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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신선썰5.txt모바일에서 작성

신선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6.02.19 00:38:06
조회 16923 추천 31 댓글 101



신림동 신선..

당연한 말이지만 그들이 처음부터 신선이었던 건 아니다. 시험에대해 열정이 충만하던시절이 있었고, 패기가 넘쳐나던 시절이 있었다. 음.. 사실 그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그랬다. 오늘 쓰려는 이야기는, 그들은 어찌해서 신선이 되었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앞서 썼던 이야기들처럼 내가 겪었던 것들이고 수험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내 스스로의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다소 무거운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여기에선 가벼운 마음으로 풀어보고 싶다.

이번 이야기는 꼭 고시쪽뿐만이 아니라 그냥 여타 다른시험을 준비해 본 분들이면 아마도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을거라 생각된다.
내가 준비했던 시험을 기준으로 하면 년초에 1차시험을 치르고, 그 시험에 붙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름에 2차시험을 치르는 과정을 가지게 된다. 1차는 객관식이며, 2차는 주관식 3차는 면접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1차 2차 3차까지 가진 시험이니만큼 신림동에서는 강의의 과정도 순환식이라 하여, 2차 주관식시험의 일정에 맞추어 각과목을 여러번 강의하도록 한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각 1년의 과정은 2차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커리큘럼이 끝이 나게되는데, 이러한 싸이클덕에 수험생들에겐 1년이 너무도 빨리 지나가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대부분의 수험생은 초시기간동안엔,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듣던 때가 있기 마련이다. 이 수 많은 학생들 중에 붙어나가는 학생은 극소수일거라는 강사의 말에 제각각은 \'그게 나야\'라는 생각을 하곤한다. 무슨 일이든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 시작지점에 선 우리들 마음 속엔 쇠도 녹일법한 불길을 품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험생들의 눈빛이 처음과 같지 않고, 내가 할 수 있을까란 의구심이 들고, 오늘만 쉬고 내일하자 라는식같은 자신과의 협상같은 것들에 대해선 굳이 이야기하지않겠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아시리라.

신선들은 오로지 \'지식\'의 영역에선 그 수준이 대단히 높다. 초시생들이나 공부가 아직 덜 된 나 같은 사람이 보았을 때는 그들이 정말로 거대한 산 처럼 느껴졌다. 그들이 학원에서 출제하는 모의고사에서 우수한 답안으로 인정받아 수험생들이 그 답안지를 돌려볼때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어떤 수험생은 신선들과 친해져서 그들의 노하우를 얻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시험\'이라는 부분은 오로지 그들이 가진 \'지식\'의 양만으로 판가름 나는것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사소한 시험이라도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시험이라는 놈은 한 가지 무기로만 이겨낼 수 있는게 아니다. 그 날의 컨디션이나, 그 시험에 대한 압박감, 내가 그 시험을 잘 치뤄내겠다는 자신감, 모르는 문제에대한 배짱 등등등 수도없이 많은 것들이 필요한데 이 고시란 놈은 유난히도 그런 무기가 많이 필요했다.

어떤 신선은 시험장에만 들어가면 머리가 하얘진다고 했다. 하얀 답안지를 보고나면 자신도 머리가 하얘져서 답을 적어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해가 안가는 분들도 있겠지만 시험이라는 놈은 간절하게 매달리면 매달릴 수록 손에 잡히지 않는듯한 느낌이 있다. 세월은 흘러가고 자신은 초라해지는데 시험이라는 놈은 저만치 달아나고 있다. 신선은 그를 쫓는악몽에 시달린다. 시험장에서 펜을 들어 그 놈을 잡아내야 하는데, 그 동안 시달린 \'세월\'이 그를 무겁게 찍어 누르는통에 신선은 또 그놈한테 지고만다.

