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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근대화 vs 일본 식민지 근대화론

ㅇㅇ(122.44) 2018.12.25 20:06:05
조회 166 추천 0 댓글 0
														

한국의 근대화는 1876년 ~ 1910년까지 이미 진행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이를 방해했고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면서 우리 스스로의 근대화가 중단된 것입니다.


1910 ~ 1945년까지 일본 식민지배를 당하면서 식민지 형태에 맞는 근대화가 진행이 되는데 일본은 조선을 산업 국가로 만들기 보다 자신들이 필요한 것을 생산해서 공급해 주는 공급지 정도로 만들어 버립니다.


한국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로는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인 안병직과 그의 제자인 이병훈이 대표적이며 일본 경도대학 교수인 나카루마 데스를 들수 있다. 1980년대 이후 뉴라이트 계열의 안병직, 이영훈에 의해 부활되었다. 일제의 한국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뉴라이트와 이명박의 새로운 대안 역사 교과서와 박근혜 역사교과서 국정화 활동이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1924년 조선제국대학의 첫 신입생을 모집했다. 이후 ‘경성제국대학’으로 바뀌었다. 경성제국대학은 식민지 대학이라는 사명을 가진 일본의 제국대학일 뿐이었다. 


열강들이 식민지를 확보하려 애쓴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제국주의의 속성에 관해서는 상식 차원에서 확립되어 있는 인식이 있다. 뉴라이트는 이 상식을 무시한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선전을 아직도 곧이듣고 있는 자칭 '역사학자'들을 21세기 한국에서 보는 것이 놀랍다.


대한제국 시대에 이미 근대화 기틀은 잡혔고.일본만 아니였다면 대한제국 스스로 근대화 꽃피게 하고 휼륭히 근대화 이룩했을건데 일본식민지 세력이 대한제국 즉 한민족 스스로의 근대화 기회를 봉쇄하고 가로채간 세력일뿐입니다. 대한제국은 착실히 근대화 기반을 다져나가고 있었습니다. 대한제국의 각종 개혁의 결과물 입니다. 


한일병합이 있기 전에 조선의 근대화 과정의 모습

1897년 관제개혁

1898년 의회 설립 (중추원 : 임명의원 25명, 민선의원 25명)

서울시청[한성부 청사]의 모습

1894년 경무청(警務廳) 창설. 근대경찰 제도 시작.

1895년 근대 소방시스템 도입.

1895년 전국민 평등법 제정.


~교통, 통신~

1898년 전차개통

1898년 한성전기회사 설립. 전기보급시작.

1899년 철도개통. (1899년 촬영)

1897년 착공, 1900년 개통된 한강철교.

1884년 근대 우편제도 실시 (우체부)

1885년 電信 개통. 통신원 직원 기념 촬영.

1885년 電信 개통......1886년 전신교환원 사진

1903년 자동차 수입시작.


~의료~

1885년 서양의학 도입. (1904년 촬영, 세브란스병원)

1907년 촬영, 대한의원

1877-1910 박에스더 최초의 여의사

1903년 제네바협약 가입. 적십자 활동시작.


~군대~

1881년 군제 개편

대한제국군복

신식 무기 도입(암스트롱 포)

1894년 사관학교 설립 (1900년 촬영, 해군사관학교)

1903년 신식군함 도입


~교육~

1883년 근대교육 실시

1883년 근대교육 당시의 교과서

1885년 서양시찰 유학생

1886년 여성교육 실시

1899년 외국어 전문학교 설립


~언론~

1883년 근대 언론 시작 (신문사의 모습)

1896년 민간 신문 발간. 독립신문-한글판과 영어판으로 발간.

1898년 일간지 발행시작.

1898년 민중집회 시작 만민공동회


~경제~

1902년 근대 화폐제도 실시

유통된 금화

1904년 은행권

1883년 전환국 설치. 근대화폐 발행시작.

1897년 보험회사 설립, 보험업무시작.

