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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갤문학] Unsteady - 3

세기말닌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5.11.05 01:2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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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closers&no=1141203&page=1&search_pos=-1145832&s_type=search_all&s_keyword=unsteady


2화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closers&no=1156991&page=1&search_pos=-1155832&s_type=search_all&s_keyword=unste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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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하는 소리는 그의 등 뒤에서 난 것도 같았고, 고개를 숙여보니 이번엔 가슴 조금 아래쪽에서 난 것도 같았다. 

소리가 기억을 길어 올린다. 진창 같은 수면 밖으로 복실 거리는 인형 하나가 달려 올라왔다. 공룡 모양이다. 앙증맞은 꼬리의 끝에서 흐릿한 기억이 탄 내 퍼지듯 눈가에 아려온다. 

잔향 사이로 어린 아이가 우는 모습이 보였다. 머리털이 아궁이에 묵은 숯처럼 검다. 소년이 노인과 같은 호호백발이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아이는 작은 공룡 인형 앞에 주저앉아 잔뜩 떼를 쓰고 있다. 아이의 뒤엔 어머니가 서 있다. 빛의 광휘가 뒤로 무성하여, 그녀의 얼굴은 물 먹은 수채화처럼 뿌옇게 번져있었다.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하얘서 눈물마저도 금세 빛 사이로 흩어질 것만 같았다. 

까만 옥처럼 반들반들한 인형의 눈이 소년의 모습을 푹 담고 있다. 소년은 인형 앞에서 요지부동이 되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기세다.

어르고 달래고, 혹은 혼도 내보지만 소용없다. 이윽고 어머니가 아이를 안으며 자리를 떠난다. 소년은 계속 울고 있다. 

아이가 인형을 손에 넣은 것은 며칠 뒤의 일 이었다. 이름은 점보였다. 아기 공룡 점보. 소년은 한 동안 인형과 같이 잠을 잤다. 


그가 점보를 잊어버린 건 언제였을까? 


자고, 가시죠. 

서희가 망설인 말의 작은 틈 사이가 송곳에 찔린 상처처럼 공기 중에 깊이 서려 있었다. 그 틈이 만년설 아래 빙하를 뚫고, 어둠 끝에 일렁이는 기억의 핵 속 까지 그를 떠미는 것 같았다.

그녀는 제이의 대답을 기다린다. 그저 조용히 자신의 눈동자에 그를 고정시킨다. 박제되어 빠져나올 수조차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한 걸음 뒤로, 하지만 그의 뒷걸음질은 이내 점보에게 막히고 만다. 

쿵, 하고 발소리가 다시 들린다. 짙푸른 어스름 사이로 나타난 점보가 그의 길을 가로막았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나는 돌아가야만 해. 비켜, 제발. 

하지만 점보는 목덜미를 물더니 오히려 그를 여자 앞으로 떠민다. 

그녀의 눈에, 나는 어떻게 보였을까? 그는 다만 그녀의 눈에 비친 스스로를 볼 뿐 이다. 빛의 잔영마저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나아갈 곳도 도망갈 곳도 없다. 차가운 복도의 양 끝에 어둠이 넘실거렸다. 등 뒤엔 끝없는 바다가, 앞에는 헤집을 수 없는 장막이 드리워있다.

그는 오도가도 못 한 채였다. 뭐라고 말이라도 해 줘. 그녀는 아무 말이 없다. 살아있는 거울 같다. 


알 것 같았다. 그녀는 마녀였다. 그는 길 잃은 아이가 되어 마녀의 주문에 걸리고 만 것이었다. 슬리퍼를 신은 묘령의 마녀는 아이의 귓가에 주문을 속삭인다. 자고, 가시죠.

마녀의 집에선 달콤한 향기가 풍긴다. 하지만 소년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저기엔 독이 들었어. 그 독은 다른 독과는 달라 심장을 좀먹는다. 마음 속 깊이 채워진 마음의 핵을 녹여, 그대로 쭉. 아주 깊숙한 곳 까지 단번에 찔러 들어간다. 

그러면 나는 죽고 말거야. 풀려난 고통에 견딜 수 있는 남자는 없으니, 나는 파도에 휩쓸린 소금인형처럼 산산이 흩어져 단번에 끝장나고 말 것이다. 

도망가야 한다. 하지만 어디로? 어디로 가실 거죠? 그녀는 말없이 묻는다. 눈 속 깊은 어둠 속에 그를 휘감고 심문한다. 

