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불평등한 '나'의 무게>

‘나’가 ‘너’를 처음 만난 날, ‘나’는 단번에 ‘너’에게로 편입된다. 취미나 취향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small talk”)가 오가기도 전에 ‘너’의 모든 것은 이미 ‘나’에게 좋음으로 치환되어 버린다. “단점이라곤 없는 게 단점이라던” ‘너’의 그 허세까지도. 그러나 스스로 단점을 찾지 못하는 철옹성 같은 인간에게 타인의 영혼을 들여놓을 공간 따위는 없다. 애초에 ‘나’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예컨대 ‘나’는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음식은 싫어하는지 어떤 일을 할 때 기쁘고 어떤 사람을 보면 화가 나는지, 그러니까 ‘나’는 어떤 사람인지...그 이야기를 건너뛰고 시작한 만남 끝에 “내가 없어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필연적 결론이다. 

“좋아했던 립스틱”을 버리기까지 그간 ‘나’가 겪었을 숱한 불안을 그저 “까다롭고 힘든” 성미로 치부하던 ‘너’, ‘나’의 공허감을 “피곤한 생각” 쯤으로 뭉개던 ‘너’, '너'는 가늠해본 적도 없는 ‘나’의 세상을 유일하게 안아줄 수 있다고 자부하던 ‘너’, 그런 ‘너’를 애써 “달콤”함으로 감각하려던 ‘나’에게 남은 것은 “오늘 나눈 문자”에 적힌 “새로 산 티셔츠” 이야기뿐이다. 지금 '나'가 ‘너’와 나눌 수 있는 것은 고작 그 티셔츠 한 장처럼 한없이 가벼운 것. '너'와 '나' 사이에는 '무엇'을 걸치는지가 그것을 '누가' 걸치는지보다 늘 앞서 있다. ‘너’에게 모든 걸 “다 맞추려” 하는 이 불합리한 관계에서는 그 티셔츠 한 장조차 ‘나’와는 맞지 않는 옷이었으리라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그 서늘함을 자각한 ‘나’는 이제야 그동안의 석연찮았던 순간들을, 이유 모를 불편함들을 하나둘 자신의 언어로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저 달콤했던 “새벽의 긴 통화”마저 “피곤해졌”음을 느꼈을 때, ‘나’는 비로소 ‘너’와 ‘나’ “둘 사이에 너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를 감싸준다고 했던 '너'의 행동들이 사실은 ‘나’를 덮어두고 있었다는 것을. ‘너’가 ‘나’의 모든 날 모든 밤(“Every day, Every night”)을 좀먹고 있었다는 것을. ‘너’가 확신하던 등불(“light”)은 실제로 위태롭게 “깜빡거리”고 있었다는 사실을...이걸 나는 이제야 본 거지. 그리고 알았어. 내게도 그 불을 끌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말야. ‘너’에게 투영했던 ‘나’를 다시 나에게로 보내. "Gonna block you 불을 꺼 To. X."

INVU때 곡별로 감상평 남겼던 쓴이야!

가사가 너무 시적이어서 이번에도 해석충이 되기를 참을 수 없었어!

편지 테마로 만든 앨범이라 그런지 가사에 진짜 신경 많이 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보컬은 말할 것도 없지만 가사가 찐이야..단어들이 정말 유기체처럼 살아있어.

다른 수록곡들도 하나씩 풀어보고 싶은데 타이틀만 일단 곱씹어봤어.

갤주 말처럼 어느 하나라도 공감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