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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에 만연한 무뇌자유주의 경고한 하재근 칼럼 ㄷㄷ

ㅇㅇ(222.101) 2018.06.16 17:45:58
조회 61 추천 0 댓글 0

[하재근칼럼] 국가는 시장으로 넘어간 권력을 되찾으라
 
   
 
엔클로져 운동을 아시지요? 멀쩡히 대대손손 농사짓고 있던 사람들을 쫓아내 도시의 임노동자로 만든 운동입니다. 중세 봉건사회를 해체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만든 사건이지요. 다른 관점으로 말하자면 토지와 봉건적 예속에 속박됐던 농투성이들을 자유인으로 만든 사건입니다. 이제 농민은 신분세습을 벗어나 계약하는 주체가 되어 자유를 향유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그 자유란 것이 기실 얼마나 처참한 것이었습니까. 장시간 노동, 미성년 노동, 불결한 환경, 과밀 주거, 악취, 기아. 살기 위해선 끊임없는 노동, 노동, 노동, 허리가 휘도록 온 가족이 노동해도 벗어날 수 없는 빈곤의 굴레. 그렇습니다. 자유는 민중에게 빈곤만을 안겨 주었습니다.

농노는 빈곤할 자유가 없지요. 귀족의 재산이니까요. 개에게 굶어죽을 자유가 없는 것처럼 귀족의 노예에게도 굶어죽을 자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유는 민중에게 기아를 허락합니다. 이제부터 원 없이 굶을 수 있습니다. 농노는 자기 몸을 망가뜨릴 자유가 없었으나 자유인인 노동자는 자기 몸을 망가뜨리면서 노동할 자유가 있습니다.

거시적으로 보면 이 사건은 봉건제에서 근대 민주주의 사회로 도약하는 과도기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당시 노동자들의 실태를 전하는 문서를 보면 마치 그 문서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듯하지만 지금 우리는 담담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건 진보를 위한 과정이었다고.

하지만 우리가 만약 당대에 사는 노동자였다고 해도 담담하게 “이건 과정이야. 우리가 견뎌내야 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바로 어제까지 비록 여유는 없지만 그래도 이웃 간에 정을 나누며 아이들과 단란하게 살았던 기억이 남아있는데? 나중에 방앗간 집 여식과 짝지어 주어 오순도순 살게 하려던 내 아들이 지금 도시 공장에 가서 종일 일하느라 산 송장이 됐는데?

농민이 토지와 봉건적 향촌사회로부터 해방돼 계약할 수 있는 자유로운 주체가 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첫 걸음입니다. 여기서부터 평등과 자유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 기아에 허덕이는 노동자들에게 민주니, 자유니 하는 말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 노동자들은 그저 보다 싼 노동력으로서의 사회적 의미만 있는 것을요.

한국사회는 지금 시민혁명을 겪고 있습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이라는 아버지는 국민을 농노로 거느렸습니다. 그 아버지들이 국가를 조직한 원리는 연공서열이었습니다. 봉건적 향촌사회와 그리 다를 것이 없는 가부장적 논리이지요.

그 가부장 아래서 민중은 태어나고, 학교에 다니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자식 낳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마치 농노들처럼.

그러다 6월 항쟁이 나고, 마침내 92년에 (유사)민주세력이 정권을 잡았습니다. 정권을 잡은 민주세력은 구체제를 해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라는 것을 들여옵니다. 자본에 의한 합리화 아래 봉건적, 가부장적 국가 구조는 점차 사라집니다.

IMF가 터지고 한국사회의 자유주의 개혁은 날개를 답니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이 등장했을 때 한국은 일체의 과거와 결별하기 시작합니다. 대통령이 스스로 가부장의 지위에서 내려옴으로서 구체제와 질적인 단절을 이룬 것입니다. 이제 공화국 시민들은 자유인이 됩니다. 이제 더 이상 국가가 날 잡아두지 않습니다. 자유롭게 나가 능력껏 살라고 합니다. 엔클로져 운동 당시의 민중들에게처럼.

역사는 반복됩니다. 가부장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가 기실 빈곤할 자유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자유인은 환영이요 그 실상은 저렴한 노동력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 말입니다. 자유 국가는 국민들에게 자유롭게 떠돌라고 합니다. 유연성을 한껏 높여서. 개인 능력을 맘껏 신장시켜서. 경쟁을 통해 부귀를 쟁취하라고 합니다. 이제 개인의 앞을 가로 막는 권력의 족쇄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보다 싼 노동력으로 부리기 위한 매트릭스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제 신민은 자유로운 개인이 됩니다. 혹은 불안에 떠는 앙상한 영혼이 됩니다. 인간은 그리 강한 존재가 못 됩니다. 인간은 공동체의 연대를 떠나선 살 수 없습니다. 특히 약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봉건적 사슬에 매여 있을 때는 그나마 삶이 예측 가능합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개인의 삶은 예측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제 개인은 경제적, 사회적, 실존적 불안에 떱니다. 구체제는 혁파됐는데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연대의 틀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허공에 붕 떠서 발을 디딜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국가는 그저 나에게 자유로우라고만 윽박지릅니다. 민주주의랍니다. 좋은 세상이 왔답니다. 어떻게 된 것인가요?

