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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용화론

군재동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3.02.17 22:53:22
조회 286 추천 6 댓글 17


'내 말은 우리말을 버려야만 중국과 같게 된다는 것이다'

정조 때의 실학자 박제가가 <북학의>에서 중국어 공용화를 주장하며 한 말이다.

그의 생각은 우리말을 버리고 중국어를 상용해야 조선이 개혁되고 부강해질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러면 일상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개인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조정래의 <아리랑>에서 이방 백종두는 아들에게 '앞으로는 일본말얼 못해 갖고는 입신이고 출세고

권세고 재산이고 하나도 손애 잽히지 않고 앞길이 콱콱 맥히게 된다. 일본말얼 몰라서는 사람새끼

노릇얼 못혀'라고 꾸짖는다. 전광용의 소설 <꺼삐딴 리>에서 이인국은 아들에게 '야 원식아, 별 수 없다.
왜정 때는 그래도 일본말이 출세를 하게 했고 이제는 노어가 또 판을 치지 않니.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을

바에야 그 물 속에서 살 방도를 궁리해야지'라고 말한다. 그는 일제 하에서 '국어 상용의 가'라는

칭호를 얻었고 해방 이후 아들과 딸을 소련과 미국에 유학 보냈다.


이렇듯 우리말을 버리고 어떤 외국어로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고민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박제가, 백종두, 이인국이 무슨 동기에서 그렇게 말했든, 남의 나라말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를

둘러싼 국가와 개인의 고민은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광풍은 어느 때보다도 세차고 매섭다.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비롯해서 지난 백 년에 걸쳐 '외국어로서의 영어'교육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우리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국가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영어교육의 필요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소설가 복거일을 중심으로 제기된 영어공용화 논쟁과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려

했던 영어 몰입교육 정책은 이전의 그 어떤 논의와도 궤를 달리하는 영어교육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영어라는 언어가 지닌 세계어로서의 효용성은 계속해서 영어를 어떻게 더 잘 가르칠 것인가 하는 논의와 함께

영어교육을 강화시켜 왔고 세계화를 국정 이념으로 삼은 김영삼 정부가 1997년 도입한 초등영어교육은 그 확산에

불을 지폈다.



1990년대 후반 복거일의 영어 공용화론은 실용적 민족주의에 기반을 두고 그것이 영어 중심의 세계 정치,경제 및

지식의 질서 속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전 지구적 지식경제 사회에서 영어로 논문을 쓰고 영어로 된 정보를 얻고 영어로 소설을 발표함으로써

노벨상 수상은 물론 영어권 세계의 문화와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수준의 공용어화를 시도한다는 것일까?

복거일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말을 영어로 완전히 대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연간 15조원의 영어 사교육비를 쏟아부으면서 받아든 영어 성적표는 그 투자 대비 효율성을 봐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한 저효율을 보여주고 있다.

영어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불이익과 영어교육에 들어가는 엄청난 경제적 비용을 감안하면

차라리 영어를 공용어화하는 것이 실용적인 대안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영어 공용어화론은 조선시대 박제가의 중국어 공용화론과 매우 흡사하다.

박제가의 중국어 공용화론도 기본적으로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실사구시의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다.

'일본은 영원해 보였고 그들과 평등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이 우리 민족에게 이익이라고 생각했다'던 이광수의 논리도 비슷해 보인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을 수 있다면 구태여 민족어의 굴레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영어 공용화론이 박제가나 이광수의 생각과 다른 점은 어떤 특정 국가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200년 동안 영국과 미국이 세계 패권을 번갈아 쥐면서 영어가 지배적인 국제 언어라는 지위를 얻었기 때문이다.



한편 영어 공용화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하는 이들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영어 공용화론은 실용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앞뒤가 뒤바뀐 민족주의라는 것.

민족과 역사의 얼이 담긴 우리말을 헌신짝 버리듯 쉽게 버릴 수 없다. 국민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언어는 그 민족의 정신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민족 공동체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다.

영어 공용어화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단절시키며 우리의 얼을 소멸시키는 무책임한 정책이다.


도대체 누가 영어 공용화의 혜택을 받을 것이며 누구를 위한 국가 경쟁력인가?

영어를 제대로 익히지 못하는 상황에서 영어 때문에 격차는 벌어지고 연령,빈부 및 학력의 격차에 의해

국민들간의 소통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한 국가들은 대부분 18~20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영국이나 미국의 식민 지배 경험이 있는 국가들이며 우리나라와 같은 단일 모국어 환경에서 군사력에 의한 강압적

점령이나 민족의 대이동 때문이 아닌 자발적인 영어 공용화는 현실성이 없는 인위적 언어 실험이다.

국가의 강제적인 개입이 없이 이 실험이 가능할 리 없으며 그런식의 인위적으로 국민의 언어생활을 바꾸고자 하는 비민주적 발상은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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