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침몰했습니다... 그녀는 함수에서 좌현으로 침몰하여 A 포탑만 보였죠. 잠시 멈춘후 바다속으로 사라졌고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이었습니다." HMS Edinburgh의 마지막순간, 승무원의 기억입니다. 1942년 5월 2일, 북해 수송선단의 전투가 최고조에 이르렀을때 였습니다.
이 영국의 경순양함은 무르만스크에서 영국의 모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녀는 특이한 화물을 싣고있었는데, 그것은 5번 탄약고에있는 반톤의 금괴였습니다. 이는 러시아가 미국의 무기대여에대한 지불금이었습니다. 항구에서 나온지 이틀만에 독일의 어뢰에 기동불능이 되었고 Stuart Bonham-Carter제독의 결단으로 영국 구축함에의해 뇌격처분되어 60명의 장병들과 465개의 러시아 금괴와함께 차가운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HMS Edinburgh
기동불능이 된 HMS Edinburgh
40년동안 HMS Edinburgh는 바렌츠 해의 북극권 아래에 잠들어 있었다. 낮은 수온과 깊이는 일반적인 인양으로는 화물을 수거하지 못하게 하였다. 어떤 잠수부도 이렇게 깊이 갈수 없었으며, 또한 전쟁 기념물로 지정되어 폭발물로 열고 들어가 물건을 가져갈수도 없었다. 수십년동안 HMS Edinburgh는 잠수부들의 성배였고 무한한 욕망의 대상이었지만 누구도 도달할수 없었다.
Keith Jessop은 이를 인양할수있을것이라 믿었다. 전직 잠수부였던 그는 소형 화물의 인양을 해보았고 HMS Edinburgh의 금괴를 인양하기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는 또한 HMS Edinburgh의 전직 제독과 함장에게 탄약고에 금괴가 있다는 증언을 듣고 이것이 단지 늙은이가 지어낸 보물전설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는 또한 어떻게 이 전쟁기념물을 훼손 시키지 않고 금괴를 빼올지 알았다.
해답은 Saturation Diving이라는 기술이다. 이는 북해에서 유전에서 쓰이던 방법인데 심해로 갈수록 수압이 강해져 체내의 -특히 폐의- 압력을 맞춰야했다. 이는 다양한 가스를 적정량 섞어서 흡입하면 되는것이었다. 800피트 아래로 내려가면 수면의 23배의 수압이 생기고 이를 상쇄하기 위해선 공기보다 23배 밀도가 높은 기체를 마셔야했다. 이는 체내에 흡수되어 압력을 맞추어 깊은 물속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이게 할수 있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굉장히 비싸다. 특수한 배, 감압챔버, 다이빙벨 등등 현대 다이빙기술의 모든것이 필요했다. 이는 하루에 약 10000 파운드나 들었고 Jessop은 무명의 다이버였다. 그는 투자자들을 찾아다녔고 Wharton-Willians의 Aberdeen Shipping Firm, 독일의 해상수송회사 OSA, 그리고 해저 지형탐사업체인 Racal-Decca Surveys가 투자를 약속했다. 그러나 금괴들이 온전할것이란 보장이 없었다. 탄약고가 박살나진 않았을까? 금괴들이 해저 바닥에 흩뿌려져있진 않을까? 이를 알기위한 사전조사만 2000000 파운드가 들것이고 더 들수도있다.
또한 성공하지 못하면 감당할 리스크가 너무 컸다. 그러나 리스크가 큰만큼 성공했은때 이득도 컸다. 금괴는 총 당시 가치로 45000000 파운드였다. 2차대전당시 영국과 러시아는 화물에 보험을 들었고 이것이 회수되었을때 55%는 영국정부에 지불해야했다. 그래도 20000000파운드가 넘는 이득이었다.
그러나 그전에 HMS Edinburgh을 찾아야했다 Racal-Decca는 1500 제곱마일 (마일은 약 1.6km) 을 수색했고 독일, 영국, 소련의 기록을 뒤졌다. 과거 영국의 기뢰제거선 HMS Harrier는 침몰직후 HMS Edinburg의 침몰 위치를 찾았고 팀은 이것을 바탕으로 수색했다.
그들은 1981년 5월 노르웨이에서 출발하여 수색을 시작했다. 프로젝트 감독인 James Ringrose는 이것을 짙은 안개낀 런던에서 횃불만으로 사람을 찾는것이라고 비우했다.
그러나 믿을수 없게도 첫번째 수색에서 소나에 잔해가 발견되었다. 이것이 HMS Edinburgh란 확신이 없었기에 Scorpio라는 무인 잠수로봇을 보내 흑백 카메라로 촬영했다. 두시간동안 흐릿한 카메라로는 잔해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함체를 천천히 살폈을때 HMS Edinburgh의 6인치포가 보였다. 이들의 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고 어뢰에 의한 손상을 보았을때 어뢰는 탄약고를 피해맞았다.
세달후, 잠수와 인양이 시작되었다. 여전히 잠수는 굉장히 위험했고 엄청난 추위로 인해 잠수복에는 뜨거운물이 보급되지 않으면 의식을 잃기까지 겨우 8분을 버틸수있었다. 잠수부들의 목숨은 순전히 배에있는 인원들에의해 결정됬다. 호흡장치가 실패할경우 등에있는 4분짜리 비상용 깡통으로 다이빙벨에 돌아와야했다.
이 잠수부들은 800피트 아래에서 앞도 잘안보이는 극한상황에서 금괴를 찾아담아야했다. 그렇지 못하면 빈털털이가될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돈보다 귀중한것을 걸고 들어가는것이었다.
9월 16일 오전 10시 48분, 항해 19일째 통신으로 보고가 들어왔다. 헬륨으로 높아진 목소리로 "찾았다! 금괴를 찾았다!"라는 통신이 들어왔다. 처음 금괴를 손에쥔건 짐바브웨출신 John Bossier였다. 그후, 끝없는 반짝이는 케이지들의 행렬은 배위로 올라갔다. 밤낮으로 금괴로 가득찬 상자들이 올라와 선내의 금고에 들어갔고 날씨때문에 철수할즈음엔 431개의 금괴를 건져올렸다. 약 40000000파운드의 가치였다.
그러나 금괴만이 그들이 건져올린 전부가 아니었다. 그들은 어둠속에서 금괴인지 분간할수없어 전사자들의 유해도 일부 올려보냈다. 그 병사들은 어둠속에서 가라앉는 배에서 죽어갔을것이다. 꺼져가는 불빛과 비좁은 선내에서, 공포속에서 죽어간 수병들을 생각하며 Jessop은 말했다.
"우리는 이 작업이 힘들다고 불평했지만 죽어간 전사자들의 고통의 반도 안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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