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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 마친 좀비 아포칼립스 8~10화.txt

김매와(58.121) 2016.10.17 17:02:06
조회 74 추천 0 댓글 3

-8화-


노래방 창문으로 주변을 살펴보았을 때부터 성욱의 머릿속엔 어렴풋한 계획이 잡혀 있었다.


“생각해둔 건 있는데요. 혹시 이 주변 지리나 구조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 있습니까?”


대호는 다른 대원들을 한 차례 살펴본 후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런 사람 없는데. 아저씨는요?”

“저야 K대 출신이니까 이 근처는 잘 알죠.”


다른 이들에게 주변에 대해 아는지를 물어본 것에도 이유는 있었다. 자신의 발언에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대충의 계획은 이래요. 저 쪽에 지하철 입구 보이시죠? 2번 출구요. 그쪽으로 들어가면 지하상가에요. 병원 지하하고도 연결되어 있고요. 당신들도 아시다시피 입구를 뚫고 갈 수는 없으니까, 저 지하통로를 이용하는 게 최선일 겁니다.”


말을 마친 후 대원들을 흘끔 살펴보았다. 유일하게 조수경만이 똥 씹은 표정으로 성욱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역시 드러내놓고 반대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계획이랄 게 없었으니까.


“김원혁. 뒤에서 방석복 한 벌 꺼내와.”

“네?”

“남는 거 있을 거 아냐!”

“아 예!”


대호는 후임에게 건네받은 방석복을 성욱에게 건네며 물었다.


“육군 출신이죠?”

“네.”

“입는 법 알아요?”


성욱은 그에게 받아든 플라스틱 방석복을 왼쪽 눈으로 바라보았다.


[신형 방석복]

내구도 93/100

시위 진압용으로 쓰이는 신형 방석복이다. 몸통과 팔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현대판 갑옷의 일종으로 적당한 방어력을 제공한다.


왼쪽 눈을 통해 수치화 된 방석복은 생존 확률을 올리는 데엔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대호의 도움을 받아가며 장비를 착용했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한 겁니까?”

“뭘 어떻게 해요?”

“조금 전에 말입니다. 보니까 그 식칼로 저것들을 순식간에 처리하시던데. 대체 무슨 수를 쓴 겁니까?”

“뇌요. 뇌를 박살내면 저것들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아요.”

“아니, 그건 그렇겠지만. 뭔 수를 쓴 거냐고요.”

“눈을 찌르십쇼. 아래쪽에서 위쪽을 후벼 파면 됩니다. 눈을 통해 뇌를 찌른다는 느낌으로 단숨에.”

“식칼로도 그게 되요?”

“되니까 살아있는 거잖아요. 아. 그 플라스틱 봉 가지곤 절대로 무리니까 시도할 생각도 마세요.”


성욱의 말을 듣고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대호가 말했다.


“코광. 우리 혹시 탐침봉 실었냐?”

“코광 한 명도 안 남았습니다.”

“니미. 김원혁. 니가 오늘부터 광짱 해. 그래서. 탐침봉 있냐고.”

“찾아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저 코광이나 광짱이나 하는 게 저 양반들의 보직 구분인 것 같은데.’


“찾았습니다!”


김원혁은 버스 뒷좌석에서 불룩하게 가득 찬 더플 백 하나를 가져왔다. 안에는 쇠를 깎아 만든, 길이 70cm 가량의 T자 형 쇠막대가 들어있었다.


성욱은 전경대원들의 어깨 너머로 더플 백 안의 물건을 쳐다보았다. 


[군용 탐침봉]

내구도 : 개별


수상, 육지 어디에서나 사용 가능한 다목적 탐색도구.


간단한 설명밖엔 나오지 않았지만, 성욱은 그 뾰족한 첨단이라면 충분히 뇌를 헤집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플라스틱 봉은 모르겠고,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까?”

“식칼보단 낫겠죠.”

“최경승. 조 수경님. 세 개씩 챙기세요. 일단 밖으로 나가면 두 사람이 저것들 처리해야 합니다.”

“너, 너하고 김원혁은?”

“방패 잡아야죠. 왜요. 수경님이 방패 잡으실래요?”


성욱이 말했다.


“그럼 전 뭘 할까요?”

“아저씨……는 글쎄요. 음. 진짜 잘 싸우는 것 같던데 좀 무리한 부탁 해도 됩니까?”

“부탁 받긴 싫은데. 일단 말씀해 보세요.”