 집으로. 난 집으로 가야돼. 도망가려는 소년을 점보의 푹신한 배가 퉁겨낸다. 

 내 앞을 막지 말아줘. 넌, 죽었잖아?

 그래. 나는 그저 유령에 불과해. 점보가 하얀 솜이빨을 움직이며 말했다.

 나는 계속 빙산 속에 있었어. 어느 날 네가 나를 바다 너머로 보내버렸잖아. 나는 춥고 외로웠어. 어째서야? 나는 언제나 너와 같이 있었잖아?

 .......날 원망하는 거야?

 그래, 나 뿐 만이 아니야. 저 파도 먼 곳을 봐. 모두들 유배당해 죽어버렸어. 살고 싶었는데, 모두 너와 함께 살길 원했어.

 점보가 한 마디 한 마디 사무치듯 말했다. 

 저기 보여? 프리마베라야. 네가 조각조각 찢어버린 그림. 그녀는 죽었어. 다시 살아나는 일 따윈 없을 거야. 

 그럼 너는? 넌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야? 이것도 저 마녀의 짓이야?

 아니, 그녀는 아니야. 누가 불러냈냐고? 그걸 나에게 묻지 마. 그리고 왜 나인지도 묻지 마, 그건 나도 정말 몰라. 다만 지금 나는 그저 복수의 대표자일 뿐 이야. 너를 도망가게 두진 않아. 가장 순수한 증오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향하는 법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점보가 목덜미를 잡아 다시 마녀의 앞에 던졌다.     

  

제이는 뒤를 돌아본다. 썩은 모래사장에 좌초된 빙하의 잔해들만 가득하다. 해변 어디에도 발자국이 없었다.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을까? 기억이 없었다. 마치 영원을 지새운 듯 했다. 점보가 축축하게 눅은 손으로 그의 등을 떠밀었다.

마녀가 주저앉은 소년을 망토로 휘감는다. 세상이 먹먹한 어둠에 잠긴다. 


눈앞이 검다. 그는 손끝에 달린 온기를 따라 그저 걸을 뿐 이다. 

덜컹, 하고 문이 열렸다. 마녀의 집은 과자의 집이다. 신기루 같이 아름답고 공허한. 등 뒤에서 점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의 삶이 고통으로 가득하기를. 


그건, 저주였다.



 서희는 망토도 고깔모자도 쓰지 않았다.  

어둑한 저녁 입구 사이로 저 멀리 주홍 불빛들이 하나 둘 켜지고 그녀가 문을 열자 하얀 불빛이 발아래에 증기처럼 피어난다. 손마디 끝자락을 쥔 가녀린 온기가 그를 집 안으로 이끌었다.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마법에 걸린 아이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조금만 힘을 주면 제이는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한다. 무언가에 엉겨 붙은 것처럼 도저히 떼어낼 수가 없다. 

저녁의 초입이었다. 기차가 끊길 시간도 아니고, 정 늦으면 근처 찜질방에서 자고 가면 될 노릇이다. 

이 여자가 네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잖아? 넌 어른이야. 풋내기처럼 하하호호 웃으면 다 끝날 일이 아니라고. 당장 거절해야 돼!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한다. 몇 번 입만 뻐금거리는 사이 발은 이미 그녀의 집 현관을 밟고 있다. 등 뒤에는 아무도 없다. 한 겨울 파도 같은 어둠이 대문 밖을 헤집고 있을 뿐 이다. 점보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목소리는 아직도 남아 그의 귓가를 맴돈다.


 “문, 잠그겠습니다.”


서희의 말에는 아직도 골이 패여 있다. 그 사이에서 연기가 푹푹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그건 뜨겁지만 향기롭고, 위협적이면서 역동적이다.

문이 쿵. 하고 닫힌다. 이젠 돌아갈 수 없다. 그는 나아간다. 그녀의 안으로, 그녀의 삶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녀의 시간이 눈 앞 에 펼쳐진다. 그는 입을 가렸다. 아, 하고 작게 소리가 나오려는 것을 손가락들로 막았다. 

그는 그녀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름을 속삭인다. 아무도 모르게, 이름을 속으로 삼킨다. 그제서 야 그녀가 보였다. 

서희는 망토도 고깔모자도 쓰지 않았다. 

