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갤 트렌드를 따라 저도 글 한 번 써 봅니다.
<주의 : 야한 것도 Ya!한 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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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야기를 하자면 내 소개를 하는게 순서다. 하지만 뭐라 소개하면 좋을까. 아직 본론은
꺼내지도 않았는데 시작하기 전 부터 막혀버리고 만다. 제식번호? 흔하디 흔한 알파벳과
대쉬(Dash), 그리고 숫자의 조합이다. 별칭? 아마 다들 처음엔 뭐로 지을까 고민했지만
결국 대충 아무거로나 지었단 티가 역력한 별칭이다. 이것으로 내 소개를 해봤자 너무 흔한
별칭이라 혼동만 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를 뭐로 설명하면 좋단 말인가.
하지만 시작도 하기전에 이런식으로 시간을 허비해봤자 공회전으로 JP8 연료만 축낼 뿐이다.
아무리 저유가 시대라지지만 유류비만 축내고 앉아있을 순 없다. 어떻게든 이야기를 시작하자.
영차-라고 소리라도 내볼까. 아니, 기왕이면 좀 더 그럴싸하게 RPM up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그거라곤 해도 분위기란게 중요할 수도 있으니.
RPM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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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벌써 몇 해 전이다. 원래라면 서로 만날일 없는, 아니 굳이 만난다면
서로 미사일을 날리며 누군가 하나는 터져버릴 그런 사이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그녀를 만난
곳은 한 에어쇼 행사장에서였다. 여기서 터지는 것이라고는 연막탄 정도 뿐이다. 뭐 이건 이것대로
동체에 묻어나서 뒤처리가 귀찮지만.
하여간에 나는 그곳에서 인테이크가 땅에 늘어져라 헤 벌린채 그녀의 첫모습을 내 HUD 안에
담았다. 그녀는 스포트라이트를 혼자 받으며 우아하게 허공을 가로지르는 발레리나와도 같았
다. 아니면 아름다운 외모로 보는이의 혼을 빼놓으면서도 혹여 땅에 떨어질까 마음을 졸이게
만 공중그네를 타는 미녀 곡예사와도 같았다. 이렇게 구구절절한 형용사를 늘어 놓아도 뭐라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냥, 아름다웠다.
'플랭커란 이름은 별로 맘에 들지 않아. 물고기침대니 개구리발이니 보단 낫지만.'
나중에 언젠가 그녀가 VHF 무전기를 통해 내게 한 말이다. 어차피 정식 명칭은 아니고 그녀의
이름조차 몰라서 임의로 붙인 나토코드. 그러나 모두가 그녀의 이름으로 알고 있는 단어.
플랭커.
사전을 찾아보자. Flanker. 미식축구의 하프백 공격수. 나는 미식축구를 거의 보질 못해서
정확히 어떤 포지션인지는 모른다. 아마 플랭크(Flank)가 적의 측면이란 뜻이니 대충
측면을 파고드는 것이 아닐까 추측만 해 볼 뿐이다. 추측이 맞는지는 자신 없지만. 틀려도
나를 원망하지 말기 바란다.
그녀의 제식 명칭은 Su-37. 사실 플랭커는 그녀의 언니 뻘인 Su-27의 이름을 물려 받은
것에 불과하다. 뭐 계열기이니 그렇겠지만 남이 억지로 지어준 이름인데 그것 마저 자신
의것이 아니라 타인의 것에 불과하다니.
'제 이름은 Zhuravli라고 해요. 발음이 어려우시면 그냥 플랭커랄 부르셔도 되요.'
나중에 안 사실이만 Zhravli는 비공식적으로 그녀의 나라에서 붙인 별명이라고 한다.
두루미라는 뜻인데 목이 긴 그녀에게 꽤나 어울리는 별명이다. 특히 뒤로 뻗어 있는
테일붐은 다리를 뻗고 날아가는 학을 떠올린다.