1897년 민간 자본은행 설립 , 1898년 대한제국의 채무 해결. (한성은행)

충남 익산 금광 (1899년 촬영)

1895년 운산광산

1906년 공업전습소 설립. 공업개혁에 박차.

1899년 상업, 경제전문 일간지 창간


~외교~

1883년 미국에 외교사절단 파견

1888년 미국 워싱턴 주재 영사관 업무시작. (사진은 1891년)

1907년 네덜란드에 특사파견

1900년 중명전 (외교사절 접견장)


~문화 예술~

근대 창작소설 출판(혈의 누.1906년)이인직 저서

1895년 영화관 개관(표관)

근대 공연문화 시작 (1895년 협률사 공연)

국립극장 원각사 (1908년)


~종교~

1886년, 종교와 선교의 자유 획득,  1898년 명동성당

1892년 신학교 설립.

1898년 개신교 교회설립.

1890년 성공회 병원(성누가병원)설립.

샬트수녀원(1905년 촬영)


~SPORTS~

1906년 야구팀 설립.

1896년 축구팀 설립.

1900년 골프장 건설.

1894년 필드하키(또는 격구)를 즐기는 사람들


출처 :한류열풍 사랑  글쓴이 : 물기둥

http://cafe.daum.net/kokoin/EtaY/124?q=%C0%CF%BA%BB%20%BD%C4%B9%CE%C1%F6%20%B1%D9%B4%EB%C8%AD



이것부터 고치자!! 

현대 한국에서 제삿상에 올리는 술이 일제의 술인 '청주'이며, 일본식 발효주인 정종이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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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학당

1885년 미국 감리회 소속 H.G.아펜젤러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배재학당은 이듬해 고종황제로부터 교명 배재학당(培材學堂) 현판을 하사받았다.

배재는 배양영재(培養英材)의 줄임말로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란 뜻을 담고 있으며, 설립 당시부터 대학(PAI CHAI COLLEGE)으로 출발했다. 배재학당이 있는 정동은 한국 근대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다.  설립 초기부터 개방화된 전통을 이어받아 배재대는 40개 나라의 243개 대학 및 기관과 자매결연을 맺고 활발하게 교류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현재 74개 나라에서 유학 온 726명의 외국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뒤로 배재대학교, 배재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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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배재인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한글학자 주시경,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개화기 지식인 서재필, 윤치호, 김지호, 의학자이자 사회사업가 오긍선, 민족 시인 김소월 소설가 나도향, 여윤형(자퇴), 최초의 한국인 음악교사, 애국가 작사가로 거론되는 인물중 하나인 김인식.



###1. 한국에서 근현대 체육은 언제부터 시작 되었을까요? 


1994년 갑신정변 이후 선교사들의 입국과 더불어 설립된 각종 기독교계 학교들은 복음전파와 새로운 서구 체육 문화를 보급하였다. 이들 기독교계 학교 가운데 배재학당은 최초로 선교사들의 지도 아래 근대 스포츠를 과외활동이나 특별활동으로 수용하였다. 이들은 과외활동으로 연설회, 강연회, 토론회와 같은 집회와 함께 야구, 축구, 정구와 같은 서양식 운동경기를 시작했다.

 

이와 같이 역사적으로 배재학당은 한국 체육의 선구자적 입장에서 각종 구기운동을 보급해 왔다. 다시 말하여 우리나라의 근대체육 발상지는 배재학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일제치하에서 배재는 이러한 체육을 민족운동의 원동력으로 삼아 항일에 늘 앞장서 왔다.

 

일제 식민교육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차별교육을 통한 우민교육이었으므로 모든 방면에 있어서 일본과의 공정한 경쟁은 사전에 철저히 봉쇄되어 있었다. 이러한 일제 식민통치하에서 일본학생과 어느 정도 동등한 입장에서 실력을 견줄 수 있었던 분야가 바로 체육활동이었다. 이 방면에서의 일본인과 일본 학생들에 대한 승리나 우승은 곧 일본민족에 대한 조선민족의 우월감의 발휘로 직결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배재 체육은 단순한 운동경기 수준을 넘어 나라 잃은 한과 울분을 이 체육경기를 통하여 풀곤 했다.