그녀는 마녀가 아니었다. 그를 함정에 빠진 것도 아니었다. 아니, 차라리 그랬다면 덜 고통스러웠으리라. 이건, 잔혹한 처사였다. 점보가 남긴 마지막 말이 그의 주변에서 조롱하듯 춤췄다. 

그녀는 조난자였다. 그와 같이.

뼛속에 한기가 스몄다. 그건 피부도, 살도, 피도 거치지 않고 곧장 그를 꿰뚫는다. 서희는 잡은 손끝을 놓지 않는다. 놓아버리면 그가 마치 얼어 죽기라도 할 것처럼.   


그녀에게 이끌려 첫 발을 내디디자 이내 이름 모를 행성에 착륙했다. 이곳은 유배지였다. 

나는 유배당했다. 내가 그들을 어둠 멀리 유배 보낸 것처럼, 그들은 나를 삶 속으로 유배 보냈다. 그건 통쾌한 복수였다. 점보는 복수의 대리인이었을 뿐 이다.

그대의 삶이 고통으로 가득하기를. 

그것이 의뢰의 내용이었으리라. 


 “들어오시죠.”


그녀는 얼마 되지도 않는 짐을 옮긴다. 그는 멍하니 서서 집 안을 바라볼 뿐 이다.

이곳은 이름 없는 얼음별이다.

집은 살아온 이의 그림자이니 단숨에 공기만 휘저어도 제이는 그 사람이 누군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집은 아니었다. 그녀의 거처는 유배지였고, 유배지는 집이 아니다. 유배지는 감옥 이다. 감옥은 시간을 빼앗고 대상을 기억에서 분리시킨다. 그리고 과거도 미래도 없는 무간 속에서 떠돌게 한다. 그는 서희의 집에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왜 자신을 데려왔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탈출하고 싶었던 거다. 이 유형지에서의 삶으로부터. 


그와 그녀는 기이한 짝 이었다. 

서희는 근본적으로 그와 같았다. 그녀는 살아온 시간 대부분을 이 얼음별에서 살아왔으리라. 하지만 영원이 그녀에게 굴레였다면, 그에게 그것은 반대로 탈출구였다. 이름을 부수고 기억을 쪼개어 시간을 봉인하며, 죽은 그 모든 것들을 영원한 바다 저편으로 계속 떠밀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그녀는 아마도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테다. 자신을 가둔 이 죽음의 별에서 신호를 보내고 관측하며 자신을 생명의 바다로 태워 줄 구조선을 기다렸을 거다.

그녀의 집은, 그들의 복수가 시작되기에 딱 알맞은 장소였다. 

하지만 이대로 당할 생각은 없다. 그에겐 아직도 최후의 봉인이 남아있었다. 쪼개진 이름. 그 봉인은 오로지 남자만의 것 이다.


애처럼 굴지 마렴. 

벌레의 바다 아래서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스스로의 이름을 부숴 단 한 조각만을 남겨 놓았다. 그것은 소년이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는 증표였고, 동시에 그의 시간이 영원히 봉인 당했다는 낙인이기도 했다.  

낙인은 뿌리가 근본의 끝 까지 닿아있으니 뽑히지 않는다. 뽑힐 리 없다. 그것이 남아있는 한, 소년은 썩어가는 모래사장 위에 서 있을 것 이다. 

마음은 부서져도 다시 지을 수 있다. 하지만 이름이 부서지면 그걸로 끝이다. 이름을 스스로 부순다는 건 이를테면 존재로서의 자살이었다.


시체를 삶 속으로 걷어차 봤자 나오는 건 썩지도 못한 좀비 뿐 이다. 그리고 시체가 있을 곳은 영원과 가까운 경계의 틈 뿐 이니 그의 유배는 길지 않을 것 이다. 

나는 다시 돌아갈 것 이다.

그는 온기가 끊긴 손가락을 매만지며 다짐한다.    


 “뭐라도 드시겠습니까?”


 “그래.”


그는 대답하며 아무것도 없는 방구석 한 곳에 앉는다. 집엔 침대조차도 없다. 그녀는 거실에 깔린 저 작은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잠을 청했을 것 이다. 그녀가 자는 모습을 상상하자 문득 허리가 아려왔다. 통증의 이상한 윤리였다.

뽀얗게 먼지 쌓인 냄비 하나를 꺼내 라면을 끓이는 모습은 너무나도 낯설다. 처음 봐서가 아니라,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집과 이질성을 이룬다. 


