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0일 미국 개봉을 앞둔 <섹스&시티>가 극중 5번째 주인공으로 명명되던 ‘뉴욕’을 배신했다. 지난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뉴욕시, 특히 맨해튼을 배경으로 한 HBO 시리즈 <섹스&시티>는 30대 독신 커리어우먼 캐리와 그녀의 친구들 사만다, 미란다, 샬롯의 이야기를 다뤄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시리즈에서 뉴욕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모든 여성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곳. <섹스&시티> 때문에 뉴욕으로 상경했다는 여성들의 이야기도 종종 신문지상을 오르내리곤 했다.

그런 뉴욕을 <섹스&시티>가 버렸다. 어떻게? 바로 4년 만에 팬들이 학수고대하던 영화의 월드 프리미어를 뉴욕이 아닌 런던에서 한다는 발표 때문이다.오는 5월12일 런던 레스터 스퀘어 시네마에서, <섹스&시티>는 뉴욕보다 2주 먼저 세상에 소개된다. 이 발표를 접한 뉴욕 미디어는 <섹스&시티> 관계자들에 대한 실망과 불만을 확실히 표시했다. 특히 극 중 주요 캐릭터의 결혼과 죽음이 소문으로 퍼지고 있는 지금, 런던 프리미어는 뉴욕 프리미어를 김빠진 사이다 처럼 만든다는 것이다.

최근 뉴욕 데일리 뉴스는 <섹스&시티>가 런던에서 프리미어 된다는 제목과 함께 첫 문장을 “캐리 브래드쇼가 뉴욕을 두고 바람을 피는가? (Is Carrie Bradshaw fooling around on New York?)”라고 시작했다. 그러나 영화 제작사인 뉴라인의 관계자는 런던에서 먼저 소개되긴 하지만 소규모 행사라고 강조했다. “출연배우 전원이 참석하지도 않는다”고 하지만 주인공을 맡은 사라 제시카 파커와 킴 캐트럴, 신시아 닉슨, 크리스틴 데이비스 등은 모두 참석한다. 단지 미스터 빅 역의 크리스 노스와 조연을 맡은 제니퍼 허드슨 등이 없을 뿐이라고. “런던은 첫 프리미어지, 월드 프리미어는 아니다”며, “뉴욕의 대규모 프리미어를 앞두고 지리상의 이유 때문에 런던을 기점으로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런던 개봉이 단순히 지리적이거나, 팬 서비스 차원이 아닌 ‘돈’ 문제라고 보도했다. 달러의 약세 때문에 런던에서의 시작이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수월하다는 것. 런던에 이어 15일에는 베를린에서 프리미어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뉴욕 프리미어는 5월27일 라디오 시티 뮤직 홀에서 개최되며, 애프터 파티는 현대미술관 (MoMA)에서 캐롤라인 케네디의 공립교 복지재단을 위한 자선행사로 진행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해외 월드 프리미어는 종종 있었다. 예를 들어 <스파이더 맨 3>나 <반지의 제왕>, <웨딩 크래셔스> 등은 모두 해외에서 첫 상영된 경우. 특히 <섹스&시티>에 대한 영국을 비롯한 유럽팬들의 호흥은 이미 잘 알려져왔다. 영국의 경우, <섹스&시티>의 재방송 역시 첫 방송 만큼이나 높은 시청율을 기록한다고. DVD 판매량에서도 유럽이 미국을 앞지른다.그러나 뉴요커의 입장에서는 <섹스&시티>의 런던 프리미어는 상당한 모멸감을 안겨준 것이 사실이다. “런던과 <섹스&시티>가 무슨 상관이냐?”, “뉴욕에서 첫 소개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 “6년 간 시리즈를 촬영한 곳이 어딘가? 뉴욕 아닌가?” 라는 의견이 분분하다. 뉴욕을 배경으로 했으면서도 LA 등 다른 곳에서 촬영됐던 <사인펠드>나 <프렌즈> 등의 시리즈와는 달리, 줄 곳 뉴욕에서 촬영하며, 단순한 배경이 아닌, 뉴욕을 기념하는 전형적인 뉴욕 프로덕션 시리즈로 기록된 <섹스&시티>의 배신을 곱게 보기는 힘들다는 것의 공통된 의견이다.

파파라치와 관광객, 시리즈 팬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50일간 뉴욕에서 촬영된 <섹스&시티> 영화는 1,750명의 캐스트와 스탭을 동원하며, 로맨틱 코미디로는 엄청난 액수인 6,500만달러의 예산을 투입해 제작됐다. 과연, <섹스&시티>는 세계 팬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런던을 택한 것일까, 아니면 뉴욕에 묶여있기에는 너무 덩치가 커져버린 탓일까.

(글) 양지현 ( 뉴욕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