“선두에 서서 길 좀 열 수 있어요?”

“할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죠. 문제는 해야 한다는 거지.”

“고맙습니다.”

“그런 말은 살아서 도착한 이후에 합시다. 그보다 다시 한 번 계획 정리를 해보죠?”

“아저씨가 하는 게 낫지 않아요?”

“일단은 대호씨가…….”


조 수경의 눈치를 한 번 살핀 후 성욱은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


“당신네 리더라고 봐야 하니까. 나는 외부인이고요.”

“알겠습니다.”


대호는 다른 세 명의 대원과 성욱을 한 자리로 모았다.


“한 번만 설명할 테니 잘 들으십쇼. 일단 스크럼을 짤 겁니다. 선두에……아저씨 이름이 뭡니까?”

“최성욱입니다.”

“최성욱 아저씨가 선두에 설 겁니다. 이 주변 지리를 아는 사람이 이 아저씨뿐이고, 이 중에선 아무래도 저것들과 싸우는 데에 가장 익숙한 것 같으니까요. 괜찮겠습니까?”


대호는 조수경을 쳐다보며 그렇게 물었다. 조수경은 대꾸하지 않았다.


“동의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우리는 저 아저씨 뒤를 바싹 따라붙을 겁니다. 저하고 김원혁이 방패를 들고 좌, 우를 맡고, 조수경님하고 최경승은 탐침봉을 들고 저희 뒤에 바싹 붙으십쇼. 기본적으로는 시위대를 상대할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상대의 공격은 방패조가 처리합니다. 시야 확보와 무력화는 봉조의 몫입니다. 지하에 얼마나 많은 숫자의 좀비들이 있을지 모르는 만큼, 일단 버스 안에서 나가게 되면 멈출 수도, 돌아올 수도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에 의지한 채 목숨을 부지해야 한단 말입니다. 질문 있습니까?”


최경승이 말했다.


“무력화는 어떻게……?”


대호는 성욱을 쳐다보았다. 그에게 설명을 부탁하는 눈초리였다.


“별 거 없어요. 눈구멍을 찌르세요. 눈을 통해 뇌를 찌른다는 느낌으로, 이렇게.”


탐침봉을 손에 든 성욱이 몇 차례 시연을 보였다. 조수경과 최경승도 성욱의 동작을 몇 번 따라한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버스의 뒷문 앞에 선 네 사람은 최후의 점검을 하고 있었다. 대호가 자신의 방석모를 퉁퉁 두드리며 말했다.


“아저씨는 이거 안 쓸 겁니까?”

“그거요? 시야 좁아지지 않아요?”

“뭐 그렇긴 한데요.”

“그럼 필요 없습니다.”


대호는 그저 어깨를 한 번 으쓱한 후 모두에게 말했다.


“1분 후에 출발하겠습니다. 그리고……아저씨. 뭐 할 말 있어요?”


성욱은 나머지 네 사람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기 몸은 알아서 지키십쇼. 낙오된 사람 구해줄 생각은 없으니까.”

“후우. 그럼 갑니다. 최경승! 문 열어!”


버스의 뒷문이 열렸다. 커다란 진압 방패를 든 김대호와 김원혁이 먼저 내렸다. 그들이 방패를 들고 좌우를 살폈다. 직후 성욱이 그들의 사이를 통과해 선두에 섰다. 남은 두 사람이 손에 탐침봉을 든 채 방패조의 뒤에 섰다.


성욱이 설치해 놓았던 트로트 메들리의 함정은 아직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고, 덕분에 지하철역의 입구까지는 남아있는 좀비들이 없었다.


다섯 사람은 주변을 경계하며 천천히 걸었다. 노래방의 반주 사이로 서로의 거친 숨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마침내 무사히 지하철 역 계단 앞에 도착했다. 대호가 작게 말했다.


“시작합시다.”


-9화-


계단을 내려가 도착한 지하상가의 모습은 지상의 그것보다도 처참했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피와 살점과, 살아 움직이는 시체들뿐이었다.


어림잡아도 기백에 달하는 좀비들은 마침내 도착한 갑옷을 입은 배달음식에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래. 당연히 이럴 거란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지상의 소음이 지하에까지 다다르지 못했다면, 당연히 지하는 시체들로 가득할 거란 생각을 했어야 했다.


사고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 이유는 경험의 부족 탓이다. 성욱이 제 아무리 기묘한 능력에 눈떴다 한들,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으니까.