사실 이 이름 역시 그녀의 언니인 Su-27이 원조지만 그녀는 언니보다도 목이 가늘고
긴 편이어서 두루미란 이름이 좀 더 어울린다. 적어도 내 생각엔.
에어쇼장에서는 각 나라의 항공기들이 모여들었다. 모두 각양각색의 장점들이 있고,
각 나라에서 내노라하는 석학들이 모여 만든 물건들이었지만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녀였다.
일단 그녀가 하늘로 올라가면, 나 뿐만 아니라 주변 다른 녀석들도 모두 그녀를
처다보느라 넋을 놓곤 했다. 어떤 녀석은 넋을 놓고 있다가 그만 점검창 커버를
닫는 것을 잊어버려 활주로 끝 라스트 찬스 점검장까지 커버를 덜렁덜렁 열고
갔다가 혼쭐이 났단 소리까지 들었다.
그녀가 비행을 마치면 모두들 공개 주파수로 그녀에게 한 마디씩 건넸다.
나도 그럴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나 같은 것이 감히.. 라는 생각에 나는 그저
정비이력서에 고개를 파묻고 다음 비행준비만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왜 나 같은 것에 관심을 가졌는지는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글쎄? 콤라드(동무)는 뭐라 생각해?'
만나고 나서 좀 더 지난 뒤, 언젠가 그녀에게 궁금해서 넌지시 물어봤더니
돌아온 대답이었다. 공산주의가 끝난지 한 참 지났지만, 저 말이 재미있는지
그녀는 장난을 칠때면 나를 콤라드라고 불렀다. 그때마다 작은 카나드도 함께
팔락 거린다. 하도 그랬더니 요근래는 머리속에서 카나드하고 콤라드가
뒤섞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작년에는 지나가던 유로파이터 보고 '거 3차 F-X 사업에서 떨어질 수도 있지,
왜 이리 콤라드를 늘어트리고 있어. 기운 내라고.'라고 한적까지 있다. 그때
유로파이터가 IRST가 휘둥그래지며 날 처다보고 '왠 동무 타령이야. 너 종북
이냐?'라고 해서 나 역시 레이더가 휘둥그래졌었다. 저런 말은 어디서 배운거지.
하여간에, 에어쇼장에서 만난 그녀는 외국에 나와서 약간 들떴는지 처음엔 공손한
말투를 쓰다가 한 시간도 안되어서 그냥 콤라드 콤라드 그러면서 카나드를 파닥
거렸다.
'콤라드는 3형제구나. 나도 언니들이 많아. 다들 모이면 언제나 시끌벅쩍하지.'
그렇다. 나도 사실 3형제다. 그것도 처음 개발단계부터 3형제가 나란히였고,
서로 부품도 꽤나 공유된다. 뭐 이것도 예산 절감차원에서 생긴 일이지만.
덕분에 3형제중 기본형인 첫째형은 지금도 툴툴거린다.
'너희들 때문에 내 몸값까지 올라갔잖아. 사실 나 혼자만 개발되는거면
좀 더 가격을 다운 시켰을지도 모른다고.'
뭐 틀린말도 아니지만 그거야 알 수 없지. 결국 생산수량이 늘어나면 단가는 낮아
지기 마련인데, 3형제 모두 자기 입맛에 맞춰 전혀 다르게 나왔다면 되려 양산
비용은 더 비싸지지 않았을까?
이 이야기를 그녀에게 했더니 그녀는 헤헤하고 웃으면서도 IRST는 나를 향하지 않고
괜히 지나가던 토잉카를 트랙킹하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그녀는 양산계획이 없다고
했다. 형제는 많지만 실은 외로울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 그럼 또 한 바탕 뛰러 가볼까~ 잘 보고 있으라고!'
내가 말없이 미안한 기색으로 서있자 그녀는 괜히 엔진 노즐의 TVC까지 힘차게
움직여가며 분위기를 바꿨다. 활주로 끝까지 간 그녀는 최종점검후 한껏 애프터
버너의 굉음을 내뿜었다. 콤라드, 아니 카나드를 괜히 위아래로 움직여보더니
곧 휠브레이크를 풀고 가속했다.