특이한기억으로 남았던 신선이 있다. 그는 15년을 준비했다고 꾸밈없이 말했다. 솔직한 분이셨는데 그 분은 다른 신선과는 달리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공부량에 대해 자랑을 하진 않았다. 2차시험을 한달여 앞두고 그분을 보며 내 러닝메이트로 삼았는데, 그 분은 아침7시에 독서실에 와서 밤11시에 정확하게 퇴근하곤 하셨기 때문이다. 독서실 다른 수험생들은 그분을 \'세븐일레븐\'이라 불렀고 그만큼 자기관리가 대단한 신선이셨다.

그런 분이기에 나도 자극을 받아 그 분과 비슷하게 시험을 앞둔 한달을 보냈다. 사실 나는 그렇게 하면서도 시험에 확신이 들지않았다. 내 머리에 대한 확신도, 시험을 이겨낼 수 있을거란 배짱도 나에겐 없었다. 이런 불안감은 결국 시험을 그르쳤지만, 그 와중에서도 내가 러닝메이트로 삼은 신선은 다를거라 생각했었다. 여러 날동안 여유로움과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듯해보였기 때문인데 시간이 좀 지나 그 분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난 매우 놀랐다.

그 신선은 시험장에 들어가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그 분의 얼굴은 모든 걸 내려놓은듯한 초탈함이 보였는데 깜짝놀란듯한 날 보곤 오히려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이번에도 시험장에 들어가서 시험을 보지 못하면.. 그 자괴감을 견딜 수 없을거 같더라고.. 이번에도 실패하면 내 자신에 대해 핑계거리가 없잖아. 그럼 난 어떡할까 싶었어. 누가 물어보면 시험장에 들어가지 않아 시험을 보지도 못했다라고 이야기하면.. 그들이나 나나 그래.. 다음엔 꼭 들어가서 잘보자 라는 합리화가 가능하거든.. 하나의 방어기제지.."

나는 그때 알았다. 신선들이야말로 압박속에 살고 있음을. 기나긴 세월만큼이나 무거운 시간이 그들을 숨도 못쉬게 누르고 있음을.
\'날고 싶으면 벼랑끝에 날 세워라\'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디서 들었는지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신선들은 자신을 벼랑끝에 세운사람들이다. 하지만 뛰어내리진 못했고 그리하여 계속 벼랑끝에 서있다. 뛰어내렸는데 날지 못하면 어쩌나 라는 생각이 그들을 계속 주저하게 만들고, 실패하게 만들고 있는것 같았다.

그들은 서로에게 공부한지 얼마나 되었는지 묻지 않는다. 의미가 없기때문이다. 얼마를 공부했으면 그게 훈장이라도 되는게 아님을 우리네들보다 그들은 너무나도 냉정하고 아프게 느끼고 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장수생들에 대한 시선은 대부분이 냉소고 조롱이며 어떨 땐 멸시까지도 담고있다.

왜 저러고 사냐라는 말을 이 글을 쓰는 본인도 자주 했었다. 나의 시선도 많은 분들 처럼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지만 초시를 지나 재시를 치고 그들에 대해 조금씩 알게된 후부턴 나 스스로는 저런말은 하지 않게 됐다.
그들의 삶을 내가 대신 살아줄게 아니기에 나는 그들을 있는그대로 \'바라보기\'만 하기로 했다. 살이 까질때로 까져 뼈가 드러나는 사람에게 무턱대고 소독약을 끼얹는다 해서 상처가 아무는게 아니듯, 그들의 삶에 대해 방안을 내 줄 것이 아니라면 난 그냥 관조적인 사람이 되기로 했다.

바둑을 가장 잘두는 사람은 바로 훈수두는 사람이라는 말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그들은 어찌보면 시험에 대해 \'훈수\'두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의 수험준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오지랖을 부리는건 훈수두는 사람의 마음처럼 네가 이기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라고 말이다. 그 훈수가 귀찮고 고까워 보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그 훈수를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서 글쓴이의 시선이 \'따뜻하다\'라고 해주시는 이유가 아마도 그래서 일것이다. 난 그들을 싫어하고 미워하지 않기때문에.