 

배재가 어느 종목에서 전 일본대회를 석권하게 되면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민족지들이 그 소식을 대서특필하고 때로는 호외까지 발행하기도 하였다. 이를 통하여 울적했던 당시 우리 민족의 사기앙양과 민족적 자부심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근대체육을 태동시켰을 뿐만 아니라 애국 체육의 선두주자였던 배재체육의 대표적 종목들을 살펴본다.


 

1. 기계체조

구한말 도포입고 ABC를 배우던 시절 시내 곳곳에 갓 쓰고 맨손체조를 하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바로 배재가 이러한 신 체육문화를 수용하고 보급하는데 선봉에 서 있었던 것이다. 1897년 배재학당 운동장에 우리나라 최초로 체조용 운동기구인 철봉, 사다리, 기구, 뜀틀 등이 구비되어 배재 학생들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이 시기의 배재 체육 시간은 이러한 기구들을 이용한 운동과 손, 팔, 허리, 머리 돌리기 등의 도수체조가 보급되었고 배재의 특별행사, 특히 운동회 때 시범을 보임으로써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2. 정구

1990년 배재가 최초로 정구부를 조직하여 각급 학교에 보급함으로써 배재의 명성을 드높였다. 처음에는 네트 대신 새끼줄을 치고 라켓 대신 널조각을 가지고 시작하였으나 그 후 정구의 인기도가 상승함에 따라 배재의 정구부가 한층 강화되었다. 그 이후 1925년 ‘전조선정구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많은 전국대회를 석권하여 정구부의 원조인 배재의 입지를 굳건히 하였다.


3. 축구

스포츠왕국 배재학당에 축구공이 구르기 시작한 것은 1902년 가을부터였다. 그 후 배재 축구는 전국적으로 단연 독보적인 존재였다. 배재는 1924년 ‘전조선학생기독교청년연합축구대회’, 이듬해 ‘전조선축구대회’ 등을 잇달아 제패함으로써 배재 축구의 무적 명성을 드높였던 것이다. 배재학당 축구선수로 가장 명성이 높았던 사람이자 조선을 대표하는 선수로 신국권 선수를 꼽을 수 있다.


4. 야구

배재의 야구부는 1911년 학교 최초로 조직되어 1920년에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에 참가하였다. 그 이후 1922년 조선체육회주최 ‘제3회전국야구대회’에 참가하였고 그 이후 1922년 조선체육회 주최 ‘제3회전국야구대회’에 참가하여 당시 중등부 패자로 군림하던 휘문보고팀을 3대0으로 물리치고 정상에 올랐다. 특기 1924년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전신)와의 대전에서 승리, 우승을 차지한 사실인데, 대학 팀을 상대로 승리하였다는 것은 배재 야구 전력이 막강하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 당시 최고의 선수였던 3루수 이영민의 명성은 실로 대단하였다. 오늘날 이 선수의 위업을 기리고자 전국 아마추어 야구선수권대회에서 ‘이영민타격상’이란 이름으로 매년 우수선수를 발굴, 시상하고 있다. 한편, 특기할만한 사실은 1922년 겨울에 배재 야구부가 미국메이저리그팀을 초청하여 친선경기를 펼쳤던 것이다. 이와 같이 배재는 전 조선을 대표하는 팀으로 성장하여 선진 야구를 수용하는 진취성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5. 육상