성욱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네 사람을 흘끔 돌아보았다. 그들의 다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공포가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탐침봉을 든 오른손에 힘을 잔뜩 싣고서, 성욱은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다가오는 좀비의 눈을 향해 탐침봉을 찔렀다.


푸석.


오른손을 힘껏 흔든다. 제자리에 선 채 허물어지는 시체의 몸에서 재빨리 탐침봉을 뽑아, 두 번째, 세 번째 좀비를 쓰러트린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공포에 질려있는 네 사람에게, 저것들을 해치울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일이다. 그들의 손으로 극복할 수 있는 공포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


성욱이 취한 행동은 그 상황에서 가장 적합하고 타당한 일이었다. 후들거리던 대원들의 다리에 점차 힘이 들어갔다. 단단히 땅을 딛고 선 네 사람이 성욱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대호와 김원혁은 방패를 들어 좀비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두 사람은 무게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이따금 방패를 세워 좀비들의 목덜미를 후려쳐 밀어냈다. 


그들의 뒤에 바싹 붙어있는 조수경과 최경승은 두 사람의 어깨 너머로 탐침봉을 찔렀다. 한 번, 두 번. 실수를 거듭했지만 공격을 반복하면 할수록 그들 역시 익숙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채 막아내지 못한 공격이 대원들의 손발을 할퀴고 물어뜯었지만 그런 단순한 공격으론 방석복을 뚫고 상처를 낼 수는 없었다.


좀비무리의 사이를 헤집으며 천천히 나아가기를 십여 분. 네 명의 전경대원들은 진득한 피 냄새에 정신이 아득해지고 손, 발이 후들거렸다.


그럼에도 어쩐지.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상황임에도.


할 수 있다고. 살아서 이곳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따르는 네 사람의 생각이야 어쨌든, 성욱의 왼 눈은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존자가……더 남아있어?’


혹시나 싶어 발동시킨 탐색 모드의 왼 눈은 주변의 사물들을 구별하고 있었다. 


온갖 색으로 나뉜 시야 안에는 좀비들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형태와 색으로 구분되는 생존자들이 상가 곳곳에 숨이었었다.


‘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면…….’


자신이 이번 퀘스트로 얻을 수 있는 보상 역시 증가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그런 위험을 감수할 만큼의 가치가 있을지를 쉽사리 비교할 수가 없었다.


다섯 사람이 무사히 병원에 도착하는 것만으로 +40 포인트. 한 사람을 더 구출할 때 마다 포인트는 10씩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을 더 구출할 때 마다, 그들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 확률 역시 떨어질 것이다.


어쨌든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무장도 하지 않은데다, 패닉에 빠져있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발목을 잡으면 잡았지 결코 도움이 되진 않을 테지.


‘결정……을 내려야 해.’


자신의 뒤를 따르는 전경대원들은 이 안에 생존자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아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다. 구출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뻔 한일이다. 그들을 무시한다면?


‘죄책감…….’


그것이 가슴 한편에 자리를 잡고 언제까지고 그를 괴롭힐 것은 분명했다.


마침내 결심한 성욱이 외쳤다.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지하상가로 내려온 것도 벌써 이십분 째. 자신의 땀으로 흠뻑 젖고 당장이라도 퍼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그들은 삶에 대한 열망 하나로 없던 힘까지 쥐어짜내고 있었다.


성욱은 달려드는 좀비를 해치운 후 쓰러지는 시체 너머를 바라보았다. 앞으로 20M. 그 너머에 병원과 연결되는 회전문이 보였다.


‘조금만 더, 길어야 5분이야.’


자신이라면 아직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성욱은 뒤를 돌아보았다.


전경대원들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가장 체격도 체력도 뛰어난 김대호조차 어깨로 숨을 몰아쉬며 후들거리는 무릎을 주체하지 못했다.


‘다른 놈들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지쳐있는 것은 조수경이었다. 그는 손에 쥔 탐침봉조차 제대로 휘두르지 못했고, 덕분에 김대호는 방패를 한 손에 낀 채 그의 몫까지 싸워야 했다. 


여러모로 그는 ‘쓸 데 없는 짐’ 그 자체였다.


어느새 다가온 좀비가 휘두르는 팔을 왼 손의 방석복으로 막았다. 플라스틱 위를 긁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그대로 왼 팔뚝으로 목을 미는 동시에 오른손의 탐침봉을 침착하게 찔러 넣었다.


