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만에 갤에 들어오니 온통 블랙미러 글밖에 없네
이런
그래서 나도 봤습니다 ㄷ ㄷ ㄷ
제목은 훼이크
-스포-
폭력을 폭력으로 교환해야 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딜레마를 안고 있지
가깝게는 사형 제도 찬반에서부터 전쟁과 고문까지 말야
미디어에 대해 다룬다는 정도만 알고 봐서 신선한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다루는 문제는 꽤나 고전적인 것이더라고
미디어라는 소재로 문제 의식과 질문을 증폭시킨 정도?
어쨌든 덕분에 군더더기 없이 속전 속결로 이야기가 진행돼서 엄청 재밌더라, 토 쏠리게. (비유가 아닌 게 함정)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다음 편이 더 기대된다, 오디션 프로 하악하악, 화면 구성은 대놓고 엑스펙터더만
피해자를 살리기 위해서 납치범을 고문해야 한다면, 납치범에 대한 우리의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피해자를 살리기 위해서 납치범이 아닌 무고한 제 3자를 괴롭혀야 한다면, 그때 역시 우리의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피해자를 살리기 위해 제 3자를 고문해야 한다면?
피해자를 살리기 위해서 제 3자를 돼지와 섹스하게 해야 한다면?
딱 답을 낼 순 없겠지만, 이런 '정치적으로 올바른 폭력'의 딜레마에 대해선 철학적으로, 논리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다방면의 고찰이 있어왔기 때문에
사실 '블랙 미러'가 그리고 있는 반응의 양상은 좀 나이브한 면이 있어
특히나 그러한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의 큰 흐름을 주도하는 '영미 철학'의 머릿글자 '영'을 담당하고 있는 영국인데
별다른 논의나 사유 과정 없이 수상으로 하여금 수간하도록 군중 심리가 작용하도록 그려낸 부분이나
이 납치 소동의 진위 (정말 납치됐는가, 정말 공주의 손가락인가, 정말 4시에 죽이는가 등등)를 그냥 사실로 전제해버리는 일련의 설정들은
확실히 지나치게 단순하고 편리하게 처리해버린 듯 해
물론 이 모든 건 그냥 논리상의 얘기일 뿐, 드라마 자체를 위해선 군더더기 없이 다 쳐내는 게 훨씬 효과적일테고
그래서 '블랙 미러' 작품이 이렇게 토 쏠리게 재밌게 나온 거겠지만
(미디어의 맹점을 고발하는 작품 자체가 그 자극성과 단순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도 재밌지 않니!)
난 영드갤의 발닦개, 셔틀이니까
멘붕됐다는 횽들을 위해 뭔가 정리해줄 게 있을까 생각해보니 딱 떠오르는 건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이었어
앞에서도 말했지만 딜레마 자체가 고전적이라, 찾아보면 여러가지 자료가 나오겠지만
역시 잘 정리돼 있고, 무엇보다도 진짜 재밌는 책이라 멘탈 붕괴된 횽들에겐 그 찝찝함의 근원? 정체?를 정리하고 이해하기엔 가장 좋을 듯
페이지의 압박이 있어서 다 읽기 괴롭다면 15장 신성한 체 하는 동물, 17장 폭력 - 정도만 읽어도 재미있을 거야
뭐, 간단히 얘기하자면 사람들의 도덕적 심리에는 원시적 사고가 작용하는데
어떠한 가치들은 '초월적 가치'로 여겨져서 다른 것과 대체할 수 없는 신성 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진다는 거야
예를 들어 '사람의 목숨'이 달려있다면 그것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따져본다는 발상 자체가 분노를 일으킨다는 거지
사람의 목숨이 달려있으니까 다른 사람을 고문해도 되고, 돼지와 수간을 시켜도 된다는 군중 심리는 바로 이런 원시적이고 근본적인 초월적 가치에 대한 믿음에 기인해있다는 거지
그 믿음이 옳은가 그른가는 또 다른 문제고.