여기에서 처음 하는 말이지만 내가 결국 시험을 관둔 것도 신선의 \'훈수\'가 크게 작용했다. 내 나름대로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생각했지만 결국 시험에서 낙방했을 때 몰려온 좌절감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 것보다도 더 시리고 아팠다. 나는 해낼 수 있을거란 자신감은, 바람앞에 꺾이고 만 선봉장의 깃대처럼 처참하게 부러졌으며, 충격적이고 내 모든 전의를 상실케했다. 그 어디에서도 내 마음의 위로를 찾을 수 없었다. 불합격의 결과를 받아든 날 저녁 신림동 거리를 걷다 발견한 건물뒷편 공터에서 어미와 생이별한 어린애 처럼 울어댔다. 지금에와서 생각해보면 고작 시험이 날 버린것 뿐인데, 그 당시엔 모든 세상이 날 버린 것처럼 느껴져 그 쓰라림을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어렵게 마음을 추스른 후에야 나는 다시 선택지를 받아 들 수 있었다. 시험을 다시 준비할까, 아니면 여기서 그만둘까.

짐정리를 하러 간 독서실에서 나오는 그 때에, 우연찮게도 신선이랑 마주쳤다. 내가 러닝메이트로 삼았던 신선이었다. 그 분은 얼굴만봐도 수험생이 합격인지 불합격인지 안다고 농담을 한 뒤에 나에게 자신의 예전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분은 자신이 가진 어설픈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준비만하는 삶을 살았다고 했다. 준비를 시작했던 그때는 내 모든걸 걸고 준비했을만큼 열정도 있던 시절이었는데, 그만둘용기가 없어 그만두지도 못하고 지금처럼 준비만 한다고 말이다. 이 시험도 극복을 못할까 라는 자만심이 결국 자신을 이 구렁텅이에 빠트렸다고 자조적으로 말하며 웃으셨는데, 참으로 씁쓸해 보였기에 난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헤어진후에야 나는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용기가 필요하면서도 용기가 부족해 보이는 아이러니한 결정이었다. 포기할때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다시 시작할때도 필요한건 용기기 때문에.

다소 글의 말미가 우울하게 흐른거 같아 여러분들께 죄송스럽다. 재미로 쓰는 글을 재미로 봐주시는 분들께 다소 우중충한 런던날씨같은 글을 써 송구스럽지만 이왕시작한 글 마무리는 짓고싶다. 난 사람과 헤어질 때에는 반드시 작별인사를 하는 사람이다.

류시화 작가의 시집 \'사랑하라 단한번도 상처받지 않은것처럼\' 이라는 책에는 아픈 돌에대한 시가 담겨있다.
\'시험실패\'라는 타이틀은 나에게는 \'아픈 돌\'이었다. 처음에는 그 돌이 너무 아파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이따금씩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 돌을 만질 때면 그 모서리와 날카로움에 손이 베이고 꺼내기도 힘들때가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흐르는 물속의 모난 돌이 닳고 닳아 조약돌처럼 변해가듯이, 내 주머니 속의 날카로운 돌도 자주 만지고 쓰다듬을수록 그렇게 아프지 않은 돌이 되어갔다.
그렇게 이제는 그 돌을 아무렇게나 만져도 보고 주머니속에서 거리낌없이 꺼내어도 볼 수 있다. 시간이란 그렇게 많은것들을 치료하고 변하게 한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중에, 현재나 과거의 상처로 쓰라림에 몸부림치는 분들에게, 나도 신선처럼 이야기해드리고 싶은게 있다.
\'시간이 흐르는것에 슬퍼할 필요가 없다. 시간의 흐름은 상처를 보듬기 때문에\'
그 상처를 웃고 떠들며 내가가진 돌처럼 여러사람에게 담담하게 꺼내어 볼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것이다. 내 돌이 더 예쁘지 않냐며 자랑하고픈 날도 있을것이니, 그 때를 대비하여 지금의 아픈상처를 더 예쁘고 조심스럽게 쓰다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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