‘몇 마리나 해치웠지? 서른? 쉰?’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짓을 반복해야 병원에 도착할 수 있을까. 그는 쓸 데 없는 생각들을 머리 한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당장 중요한 것은 그딴 것들이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단지 한 번이라도 더 팔을 휘둘러, 한 뼘이라도 더 나아가는 것 뿐.


“으아, 으앗! 으아아악!”

“조수경님!”


성욱의 뒤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성욱이 돌아보자 그곳엔 좀비에게 뒷덜미를 잡힌 채 쓰러진 조수경의 모습이 보였다.


“씨팔!”


부지불식간 성욱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다시 한 번, 성욱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구할 것인가, 버릴 것인가.


김대호는 이미 넘어진 조수경을 막아선 채였다. 방패를 들어 달려드는 좀비들을 밀쳐냈고 다른 두 사람은 어쩔 줄 몰라 제 자리에 멈춰 선 채 성욱을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에서 나오기 전에, 이미 성욱은 그들에게 결심을 강요했었다. 누가 쓰러지든 구해 줄 생각 따윈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그러나 실제로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는 그 역시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포인트나 보상 따위로 고민하는 것은 아니었다.


성욱 자신도 깨닫지 못한 고민의 이유는, 인간 본연의 보편적인 가치관과 감성 같은 것들 때문이었다.


당장 위험에 닥친 사람이 눈앞에 있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움직이는. 


선량한 사람들의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인 그런 행동을, 마찬가지로 발휘되는 생존본능이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때문에 성욱은 두 가지 본능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이타심과 이기심. 한 인간의 가슴속에서 이 두 가지가 충돌할 때,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이기심이었다.


“버리고 뛰어요!”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 누구나가 갖는 마음이기도 했다. 어쩔 줄 몰라 하던 다른 세 사람도 성욱의 외침이 신호이기라도 한 듯 쓰러진 조수경을 버린 채 달리기 시작했다.


“살려……살려줘! 나를 버리고 가지…….”


채 끝나지 않은 조수경의 마지막 말은 언어 대신 비명으로 끝났다. 당장에 무력화 된 인간을 향해 달려드는 좀비 떼를 비집고, 남은 네 명은 병원의 회전문을 향해 뛰었다.


-10화-


성욱과 다른 세 사람은 간신히 다다른 커다란 회전문 안에 주저앉아 있었다. 


이미 지성을 잃은 좀비들은 회전문의 그 단순한 메커니즘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애꿎은 주변의 강화유리만을 두드리고 있었다.


숨을 몰아쉬며 기력을 회복하는 와중에도 네 사람은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조금 전까지 그들과 함께 했던 이가 싸늘한 시신으로 변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좀비들이 유리문을 두드리는 소음 속에서 네 사람은 기이하게도 고요함을 느꼈다. 오 분 동안 계속된 침묵을 깬 것은 성욱이었다.


“쓸 데 없는 생각은 하지 맙시다. 어쩔 수 없었으니까.”


누구 하나 대꾸하지 않았지만 성욱의 그 말이 나머지 세 사람이 원하던 것이었다. 누군가가 나서서 그렇게 말한다는 것이. 지금의 그들에겐 무엇보다 필요했다.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도,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마침내 대호도 입을 열었다.


“앞을 봐야죠. 하, 씨팔.”


성욱은 회전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병원 지하 일 층은 지하상가와 별 다를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환자들을 위한 부대시설들. 카페, 편의점, 도너츠 가게와 기다란 벤치들이 줄지어 늘어선 그 넓은 공간에도 좀비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아직 회전문 안의 그들을 눈치 채지 못했는지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배회할 뿐이었다. 대호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어떻게 하죠?”

“뚫고 가야죠. 저기 에스컬레이터 보이시죠? 그걸 통해 위로 올라갑시다. 무전기는 챙겨 왔죠?”

“김원혁.”

“네!”


원혁이 방석복 안에 넣어두었던 무전기를 꺼내며 물었다.


“뭐라고 할까요?”

“일단 1층 상황이 어떤지 물어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어느새 김대호를 비롯한 전경대원들은 당연하다는 듯 성욱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들이 여기까지 살아서 도착할 수 있었던 것도 성욱의 덕이었으니까.


한껏 낮춘 목소리로 병원 내부와 통신을 한 김원혁이 말했다.