 “여기서 산 지 얼마나 됐지?”


 “어떤 기준으로 말하시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주거한 시간만 계산한다면 한 달도 되지 않을 겁니다. 본디 제 직장은 뉴욕의 유엔 본부에 있으니까요.”


 “거기서도 라면을 끓였나?”


 “네?”


 “거기서도 라면을 끓여 먹었냐고.”


 “아뇨, 그럴 여유조차 없어서 보통은 패스트푸드나 배달 음식으로 해결했습니다. 아니, 거의 대부분의 식사를 그렇게 해결했던 것 같습니다. 감찰국에 들어가고 나서 1년 동안은 패스트푸드만 먹은 적도 있었죠.”


 그래? 라고 대답하며 그는 서희의 허리께와 허벅지를 곁눈질로 훑어본다. 정크 푸드만 먹고 살았다고는 도저히 상상이 불가능한 몸매다. A등급 요원 쯤 되면 칼로리 배출량도 몸이 알아서 해주는 건가? 

유정 씨가 그녀의 말을 들었다면 길길이 날뛰었겠군. 생각하며, 그가


 “다른 사람에게도 이런 얘기 한 적 있나?” 


하고 물으니 그녀의 손길이 뚝 멎는다.   


 “선배님이, 처음입니다.”


그녀의 말이 쿵. 하고 집을 두드린다. 그건 고준한 산의 봉우리에서 빙하가 갈라지는 소리 같기도 했다. 마치 사람을 몇 십 년 만에 처음 본 이 같이, 그녀는 한 마디 한 마디 무겁게 입에 말을 담는다.  

라면이 소반에 들려 나온다. 


 “대접할 음식도 없고.......식탁이 없어서 이렇게밖에 대접을 못해드려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부디 너그럽게 양해 부탁드립니다.”


서툴게 끓인 라면이지만 그냥 보기에도 무척 구미가 당겼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그는 대답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말 대신 그녀의 눈만을 바라볼 뿐 이다. 까만 눈 속에는 오로지 그의 모습밖에 없다. 주황색 선글라스를 쓰고 뚱하게 앉아있는 자신만 있을 뿐이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아니, 그보다 차라리 마녀였으면 했는데.”


 “네? 마녀, 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그랬다면 마음이라도 편했겠지.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 모르겠군.”


 “혹시 음식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하지만 당장 드릴 게 이것밖에 없어서.......괜찮으시다면 다시 끓여 대접 하겠습니다.” 


 “.......서희 씨, 솔직히 나 영문을 잘 모르겠어.”


선글라스를 벗으려던 손을 겨우 제지했다. 목소리에 섞여 나오려던 나머지 말의 처음을 겨우 씹어 삼켰다. 그가 몰래 숨을 고르는 사이, 그녀는


 “선배님, 저기 화.......나셨습니까?”


라고만 물을 뿐 이다. 침묵이 그들 사이를 갈랐다. 

서희는 그 큰 눈을 몇 번, 초조하게 깜빡거린다. 여린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정좌한 자리를 불안하게 고쳐 앉는다. 그는 몇 번 지워졌다 다시 그녀의 눈 속으로 스며든다. 

제이는 끝까지 참았던 말을 기어이 꺼내려던 그 순간, 다시 집어넣는다. 동시에 초조했던 심정도 다시 평온을 되찾는다. 천근만근 눌려있던 사지가 일순 해방된 느낌이었다.

입 꼬리의 한 끝이 저절로 장난스럽게 올라간다.

그는 몰아붙였던 마음을 정돈하며 여유롭게 선글라스를 고쳐 쓴다. 그녀의 눈을 보니 알 것 같았다. 여태까지 그녀의 눈에서 자신의 모습만 보고 있어서 몰랐는데 


 “그 눈, 지금 보니 누구랑 닮았어.”


우리 리더님이랑 똑같은 눈이야. 제이는 뒷말을 지우며 젓가락을 집어 경쾌하게 비빈 후 라면을 몇 번 휘휘 저었다. 

 

 “뭐야, 그런 거였어? 그런 거라면 나도 문제없지.”

 

그는 갑자기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서희는 무슨 소린지 영문을 몰라 그저 벙 찐 표정으로 있을 뿐 이다. 


 “저, 라면.......”


 “응? 아냐. 맛있어 보이네. 잘 먹을게.” 


