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여수, 누구냐 너?

각진 턱 선과 날렵한 콧날, 쏘아보는 듯한 눈매의 이 남자. 사랑 앞에 물불을 가리지 않지만 애증을 죽음으로 되갚는 격정을 지닌 이 남자. 교황의 서슬 퍼런 파문 위협도 웃음으로 흘려 보내는 단단한 심장을 가진 이 남자. 채널CGV 드라마 ‘튜더스: 천년의 스캔들(The Tudors)’에서 헨리 8세 역을 맡은 배우 조너선 리스 마이어스(30)다.

　‘마여수’는 한국 팬들이 그에게 선사한 애칭이다. 다소 눈에 익지 않은 얼굴이지만 그는 영화 ‘벨벳 골드마인’ ‘매치 포인트’ ‘미션 임파서블3’ 등에서 인상적 연기를 펼쳤다. “연기는 거리와 감옥으로부터 나를 구제해주는 유일한 길”이라고 되뇔 정도로 그는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다. 열여섯에 학교를 그만둬야 했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단역 배우가 됐고 마침내 16세기 절대왕정의 군주로 우뚝 섰다.

　그가 연기한 헨리 8세는 영국 튜더 왕조의 두 번째 왕. 여섯 명의 왕비를 맞아 그중 둘을 단두대로 보냈다. 덥수룩한 수염과 두둑한 배, 두 겹 턱을 자랑하는 그의 초상화를 기억하는 우리에게 조너선 리스 마이어스가 연기하는 젊고 섹시한 헨리 8세는 생소하다. ‘튜더스’가 19세 이상 등급을 받을 만큼 성적 묘사의 수위가 높아 주목(?)받은 것도 ‘마여수’의 육체적 매력 때문이다. 한 번도 밟아 보지 못한 이국 땅에서 그는 ‘우상’이 됐다.

석호필 안녕~

‘튜더스’ 첫 번째 시즌은 지난달 종영과 동시에 앙코르 방송 일정을 잡았다. 10부작에 불과하지만 시청률 1%만 넘어도 ‘풍작’으로 꼽히는 케이블 시장에서 3%에 육박하는 선풍을 일으켰다. ‘석호필’ 바람을 낳았던 화제작 ‘프리즌 브레이크’의 평균 시청률이 1%대인 것을 감안하면 ‘튜더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16세기 영국 궁정을 세밀하게 재현해 낸 데다 록음악을 배경으로 까는 등 현대적 감각을 더했다.

　‘튜더스’는 ‘미드(미국 드라마)’의 진화라는 평도 받는다. 최근 국내에서 한풀 꺾인 미드의 새 버전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과학·범죄·로맨스·액션으로 요약되는 미드의 흥행코드에 ‘역사’라는 묵직한 소재를 접목했다.

　‘튜더스 폐인’을 자처하는 대학생 김지운(23)씨는 “미드는 대개 가볍고 우리 정서에도 맞지 않아 몇 개 보고 나면 뻔한 느낌이 들었다”며 “나이가 많지 않으면서도 카리스마가 넘치는 마여수 덕분에 미국 사극도 새롭게 즐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마여수가 뚱뚱한 아저씨였다면 안 봤겠죠?”라며 살짝 웃었다.

길반장부터 효돌이까지

팬들의 요구에 따라 마여수는 또 다시 찾아온다. 채널CGV는 10일부터 2주간 매일 오전 10시 ‘튜더스’를 재방영한다. 현재 미국에서는 ‘튜더스 시즌2’가 제작 중이다. 채널CGV는 ‘시즌2’도 방영권을 구입해 올해 말, 내년 초께 내보낼 예정이다. 한동안 마여수 열풍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마여수의 탄생 과정은 석호필과 비슷하다. ‘프리즌 브레이크’의 석호필(극중 이름 마이클 스코필드)이 20세기 초 한국에 온 선교사 프랭크 스코필드의 한국명 석호필에서 유래했듯 ‘튜더스’의 마여수 역시 20세기 초 감리교 선교사로 왔던 미스 매리 마이어스(한국명 마여수 여사)에서 따왔다.

‘CSI 라스베이거스’의 길 그리섬 반장 역시 ‘길반장’이란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

　한국외대 김영찬(언론정보학) 교수는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서민정에게 ‘꽈당민정’이라는 애칭을 붙여 준 것처럼 한국 시청자들은 극중 캐릭터에 별명을 붙여 친근감을 표시한다”며 “시청자들은 미드의 외국 배우들을 좀 더 가깝게 느끼고 싶은 마음에서 한국식 이름을 붙여 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포털 네이트 ‘드라마24’ 클럽에서 활동 중인 직장인 이주석(36)씨도 “외국 배우에게 우리 이름을 붙여 주며 미국 드라마를 우리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심리가 숨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이런 ‘개명 바람’이 스포츠 스타들에도 번져 종합격투기 선수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는 ‘효돌이’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스트라이커 웨인 루니는 ‘룬희’로 불리기도 한다.

이에스더 기자<ETOIL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