'빈 서판'에서는 이런 연구를 인용해
한 병원에 100달러의 예산이 남았을 때 그걸 한 어린 아이의 간 이식 수술에 쓸 것인가 아니면 필요한 장비 구입에 쓸 것인가를 병원 관리자가 결정해야 해
대부분의 응답자는 관리자가 어린 아이를 살리지 않고 장비를 구입한다면 그는 벌을 받아야 하고
좀 더 급진적인 사람들은 어린이를 살리는 데 썼더라도 그 결정을 하는데 '오랫동안 고민했다면' 역시 그를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어
실제로 장비를 구입하는 게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 하더라도
당장 눈 앞에 있는 '간 이식이 필요한 어린 아이'라는 존재는 인간의 원시적 사고를 건드려 '초월적 가치'를 지니게 되는 거지
미국의 심리학자 필립 테트락은 이것을 '도덕적 부식성'이라고 불렀는데
'추잡한 제안을 오래 숙고할 수록 그의 도덕적 정체성은 그만큼 녹슬게 된다'는 거야
공주를 살리기 위해 돼지와 섹스할 것인가를 두고 수상이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대중의 반응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지
테트락은 이러한 군중 심리의 동향을 '행여 어떤 정치인이 냉정하고 정직한 손익 계산에 따라 합리적인 흥정안을 제시하면 그의 어깨에는 금기를 위반한다는 이유로 십자가가 지워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블랙 미러' 안에서도, 수상은 스스로의 가치 판단이 아니라
초월적 가치를 건드리는 데 대한 군중의 원시적 금기 의식에 의해 결국 도덕적인 행동을 하지
-역시 어느 쪽이 옳고 그른가는 다른 문제고
그렇게 해서 다시 진짜 문제는
수치스런 행동을 하고 한 여인을 살릴 것인가
혹은, 한 여인을 살리는 문제를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해도 되는가-도덕적 부식성-하는, 수상의 태도와 판단에 대한 게 아니라
한 생명(공주)을 살리기 위해 다른 생명(수상)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대중, 즉 '우리'에게 그럴 권리가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되돌아 오지
(물론 예술가의 실험이라던가, 게이트 킵핑 등 미디어의 작동 방식과 같은 일련의 문제들이 뒤따라 오고)
인터넷과 1인 미디어가 가진 속도와 편리성, 가벼움, 그에 따른 책임 의식의 부재같은 것들이
이 고전적인 질문에 대해 생각할 시간 자체를 지워버리는 것, 판단력을 흐리는 게 아니라 판단할 시간 자체를 주지 않는 것이 이 작품의 또다른 축이기도 하고.
폐쇄된 대학에 급습하는 작전이 실패한 뒤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는 말에 '시간은 있어! 시간은 부족하지 않아!'라고 항변하는 수상의 대답은
어쩌면 많은 걸 함축하고 있는지도 몰라
논리학자 레이먼드 스멀리안은 '도덕성과 도덕적 광신, 이기심과 이기주의적 광신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며
자신이 절대적으로 지지한다는 중국의 철학자 '양주'의 말을 인용해
'설령 내 머리카락 하나가 전 인류를 구원한다 할지라도, 나는 내 머리카락 하나도 희생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우린 다시 질문할 수 있겠지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양주의 머리카락 하나를 뽑아야 한다면, 이때 우리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을까?
양주의 머리카락 백 개라면? 전부라면?
양주를 돼지와 성교하게 만들어야 한다면, 그 땐?
한 줄 요약?
정치쇼, 티비쇼, 예술가의 쇼가 한 데 뒤엉켜 구경하는 사람들은 신나게 한 판 논거지 뭐
+ 진짜 공주 손가락이길 얼마나 바랐는지 몰라. 헛소동으로 끝나는 이런 류의 이야기는 너무 많잖아
+ 다시 말하지만 고전적인 문제를 현대적 설정으로 푼 거라고 봐. 현대의 1인 미디어가 기폭제가 아닌, 문제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면 너랑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을 거임. SNS 검열 따위 개나 줘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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