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2>폭스 TV의 <캔터베리즈 로>(Canterbury’s Law)</H2>

과거에 비해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TV 시리즈가 많아졌다. 캐릭터 역시 청순가련형에서 지대한 발전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다른 프로그램의 남자 캐릭터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만큼 강인하고, 자신감있고, 때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3차원적인 캐릭터를 보기란 쉽지 않다.폭스 TV의 <캔터베리즈 로>(Canterbury’s Law)는 <뉴욕타임스>의 비유처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법정 드라마 버전이라고 보면 되겠다. 하버드 법대를 졸업했지만 배심원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법정에 나가기전 눈동자 색깔과 입고 있는 고급 정장이 어울리는지 고심해야하는 변호사 엘리자베스 캔터베리. 그녀는 보드카를 벌컥 벌컥 들이킬 만큼 술을 많이 마시고, 운전도 난폭하게 하고, 일이 많다는 핑계로 사무실에서도 자주 잔다. 변호를 맡았던 한 의뢰인과 바람도 피우고, 말할 때는 늘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투다. 그녀의 별명은 다양하다.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bitch’에서 부터 ‘쓰레기’까지. 물론 배심원 앞에서는 제외다.

일상생활에서는 밥맛없는 ‘bitch’ 지만 의뢰인을 변호할 때만은 늘 최고인 캔터베리.

하지만 그녀 곁에는 그녀를 지켜주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렇게 결점이 많은 캔터베리에게 왜 사람들이 남아있을까. 간단하다. 캔터베리는 보기 드물게 유능하며 실제로 법을 사랑한다. 밥맛 없이 말할 때가 태반이지만 그래도 의리 하나는 끝내준다. 캔터베리가 맡는 변호는 대부분 다른 변호사가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는 하잘것 없어 보이고, 영양가 없으며, 승산없는 형사소송 뿐이다. 그녀는 늘 승소하기 때문에 부 검찰총장인 잭 윌리엄스 (<오즈>의 테리 키니)와는 앙숙이고, 때로는 검찰측 증인에게 주먹질을 당하기도 한다. 캔터베리는 그래도 힘든 변호를 맡는다.

한 예로 시리즈의 배경인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에서 근래 금발머리를 묶고 가면을 쓴 여자 은행강도가 성행했다. 경찰은 은행 앞에 차를 세워놓고 한참 있는 한 금발여성이 수상해 트렁크를 뒤지자 가면이 나와서 체포한다. 누가봐도 의심이 갈 상황이다. 하지만 캔터베리는 그녀의 변호를 맡고, 결국 경찰의 불법 수색이 입증돼 승소한다. 금발의 의뢰인이 돈뭉텅이를 가지고 찾아온다. 하지만 캔터베리는 이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의뢰인은 의아해 한다. “아니, 내가 은행강도인지 모르고 변호를 맡았었냐”고. 캔터베리는 간단하게 대답한다. “너 말고, 진짜 무죄인 사람이 경찰의 불법 수색으로 피해를 입을까봐” 확실히 짚고 넘어간 것이라고. 캔터베리는 그런 변호사다. 과거 검사였지만 지금은 캔터베리 법률회사 파트너인 러셀 (벤 셍크만)은 “많은 변호사들이 자신의 이윤을 위해 법을 왜곡하고 어기지만 캔터베리는 반드시 의뢰인을 위해서 한다”고 말한다.

아이를 잃어버린 뒤 남편과의 관계에도 문제가 생긴 켄터베리는 이래저래 괴롭다.

유능하지만 개인사에는 젬병인 캔터베리. 특히 법대교수인 남편 맷 (에이단 퀸)과는 상당히 서먹하다. 둘다 상담도 받아보고, 댄스 클래스도 들어보지만 별반 효과가 없다. 서로 일에만 파묻히려는 이 부부에게는 사연이 있다. 몇 년전 어린 외아들을 잃어버린 것. 놀이터에서 캔터베리가 잠시 일 때문에 전화를 받는 동안 아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서로 말은 하지 않지만, 둘다 그녀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NBC TV 시리즈 <ER>의 베테랑 줄리아나 마굴리스가 주연한 <캔터베리즈 로>는 FX의 시리즈 <레스큐 미>의 주인공이자 제작자인 데니스 레리와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감독 마이크 피기스가 프로듀서를 맡았다. 특히 피기스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법을 지키기 위해 법을 깰수도 있다는 의미 심장한 모토를 가지고 있는 <캔터베리즈 로>는 조기종영을 눈앞에 두고 있다. 폭스로 부터 본래 13편의 에피소드를 주문 받았지만 작가파업의 영향으로 6편만 제작된 상태다. 이 외에도 또 다른 새 시리즈 <뉴 암스테르담>과 짝지어 월요일에 방송되었지만, 시청률 저조로 시리즈들의 공동묘지라 할 수 있는 금요일 밤으로 방영시간이 변경됐다. 현재 마지막 1편의 에피소드만 남겨둔 <캔터베리즈 로>는 거의 조기종영이 확실시 되고 있다. 보기 드물게 속시원한 여성 캐릭터를 보여준 <캔터베리즈 로>. 너무 일찍 기회를 잃은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