“1층 역시 저것들에게 점령당했답니다.”

“그리고요?”

“2층부터는 군인들과 저희 다른 대원들이 확보하고 있답니다.”


성욱은 몇 번 와보았던 K대 병원 내부의 구조를 떠올려보았다. 1층과 2층의 중앙은 복층처럼 만들어 중앙이 뻥 뚫려 있었다. 즉 2층의 난간에서라면 군인들이 그들을 엄호해 줄 수 있을 터였다.


“군인들한테 엄호를 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봐줘요.”

“네!”


그리고 또 다시 몇 번의 무전이 오갔다.


“할 수 있답니다.”

“다행이네요.”


대호가 말했다.


“그러면 이제……그냥 뚫고 가면 됩니까?”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김원혁씨라고 했던가요?”

“네!”

“우리가 어디를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되는지를 물어봐요.”

“알겠습니다!”


군인들의 공조 덕분에 성욱은 계획을 마칠 수 있었다. 일단 그들이 돌입을 시작하면 2층의 군인들이 난간 너머로 급조한 밧줄을 내리기로 했다.


에스컬레이터며 계단은 좀비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병원 침대며 의자 따위로 막아놓아 치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밧줄이라. 그럼 방패는 버려야겠군.”


대호는 못내 아쉬운 듯 자신의 진압방패를 바라보았다.


“거기까진 필요할 테니까 가서 버려도 될 겁니다.”

“그야 그렇죠.”


성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좁은 공간에 서로 우겨진 채 앉아있던 다른 세 사람도 그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서로의 얼굴을 한 차례 바라보며 공허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자신들이 이런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성욱이 말했다.


“존나 씨발 힘들긴 하지만 쉬는 건 좀 더 미뤄봅시다. 김대호 씨. 선두에 서 주세요.”

“알겠습니다.”

“나머지 두 사람은 우너래대로 해 주시고. ……그 양반의 빈 자리는 제가 채우죠.”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회전문을 밀었다. 문이 열린 후, 네 명은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달렸다.


갑작스레 나타난 먹잇감에 좀비들 역시 그들을 향해 뛰었다. 선두에 선 김대호는 방패를 몸에 바싹 붙인 채 몸을 부딪쳐 길을 열었다.


성욱은 뛰어가는 와중에도 손에 쥔 탐침봉을 찔러 대호가 밀쳐내지 못한 좀비들을 쓰러트렸고, 김원혁과 최경승은 뒤에서 달려드는 시체들을 막아냈다.


어떻게든 그것들을 비집고 나아가며 에스컬레이터에 도착했다. 무언가가 끼어 움직임을 멈춘 에스컬레이터에선 매케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 너머의 1층에선 에스컬레이터의 좁은 계단을 타고 한 마리씩 좀비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자리 바꿔요!”


순식간에 대호와 자리를 바꾼 성욱이 선두에 서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의 높이 차이 때문에 눈을 찌를 수 없었던 성욱은 손에 쥔 탐침봉으로 어퍼컷을 하듯 턱 밑을 찔렀다.


뼈를 꿰뚫는 소름돋는 소리와 함께 탐침봉의 끝이 머리를 파고들었다. 뇌가 파괴되어 축 늘어진 좀비의 몸뚱이가 성욱을 덮쳤다.


왼팔로 사람 하나의 무게를 가까스로 막아낸 성욱이 움직임을 멈춘 시체를 에스컬레이터 바깥으로 밀쳐냈다. 시체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성욱의 등 뒤에선 세 사람이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시체들과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었다. 


어느새 김대호는 대열의 가장 뒤에서 방패를 든 채 버텼고, 그의 어깨 너머로 김원혁과 최경승이 좀비들을 찌르고 쳐냈다.


쿵, 쿵, 쿵. 에스컬레이터 너머로 좀비들이 떨어질 때 마다 커다란 소리가 났다. 성욱의 필사적인 저항에 길은 조금씩 열렸다.


한 단, 한 단 계단을 오를 때 마다 필사적이었다. 왼 쪽의 눈을 통해 몇 개의 메시지가 빠르게 지나갔지만, 그것을 확인할 새도 없었다.


1층까지 단 세 계단이 남았을 때, 김원혁이 무전기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쏴요!”


귀청을 때리는 커다란 소리들. 순간 먹먹해 진 귀와. 잃어버린 방향감각. 사방에서 쓰러지기 시작한 시체무리. 시야에 들어온, 6미터 앞의.


