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0월 4일, 프로레슬링 사상 예가 없는 전대미문의 싸움이 펼쳐졌다.
시간 무제한, 관객 없음, 규칙 없음의 결투.
안토니오 이노키와 마사 사이토가 싸우는 무대는 간류시마. 프로레슬링 언론 외에도 주목을 모은 가운데, 싸움의 막이 올랐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1987년 여름부터 안토니오 이노키가 이끄는 NOW 리더군과 초슈 리키, 마에다 아키라, 후지나미 타츠미 등의 NEW 리더군에 의한 세대투쟁을 시작했다.
이건 TV 아사히가 시청률 상승을 노리며 주도한 스토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링 위의 결과가 어떻든간에 총수인 이노키가 '응'이라고 하지 않는한 세대교체는 어림 없었습니다. 당시 이노키도 전성기는 지났다고 해도, 단체 최고의 인기 선수임에는 변함이 없었고, 그 자리를 넘겨준다고 말할리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다른 선수들은 마음을 전혀 싣지 못하고 싸웠죠." (프로레슬링 라이터)
그 결과, 태그를 맺은 초슈와 후지나미 중 누가 이노키를 핀 폴할 것인지라는 복잡하고 난해한 스토리가 반복되었다.
"전문지를 빠짐없이 체크하는 매니아층에게 있어서 이런 이데올로기 투쟁에 끌리는 것도 있었겠죠.
하지만 선역 vs 악역의 권선징악을 원하는 역도산 시대 때부터 봐온 고참 팬들과, 타이거 마스크의 화려한 세계에 동경한 소년팬들 다수는 이런 전개를 따라가지 못하고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프로레슬링 라이터)
더불어 이때 라이벌인 전일본 프로레슬링은 초슈 유신군의 이탈로 존속위기에 닥쳤음에도 명확하게 '텐류혁명'이라는 구도를 보여 인기 부활의 전조를 보였다.
헤매는 신일본은 TV 방송이 금요일에서 화요일로 변경되었고, 이것이 또 인기 저하에 박차를 가했다.
"비트 타케시가 '프라이데이 습격 사건 (*개그 탤런트 비트 타케시가 제자들인 '타케시 군단' 멤버 11명을 이끌고 사진 주간지 '프라이데이' 편집부를 습격해 폭행 상해 사건으로까지 이어진 일)'으로 근신하게 되었고, 그가 맡았던 인기 방송 '스포츠 대장'이 휴방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 인기 시간대를 프로레슬링으로 커버하려 한 거지만, 시청자는 따라갈 수 없었죠. 방송시간 변경으로 시청 습관이 무너진 것도 있고, 제작이 스포츠쪽에서 버라이어티쪽으로 바뀜으로서 열렬한 프로레슬링 팬들의 반감을 사버렸습니다." (TV 아사히 관계자)
이렇게 프로레슬링과 버라이어티의 차이, 비트 타케시가 연관된 관계성은 훗날 TPG(타케시 프로레슬링 군단)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런 하락세의 상황하에서 이노키가 느닷없이 세운 계획이 '간류시마 결전'이었다.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코지로의 고사로 유명한 결투의 무대. 그곳에서 이노키가 마사 사이토와 관객 없이, 시간 무제한, 규칙 없음의 결투를 펼친다는 것이다.
처음엔 '어째서 세대투쟁 중에 구세대 끼리 싸우는 건가'라는 의문도 있었지만, 그 방대한 스케일감 앞에서는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전대미문의 싸움은 프로레슬링 이외의 일반 언론도 휘말리며 크게 주목받게 되었다.
그렇다해도 어째서 이노키는 이 싸움에 임한 것인가?
"브라질에서 사업을 한 안톤 하이셀의 파산에 의한 억 단위의 빚에, '잉꼬부부'라 불렸던 바이쇼 미츠코와의 이혼 위기... 참고로 이 이혼도 이노키가 바이쇼의 친족에게까지 빚을 진 것이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신일본 자체의 인기 저하도 겹쳐서 이때 궁지에 몰린 이노키는 훗날 '자살까지 생각했다'라고 이야기했을 정도입니다.
그런 가운데 치룬, 자포자기로 한 방 큰 불꽃을 쏘아 올려보자는 마음이 간류시마 결전이 된 겁니다." (프로레슬링 기자)
다만 정말 그것 뿐이었을까?
"관객따윈 상관없는, 아첨하지 않는 싸움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그러면 도장에서 싸우면 되죠. 진심은 어디까지나 사업으로서 주목을 모으고 싶다는 프로듀서 감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상황이 안좋아질수록 큰일을 함으로서 역경을 이겨내는 것이 이노키 스타일이니까요." (신일본 관계자)
시청률 저조에 놓여있던 TV 아사히가 간류시마의 화제에 뛰어들어 특별 프로그램을 편성하기로 한 것은 그런 예들 중 하나다.
세대교체, 이데올로기같은 세심한 것이 아닌, 근원적인 싸움이야말로 진정으로 팬들에게 어필이 된다.
이것은 이노키 일류의 직시인 것인가, 계산을 한 끝에 결정한 것인가, 그 어느 쪽도 아니었을까.
결전 당일, 간류시마 상공엔 보도 헬리콥터 4대가 시합 개시를 목 빠지듯 기다리고 있었다.
미야모토 무사시처럼 30분 늦게 이노키가 모습을 드러내고, 마침내 싸움이 시작되었다.
일진일퇴의 그라운드 공방은 1시간 이상이나 펼쳐졌고, 해가 지자 링 주위에 횃불이 켜졌다. 불에 비춰지는 가운데 사투는 계속되었고, 언제부턴가 두 사람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시합 시간은 2시간 5분 14초.
이노키가 사이토를 슬리퍼 홀드로 실신시키고, 비틀거리며 링을 내려감으로서 결판이 났다.
두 사람 모두 심각한 탈수증세를 보였고, 게다가 이노키는 쇄골을, 사이토는 명치 부근의 검상돌기(剣状突起)가 골절되었다.
"후지나미와 초슈가 각자의 고향, 오오이타와 야마구치 사이에 있는 간류시마에서 시합을 하면 재밌을거라는 이야기를 이노키가 베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과연 후지나미와 초슈가 이렇게까지 시합을 할 수 있었을까요. 역시 이노키는 위대합니다." (프로레슬링 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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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kkjzato.egloos.com/3199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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