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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출품작 감평요청 가능하냐

김릿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6.07.23 14: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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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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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왔다. 폭설이었다. 

나는 턱을 괸 채 창 바깥을 바라보았다. 편의점 문은 통유리다. 문을 가로지르는 브랜드 로고 사이로, 눈이 점점 쌓여가기 시작하는 도로가 보였다. 귀가길이 걱정되었다. 저녁의 서울, 사람들은 패딩과 목도리를 두르고 바쁘게 길을 걸어갔다. 내리는 눈 사이로도 콘크리트의 건조함은 건재했다. 간간히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는 소리와 날카로운 클락션이 귀를 괴롭혔다.

머물지 못하고 방황하는 시선 끝에 하늘이 잡혔다. 공허하게 물든 하늘은 아침도 지금도 회백색이었다. 우울한 도시에 걸맞는 우울한 색. 언젠가 가로등이 켜지고 달이 뜨면 종이에 문지른 목탄의 빛으로 변할 서울의 하늘이 전해줄 수 있는 가장 밝은 빛. 그 빛의 색은, 자연광보다는 형광등에 가까웠다. 

"어서오세요..."

상념을 끊은 건 경쾌하게 울리는 전자 벨의 소리다. 나는 레밍이 그 앞의 레밍을 따라가듯 반사적으로 인사했다. 여전히 시선은 하늘 끝에 부유하는 상념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 시선은, 하늘 끝에 자리한 상념에 닿지 못했다. 마악 문을 젖히고 들어온 손님의 인상이 시선과 목표물 사이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바깥이 추운지 연신 손을 호호 불어대는 교복의 소녀다. 어깨에 하얗게 눈이 쌓인, 검은 생머리의 여자아이였다. 하늘색 목도리로 목을 온통 감싸고, 앙증맞은 검은 색의 구두를 신고 있었다. 교복 위로 입은 붉은 카디건이 형광등을 받아 새빨갛게 빛났다. 떨어진 눈이 바닥 위에 흩어졌다. 

"우와, 엄청 추워..."

그런가. 바깥, 춥구나. 패딩 챙겨와서 다행이네.

나는 소녀가 삼각김밥을 고르고, 고민하다 커피도 하나 사는 걸 흘낏 보았다. 삼각김밥 1500원. 캔커피 850원. 2350원이니 3천원 낸다고 치면 650원 거슬러주면 된다. 미리 계산하고 있으면 손님을 빨리 보내고 창 바깥을 볼 수 있어. 소녀가 손에 쥔 품목을 본 후엔, 그런 독백을 하며 왼손으로 턱을 깊게 괴고 있었다.  눈 속에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내가 오로지 원했던 건 혼자 있을 시간이었다. 정지한 세상 안에서 고독을 즐기는 삶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날 신경쓰지 않는다면 나도 그들을 신경쓰지 않으리라.

커피와 삼각김밥을 들고 카운터로 다가오는 소녀의 얼굴이 꽤나 밝아 보였다. 카디건 위로 쌓였던 눈은 다 녹았는지 얼룩이 남은 정도였다. 검은 구두가 내는 얇은 소리가 느릿하게 커져간다. 소녀의 아직 녹지 않은 얼굴이 나와 가까워진다. 빨갛게 물든 볼은 카디건과 잘 어울렸다. 앞으로 다섯 걸음, 앞으로 세 걸음, 앞으로 한 걸음. 그리고 도착.

난 해오던 대로 카운터 위에 놓인 삼각김밥 하나와 커피 하나를 찍었다. 

"2350원입니다."

소녀는 3천원을 지불했다. 나는 일어서서 카운터로 다가가 650원을 손에 쥐고 소녀에게 건네려고 했다. 정해진 규칙에 따른 정해진 태도였다. 난 그 행동에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았다. 그건 일종의 척수반사였다.

그녀가 카운터 위로 몸을 구부리고 장난스럽게 턱을 괴며 날 쳐다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 손에 쥔 거스름돈을 가지고 얼어버렸다. 그녀는 내 당혹감에 지지 않고 실망이라는 듯 말한다.

"에이. 직접 해봐도 아무런 느낌이 없잖아."

"650원입니다."

목소리가 떨렸던 이유는 뭘까. 잘은 모르겠다. 내가 홀로 완성한 세계의 벽이 허물어지는 공포였을까? 쌓아올린 벽 위에도 여전히 햇살이 비쳐서 그랬던 걸까? 난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거스름돈을 건넸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갈 생각이 없었다.

"오빠, 왜 항상 턱을 괴고 있어요?"

"예...?"

질문에 무의식적으로 대답한 나는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서 현기증을 느꼈다.

"저 요 앞에 학원 다니거든요. 오빠 볼 때마다 항상 턱을 괴고 있더라고요. 되게 슬퍼 보여요."

그녀는 자신의 말이 마음에 안 드는 듯, 살짝 말을 멈추다가 변명을 이어본다.

"어, 그러니까, 안 좋은 의미의 슬픔이 아니라... 뭔가 소설가 같은 거? 모르겠다. 에잇."

이거 오빠 주려고 산 거니까 마셔요. 같이 밤 샐 처지인데 힘내자구요. 하는 메아리를 남기고 소녀는 종종걸음으로 뛰쳐나갔다. 마지막으로, "나 어떡해..." 하는 중얼거림이 찬 바깥공기를 타고 가늘게 들어왔다. 중얼거림에는 레쓰비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난 난감하게 그 커피를 보다가 카운터 한 켠으로 밀어놓았다. 머리가 복잡했다.

내가 계속 턱을 괴고 있었구나. 몰랐는데. 나도 모르는 사실을 저 애는 어떻게 안 걸까. 이럴 때에는 뭐라고 답해야 하지. 상념의 폭풍이 떠오르고 사라졌다. 그 전과는 다른 의미로,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남은 근무시간 내내 난 턱을 괴고 생각 안에 나를 맡겼다.

그동안 다섯 명의 손님이 왔다가 나갔다. 그들은 바빠 보였다. 부지런히 통화하며 길의 미끄러움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었다. 날씨가 추우니 꼭 챙겨 입고 나오라는 말을 수십번도 더 말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편의점을 나설 때에야 난 비로소 그들의 행동을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몰랐던 곳이었다. 

누군가는 여전히 누군가를 신경써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야간 근무자와 교대하고 편의점을 나섰다. 눈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나는 패딩 위로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며 스마트폰을 열었다. 방금 편의점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손이 얼었는지 타자가 잘 쳐지지 않았다. 난 가까스로 문자를 보냈다.

- 엄마, 밖에 미끄럽다. 조심해.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 우리 아들 이제 어른 다 됬네. 이런 문자도 보낼 줄 알고.

쓴웃음이 지어졌다. 내가 쌓은 벽을 부순 후에야 그 벽이 무엇인지 보였다. 그 벽은 치기로 쌓아올려졌다. 외로움과 상처로 토대를 올렸다. 두려움으로 위를 장식했다. 내가 자라오면서 입은 상처가, 아물면서 생긴 흉터가, 믿을 수 없다며 외면한 따뜻함이 벽 바깥에 있었다. 나와 내 현실을 갈라버린 벽의 이름, 그 간단한 이름은 길지 않았다. 

그건 미성숙함이었다.

멀리서 가로등이 하나 켜졌다. 회색의 땅을 남김없이 지워버린 눈의 백색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조용히 반짝였다. 손에 들린 레쓰비가 아직 따뜻했다. 집에 도착한 이후에도 여전히 따뜻할 것이다.

내 심장이 뛰는 동안은 식지 않을 것이다.



-


사정없이 까 줘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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