하얀 커튼 밧줄 네 가닥.


자신이 외치는 소리조차 성욱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뛰어요!”


네 사람은 사격을 개시한 군인들 사이를 달렸다. 마침내 밧줄 앞에 도달한 네 명은 손에 들고 있던 짐을 내팽개치고 커튼 밧줄에 매달렸다.


양 팔 가득 힘을 실고, 허벅지를 바싹 꼬아 밧줄을 오르기 시작했다. 날아드는 총탄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은 좀비 떼가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간신히 여기까지 살아서 도착했는데. 다른 세 사람이 좀비떼의 손아귀에 잡혀 죽는 꼴을 보고 싶진 않았다. 


성욱은 양 팔로 밧줄을 단단히 잡은 채 발치를 향해 몰려드는 좀비들의 팔을 걷어차며 외쳤다.


“끌어당겨!”


다른 세 사람의 발이 그의 머리 위로 사라진 후, 성욱은 젖 먹던 힘까지 전부 짜내 양 팔만으로 밧줄을 타고 올랐다.


이윽고 총성은 멎었으며, 군인들은 성욱이 매달린 밧줄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군인들의 손을 붙잡고 난간을 넘어선 성욱의 감상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오늘은……어떻게든 살아남았군.’


환호성, 장탄식,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만큼은 엄호하던 군인들도, 지켜보던 전경과 민간인들도. 살아남은 세 사람도 모두 한 마음으로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성욱은 조금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복 퀘스트 : 생존자 구출을 완수하셨습니다. 세 명의 생존자를 무사히 대피소로 이끈 보상으로 도합 30의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이것으로 남아있는 포인트는 다시 30이 되었다. 생존자 구출은 반복 퀘스트답게 임무를 완수했음에도 사라지지 않고 퀘스트 창 한쪽에 남아 있었다.


‘지하상가에 고립된 사람들이 있었지.’


그들을 구출할 수만 있다면. 추가 포인트를 획득할 기회이기도 했고, 생존을 위해 내팽개쳤던 양심을 벌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 그리고 쓰러진 조수경을 뒤로 하고 왔다는 사실은. 지금 당장은 몰라도 언젠가는 그에게 스트레스로 남을 것이 분명했기에.


성욱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들의 주변에는 아직도 흥분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군인들이 있었다.


지하상가의 생존자들을 구출하기로 결심한 그에게, 남아있는 문제는 두 가지였다. ‘누구를’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 것인가.












이제 11화부터 쭉 써야지...