종종 그녀가 태양과 겹쳐버려서 HUD의 건카메라가 아팠지만 차마 셔터를 닫고
있을 수는 없었다. 100분의 1초, 1000분의 1초라도 공중에 있는 그녀의 모습을
놓치기 싫었다.
코브라 기동에 이어 쿨비트 기동...
혹자는 그녀의 기동이 그저 보여주기용이라며 평가절하하지만 눈 앞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다. 그녀가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유영을 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고있으면 실전에서 써먹던 못써먹는 지를 따지는
것은 아이들 상태의 엔진소리 만큼이나 공허하게 들린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비행 차례는 그녀보다 3번째나 뒤의 순서임에도 주눅이
들수 밖에 없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정말 스탠다드한 것들 뿐이다.
그래도 도입국을 하나라도 더 늘리려면 힘을 내야지. 영차-, RPM up-.
비행후 나도, 날 몰던 조종사도 높은 G를 몇 차례 받고 여름날 엔진을 끈 직후 열기가
펄펄 끓는 노즐 속을 살펴보는 정비병마냥 사색이 되어다. 몇 번을 훈련한 기동이었
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도 에어쇼에 오면 무리
하긴 매한가지지만.
'고생했어. 여기서 유압 작동유(Hydraulic Oil)라도 채워 넣어~'
그녀가 막 뚜껑을 딴 작동유 캔을 건네면서 말했다.
'여전히 열심히 기동을 하는군, 콤라드.'
'나 놀리는 거지?'
나는 공대공 미사일도 두 발 밖에 못달고, 하는 일도 사실 전투기라기
보단 공격기에 가깝다. 그녀의 칭찬이 진심인 것은 알지만 가끔 괜히
자격지심에 빠지기도 한다.
'설마~ 최선을 다하는 건 좋은거라고~'
내가 자격지심에 빠질듯 해보이니까 괜히 그녀가 한층 업된 소리로 말하며 내 러더를
탕탕 친다.
덕분에 들고 있던 작동유가 바닥에 좀 흘렀다. 이거 닦느라 정비병
애들이 또 고생이겠구만...이라고 생각하며 바닥을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들지 못한채, 눈은 그 바닥의 작동유 얼룩에 고정한채 그녀에게
말했다.
'내일이군.'
'응, 아쉽게도.'
내일이면 에어쇼도 끝이다. 그녀도, 나도 본국으로 돌아간다.
'다시 볼 수 있을까?'
이번에는 용기를 내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정확히 트랙킹 하며 물었다.
'응.'
그녀는 최대한 크게 콤라드, 아니 카나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는
빙글 뒤로 돌아 내게 등을 보인채 활주로 끝편을 바라보며 쉴새 없이
말을 이어갔다.
'3형제 모두 양산이 확정된 누구씨하고 다르게 나는 도입국을 빨리
찾지 않음 안되는 몸이라고. 한탕이라도 더 뛰어야 내 기동에 홀딱
반한 어딘가의 공군 아저씨들이 도입을 결정하지 않겠어? 아아~
중동쪽은 어수선하고~ 역시 좀 추워도 동유럽쪽이 나으려나~'
그렇게 긴 말을 숨도 안쉬고 떠들고는 잠깐 말 없이 서 있었다.
숨도 안쉬어서 혹시 엔진 압축기에 실속이라도 온걸까라고
그녀의 얼굴을 살피려는 찰나
'응, 꼭 다시 만나자.'
그녀는 웃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며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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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이 내가 본 마지막 그녀의 모습이었다. 결국 그 에어쇼
때도 도입국을 찾지 못한 것이 결정타였다. 그녀가 보여준 화려한
기동과, 그녀를 개발하면서 얻은 여러 노하우는 그녀의 또 다른
자매들인 Su-30 및 Su-35 등이 전수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는 다른 나라에 가서 시범을 펼쳐보이는 일이 없었다.
