九州]의 지방호족에 의해 설치되었다고 보는 견해로부터, 일본의 '출장소' 또는 '‘출장기관'과 같은 출선기관설(出先機關說) 등을 계속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것의 신빙성이 의심을 받자 이제는 선사시대부터 가야지역과 일본열도의 활발한 교류를 들어, 가야지역에 일부의 왜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게 되었고 이러한 왜인들을 통제하는 행정기관이 임나일본부였다는 '가야의 왜(倭)'설이나 왜의 식민지 지배기관이 아니라 가야에 파견된 왜의 사신들로 이해하는 외교사절설(外交使節說) 등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임나일본부설 [任那日本府說] (두산백과)
지들끼리도 말이 안맞아서 매번 말이 바뀌는 임나일본부설(웃음). 심지어 일본 내에서조차 임나일본부설은 그 진위가 의심받고 있는 실정임. 그런데도 일본 극우파들은 여전히 이걸 사실인것마냥 주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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