끄으으윽...최소 일만 자는 써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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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지갑 절대 안 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5/20 - -
4839993 녹발은 극혐인거 모두가 알던데 왜 하늘색머리는 쓸까 ㅇㅎ(222.97) 16.10.16 18 0
4839992 판갤 한정 제일 병신 같은 머리색 [2] ㅇㅇ(125.143) 16.10.16 37 0
4839991 조금 게으르면 어땨 김초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10.16 24 0
4839989 최강의군단 개발진이 백발 조온나 좋아하잖아 ㅋㅋ 알피료없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10.16 26 0
4839988 주인공이 마족의 힘을 받아 세지는 스킬명 ㅇㅇ(125.143) 16.10.16 15 0
4839987 룬중지왕은 역시 관통 아입니까 빵케이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10.16 24 0
4839986 솔직히 보라색 머리도 병신 대열에 놓어야됨 [1] ㅇㅇ(175.223) 16.10.16 23 0
4839984 현실에서 머리칼 젤신기한건 형광색봄 ㅍㄹㅅ(124.52) 16.10.16 21 0
4839982 머리색 병신같은 거 녹색 연두색 하늘색이지 [1] ㅇㅎ(222.97) 16.10.16 34 0
4839980 문피아 10화 선작 200조금 넘음 ㅇㅇ(175.198) 16.10.16 33 0
4839979 ㅍㄹㅅ님 제가 지금 플레티넘구간에서 겜중이니 [1] 야흐오(59.4) 16.10.16 29 0
4839978 개인적으로 가장 혐인 머리는 연두나 녹색이다. ㅇㅇ(211.177) 16.10.16 35 1
4839977 백발은 이런케이스말고는 다 혐임 [1] ㅍㄹㅅ(124.52) 16.10.16 48 0
4839976 그브 가성비 최고 스킨은 용병인거같음 야흐오(59.4) 16.10.16 23 0
4839971 이런 머리색은 어때? 에봉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10.16 40 0
4839969 굴뚝청소 할 때 마다 늘어나는 것도 있습니다. [4] 김매와(58.121) 16.10.16 66 0
4839967 에봉이님 이거 제목 뭡니까... [1] 타임머신(223.62) 16.10.16 39 0
4839966 참신한 머리털은 역시 투톤이지. [1] 뿔테(219.255) 16.10.16 41 0
4839964 매와아재가 게으르다니. [2] ㅇㅇ(211.177) 16.10.16 36 0
4839963 근데 프로좆수가 저 게임 하면 또 감성팔이 오지게 당할 텐데 ㅇㅎ(222.97) 16.10.16 43 0
4839962 그니까 방관룬이랑 공룬은 효율 자체도 방관룬이 좋고 야흐오(59.4) 16.10.16 26 0
4839961 흰머리가 제일혐임. [5] ㅇㅇ(211.177) 16.10.16 53 0
4839960 야흐오님 그거 양날의검이자늠;; [2] ㅇㅇ(121.190) 16.10.16 38 0
4839958 룬은 역시 올공속 올공 올주문력 룬이에양! Arachn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10.16 13 0
4839957 생각해보니 쫌끔 게으른 것 같기도 하다. [3] 김매와(58.121) 16.10.16 54 0
4839956 주인공이 네오안산에서 히든직업 조선족으로 전직하는거 어떠냐 [1] ㅇㅇ(220.118) 16.10.16 29 0
4839955 참고로 저거 올방관공룬 쓰는 사람이 아예 없던 지잡 룬은 아님 야흐오(59.4) 16.10.16 39 0
4839953 요즘 머리 대세는 대머리던데 ㅍㄹㅅ(124.52) 16.10.16 15 0
4839950 요즘엔 보라색 머리도 흔한 것 같다.. [2] 김초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10.16 50 0
4839949 아니 팡테 마나재생쓰래매 [6] ㅍㄹㅅ(124.52) 16.10.16 53 0
4839947 아포칼립스는 엔딩있는 게임이면 갓장르. [2] ㅇㅇ(211.177) 16.10.16 45 0
4839946 금발캐 솔직히 너무 흔해서 매력 x [4] Arachn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10.16 69 0
4839945 디스 워 오브 마인 좀비편 나오면 좋겠다 [1] 산-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10.16 49 0
4839944 야흐오님 방관룬 쓸모없는거같은디 [4] ㅇㅇ(121.190) 16.10.16 52 0
4839943 야흐오님 제가 게으른 게 아니고요. [4] 김매와(58.121) 16.10.16 65 0
4839942 끊임없이 보이는 썬문애니 예고편 본편 예고편임 아니면 ㅇㅇ(211.177) 16.10.16 19 0
4839940 소아네님이 취향이라는 이름의 음험한 이빨을 들이대기 시작하는 것 같군요. [1] 골수이지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10.16 49 0
4839939 동조선의 남녀평등.jpg [3] ㅇㅇ(121.190) 16.10.16 121 0
4839937 님덜 종말의 이제타 보셈ㄷㄷㄷㄷ 에봉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10.16 35 0
4839936 소아네님 있으신가요? [1] 골수이지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10.16 38 0
4839935 판테온 개쩌는 룬 찾음 [2] 야흐오(59.4) 16.10.16 67 0
4839931 오맞말만 하면 오맞말이 아니잖아 [1] 소아네(222.102) 16.10.16 32 0
4839930 좀비 아포칼립스 소설 8화.txt [10] 김매와(58.121) 16.10.16 598 0
4839929 아니 저 움짤만 봐도 좃문진짜ㅋㅋㅋ [5] 빵케이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10.16 98 0
4839927 금발이 짱이거든! [2] ㅇㅇ(39.7) 16.10.16 68 0
4839925 사직서 양식 [2] 행복한뀽뀽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10.16 61 0
4839924 확실히 페도랑 로리씹덕은 다르지 ㅇㅇ(175.223) 16.10.16 32 1
4839923 검은색 or 파란색 & 빨간색이 체고 아닌가양 [1] Arachn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10.16 27 0
4839922 아주 딴딴한 똥을 괄약근 힘으로 판갤러 항문에 집어넣고 싶다. ㅇㅇ(125.143) 16.10.16 26 0
4839915 이 망가 제목좀 ㅠ [4] 00(58.121) 16.10.16 9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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