배재는 이미 축구와 야구의 전국제패로 그 명성이 널리 알려지고 인정받고 있었던 시기에 육상에서까지도 두각을 보이게 되어 배재 체육의 인기와 위상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되었다. 더구나 일제 치하에서 암울했던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준 사건들이 배재의 육상부를 통하여 나타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여 일본 학생들과 경쟁하여 승리하는 등 전 일본을 제패함으로써 체력과 육상경기에서는 조선 젊은이들이 일본인들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특히, 1937년 일본에서 육상 강호 144개교가 참가한 ‘전일본중등대항육상경기대회’에 양정을 물리치고 조선을 대표하여 참가한 배재 육상부는 종합점수 65점을 획득하여 우승하였다. 17점을 얻어 준우승한 우라와포화 중등 팀과는 무려 48점이나 났다. 이 우승은 일제시대에 일본 땅에서 조선민족의 한을 풀었던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러한 배재의 전 일본 제패 승전보로 전국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국내 매스컴들은 앞 다퉈 이 승리를 민족적 쾌거로 보도하였고, 특히 조선일보는 호외까지 발행하면서 대서특필하였다. 전국이 당시 이렇게 열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1년 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살 사건으로 반일 감정이 전국을 휩쓸고 있었던 시기였으므로 배재 육상의 전 일본 제패는 1년 전의 민족적 감격을 재생시키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6. 유도, 검도

사립학교에서 유도와 검도를 필수과목으로 채택한 최초의 학교가 바로 배재이다. 1925년부터 유도와 검도가 전국체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배재의 유도부는 1927년 ‘강무관 개설 5주년 연무대회’ 및 1931년 ‘제3회 전 조선중등학교 유도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그 명성을 드높였다.

 

7. 권투

권투는 1931년 중등에서 최초로 조직되었다. 그 당시 사회적으로 아직 인기를 끌지 않았던 권투를 배재가 운동부 조직을 하게 된 것도 배재의 진취성을 보여주는 일면이기도 하다. 이후 배재 권투는 전국대회를 석권하며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8. 럭비

럭비 배재는 1932년 조직되어 일본대회 대표팀 선발경기에서 우승하는 등 전 조선을 대표하는 팀으로 성장하였다. 특히, 1936년 일본 갑자원대회 결승전에서 대만의 대북제일중학교 팀을 누르고 우승함으로써 전 일본을 제패하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9. 탁구

1933년 조직된 배재 탁구는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종목으로 군림하였다. 특히, 1938년 ‘전일본중등탁구선수권대회’ 준우승에 이어 1940년에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배재가 일본을 제패하는 종목으로서 탁구도 그 이름을 올려놓았다.


그밖에 1922년 빙상부 등 총 15개 분야에서 학교 최초로 운동부를 조직하여 명실 공히 우리나라 학원스포츠 요람구실을 하였다. 이와 같이 배재학당은 체육을 통하여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나아가 한국이 오늘날 스포츠 선진국으로 부상하는데 배재가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김홍설 배재대학교 레저스포츠학과 교수


[출처] 한국체육의 발상지 배재학당(배재신문 2005.6.7)|작성자 배재대레저스포츠학과


###2. 한국에서 신문은 언제부터 매일 발행했을까요?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는 신문은 언제부터 매일 발행했을까요? 

시작을 알려면 구한말에 나온 '협성회회보'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협성회회보(매일신문) → 독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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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일간신문인 매일신문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이권침탈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협성회회보(왼쪽)는 배재학당 학생들이 만든 협성회의 회보로, 자주독립정신을 고취했다. 신문박물관 제공


협성회회보(매일신문) 


협성회회보는 배재학당 학생들이 만든 협성회(協成會)에서 발행한 회보입니다.


협성회 회보(協成會 會報)는 배재학당의 학생회인 협성회(協成會)가 1898.1.1 창간한 주간 신문이다. 편집 체재와 내용은 일반을 상대로 하는 종합지의 성격을 띠었으며 외부의 보조를 받지 않고 발행된 신문이다. 자주 독립 정신 고취 및 비판기능 등을 갖춘 신문으로서 최초의 일간지인 매일신문의 기초가 되었으며, 우리나라 근대 신문발달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배재학당은 선교사인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1858∼1902)가 1885년에 설립한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입니다. 여기서 강의를 맡았던 서재필(徐載弼·1864∼1951) 선생의 지도 아래 사회 참여적이고 민주적인 토론회를 전개하여 민중의 큰 호응을 이끌었습니다.


