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홍식이 통바지는 안뇽하니,
혹시 갈아입은 건 아니지? ㅋㅋㅋㅋㅋ
방구석 1열에서 응원할게 홍식아,
여까지만 하고 오늘의 방구석 덕질 마감해야겠숴.
아래 샤르뎅의 시,
주여!
당신의 깊은 가슴으로 나를 안아 주옵소서!
나를 붙드사 새롭고 깨끗하게 하시고
불 가운데 놓으사
내 자아가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태워주소서
제 안에서 뛰노는 생명들과
제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것들 안에서
저는 당신의 은혜를 봅니다.
신앙심 없는 나같은 사람이 읽어도 울림을 주는 대목이
'내 자아가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태워주소서' 야.
덕질 시작한 후로 홍식이 발언, 인텁을 볼 때마다 유난히 멈추게 되는 대목이 있었는데
최근 에스콰이ㅑ 인텁을 읽고는 그게 어떤 대목이었는지 확실히 알겠더라.
이 인텁에서 엄홍식은 자기 인식에 있어서 한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 것 같았어.
http://esquirekorea.co.kr/people/유아인-엄홍식-그리고-나-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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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홍식아, 덕분에 더듬더듬 책 뒤져보게 해줘서. ㅋ
고정된 나는 없다. 나를 규정하려고 할수록 그런 '나'는 없고 계속 미끄러지지. 그런 경험들 다 해봤을거야.
이거 왜이럼? 고정된 '나'는 없다는 논거를 찾아 읽어본다.
진정한 주체란 無位人이고 우선'이름-자리'로부터의 탈주이다, 물론 이때의 탈주는 벗어남이 아니기 때문에 "로부터"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일 수 있다. 모든 탈주는 내재적 탈주이고 벗어남이 아니고 바꾸어-나감이다. 이름-자리의 체계와의 투쟁이 우리를 일정한 주체로 만들어주고 또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술어적 주체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건 자신에게 붙은 술어들을 통해 성립되는 주체를 말한다. 이 규정성을 통해 주체는 타자에게 드러난다. 내가 "나는 ...."이라고 언표할 때, 즉 언표의 주체와 언표행위의 주체가 일치할 때 주체의 '자기 의식'이 성립한다. 일단의 자기 의식 없이는 주체일 수 없다. 자기 의식은 자 와 타의 구분을 함축한다. 타자성 없이는 주체성도 없다.
'나 아님을 매개로 해서 나 임으로 되돌아 올 때에만 인간 고유의 자기의식이 가능하다. 이런 가름과 되돌아옴으로부터 자기 의식이 탄생한다. 이 자기 의식은 그 자기 의식의 주체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불행하게 만든다. 주체는 자기 의식을 가짐으로써 고도의 역능을 가지게 된다는 점에서 행복하며, 타자와의 불연속이라는 근원적인 소외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불행하다...... 자기 의식을 갖춘 존재는 그 자기의식에 집착하면서 동시에 그로 인한 불연속을 메우려 한다는 점에서 모순된 존재 또는 이율배반적인 존재이다.
이렇듯 주체는 규정성들의 계열체이다. 인생이란 이런 술어들을 둘러싼 투쟁의 양상을 띠게 되고 각종 형태의 "출신", 전공, 직업/분야. 신체적 특징들에 집착하는 자아의식은 불행한 의식이다. 이런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은 분절선들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음으로부터 가능하다. (......) 만물제동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일반성-특수성으로 이루어진 삶의 격자가 깨끗하게 지워지고 보편성 즉 분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질서의 무이지만, 또한 어떤 분절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무한한 질서를 담고 있는 허가 도래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보편성=허 위에 독특한 특이성을 그려나갈수 있게 된다. 이때 우리는 더이상 위를 가지지 않는 무위인이 된다
(......)
철학의 역사에서 자유의 문제가 늘 핵심 논의거리로서 다루어져 온 것은 인식하는 이론적 행위와 그것을 넘어서는 실천적 행위을 엮어감으로써 살아온 것에 있다. 삶에서의 필연성을 인식하지 못할 때 자유는 주관적 환상이 되어 버린다. 역으로 자유의 가능근거를 확보하지 못하는 필연성은 인간적 삶을 뒷받침하는 철학이 될 수 없다.
(......)
주체는 주체로서 계속 생성해 간다. 즉 주어지는 생성하는 조건들에 동화되어 가는 한편 그것들과 투쟁함으로써 자신을 만들어 간다. 이렇게 주체가 생성/되기를 통해 성립한다 할 때, 그러한 주체-화의 선험적 지평은 곧 시간이다. 주체가 시간의 지평 위에서 되어-가는 과정은 그 주체의 경험에 기반한다. 주체는 경험을 통해서 자신으로 되어-간다. 주체는 시간의 지평 위에서 경험을 통해서 자신으로 되어-가는 것이다.
경험이란 우선은 겪음이다. 주체는 살아가는 한 끝없이 겪음('파토스')에 처한다. '처-함'은 어딘가에 놓임이고, 어떤 상황에 닥쳐-옴이다. 사물들에 대한 지각, 타인들과의 만남, 특정한 사건들과의 부딪침, 어떤 일에서의 성공과 실패, 더 넓게 말해 특정한 사회와 시대에 태어남, (근본적으로 볼 때) 인간으로서 태어남, ..... 이 모두가 겪음이고, 처-함이고, 닥쳐-옴이다. 시간과 장소, 타자들과 사건들이라는 근본 구조에서 겪어-감이 살아-감이다.
산다는 것은 곧 겪는다는 것이고 겪는다는 것은 시간의 지평 위에서 끝없이 생성하는 차이들을 겪는 것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해 가는 지각, 계속 생성해 가는 타인들과의 만남, 부딪쳐 오는 숱한 사건들...... 이렇게 주체는 살아가는 한 크고작은 차이들을 만나며 그때마다 변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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