한국사회는 지금 정치적으론 분명히 진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피폐함으로 그 빛이 바래는 형국입니다. 정치적 진보에 의한 국가의 퇴조는 곧 전 국가의 시장화를 가져왔습니다. 이젠 시장만이 진리가 되는 이 나라에서, 정치적 민주화의 결과로 우리 앞에 던져진 시장은 민중들에게 삶의 불안만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정치진보를 떠받치고 있는 개혁세력이 아무리 자유, 민주의 가치를 말해도 먹히질 않습니다. 당연하지요. 배가 고픈데요. 삶이 불안한데요.

민주가 중한가요, 밥이 중한가요. 당연히 밥이지요. 천 번 만 번 다시 말해도 밥입니다. 첫째도 밥, 둘째도 밥, 셋째도 밥입니다. 배고픈 민주는 민주가 아닙니다. 생존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민주는 공허합니다. 밥보다 정치개혁이라는 구호는 책상물림의 몽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자유, 민주가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을 때, 사회가 나에게 연대의 손을 내밀어주지 않을 때 인간은 환멸과 불안에 빠집니다. 그 때 등뼈가 튼튼한 시민사회는 오히려 앞으로 치고 나갑니다. 그래서 유럽의 복지사회가 등장한 것이지요. 엔클로져 전의 봉건적 향촌 공동체를 대체할 근대적 시민공동체로서의 복지사회입니다.

그러나 등뼈가 튼튼하지 않은 나라는 종종 다시 가부장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독일과 일본의 민중들. 박정희를 순순히 맞은 한국인들. 혼란과 예측불가능성 앞에서 가부장이 보장해주는 노예의 안정을 희구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사회에 부는 박정희 바람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대중이 민주를 혼란 그 이상의 것도 이하의 것도 아니라고 여긴다면? 반동이 있을 뿐입니다. 민주의 딜레마를 민주로 풀 수 있습니까? 성숙한 시민사회였다면 애초에 민주의 혼란이 생기지 않았을 테니 지금 미숙한 민주로 생기는 혼란을 다시 민주로 풀 순 없습니다. 모든 책임을 국민들에게 던지고 국가권력은 개입 안 할 테니 알아서 하라고 해서 될 일이 아니란 것입니다.

산업혁명 직후의 노동자들에게 “당신들의 고통은 단지 과정일 뿐이야“라는 말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듯이, 지금 고통을 느끼는 남한의 민중들에게 ”당신들의 고통은 단지 과정일 뿐이야“라는 설득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정치인이 이렇게 나올 수록 국민과 유리될 뿐입니다.

국가가 봉건적 공동체를 대체할 새 시민공동체 건설의 기치를 들어야 합니다. 보금자리에서 쫓겨난 민중의 발 아래 안전망을 깔아줘야 합니다. 복지사회의 비전을 제시해서 다시 국민들의 가슴 속에 희망의 불을 질러야 합니다. 환멸과 냉소 대신에 말입니다.

우리가 정치적으로 세계에 유래가 없는 압축성장을 하고 있는 것처럼 시민공동체 건설과 복지사회 진입도 그렇게 해치워야 합니다. 다시 횃불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국가가 분명한 그림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리고 힘을 행사해야 합니다.

미숙한 시민사회더러 자유롭게 알아서 하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권력을 집행해야 합니다. 국가는 한낱 시장의 관리자 따위가 아니라 다시 민중의 아버지로 우뚝 서야 합니다. 오직 국가권력만이 기득권 계급에 대해 민중의 이익을 수호할 수 있습니다. 오직 국가권력만이 공공적 이해를 대변할 수 있습니다. 오직 국가권력만이 시장의 실패를 교정할 수 있습니다.

국가권력은 시민사회의 합의를 추인만 할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정의, 연대의 이념에 입각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비정규직, 노사정, 복지 문제 등 제반 이슈에 권력이 팔짱을 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국민적 합의가 무슨 소용입니까. 국가의 방임정책은 결국 민중을 기득권, 대자본 세력의 먹이로 던져주는 의미밖에 없습니다.

‘시장의 실패’를 인정하고 이제 국가가 시장으로 넘어간 권력을 다시 되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새로운 공동체 건설을 위한 한국 사회 대개조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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