이들은 토론 내용과 결과를 널리 알리며 개화정신을 고취시킬 신문 발행의 필요성을 느껴 1898년 1월 1일 협성회회보를 창간했습니다. 자주독립정신을 고취하고 사회비판 기능을 갖춘 주간신문으로 시작해서 이후 일간지로 발전합니다.


1898년 4월 2일 제14호까지는 주간으로 발행하다가 회를 거듭할수록 큰 호응을 얻자 같은 해 4월 9일부터는 '매일신문'으로 제호를 바꿔 국내 최초의 일간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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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

매일신문보다 2년 앞선 1896년 창간된 독립신문은 격일로 주3회 발행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자주적인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말과 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주시경은 독립운동가 서재필을 만나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한글로 만들어진 '독립신문'을 창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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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디 흔한 133년 전통의 명문사학 배재대학교 품위.


배재는 배양영재(培養英材)의 줄임말로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란 뜻을 담고 있으며, 설립 당시부터 대학(PAI CHAI COLLEGE)으로 출발했다. 설립 초기부터 개방화된 전통을 이어받아 배재대는 40개 나라의 243개 대학 및 기관과 자매결연을 맺고 활발하게 교류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현재 74개 나라에서 유학 온 726명의 외국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배재대는 교육부의 '잘 가르치는 대학' 대학자율역량강화지원사업(ACE+), 대전 유일 사회맞춤형 산학협력선도대학(LINC+) 육성사업 학과중점형, 고용노동부의 IPP형 일학습병행제 및 듀얼공동훈련센터, 대학일자리본부(국내취업거점대학), 청해진대학 운영기관(해외취업거점대학)에 잇달아 선정돼 양질의 교육과 취·창업 인프라를 확충했다.

 

"의심할 나위도 없이 조선에서 가장 교육적, 도덕적, 지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고 지금도 행사하고 있는 학교는 배재대학이다."

-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388쪽. 이사벨라 비숍(Isabella Bird Bishop)

 

Let me inside make me stay right beside you, PAI CHAI Univ.

 