그는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다. 그녀는 당황스럽다.

집 앞에서부턴 완전히 다른 사람이 와 앉아있는 거 같더니, 알 수 없는 말과 분위기로 자신을 압박하다 이내 다시 예전처럼 돌아온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지만 도저히 갈피를 잡지 못한다. 문득 궁금했다. 저 선글라스 뒤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는 것 일까? 


제이는 라면 한 그릇을 금방 해치운다. 마치 무언가에 짓눌렸다 갓 탈출한 죄수 같다. 그녀가 몇 번 말을 붙여보지만 그는 능숙한 농담을 방패삼아 받아 흘린다. 그 뿐 이다. 

의미 없는 대화의 끝에서 식사를 마친 그는 냉장고 문을 멋대로 열어젖힌다. 그녀가 순간 기겁하며 말렸다.


 “뭐가 어때서 그래? 설마 물도 마시지 말라는 건 아니지?”


그는 잔뜩 풀린 미소로 문을 연다. 서희의 얼굴이 빨갛게 물든다. 그리고 제이는 다시 한 번 눈을 의심한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이유다. 

그녀가 고개를 푹 숙임과 동시에 제이가 맥주병을 꺼내든다. 한두 병이 아니다. 냉장고 안에는 위부터 아래까지 색색의 맥주들이 하나 가득 들어 차 있었다. 마치 맥주만 마시려 들여놓은 냉장고 같다.

술 좋아하는 그였지만 이렇게 맥주만 들이박은 광경은 난생 처음이었다. 얼마나 들어찼는지 냉장고가 숨 쉴 겨를도 없어 보인다.  


 “이제 보니 A급 술고래였군, 안 그래?”


그녀는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한다. 

뭐, 어때?

그는 한 병을 까 먼저 그녀에게 건넨다. 


돌이켜보면 그 때 그녀에게 술을 건넨 건 명백한 실수였다. 

점보는 그가 모르는 곳에서 아주 오랜 시간 복수를 꿈꾸고 있었고, 공룡이 판 함정은 아직도 유효했다. 어쩌면 이것조차 의뢰자들이 원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의 그는 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어쩌면 제이는 순진하게 흔들리는 눈동자에 속아 넘어간 것 일지도 몰랐다. 그 끝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봉인당한 마녀였다. 그렇기에 서희 그녀도 자신이 누구였는지, 그가 오기 전 까지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열쇠였고, 멍청한 열쇠는 허술해진 사슬 위로 술을 부어 마지막 봉인마저도 어이없게 풀어버렸다. 그러니 이젠 그녀를 막을 방법이 없어진 것이다. 

고삐 풀린 마녀는 해일처럼 밀려왔다.


그는 그녀를 안았어야 했다. 그녀의 집에 들어선 순간 그녀를 품었어야 했다. 그래서 그녀의 말 대신 욕정 섞인 신음을 들었어야 했다. 그것만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탈출구였다. 하지만 남자는 탈출구를 오히려 지옥의 아가리로 착각하고 말았으니 더 이상 도망갈 길은 남아있지 않았다.


남자에게 있어 인생과 여자는 참으로 이상한 점에서 닮아있었다. 그것은 둘 다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불편한 진실에서 기인한다.

그녀가 알콜향을 짙게 품은 목소리로 그의 귀에 속삭였을 때, 멈춰있던 삶은 그를 싣고 제멋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건 부활의 주문이기도 했고 동시에 고통의 저주이기도 했다. 

우리는 유한하여 섭리 속에서 생명을 유혹하니 결국엔 그로 인해 고통 받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점보는 항상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죽은 듯 살아가던 시간의 틈새 속에서 남자가 약해지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직 제이 만이 몰랐을 뿐 이다. 아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시작에는 끝이 있고, 그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존재하고 있었으니.

죽기를 원하는 자는 멈춰서는 안 된다.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 생명은 계속 당신을 노리고 있으므로. 죽기를 원한다면 계속 달려야 한다. 그건 기묘하고도 슬픈 역설이다. 

      



===




인간은 추구하는 만큼 방황한다고 하는데, 그저 눈을 감아도 고통은 한 없이 밀려옵니다.


나라는 존재에 눈을 감으면 될 일 인지. 그마저도 안 되면 아예 눈을 갖다 뽑아버려야 괴롭지 않을런지.




재밌게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댓글을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늦게나마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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