나는 그 뒤로도 몇 번의 에어쇼를 더 다녔지만, 결국 그녀를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저기요~ 지나가도 될까요~?'
그녀와의 추억에 젖어 유도로 한 켠에 우두커니 서 있었는데
뒤에서 다른 전투기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아, 이런. 얼른 비켜드리겠습니다.'
퍼뜩 정신이 들어 다시 엔진 출력을 높여서 주기장(Parking Area)쪽
게이트로 비켜섰다. 언제까지 처져 있을 수는 없다.
영차, RPM up-
그러자 유도로를 따라 처음보는 전투기가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왠지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외견이었다. 붉은 별이 박혀 있어서 더 그런가.
그녀 만큼 곡선이 유려하진 않았지만 긴 목에 블렌디드 윙 바디를
갖춘 전투기였다. 다만 그녀처럼 콤라드, 아니 카나드는 없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동체 데이터마크 한 켠에 T-50이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T-50이라니, 우리 큰 형하고 이름이 같네.'
나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 중얼 거렸는데 유도로를 따라 가던 그 전투기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노즈 랜딩기어를 꺾어 내쪽으로 돌아왔다. 노즈랜딩
기어를 꺾을 때 수직미익이 통째로 움직여서 잠깐 놀라면서도 왠지 그녀의
콤라드가 생각났다. 아니 카나드.
'저기, 혹시 큰 형 이름이 T-50 이신가요? 그럼 혹시 이름이 FA-50...?'
'아..예, 제가 FA-50 골든이글 입니다만...'
'그렇구나, Su-37 언니가 말한 콤라드시네요~!'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그녀의 이름을 다시 들어서 처음에는 멍하니 엔진
소음맨 나고 있다가 갑자기 내 엔진 RPM이 왈칵 올라갔다.
'Su-37 언니가 자주 이야기 했어요~ 저랑 이름이 똑같은 큰 형이 있는
콤라드가 있는데 되게 좋은 분이라고 하셨어요~ Su-37 언니가 베르쿠트
언니보고 너랑 영어로 이름 똑같은 콤라드가 있단다~ 맨날 그랬어요~'
내 RPM이 요동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 앞의 T-50은 마치 동물원에서
처음 코끼리를 본 어린애 마냥 들떠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Su-37 언니가 맨날 말한 콤라드를 여기서 보다니 되게되게 신기하다~우와~
우와~'
'어.. 음. T-50양, 그.. Su-37 언니는 잘 지내나요?'
'네! 저번 주에도 저랑, Su-30 언니랑, 또, 또 다른 언니들한테도 막 이것저것
가르쳐줬어요.'
....그렇구나.잘 지내고 있구나. 공중에서 쿨비트 기동을 하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은 볼 수 없지만, 나를 콤라드라 부르는 그녀의 VHF 무선을 들을 수는 없지만,
여전히 그녀는 잘 지내고 있구나.
'앗, 앗, 맞다. 전 지금 이륙하러 가봐야 해요. 앗 언니가 외국가면 공손히
말하라고 했는데. 그럼 전 이만 가보겠사옵니다~!'
그녀는 스트레이크 앞쪽을 아래로 넙죽하고 인사를 하더니 다시
유도로를 따라 활주로 끝으로갔다.
'그렇구나, 잘 지내고 있구나.'
괜히 다시 한 번 소리를 내어 말해보았다.
'꼭 다시 만나자.'
괜히 그녀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도 따라해봤다.
또 엔진 RPM이 왈칵 오르내릴것 같아서 일부러 하늘을 처다봤다. 그곳에는 마침
막 이륙하여 시범비행을 시작한 T-50이 있었다. T-50은 어설퍼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Su-37이 가르쳤음이 분명해 보이는 코브라 기동을 선보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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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화자가 F-35가 아니라 FA-50이었지다.'라는 반전물을 쓰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결론은 앞뒤도 없는 로맨스 물.
눈 앞에 먼 북소리 책이 있어서 일부러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리며 썼는데 어째 신파극이 되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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