... 무릇 캠퍼스 천하를 읽지 않은 자와는 '배재대'를 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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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4년제 대학 갤러리 이용 안내 [338] 운영자 07.06.12 143872 58
5664779 내부고발자가 무서운 이유 ㄷㄷ ㅇㅇㅇㅇ(121.154) 02:29 1 0
5664778 나보다 불행한 인생 사는사람있냐 [1] 어쩌기기기기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5 26 1
5664777 내부고발자가 무서운 이유 ㄷㄷ ㅇㅇㅇㅇ(121.154) 01:59 19 0
5664776 ㅈㄴ신기한게 왜 가천훌리만많음? [1] (121.137) 01:40 36 0
5664773 서울대 연대는 대학원 인원이 많은 연구중심대 일껄요. 설연>>>>기타잡 4갤러(106.102) 00:47 29 0
5664772 고퀴 왜 발작하노? 아웃풋 공식자료가 넘 치명적이었노??? 4갤러(106.102) 00:46 19 2
5664771 명지대 버리고 지거국 갔는데 [10] 4갤러(116.120) 00:39 111 2
5664770 왜 우리 구려가 안보이지 ㅇㅇ(106.101) 00:24 16 0
5664769 대통령장학생수 대학 순위 [2] 4갤러(175.192) 00:24 59 1
5664768 연세대 동문수가 고려대보다 만명이상 많음. 4갤러(175.192) 00:18 34 2
5664767 연세대는 행정고시 수석도 많은데 장차관은 고대랑 두배이상차이나네ㅋㅋ [1] 4갤러(175.192) 00:08 36 1
5664766 서강대 구라입결에 낚이지마라 [1] (221.147) 00:07 26 3
5664765 그리고 '고법연상'이라 불릴때도 당시 연세대 학풍은 유학도 아니였어 [1] 4갤러(175.192) 00:03 42 2
5664764 물량빨 1위 대학은 연세대였지 4갤러(175.192) 00:00 38 3
5664763 연세대 졸업생도 본인들이 고려대에 비해 학풍 딸린다고 인정하는데... 4갤러(175.192) 06.08 41 3
5664762 서울시립대에 대한 단상... 4갤러(121.150) 06.08 52 5
5664760 공부 잘하는 수험생들이 가고 싶어하는 대학 [1] oo(59.3) 06.08 75 1
5664759 아웃풋 종결 [7] 4갤러(115.92) 06.08 117 10
5664758 한양이나 성균이나 또이또이 아니냐 [1] 4갤러(121.150) 06.08 56 3
5664757 서연고한/서성중시건경/외동홍숭아곽 [4] 4갤러(118.235) 06.08 38 8
5664756 시립대 얘기하면 몰려오는 정신병자들 [4] 4갤러(220.121) 06.08 62 8
5664755 문재인의 차도살인 [1] ㅇㅇ(118.235) 06.08 32 1
5664754 근본 입결표.jpg [14] 4갤러(106.101) 06.08 531 19
5664752 우리 구려 또 빡치겠네 ㅇㅇ(106.101) 06.08 32 1
5664751 자기 대학 최고 아웃풋 적고 개추 박고 가셈 [3] 4갤러(1.243) 06.08 98 3
5664750 성퀴와 한퀴 능지 대결 [2] ㅇㅇ(118.235) 06.08 70 4
5664749 고대가 인원빨인 이유 보여준다 4갤러(106.102) 06.08 68 4
5664748 한양대가 성대 이기는 아웃풋 딱 하나라도 대봐라 [7] ㅇㅇ(106.101) 06.08 78 3
5664747 SKY대학생들 80%이상 잘사죠? ㅇㅇ(116.43) 06.08 38 1
5664746 작년 고시급 싹다 연>고 였지않냐??? [3] 4갤러(106.102) 06.08 70 4
5664745 서울대생 친구가 말한 명문대학 [4] 4갤러(1.243) 06.08 132 2
5664744 근데 나는 진지하게 건국대보다 동국대가 좋은 덴거 같다. [6] 4갤러(14.63) 06.08 87 4
5664741 설카 포연 고한 서성 중경 시외 4갤러(218.155) 06.08 38 6
5664740 고대 vs 연대는 너무 쉬움 [5] ㅇㅇ(58.29) 06.08 117 2
5664739 문과 톱10 - 서연고 성서한 중경시외 [1] 4갤러(218.55) 06.08 66 6
5664738 시대인재가 왜 공식입결을 안만든다하겠냐 [4] 4갤러(118.235) 06.08 108 6
5664737 한양공대라는 이름은 전국민에 깊히 새겨진 명문공대의대명사다 [8] (223.38) 06.08 86 4
5664736 헬린아 시대인재 한번 더 털리면 너 때문인줄 알아라 [1] 4갤러(118.235) 06.08 52 5
5664734 "미국이 강국인 이유~~" ㅇㅇ(1.234) 06.08 39 1
5664732 그냥 좀 닥쳐라 4갤러(220.78) 06.08 41 0
5664731 ♧ 학생교육 우수대학 & 재학생 만족도 4갤러(223.38) 06.08 68 1
5664730 밑에 10개 대학이 합쳐서 서울대랑 붙으면 [1] 4갤러(1.243) 06.08 84 2
5664729 인하대가 인천대보다 나은점이 뭐임? [3] 4갤러(211.234) 06.08 95 1
5664728 "대한민국은 어떻게 일본을 뛰어넘었나~~? [2] ㅇㅇ(1.234) 06.08 73 3
5664727 한양대 경쟁상대는 스탠퍼드 프린스턴 MIT 입니다 [6] ㅇㅇ(118.235) 06.08 83 5
5664726 문중이한에 대한 착각 [2] 4갤러(124.80) 06.08 51 1
5664725 코핌이랑 헬린이가 입시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 [5] 4갤러(175.194) 06.08 85 7
5664724 "일본이 망한 이유 하나~~" ㅇㅇ(1.234) 06.08 63 4
5664723 장난 아니고 3여대와 맞장뜨는 대학 [1] ㅇㅇ(118.235) 06.08 10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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